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40화 (669/686)

22권 9화

제45장 무련방벽(武聯防壁) (3)

안휘성 천무련.

나날이 높아지는 담장 너머, 보통 사람은 잘못 들어오면 길을 잃을 정도로 거대한 전각들이 즐비했다.

자고로 힘이 있는 곳에 돈과 사람이 모이는 법.

천무련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전성기 무림맹 수준의 연합으로 성장했다.

지금의 강호 무림에서 가장 힘이 있는 단체를 꼽으라면 누구든 한 손에 천무련부터 꼽고 시작한다.

그렇기에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이 천무련의 대문을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천무련은 입장하는 사람들을 그리 까다롭게 제지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의 상인이든 평범한 농민이든 천무련을 보고 싶다면서 호패만 보여 주면 다 들여보내 주었다.

소림사나 무당파 같은 거대 문파와 비교하면 너무 쉬울 지경이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허술하게 그들을 놔두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정해진 지역을 벗어난다면 어디선가 나타난 군사부 소속 천기대의 무인들이 나타나 그들을 허용된 곳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곳은 천무련의 중심이다.

천무련 내에서 각주 이상의 위치가 아니라면 가까이 갈 수도 없는 금지(禁地).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그곳을 천무련 사람들은 무신전(武神殿)이라 불렀다.

“미미가 보이질 않아? 정말?”

호젓하게 꾸며진 정원에서 연못의 물이 구불구불 휘어진 물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새파란 풀잎과 군데군데 피어난 들꽃들 사이로 나비들이 넘실거린다.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올 때마다 풀 내음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연못에 살짝 몸을 담그고 있는 넓적한 바위 위.

한량처럼 누워 있던 아름다운 청년이 미간을 좁히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건 큰일인데? 하오문에 물어본 거야?”

“네. 하오문에선 모른다고 하네요.”

섭주해는 창백한 얼굴로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모른다고?”

“네.”

소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네.”

“네, 이상하죠.”

“주해 네가 봐도 그렇지?”

“그렇죠.”

“정말 모르는 일도 그냥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면서 둘러대고는 어떻게든 정보를 알아오는 곳이 하오문이잖아?”

“그렇죠. 자존심 때문에 모른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곳이죠.”

씁쓸하게 웃는 섭주해를 보면서 소호는 그가 자신이 스스로 답을 찾아내길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대미미는 하오문의 금지옥엽 공주님이었다.

그런 미미를 하오문이 ‘모른다.’라고 답할 만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딱 하나뿐이다.

“미미가 스스로 숨은 거구나?”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소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미미가 대체 왜……?”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혼란스러웠다.

“계기는 서인이를 막지 못한 거고?”

“네.”

“으음.”

서인.

소호가 믿고 아끼는 가장 친한 친구.

그런데 그 이름이 최근에는 너무 자주 들린다.

소호와 주해가 같이 계획했던 일 중에 잘 안 풀린다 싶으면 무조건 조서인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 각주한테 사천을 지키라고 한 건 벌을 주기 위한 거였는데, 서인이는 거기까지 가서 굳이 복수를 하다니…….”

소호는 가슴이 답답해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러니까 말이에요.”

섭주해 역시도 조서인을 향해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소호 형, 조서인의 행동이 가만히 둘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든 결정해야 해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주희를 잃었으니 화가 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게 관대하게 처리할 일은 아닙니다. 소호 형, 안 그래도 천무련 내에 파벌이 생겨서 반으로 갈라졌는데 이러다간 우리가 계획한 일을 다 해내지 못한 채 일이 어긋날지도 몰라요.”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주해 네가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것 같아.”

“…….”

“그보다 미미는? 다친 건 아니겠지? 서인이가 미미를 크게 다치게 하진 않았을 거야. 그렇지?”

섭주해는 부루퉁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모르겠네요. 미미와 조서인은 둘 다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한 고수들이니 싸움의 결과가 치명적이었을 지도 모르지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걱정되는데!”

대미미는 소호가 막아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오로지 소호를 위해 나서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조서인을 막는 데 실패한 데다 그 후에 종적까지 감췄다니.

소호에게 있어 이 이상 마음이 쓰이는 일은 없다.

머리로는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아는데, 마음은 계속 미미의 행방이 신경이 쓰였다.

“걱정인데……. 찾으러 가 볼까? 미미가 외할아버지 곁에 간 건 아닐까?”

힘들면 가족을 찾게 된다. 그러니 가까이에 사는 친척을 찾아갔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제가 찾아볼게요. 형은 이제 북경으로 가서 태양염왕과의 싸움을 준비해야죠.”

“그렇지. 그게 중요하긴 한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 계획은 정말로 실패할지도 몰라요. 소호 형은 그래도 괜찮아요?”

“으음.”

미미가 걱정이 되지만, 이번 기회를 놓쳐도 되냐는 말에 선뜻 대답할 수는 없었다.

소호에게 있어 태양염왕과의 싸움은 강호 무림에 출두한 뒤 가장 큰 사건이었다.

오랫동안 계획해 온 일인 만큼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준비는 다 됐어? 폭약이랑 변검술사는?”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진짜 가야 하는구나?”

“소호 형.”

섭주해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만약 싫으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

“아냐, 어차피 해결해야 하는 일인걸.”

소호는 손을 내저으면서 마음을 결정했다.

“미미랑은 나중에 제대로 이야기할게. 일단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사한지 찾아봐 줘.”

“네.”

“무상도 한 번 만나 봐야겠다. 나 없는 사이 여길 지켜 주어야 하니까.”

항상 정원의 바위 위에 한량처럼 누워 있다고 해서 소호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할 때 가장 열심히 움직여야 하기에 평소에는 죽은 듯이 쉬고 있을 뿐이다.

“그래. 이제 마무리를 해 보자.”

열정을 갖고 달려야 하건만, 미미의 잠적으로 혼란해진 소호의 안색은 펴질 줄을 몰랐다.

***

조서인과 팽자연은 난생처음으로 객잔에서 거절을 당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안휘성에 들어온 뒤에는 자꾸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천무련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객잔의 주인들이 하나같이 세파에 찌든 얼굴로 조서인과 팽자연의 눈치를 살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들만 다섯입니다. 집에 딸린 식구가 너무 많아서…….”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오늘은 손님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기 식당 자리만 봐도 텅텅 비었는데?”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 하는지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 조서인과 팽자연을 향해 언뜻언뜻 드러내는 표정에선 꼴도 보기 싫다는 듯한 적의가 느껴졌다.

“이 무슨……?”

평생 명가의 여식으로 생활하며 부족함 없이 당당하게 살아온 사람이 팽자연이었다.

이런 부당한 대우를 참을 리가 없다.

그녀의 초승달 같은 눈꼬리가 위로 확 치솟으려는 순간 조서인이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자연 누이, 괜찮습니다. 우리 나가서 다른 곳을 찾아보죠.”

“하지만 하나같이 이러잖아요? 이러는 법이 어딨어요?”

“괜찮습니다. 저들도 우리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이겠죠. 주인장, 실례했소.”

조서인과 팽자연이 문지방을 넘어서자 안쪽에서 객잔주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쪽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구만 왜 천무련을 배신해 가지고……. 쯧쯧, 이래서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른다니까.”

제 딴에는 안 들릴 거라 생각하고 투덜대는 모양이지만 무공을 익힌 두 사람에게는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팽자연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그녀가 숨을 씩씩거리며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은 팽가의 사건 이후로 처음 보았다.

“자연 누이, 힘드십니까?”

“힘든…… 건 아니에요. 그냥 화가 날 뿐이죠.”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니에요. 서인 오라버니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치졸하게 객잔까지 못 가게 막고 보는 천무련이 문제죠. 실망이 커요. 정말 실망이에요!”

팽자연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을 천무련으로 점찍은 상태였다.

“설마 일부러 막은 건 아닐 겁니다. 그저 제가 방익지를 죽인 사실이 생각보다 빨리 퍼진 거 아닐까 싶습니다.”

“서인 오라버니, 낙일창의 명성이 높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개 객잔 주인들이 어떻게 오라버니를 알아보겠어요? 누군가가 다 미리 지령을 뿌린 거예요. 지금도 저길 봐요. 시장이랑 길목에 우릴 지켜보는 거지들이 많잖아요?”

“……개방.”

“개방이 적으로 얽혀서 일이 잘 풀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저들은 체면이 없거든요.”

말 그대로 동냥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자들이 체면을 따질 일이 뭐 있겠는가.

그렇기에 개방은 협의를 중시한다.

다른 모든 자존심은 버리되 협의지도 하나만 믿고 달려드니 개방이 팔파일방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개방의 협의지도에 제가 어긋난 모양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요.”

“자책할 일이 아니에요. 허리 펴요, 서인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옳은 일을 했잖아요?”

“……믿어 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조서인은 강해졌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잡아 주는 사람이 팽자연이었다.

그녀는 본인이 얼굴이 빨개질 만큼 화가 났으면서도 늘 조서인을 먼저 격려해 주었다.

“다른 객잔을 가 보죠. 말이 통하는 주인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휴우, 그래요. 우리 다른 곳을 찾아봐요.”

그런데 다른 객잔을 찾기 전에 그들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얼굴은 멀끔하게 생겼다.

근데 머리는 산발로 풀어헤쳤고 걸음걸이도 팔자걸음으로 특이했다.

‘개 몽둥이?’

한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의 모양이 매우 특이했다.

두툼하고 한 손에 딱 들기 좋은 나무몽둥이인데, 기이하게도 몽둥이 끝에 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넓게 홈을 파서 조각해 놓았다.

“아!”

조서인은 무산학관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꽤나 오래된 일이다.

신입생 시절에 기숙사끼리 내기를 벌인 적이 있었다.

백호방에서 성적이 가장 낮았던 조서인이 주작방에서 성적이 가장 낮았던 한 소년과 대련을 했던 사건이다.

조서인은 그날 힘든 싸움 끝에 기적적으로 이겼고, 그 이후에 대련 상대였던 소년은 조용히 무산학관을 떠났다.

“명로……? 명로. 맞지?”

허리띠를 항상 풀고 다니던 특이한 소년은 이제는 허리에 매듭을 여섯 개나 매고 다니는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명로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 명성이 높은 낙일창 조서인 대협. 오랜만이네.”

“맞구나……! 정말 오랜만이네. 개방으로 들어간 거야?”

“나는 단 한 순간도 개방의 거지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지.”

느긋하면서도 계산이 빠른 것 같은 저 얼굴은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조서인은 그들을 바라보는 거지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들을 바라보자 명로가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옛 친구가 반갑지만 물어볼 건 물어봐야겠어. 그런 큰일을 벌여 놓고 천무련으로 향하는 이유가 뭐야?”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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