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43화 (672/686)

22권 12화

제45장 무련방벽(武聯防壁) (6)

조서인은 탄식했다.

“날 가두겠다고? 거절한다면?”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겠어.”

“섭주해. 그만둬.”

“그만둬야 하는 건 내가 아니고 너다.”

“대체 왜?”

섭주해는 직접 싸울 기세였다.

그 사실이 조서인을 크게 당황시켰다.

섭주해가 기묘한 힘을 쓴다는 사실은 조서인도 잘 알고 있었다.

무공과는 다른 힘.

상단전을 개방하여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그 힘은 마치 새와 물고기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듯 조서인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섭주해는 아마 강할 것이다.

조서인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싸울 게 분명했다.

무인으로서 그에 대해서는 꽤 흥미가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섭주해는 직접 싸울 성격이 아니었으며, 천무련에서 그렇게 싸울 만한 위치도 아니다.

‘나한테 그만큼 화가 많이 난 건가?’

어쨌거나 싸움은 시작되었다.

공기가 변한다.

무인들이 흔히 ‘무형기’라고 말하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섭주해의 머리 위에서 그림자가 드리우듯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있는 거대한 거미처럼 긴 다리를 꺼떡거리면서 나타난 그것은 조서인의 눈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만 보였다.

그래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큰 공포다.

평범한 촌부였다면 저런 괴상한 게 눈에 보이는 순간 기겁을 하며 주저앉았을 것이다.

‘저게 섭주해의 힘이구나.’

드드드―.

땅이 흔들린다.

조서인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팔방(八方)에 묻혀 있던 검들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지이이잉―.

거대한 거미의 발끝에 검이 달라붙었다.

섭주해가 귀기를 번뜩였다.

여덟 개의 검날이 일제히 조서인을 향해 겨누어지는 순간.

조서인은 천무련에 발을 들인 후 처음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이거, 위험하다.’

미지의 적이라는 게 무섭다.

이제껏 싸워 온 사람들과는 다른 상대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어떻게 이기면 될지 감이 오질 않는다.

조서인은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창을 뽑아 사방을 경계했다.

피슈슈슈슉―!

채앵!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을 쳐 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차라리 상대가 사람이라면 훨씬 쉽다.

검을 휘두르는 손목이나 어깨만 노려도 단번에 공격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고,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상대방의 발이 엉키게 하는 것 또한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그런데 온전히 ‘검’이 적이라면 그런 예측은 할 수 없다.

‘상대가 손도 없고 발도 없으니 어떻게 공격을 할지 읽을 수가 없어. 무섭구나. 전설 같은 어검술을 여덟 개나 상대하는 게 이런 건가?’

조서인은 순전히 직감과 본능만으로 날아오는 검을 쳐 냈다.

검이 여덟 개나 되니 앞에서 찔러 오다가 뒤에서도 찌르고, 갑자기 정수리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가 싶더니 발목 언저리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싸움이 이어졌다.

‘당황하지 말자. 조종하는 건 섭주해야. 어차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가가야 해.’

조서인은 은자창을 양손으로 가볍게 거머쥐었다.

생창(生槍).

그가 든 창 한 자루가 마치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움직였다.

넘실넘실.

창끝이 바람을 타듯 나풀대다가 좌우에서 날아오는 검을 거의 동시에 쳐 냈다.

그러고는 훌쩍 위로 쳐 올렸다가 다시 아래로 내리찍어서 정면의 검을 땅바닥에 박아 버렸다.

따아앙!

‘지금.’

창 손잡이를 바닥에 찍고 몸을 띄웠다.

마치 장대를 짚고 뛰어오른 것처럼 조서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핫!”

창백한 얼굴 위에 전의가 가득했다.

섭주해는 마치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얼굴이다.

사실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것은 최후의 한 수다.

사람이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겠는가.

기이이이잉―.

검 여덟 개가 한 곳으로 모였다.

수숫단을 베어 한데 묶어 놓은 것처럼, 검 여덟 개가 나란히 늘어섰다.

빙글빙글 돌면서 조서인의 상체를 겨누길 잠시.

마치 포를 쏘듯 칼들이 일제히 조서인을 향해 쏘아졌다.

쒜에에에엑――!

날카롭게 날이 선 칼날 여덟 개가 동시에, 똑같은 방향에서 나란히 서서 쏘아지는 것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구도.

그런데 그게 바로 조서인이 원하던 상황이었다.

일연적룡무 제이식.

창끝에 환(幻), 그리고 분(分)의 묘리를 담는다.

천수여래가 손을 휘두르는 것처럼 조서인의 주변에 잔상이 생겼다.

힘을 나누고, 극한의 빠름으로 환상을 만들어 낸다.

십여 자루로 늘어난 창이 섭주해의 어검과 만나 섬뜩한 파열음을 터뜨렸다.

까가가가가강!

힘의 우열은 명확했다.

건곤조화신공의 진기가 은자창에 완벽하게 깃들어 있었다.

허공에서 쏘아지던 검들이 일제히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조서인의 창은 굳건했다.

아무리 섭주해가 남해검문 신녀의 피를 이어받은 검귀라지만 조서인은 경지를 넘어선 무인이지 않던가.

싸움에 대한 경험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큭!”

섭주해가 양손을 펼쳐서 좌우로 뻗었다가, 가슴 앞에서 세모 형태로 손을 모았다.

사방으로 튕겨 나갔던 검들이 벌 떼처럼 다시 모여든다.

쒜에에엑―!

섬뜩한 파공음 속에서 조서인은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을 뻗었다.

서걱―.

섭주해가 쓰고 있던 문사건의 옆 끈이 잘려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대미미 때와 똑같다.

은자창의 날카로운 창날이 섭주해의 목덜미에 놓여 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대미미 때는 실금 같은 상처나마 남겼었는데, 지금 섭주해의 목은 깨끗하다는 점뿐이다.

“조서인, 제정신인가?”

우우웅―.

조서인의 몸에서 고작 한 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여덟 개의 칼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검의 예기가 닿은 탓에 실제로 조서인이 입은 옷자락이 여기저기 잘려나가기까지 했다.

섭주해는 자신의 목덜미에 멈춰 있는 창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창날이 목에 겨눠졌음에도 소리를 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서인이 창을 찌르는 순간, 섭주해가 움직인 여덟 개의 칼날이 조서인에게 쏘아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만약 조서인이 힘을 수습하지 않고 섭주해의 목을 꿰뚫었다면?

조서인을 향해 날아가던 검 역시도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조서인의 전신을 난자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조서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자기가 창을 멈추면 날아오던 검에 찔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분명히 조서인도 했을 건데, 그럼에도 창을 끝까지 찌르지 않고 멈춘 것이다.

섭주해가 마음을 악독하게 먹고 상대를 죽이려 했다면?

아니면 검에 대한 조종이 미숙해서 검을 멈추지 못했다면?

변수는 많다.

그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지금 조서인은 칼에 찔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서인의 눈빛은 올곧다.

방금 자신의 몸이 꼬치에 꿰듯 꿰뚫릴 뻔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맑은 두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 확신이 섭주해를 탄식하게 만들었다.

조서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섭주해가 그를 죽이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를 찌르지 않았지?”

조서인은 오히려 그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친구를 죽이는 것은 당연히 논외의 이야기이며, 조서인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란 소리다.

“……그래, 그렇지. 당연한 거지.”

“섭주해. 소호를 잘 이끌어 줘. 소호가 그 빛나는 성품과 능력을 지녔음에도 일이 틀어진다면 그건 옆에서 옳은 길로 인도하지 못한 네 탓이기도 해.”

섭주해는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손을 아래로 내렸다.

스슥―.

조서인의 몸에서 멀어진 검들이 다시 문상전 앞마당의 땅속으로 몸을 숨겼다.

공기가 다시 변한다.

뿌연 안개처럼 희미하게 보이던 무형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섬뜩한 귀기가 사라진 섭주해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섭주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순식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힘이 빠진 얼굴로 오른쪽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소호 형은 이곳에 없어. 북경에서 적양문과의 회담이 있거든. 네 조언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세상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커다란 흐름’도 있다는 걸 언젠가는 부디 이해하길 바란다.”

조서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커다란 흐름이라니.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다.

정치적인 약속이라던가, 한눈에 보기 힘든 대세라던가 그런 것을 말함인가?

“커다란 흐름? 그게 뭐야? 자세히 말해 줬으면 좋겠어.”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눈치채고 있겠지만 나랑 싸운 시점에서 너는 계책에 걸려들었어. 미안하지만 너는 여기서 잡히는 게 최선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손쓸 수 없는 상황에서 크게 곤란을 겪게 될 거야.”

“……친구와 한 번 다퉜을 뿐이야.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별일도 아니고.”

“글쎄다.”

섭주해가 오른쪽 담벼락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마치 그곳에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는 눈치였다.

곧이어 조서인도 느꼈다.

천무련의 동쪽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오는 한 사람의 존재를.

“천무련의 가장 큰 칼이 소호 형이라면, 천무련의 방벽은 이 사람이지. 너는 친구와 한 번 다퉜을 뿐이라 말하지만 글쎄, 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

고오오오―――.

터엉!

비조처럼 날아서 담벼락을 뛰어넘은 한 사내가 운석이 떨어지듯 문상전의 앞마당에 깊은 고랑을 만들어 냈다.

쿠우웅.

땅이 진동하는 듯했다.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가 무언가에 밀려나듯 확― 사라졌다.

한 사람의 무게감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문상, 지금 그게 무슨 상황이오?”

육 척이 넘는 큰 키에 건장한 체구.

태산준령처럼 우뚝 솟은 코와 짙은 눈썹을 지닌 선이 굵은 미남이다.

매끄러운 재질의 푸른색 장삼을 입었는데 옷을 입었음에도 오히려 그의 넓은 어깨와 두꺼운 골격을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왼쪽 허리에는 황동으로 만들어진 태극경을, 오른쪽 허리에는 손바닥 반만 한 작은 목탁을 장신구처럼 매단 것이 눈에 띈다.

무상 패원강.

장소호가 없었다면 천무(天武)의 칭호를 받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존재가 바로 그였다.

“은색 창을 지닌 젊은 고수? 그대가 련주랑 대등하게 수백 합을 겨뤘다던 그 낙일창인가 보군.”

패원강이 흥미롭다는 듯이 팔짱을 낀 채 조서인을 노려보았다.

“일단은 그 창날을 거두는 것이 어떻겠나? 여긴 천무련이다. 천무련의 땅에서 문상의 목에 창을 겨누고 있는 것이 심히 거슬리는데.”

도발적인.

사내다우면서도 단단한 자존심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조서인은 천천히 창을 내렸다.

이럴 거면 진작 내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원강의 말 때문에 내리는 것이 아니거늘. 꼴만 우스워지지 않았는가.

‘이게 섭주해가 노리는 바였던가?’

싸움에 소양이 깊지도 않은 섭주해가 왜 먼저 선공을 취했는가.

아직도 이해가 완벽히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짐작은 된다.

조서인을 천무련 안에서 죄인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걸 빌미로 천무련 안에 조서인을 붙잡아 가두는 것이 섭주해의 가장 큰 목표일 것이다.

‘나를 붙잡을 가장 강력한 수단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무상 패원강이고? 그렇구나. 어차피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거였어.’

패원강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조서인은 소호 이후에 이렇게나 호승심이 일어나는 상대는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스으읍―.

불같은 전의가 타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눈을 뜨는 듯했다.

단전 안에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던 용의 내단.

그 흉포하고 뜨거운 기운이 조서인의 전신 혈도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온몸을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허물을 벗어 던지듯 새로운 기세를 뿜어내는 조서인은 패원강에게 있어서도 큰 충격이다.

경지를 넘어선 화경의 고수.

무신(武神)에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또 다른 또래 청년의 존재는 패원강이 팔짱을 풀도록 만들었다.

“호오.”

패원강은 양손을 자연스럽게 내렸다.

다리는 일자.

하체는 살짝 구부린 자연체의 자세지만 빈틈은 보이지 않는다.

“대단하군. 상상 이상이야.”

패원강은 등 뒤에 비스듬히 차고 있던 백색의 청강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때맞춰 조서인도 창끝을 패원강에게로 향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이유도 필요 없다.

두 명의 무인이 만난 순간, 대결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을 뿐.

“조서인입니다.”

“패원강이다.”

짧은 통성명.

그리고 한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창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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