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권 13화
제45장 무련방벽(武聯防壁) (7)
패원강이라는 사람에 대한 소문은 사실 천무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소호라는 존재가 워낙 태양처럼 강렬해서 잊혔을 뿐, 이야기만 들어서는 이처럼 놀라운 사내도 없다.
황실의 견제로 강호 무림이 짓눌려 있던 시대에 구파일방이 몰래 온 힘을 끌어모아 길러 낸 공동 제자라니?
심지어 구파일방의 사부 중에는 무림오존이라 불리는 무림 최고의 고수들이 두 사람이나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소림의 공화존자와 무당의 태극검존, 그 두 사람은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무림의 거인이었으나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패원강이라는 인재를 직접 만나게 되자 각자의 자존심을 버린 채 패원강의 공동 사부가 되겠다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그 말 즉슨 패원강은 무림오존에 올라 있는 두 절대자에게 본인을 뛰어넘는 재능이라고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두 존자의 무공을 익힌 뒤, 곁다리로 구파일방의 절기들을 모조리 훑어보며 익혔다고 하니 그야말로 하늘 위의 하늘, 천상천이 따로 없는 이야기다.
스승의 가르침이 물이라면 제자의 배움은 찻주전자와 같은 법.
찻물을 열 주전자나 부었는데도 충분히 담아 낸다면, 그게 보통의 찻주전자이겠는가?
무림 강호에서 칼밥 좀 먹은 사람 중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뛰지 않는 자는 없으리라.
특히 패원강이란 존재가 있다는 소식은 정파의 정통성이나 사승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들은 대부분 천무공자의 대단함을 들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구파일방의 공동제자가 나타나다니!
심지어 무림오존의 사승을 이은 강호 무림 최강의 후기지수라니!
정파 출신의, 특히 거대 문파와 한 줄기 연이라도 닿아 있는 사람들은 다들 패원강의 등장에 열광했다.
그들은 패원강의 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곧이어 무림 강호를 구원할 영웅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흥분하던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고의 후기지수일 거라 기대하던 패원강.
그가 천무공자 장소호와 사흘 밤낮에 걸쳐 격전을 치렀고, 마지막엔 반 수 차이로 졌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람 대단하다. 태극검의 완성도가 어떻게 이 정도로……!’
조서인은 패원강의 손에 들린 삼 척 길이의 새하얀 청강검이 본래 크기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패원강이 만들어 내는 존재감이 청강검 한 자루에 모조리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이했다.
음양의 기운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청강검 주변에 넘실거렸다.
양기가 음기가 되고, 음기가 양기가 되는 순환이 검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것이다.
기운뿐만이 아니다.
패원강의 들숨과 날숨.
구름에 올라선 도인처럼 가볍게 앞으로 나섰다가 뒤로 물러나는 절묘한 제운종.
검끝에서 느껴지는 현기(玄機)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호와 사흘이 넘게 싸울 만해. 대단한 사람이다. 빈틈이 보이질 않아.’
가까이 다가가면 물러나고, 이쪽이 물러서고자 하면 가까이 다가온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힘도 없는 동작이었다.
태극검이나 태극권이 본래 그러하듯 동작만 봐서는 천천히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습이지 않던가.
그런데 기이하게도 겨루면 겨룰수록 조서인이 식은땀을 흘리게 만든다.
창이 의도한 대로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검 끝에 휘말려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고 있었다.
‘초식이 길어질수록 이쪽이 불리해. 빨리 처리해야 해.’
초식을 주고받을수록 패원강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파칫―!
이제는 검끝이 땅을 스치기만 해도 바닥에 깊은 상흔을 만들었다.
패원강의 힘, 조서인의 내력,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눈밭에서 눈사람을 만들 듯 점점 커져만 간다.
후우우우웅―――.
조서인은 패원강의 가슴 언저리에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구멍이 하나 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선도, 공기도, 기운도.
모든 것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삼라만상을 끌어당기는 끝없는 구멍이 그곳에 있는 듯했다.
이제는 검 끝에 담겨 서로 주고받는 힘의 크기가 무시무시했다.
“하앗!”
조서인은 폭풍처럼 몰아치던 조가창법을 그만두고 일연적룡무로 돌아갔다.
‘사람의 빈틈이 없다면, 무공의 빈틈을 노리자.’
조서인은 마음을 담대하게 먹고 눈을 빛냈다.
땅을 박차고 패원강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퍼엉!
“……!”
패원강의 입장에선 조서인이 땅을 걷어차는 순간 상대가 비스듬히 사각지대로 움직인 셈이다.
패원강은 자연스럽게 뒷발을 옆으로 끌어당기고, 앞발은 반원을 그리면서 바닥에 태극의 문양을 그렸다.
조서인이 알고 있는 태극권의 투로 그대로다.
패원강의 시선은 조서인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따라붙고 있었다.
“합!”
쒜에에엑――!
조서인은 패원강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적절한 순간에 패원강이 앞발을 디딜 곳에 창을 찔러넣었다.
모든 것을 예상한 한 수다.
패원강의 발을 향해 창끝이 뻗어 나갔다.
일연적룡무 제일식.
쒜에에엑―!
공간을 접어 버리는 듯한 섬격은 여전히 빠르고 강렬했다.
다만 노리는 위치가 오묘하다 보니 패원강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공격을 맞춘 직후에도 언제든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도록 동작과 마음에 경계심을 유지하는 것을 잔심(殘心)이라 한다.
이런 잔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도다.
어째서 발을 노리는가?
그가 발을 살짝 들기만 해도 창날이 땅에 푹 박혀 버릴 곳으로 향하고 있으니 이는 늘 중도(中道)를 유지해야 하는 명문 무공의 이치와 맞지 않는다.
창날이 땅에 박히기라도 하면 무기가 묶이는 셈이지 않은가?
패원강은 잠시 갈등하며 미간을 좁혔으나, 쓸데없이 고민하지 않고 발끝으로 조서인의 창날을 위에서 아래로 밟아 버렸다.
터엉!
창날이 땅에 박히기를 기다리지 않고, 마치 내리누르듯 짓밟으면서 오히려 바닥에 박아 버리는 듯한 동작이다.
푸욱!
파라라락――.
창날이 경쾌하게 땅속으로 파고든다.
패원강은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무당비전 제운종 신법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창날을 밟고 창대를 밟고 올라서는 모습이 마치 구름 위를 거니는 것처럼 여유롭다.
조서인과 패원강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패원강의 건장한 육신이 창대 위에서 가볍게 회전했다.
태극혜검.
단 한 순간도 끊임이 없다.
돌고 돌아 태극.
부드럽게 반원을 그린 검격이 조서인의 어깨를 베어 낼 듯이 스친다.
키이이잉―.
터어엉!
조서인은 검을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오히려 맹수가 먹잇감을 덮치듯 펄쩍 뛰어오르며 창대를 발로 올려 찼다.
쩌어엉!
은자창이 활처럼 휘면서 바닥에서 치솟았다.
조서인은 예전과 다르다.
이야기 속에서만 듣던 용의 내단을 섭취했다. 내공만으로 따지면 전대 고수들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내공이 강해진 사람이 조서인이다.
땅이 울리고 공기가 터져 나갔다.
“흐읍!”
졸지에 발바닥에 강력한 힘을 받은 패원강은 허공으로 튕길 상황에 처했다.
거대한 바람에 휘말린 것처럼 옷자락이 치솟고,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상투가 터졌다.
송충이처럼 짙은 눈썹 아래 강직한 두 눈이 강한 빛을 띄었다.
패원강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이대로 조서인의 의도대로 창대의 힘을 받아 위로 튕겨서 물러나느냐?
아니면 내공 싸움을 해서 튕기지 않고 버텨 공격을 가하느냐?
“갈(喝)!”
패원강은 닥쳐오는 위협을 피하는 성격이 아니다.
언제나 맞서 싸우고, 항상 물리쳐왔다.
고오오오――.
창대에 올라서 있던 패원강이 검을 휘두른다.
무공을 시전할 때는 단단한 바닥이 필요한 법이다.
바닥을 내리찍는 진각의 힘이 허리에서 어깨, 팔목에서 검끝까지도 전달이 되어야만 제대로 검 끝에 힘이 담기기 때문이다.
패원강은 건장한 몸에 비해 극히 가는 창대 위에서 그 모든 것을 해내는 신기를 선보였다.
조서인이 발로 차올린 힘을 패원강은 단단한 땅바닥을 밟고 시전하는 진각처럼 활용했다.
고오오오―――.
신기에 달한 힘의 운용이다.
창대를 타고 올라오는 조서인의 내공을 모조리 이용해서 오히려 검의 회전력으로 삼았다.
태극혜검.
무당파 장문 비전.
태극검존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담긴 절대 무공이 아슬아슬한 창대 위에서 펼쳐졌다.
기이이잉―――.
힘의 균형이 완벽하게 이뤄지자, 허공에 반월을 그리던 조서인의 창대가 땅과 평행한 평평한 지점에서 더 이상 치솟지 못했다.
피슛―.
조서인이 어깨의 옷자락이 잘려 나갔다.
터엉!
피부가 베였다. 피도 흘러나온다.
입에서 울컥 피를 토할 뻔했다.
‘호신강기로는 부족하다.’
태극혜검에 실린 힘이 상상 이상이었다.
호신강기가 없었다면 어깨가 잘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위험한 순간.
조서인과 패원강의 시선이 마주쳤다.
패원강은 극도로 집중하여 진지한 얼굴이었다.
조서인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었다.
쿵!
휘리릭―.
조서인은 가볍게 진각을 밟고 창 손잡이를 강하게 꽉 붙잡았다.
은자창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완벽했다.
그는 두 사람의 힘이 이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운종의 움직임을 묶고, 허공에 있는 패원강을 일방적으로 두드릴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일연적룡무 제이식.
후우우웅―.
천수여래상처럼 손과 창이 늘어난 조서인이 십수 개의 창을 비스듬한 상방으로 찔렀다.
투둑―.
조서인은 양팔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힘줄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 관절이 삐걱거리고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급격히 힘의 방향을 바꾼 대가다.
쩌저저저정!
“……!”
반면에 패원강은 다급해졌다.
그는 공격을 그만두고 태극혜검을 방어로 전환하였다. 발판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상황에도 다급하게 허둥거리지 않은 점이 패원강의 대단한 점이다.
그는 조서인이 쏟아낸 수십 번의 창격을 태극혜검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여 차분하게 창끝을 쳐 내고, 비틀고, 옆으로 흘려냈다.
쳐 내고, 또 쳐 내고, 흘려 낸다.
우우웅――.
패원강의 얼굴을 축축하게 적신 땀방울들이 팟! 하고 기화되어 흩어졌다.
그는 땅에 다시 발을 딛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십 번이나 위험에 빠졌다가 간신히 탈출하는 것을 반복했다.
한순간의 실수가 불러온 비극이다.
창날을 밟고 뛰어올라 빈틈을 노리려던 그 결정 때문에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쩌어어엉!
서로 간에 강력한 일격 끝에 두 사람은 멀리 훌쩍 거리를 벌렸다.
조서인은 기회를 놓친 아쉬움을, 패원강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난 조서인의 실력에 긴장을 느끼길 잠시.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 서로를 경계할 때 패원강이 물었다.
“무공의 허점을 찔린 기분이군. 태극혜검을 본 적이 있나?”
조서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해 본 적이 있소.”
“그랬군. 역시. 누가 태극혜검을 사용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나?”
“부운화라는 분이오. 혹시 알고 있소?”
“부운화……?”
패원강은 그 이름을 모르는 눈치였다.
태극검존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 무당파의 직전 제자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조서인에게는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지난번에 부운화가 조서인에게 지도대련을 해 주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패원강의 움직임을 예측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식견이 짧아 잘 모르지만 무당파의 고수셨겠지. 그렇군. 이제야 이해가 돼. 미리 태극혜검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해도 대단하다. 상상 이상이야. 낙일창의 명성은 허황된 것이 아니었군.”
짙은 눈썹 아래 강렬한 눈빛이 번뜩였다.
그의 전의(戰意)는 순수했다.
뼛속까지 무인의 모습 그대로다.
“계속해 보지. 태극혜검을 어디까지 막아 낼지 궁금하군.”
‘검을 집어넣지를 않는다. 이렇게 보니 소호와는 정말로 다르구나.’
소호라면 상대방이 태극혜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판단되는 즉시 검을 집어넣고 다른 방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가 익히고 있는 수백 가지의 무공 중에 가장 적절한 무공을 찾아서 상성에 안 좋은 것을 고르면 그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패원강은 달랐다.
그 역시도 구파일방의 절기를 모두 익혀 대응 방법이 무궁무진할 텐데, 끝까지 태극혜검을 고집한다.
고집스러운 무인의 모습이 한편으론 조서인과 닮아 있다.
“나는 당신을 쓰러뜨리고, 소호를 말리러 가겠소.”
“……그게 목적이었나.”
“항상 그게 목적이었소.”
상대는 천무련의 방벽이다.
심지어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주변에 몰려드는 인파가 많아지고 있었다.
시간은 조서인의 편이 아니다.
전력을 다할 때였다.
“가겠소.”
조서인이 움켜쥔 창끝에서 서늘한 기운이 한데 뭉쳐 강기(罡氣)를 형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