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56화 (685/686)

22권 25화

제47장 마왕지협(魔王之俠) (4)

그들은 한눈에 봐도 겁에 질려 있었고, 몸에 심각한 상처를 하나씩 입은 상태였다.

어깨, 팔, 허리.

옷을 적신 피의 색깔이 심상치가 않았다.

잠깐 피가 나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피가 나는 게 분명했다.

안 그러면 저렇게 피가 마를 새도 없이 계속 검붉은색으로 옷이 물들어 있을 리가 없었다.

“끄으윽.”

“도망…… 도망쳐야 해. 청화도대가 저 정도면 우린 그냥…….”

조서인과 눈이 마주친 그들은 마치 작은 동물들처럼 그를 극도로 경계하며 주춤주춤 길가로 피했다.

조서인은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빨리했다.

‘왜 짐승에게 당한 것 같은 상처가 있는 거지?’

세 줄기의 자상을 입은 걸 보면 짐승이 발톱으로 할퀸 듯한 모양새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물을 만한 여유는 없었다. 제대로 대답해 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조서인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을 떠올렸다.

특히 이곳 봉황타로 그를 안내해 준 개방의 거지 오골개는 이런 말을 했었다.

‘천무련은 태양염왕이 이곳 봉황타로 와 있는 사이에 적양문으로 병력을 보냈소. 천무공자가 태양염왕을 끌어낸 사이에 적양문을 축출하려 하는 것이오. 문제는, 봉황타에 적양문의 주력이 있다는 점이오. 그런 곳에 천무련주는 혼자서 들어갔고. 모두가 따라나서려는 것을 그가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만류했다는군. 이상한 일이지 않소?’

개방의 후기지수, 오골개는 걱정을 하는 건지 무언가를 넌지시 알려 주는 건지 모를 오묘한 말투로 조서인에게 정보를 주었다.

“이상한 일.”

조서인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피 냄새가 짙어진다.

우르릉—.

봉황타의 정상에 비구름이 모여들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얼굴을 차갑게 식히기도 했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조서인은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봉황타의 정상에서부터 백 장(丈) 반경의 공간이 온통 누군가의 무형기에 짓눌려 있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버적거리는 서리가 발밑에서 부서진다.

‘땅이 얼었어?’

조서인은 버적버적 걸음을 옮겼다.

피바다가 되어 버린 공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바닥에서 피를 쏟고, 신음을 흘리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

원래는 정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동그란 나무 바닥과 부러진 기둥들이 있었다.

그곳에 있다.

한 사람.

아니.

이제는 사람이라 불러선 안 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생명이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

“소호야?”

조서인이 입을 떼는 순간 ‘그것’의 시선이 조서인에게로 꽂혔다.

사납다.

야성이 가득한 시선이 번뜩이며 조서인을 노려본다.

조서인은 소호가 지금 깔고 앉아 있는 게 그냥 땅바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커다란 대도와 건장한 체구의 몸집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양문의 이인자.

나찰마도 정옥상이었다.

조서인은 기억한다. 풍운객잔으로 가는 길에 추룡과 함께 마주쳤던 정옥상의 모습은 얼마나 당당하고 강인해 보였던가.

태양염왕 고흠과 함께 경지에 이른 무인으로서 강대한 존재감을 뽐내던 사내였다.

그랬던 그가 소호에겐 의자 취급을 받고 있다.

소호는 지배자였다.

이 땅.

이 공간.

야생의 호랑이가 먹잇감을 제압하듯, 소호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이런…… 어째서……?”

조서인은 몸서리치는 충격에 휩싸였다.

땅바닥을 얼린 극음진기도.

숨을 쉴 때마다 폐부로 스며드는 이 차가운 공기보다, 지금 가슴이 저며지는 듯한 심적 충격이 더욱 아프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거야? 어쩌다가?”

소호가 새빨간 혈광에 휩싸인 눈으로 빙긋 웃는다.

그사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청화도대의 무인 한 명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 괴물 같은 놈! 죽어라아앗!”

섬전처럼 날아와 칼을 찔러 오는 그는 분명 지닌바 이상의 힘을 보여 주었다.

아마 그의 인생 최고의 공격이었을 터.

그러나 소호가 힐끗 쳐다보는 순간 그의 공격은 허사로 돌아갔다.

팔목을 까딱.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검끝을 쳐 냈는데,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발톱에 베인 것처럼 무인의 몸이 삼 등분되었다.

푸화아악!

피가 튄다.

그런데 그 피는 터지거나 폭발하는 그런 피가 아니었다.

시신이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고, 이미 주변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던 핏물이 튀어 올랐다.

소호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웃는 얼굴.

섬뜩한 두 눈엔 나른한 권태감이 있다.

“너는 소호가 아니구나.”

조서인은 확신을 가졌다.

소호가 정답이라는 듯이 웃었다.

“신수. 백호.”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는 남자인 것 같기도 했고 여자인 것 같기도 했다.

조서인은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무인은 무공으로 말하는 법.

방금 소호가 선보인 무공을 보면서 조서인은 그가 소호가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깊은 상실감.

절친한 친구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서인을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그 몸을 돌려줘.”

“이건. 내 것이다.”

“네 것이 아냐. 소호의 것이다.”

“일만의 혼백. 소호라는 자는. 그중 하나일 뿐.”

소호.

아니, 신수 백호는 눈빛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조서인은 그 순간 깨달았다.

집혼기에 모인 수천, 수만의 혼백의 힘이 소호를 저렇게 만들었다.

삼산현에 흐르는 강물이 장강에 합류한다면, 그 안에서 삼산현의 강물을 찾을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끝없이 무량(無量)한 물줄기 속에서 삼산현의 강물만 찾아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끄으.”

터엉!

그때 의자처럼 짓눌려 있던 정옥상이 다시 일어서려고 하다가 백호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저건?’

정옥상이 힘을 위로 주었는데, 정작 신수 백호의 양발이 땅으로 파고들었다.

극한의 이화접목.

태극권의 묘리를 극성으로 익혀야만 저렇게 힘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법이다.

조서인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태극권을 쓴다는 건 조서인에게 의미가 컸다.

집혼기에게 정신을 빼앗겼다고 한들, 저 몸에는 소호가 익히고 소호가 즐겨 쓰던 무공이 다 녹아 있다는 뜻이 아닌가?

“소호……!”

참으로 모순된 일이지만, 조서인은 그의 무공을 보며 절망했고, 또 한편으로 무공을 보며 다시 희망을 얻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둠 속에서 찾은 한 줄기 빛은 조서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조서인이 누구였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기론 천하제일이라 자부하는 사람이다.

천하의 독종.

노력이라는 이름의 신을 신봉하는 자!

“난 포기하지 않아.”

이유는 간단했다.

소호를 믿기 때문이다.

저 몸에, 신수 백호와 집혼기의 거대한 혼백 덩어리 속에 소호가 티끌만큼이라도 존재한다면, 조서인은 반드시 그를 찾아내고 말 것이다.

어떠한 역경이 와도 찾는다.

그건 이미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는 찾아낸다.

반드시.

“소호는 달라.”

혼백이 곧 힘이라면.

힘은 곧 혼백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힘을 다 소진시키면 어찌 될까?

조서인은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뿐이다.

그때까지 조서인이 버틸 수 있을까?

태양염왕을 무너뜨리고, 나찰마도를 가볍게 짓밟은 저 압도적인 힘을, 소호가 나타날 때까지 벼텨 낼 수 있을까?

조서인은 묵묵히 은자창을 양손으로 붙잡고 수직으로 세웠다.

쿵.

창끝을 바닥에 내리친 채 가만히 자신의 창을 들여다본다.

오늘 아침에 윤기가 흐르도록 닦은 창대에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생기 넘치는 얼굴.

선한 인상이지만 강직한 눈빛을 지닌 청년이 그곳에 있다.

몸 상태가 좋았다.

자신감이 차올랐다.

장기린.

그의 사부께서 넘겨준 힘은 조서인을 또 다른 경지로 이끌어 주었다.

삼화취정(三華聚頂)과 천화난추(天花亂墜)를 넘어, 무공을 아예 익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반박귀진(返樸歸眞)의 경지에 올랐다.

천하를 오시할 무쌍의 힘이 그에게 있는데, 이 땅에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부님, 이곳, 이 자리에서, 저는 당신이 되고 싶습니다.’

장기린처럼 되기 위해.

천하에 무쌍한 단 한 명의 무인이 되기 위해.

“소호!”

그는 창날을 사이에 두고 소리쳤다.

신수 백호가 혈안을 번뜩인다.

조서인은 그 안에 갇혀 있을 소호가 분명히 자신의 말을 들었을 거라 믿었다.

“일어나!”

창룡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수련할 시간이야!”

조서인은 깨닫는다.

무산학관의 입관 시험을 치렀던 열두 살의 소년.

상산의 조씨 가문에서 태어나 구박만 받으며 자라온 그가 소호라는 천진난만한 천재를 만난 순간.

그는 이 자리.

이곳에서.

소호에게 잠에서 깨어나라 외칠 운명이었던 것이다.

고오오오오———!

머리 위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신수 백호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허공답보의 상태로 공중에 떠올라 그 어느 때보다 사나운 표정으로 조서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이젠 조서인이 웃었다.

내딛는 진각.

앞으로 겨눈 창날에 그의 모든 것을 걸었다.

“소호, 넌 언제나 나를 구해 주었었지. 이젠 내 차례야.”

소호를 위해.

그의 사부, 장기린을 위해.

그리고 친구를 그리워하는 자기 자신을 위해.

“와라. 네게 있는 일만 혼백이 다할 때까지 이 자리에서, 나는 친구를 기다리겠다.”

거대한 태양을 쓰러뜨릴, 낙일창의 전설이 세상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

싸움은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뾰족했던 산 정상이 평평하게 깎여 나갈 정도로 거센 폭음이 하루종일 울려 퍼졌다.

첫날은 봉황타 인근에 사는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떨었다. 북경의 사파와 마도인들이 모두 모여 성벽처럼 주변을 막아 세운 탓이다.

둘째 날에는 개방을 중심으로 한 모든 정파인들이 모여들었고, 셋째 날에는 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천하에 다시 없을 이 싸움을 모두가 함께 지켜보았다.

싸움의 양상도 변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천무공자는 마치 거대한 맹수와도 같은 사나운 무공으로 낙일창을 몰아붙였다.

그런데 둘째 날 저녁.

노을이 질 때쯤부터 변했다.

그는 화산파까지 포함된 구파일방의 모든 무공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지고한 경지의 무공을 선보였다.

제운종으로 다가와 낙화추영장을 펼치고, 금강부동신법으로 물러나 손날로 칠십이파검을 펼친다.

각각의 무공이 다 따로 놀기 십상일 텐데, 천무공자가 펼치면 그 모든 무공이 마치 하나처럼 융화되었다.

“저거야말로 구파일방 무공의 정수구나. 놀랍다. 저게 사람의 무공인가.”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더니. 정말이구나. 무신이 이 땅에 내려왔어.”

“저런 자가 주화입마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라니! 오호통재라! 애석하구나. 애석해!”

군웅들은 소호에게서 보이는 광기를 주화입마로 해석했다.

지켜보던 무림의 명숙들이 모두 경탄하며, 또 한편으로는 크게 슬퍼하였다.

그들의 눈앞에서 상상조차 뛰어넘는 재능이 발현되고, 또 그 재능이 주화입마와 광증으로 스러져 간다. 그들은 하늘 위에 있을 어떤 존재를 향해 제각각 원망을 토해 냈다.

“낙일창은 또 어떻고? 저걸 사흘을 버티다니. 이미 인간의 경지가 아니다.”

“놀랍구나. 놀라워. 어찌 저런 젊은이들이 둘이나 나타났단 말인가.”

낙일창이 펼치는 무공 또한 큰 화제가 되었다.

그저 어느 정도 뛰어난 후기지수 정도로 생각했던 청년이 천무련에서 구파일방의 공동 전인인 패원강을 꺾더니, 이제는 전무후무한 재능을 상대하면서 가진바 이상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지금 이곳 봉황타의 모든 것이 놀랍다.

앞으로 백 년은 회자될 거대한 싸움이었다.

쩌어어엉!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피면 언젠가 지는 법.

상처투성이가 되어 눈빛이 흐려진 조서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일연적룡무를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한 번 쓰면 기진맥진해야 마땅할 제삼 식, 심창(心槍)마저 수십 번을 사용했다.

가진바 이상의 능력.

앞으로 몇십 년의 수명이 줄어들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는 단 한 점의 후회도 없이 모든 힘을 쏟아냈다.

“서인.”

움찔.

조서인은 떨리는 시선으로 소호를 바라보았다.

호랑이처럼 사납던 무형기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조서인 못지않게 상처투성이가 된 소호가, 양팔을 늘어뜨린 채 힘없이 웃고 있었다.

“나, 은자촌에 그냥 있을 걸 그랬어. 아! 그러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까?”

“소호……!”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참 풍운객잔을 좋아했어. 청소도 즐거웠고.”

우우우웅———!

소호의 양손이 새하얗고 붉은색의 기운으로 뒤덮였다.

소호는 그 손으로 허리에 찬 철 요대를 잡아 뜯었다.

딸깍.

무산학관의 졸업 증표인 철 요대가 끊어졌다.

그 안에서 데굴데굴 굴러나온 은색의 장신구와 그 한가운데에 짐승의 눈처럼 박혀 있던 묘안석이 파직! 하고 깨졌다.

화아아아악!

또 한 번 기세가 변모한다.

소호의 두 눈에서 혈광이 짙어진다.

이게 마지막이다.

조서인은 직감했다.

“이걸로 끝이야. 마지막을 장식해 줘.”

고오오오—!

소호는 빛나는 양손으로 머리 위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양손을 모아 펼치는 태극권.

무량한 힘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해일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펄쩍.

마지막 순간에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달려드는 소호를 향해, 조서인은 양손으로 창을 강하게 붙들었다.

일연적룡무 제삼 식.

콰아아아아———!

호생.

백호아를 펼친 소호의 양손으로, 조서인의 창이 빨려 들어갔다.

쿠웅!

충돌은 짧았다.

그러나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구우우웅——.

연못에 거대한 바위를 빠뜨린 것처럼 한순간 눈앞의 공간이 출렁 깊어진다.

콰과과과광!

소호의 양손에서 발톱처럼 솟아난 열 개의 강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가운데에 그려졌던 원은 단번에 지워졌다.

“하아아아압!”

조서인은 소리쳤다.

최후의 최후.

건곤조화신공의 신기가 전신을 번개처럼 관통한다.

용의 내단.

장기린이 전수한 내공도 일찌감치 다 쓴 지 오래다.

심창의 깨달음이 담긴 일격은 소호의 강기를 부수고, 그가 짐승의 이빨처럼 모으고 있던 양손을 옆으로 튕겨 냈다.

터엉!

창끝이 마침내 소호의 가슴에 도달했다.

조서인의 전력을 담은 깨달음의 일격이 호신강기를 두드린다.

쩌어엉!

소호의 몸이 덜컥 흔들렸다.

울컥.

피를 토한 소호가 양손을 늘어뜨린다.

조서인은 소호의 온몸을 갑옷처럼 감싸고 있던 불길한 느낌의 무형기가 도자기처럼 산산조각 나서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됐다!’

성공했다.

최후의 최후.

젖먹던 힘까지 다 쓴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극심한 피로감이 온몸을 덮쳤다.

“서인.”

뒤로 튕겨져 나가는 소호가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한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호는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나가다 어떤 한 지점에 멈춰섰다.

원래 정자가 있었던 곳.

박살 난 파편이 즐비한 그곳에서 소호는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쿠우웅.

“……!”

그 순간, 발밑에서 무언가가 퍽!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봉황타 정상의 지반이 깨져서 무너져 내렸다.

“어어! 위험하다!”

“도망쳐!”

지켜보던 군웅이 깜짝 놀라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봉황타가 떨린다.

소호가 주저앉은 곳이 통째로 산에서 떨어져 나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호야!”

조서인은 앞으로 뛰쳐나가려 했는데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흔들흔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깨지고 부서지는 돌덩이 위에서 그는 좀처럼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소호가 멀어진다.

부서진 정자의 파편들과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소호는 웃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왜 웃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살아날 자신이 있는 걸까?

늘 그랬듯이 천재적인 몸놀림으로 살아나올 것인가?

그러나 소호는 상처투성이였다. 일연적룡무를 맞아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집혼기의 힘을 다 잃어 내공도 없다.

‘미안해.’

소호의 입 모양은 분명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안 돼!”

뛰쳐나가려는 조서인을 누군가가 날 듯이 다가와 허리를 잡아챘다.

“낙일대협. 위험합니다!”

개방 북경분타주 오골개였다.

백경채에서 맺은 인연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지금 조서인에겐 크나큰 방해일 뿐이다.

“놔! 소호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버둥거렸으나 이미 소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절벽 너머.

지금 이 순간에도 미끄러져서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바위들만 보일 뿐이다.

위험천만한 상황.

오골개가 조서인을 둘러업고 취팔선보로 무너져 내리는 바윗덩어리들을 뛰어넘었다.

“안 돼!”

조서인의 절규가 흩어진다.

사흘 밤낮 동안 계속된 경천동지의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봉황타를 완전히 무너뜨린 두 청년 고수에 대한 소식은 강호 무림에 큰 충격을 주며 퍼져 나갔다.

적양문의 몰락.

낙일대협의 대단한 무위.

그리고, 천무련주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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