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57화 (686/686)

22권 26화

終章 풍운객잔(風雲客棧)

조서인은 이틀간 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객잔의 구석에서 한쪽 무릎을 끌어안은 채 멍하니 자신의 발끝만 바라봤다.

“왜 그랬지? 왜 구하지 못했지?”

이틀째 수백 번이나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소호가 절벽 너머로 떨어지던 그 순간의 기억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다.

마지막 일격에 전력을 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겨 내지 못했을까?

아마 졌을 것이다.

집혼기에 잠식당한 소호를 구해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 또 어떤가?

최소한 소호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멍청한 놈. 바보 같은 놈……!”

아무리 자책해 보아도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조서인은 자책을 멈출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대체 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꼬였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자신의 실수로.

실력이 모자랐기에 여유롭게 싸워서 구해 내지 못했다.

조서인은 앞으로 소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도 믿기지 않았다.

이게 현실인가?

정말로 일어난 일일까?

장기린.

하나뿐인 그의 사부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한단 말인가?

그가 절망에 점점 빠져들 때쯤, 객잔의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낙일대협, 나 오골개요. 마음은 좀 추스르셨소?”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문밖에서 헛기침을 몇 번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잠깐 실례하겠소.”

문을 열고 들어온 오골개는 조서인을 보고는 알 수 없는 탄식만 반복했다.

“아, 거, 휴우, 흐으, 나참. 꼴이 그게 뭐요? 우리 거지들도 사연 있기로는 남부럽지 않은 놈들인데, 어째 거지들도 대협의 그 처량한 얼굴을 보면 울면서 위로하겠소.”

오골개의 허리에 매달린 바가지와 매듭 네 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조서인은 가만히 자신의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이건 원래 비밀인데, 도대체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지경이라 몰래 말씀드리는 거요. 잘 들으시오. 야, 이놈들아! 뭘 기웃거리면서 엿보고 있어! 안 꺼져? 타구봉 맛 좀 볼래?”

오골개가 문밖으로 고개를 삐쭉 내밀고 객잔의 복도에 있는 누군가를 쫓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오골개가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강호 무림이 뒤집어졌소. 천무련의 깃발을 세운 천무공자가 적양문을 무너뜨리고, 주화입마에 빠져 광기에 휩싸였다가 죽었으니……. 이걸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모두가 난감해하고 있소. 그런데 뻔하지.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법이오. 천무공자는 강호의 평화를 위해 희생한 영웅이 되었소. 우리 개방에서 판단하기론 뭐,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고.”

조서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귀로는 듣고 있었다.

“사인(死因)은 태양염왕이 마지막에 폭약을 심어 두는 간계를 부린 탓이고. 정파의 무인들은 천무공자의 복수를 하자면서 적양문과 협력한 사파의 잔당들을 추적하고 있다오.”

소호는 영웅으로, 모든 나쁜 일은 태양염왕 고흠의 탓으로 돌렸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자신은?

조서인은 어떻게 소문이 났는가?

“무당버섯과 야광버섯이라는 게 있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독이지. 천하의 악질이자 사파의 거마(巨魔)인 태양염왕은 최후에 폭약으로도 모자라 천무공자에게 독을 썼다. 그 고절한 무공을 지닌 자가 독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니 누가 막을 수 있겠나? 그걸 막은 것이 바로 천무공자의 절친한 친구였던 낙일대협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막아섰고, 마침내 끝까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는 데 성공했지만……. 폭약 때문에 결국 친구를 잃고 말았다. 그 슬픈 이야기는 강호 처녀들의 방심을 울리고 있다오.”

“하핫.”

조서인은 처음으로 웃었다.

메마르고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그걸 사람들이 믿습니까?”

“태양염왕은 화경을 넘어선 고수였소. 그런데 태양염왕을 이긴 천무공자가 독에 당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믿는다오. 그냥 사파 놈들이 어디 고절한 독을 하나 만들었구나 하면서 사파 놈들 씹는 데 혈안이 되었지. 참 안타깝지 않소? 그런데 그게 한편으로 낫소. 적어도 정파의 희망이었던 천무공자가 집혼기라는 희대의 마물을 쓰다가 광기에 휩싸였다는 게 알려지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

“힘내시오. 어찌됐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크흠! 지금 강호 무림이 뒤집어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소. 무시무시한 노인장들이 각자 자파를 뒤집어 놓았거든.”

“……설마?”

“검선이 구양세가의 대문을 반으로 쪼갰다는구려. 세상에 그 무시무시한 구양가주를 발로 걷어찬 뒤 뛰쳐 나왔소. 장강용왕은 또 어떻고? 손자의 복수를 하겠다면서 갑자기 전선들을 이끌고 북경으로 북상하는 바람에 명의 해군과 부딪쳤고. 숭산에서 조용히 예불을 올리던 불요신승이 목탁을 깨부수고 뛰쳐 나왔다더군. 소림에서 깜짝 놀라서 나찰승들을 내보내고 난리요, 난리. 내 이럴 줄 알았다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커.”

“그럴 만……합니다. 그분들이라면. 그럴 만해요.”

은자촌의 어르신들이 소호를 얼마나 아꼈던가?

조서인은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니.

도대체 이 잘못을 어찌 갚아야 할까?

“주해…… 주해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사실 가장 걱정하던 사람 중 하나다.

섭주해가 소호를 얼마나 아끼고 따르던가?

그런 소호가 죽었다면, 섭주해는 천무련의 군사로서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르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좋은 접근이오. 누군가에 대해 알고자 하면 그 주변 사람부터 알아봐야지.”

“예?”

“천무련의 귀군사는 사라졌소.”

“……뭐라고요?”

“그날. 천무공자가 절벽에서 떨어진 날 그는 집무실에서 사라졌소. 그는 미리 부군사 제갈성에게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던 것처럼 군사직을 넘겨줬다고 하더이다. 아! 그리고 무상 패원강이 천무공자를 대신해서 천무련을 이끌고 있소. 듣자 하니 천무공자를 천무련의 시조로 삼고, 이제는 바른 하늘을 세우겠다면서, 련이 아니라 정천맹(正天盟)이라 부르겠다고 맹세했다고 하오.”

조서인은 정천맹이든 천무련이든 그런 이름 따윈 관심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다.

섭주해는 왜 사라졌는가?

혹시 소호를 찾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봉황타에 오지 않았을까?

그렇게나 잘난 척을 하면서 싸우고 나왔는데 정작 이런 짓을 벌였으니, 그는 조서인을 어찌 생각할까?

“낙일대협. 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하겠소. 크흠! 그…… 이건 개방의 특급 정보인데. 검선, 장강용왕, 불요신승. 모두 다 본래의 가문과 문파로 돌아간 뒤에 나오지 못하던 분들이오. 그런데 그분들이 분기탱천하여 나오는 건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오. 그들은 모두 은자촌으로 돌아갔고, 그 날로 더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소.”

“그게 무슨……?”

머릿속이 멍했다.

기름칠을 하지 않아 삐걱거리는 마차처럼 생각이 힘겹게 이어졌다.

“난 말이오. 솔직히 천무공자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소. 뭐랄까. 정의의 화신이라기보다는 어떤 목적을 갖고 그냥 무작정 달려나가는 사람 같았거든.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수단 방법을 좀 안 가리기도 했고. 가끔 그런 사람이 있소. 자칫 옆에서 휩쓸리기라도 하면 내 정신도 잃어버릴 것처럼 미친 듯이 달려가는 그런 사람 말이오.”

“아…….”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해가 되더이다. 한 걸음 물러서니 보인다오. 이 세상엔 때론 그런 사람도 필요한 법이지. 그리고 친구인 대협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천무공자는 본인이 할 일을 다 했소. 강호 무림의 관점에서 볼 땐 그는 슬슬 퇴장해 주는 게…… 더 이득인 그런 사람이었단 뜻이지. 높은 자리는 말년이 늘 좋지 않았거든.”

“…….”

“크흠! 고깝게 듣지 말아 주시오. 난 지금은 천무공자를 존경한다오.”

“미미는? 미미는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려.”

오골개가 웃는다.

조서인의 얼굴이 변해 있었다.

여전히 초췌했지만, 또렷한 두 눈이 무서울 정도로 강한 신광을 발하고 있었다.

“하오문의 대력신녀. 무산철공주께서는 한 사흘 전인가? 그쯤에 혼자서 화약을 천 근이나 짊어지고 북경을 떠났었다오.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모르겠소. 아! 이건 좀 관계없는 이야기인데, 엊그제 북경에서 가장 유명한 변검술사와 마희단이 하남에 공연을 한다고 떠났다오. 아쉬운 일이오. 난 그런 묘기를 보는 게 참 즐거운 사람인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오골개의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제가 널뛰고 있었다.

하지만 조서인은 그 말에 힘을 얻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사람의 말들이 떠올랐다.

이름 높은 도인, 호광진인은 소호를 “패도(覇道)의 핏줄을 타고났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순전한 협(俠).”이라 말했다.

소호는 호광진인이 보여 준 미래시 중에 평화로운 산간 마을에서 객잔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중년의 사내를 보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섭주해가 했던 말도 떠오른다. 그는 “세상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커다란 흐름’도 있다는 걸 언젠가는 부디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어.”

조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쑥스러운 듯 뒷짐을 지고 딴청을 피우는 오골개에게 확신을 담아 물었다.

“그 변검술사랑 마희단은 혹시 삼산현을 지나갈까요?”

“뭐, 그렇지 않겠소? 그들 중에 거기가 고향인 사람도 있는 듯하던데.”

“정확히 말해 주세요. 어차피 우리 둘뿐이지 않습니까?”

“나참.”

오골개는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은자촌. 은자촌으로 가시오.”

***

“오라버니!”

팽자연은 화가 잔뜩 난 채 조서인을 찾아왔다.

귀까지 빨개진 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천무련에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오기로 했었잖아요? 살수들한테 습격도 당했었다면서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 뒤에 왜 갑자기 북경까지 와서 사흘 밤낮을 싸워요?”

“미안합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전서라도 보내 주지.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요? 오라버니께 부탁해서 천무련에 쳐들어가려던 참이었다구요.”

“그럴 걸 그랬습니다. 앞으로는 자연 누이를 걱정시키지 않을게요.”

조서인이 그녀의 손을 붙잡자 팽자연은 화가 누그러졌다.

그녀는 얼굴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빨개진 채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다고 넘어갈 줄 알아요? 이건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자연 누이, 앞으론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우선 제 아버지와 같은 사부님을 뵈러 갔으면 해요. 그 뒤엔 팽가로 찾아가겠습니다.”

“오라버니의 사부님……? 그리고 저희 집에 오겠다고요?”

“혼인을 위해 인사를 드려야죠.”

팽자연은 입만 뻐끔거리다가 분하다는 듯이 조서인의 팔을 툭 때렸다.

“화를 낼 수가 없게 만드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서인은 팽자연과 나란히 서서 걸어갔다.

가끔 그를 찾아오거나 길을 막으려는 자들이 있었으나, 조서인은 그들에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며 명확하게 말했다.

“낙일창은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당분간 창을 꺾고 휘두르지 않을 생각이니 더는 찾아오지 말아 주십시오.”

낙일무쌍.

조서인은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이미 증명했고, 경지를 넘어선 특유의 위압감으로 싸우기도 전에 모두를 압도했다.

낙일창의 단호한 태도는 또 한 번 강호의 화제가 되었으나 그건 또 다른 일.

모든 이들이 그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돌아갔다.

삼산현의 봄은 화사하다.

백산, 흑산, 영산의 조화가 완성되며,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 새로운 생명이 신비롭게 움트는 계절이다.

조서인은 익숙한 산길을 평생을 함께할 반려와 함께 올랐다.

조서인이 창술을 연습하며 구멍을 뚫어 놓은 돌들이 여전히 길가에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소중하게 올라섰다.

대나무를 통으로 잘라 붙여 놓은 듯한 벽면과 세월이 느껴지는 현판이 보였다.

조서인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붙잡은 채 복잡한 심경을 안고 그 안으로 다가갔다.

풍운객잔.

모든 일의 시작이자 모든 일의 끝.

가까이 다가가자 객잔 안이 시끌벅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에게도 익숙한 목소리들이 친근감을 안고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이놈아! 이걸 음식이라고 만들었어? 내가 이런 걸 먹으려고 우리 집 대문을 반으로 쪼개 놓고 여기까지 온 줄 알아?”

“형님, 진정하시오. 난 해군이랑 싸우면서 왔는데도 군말 없이 먹고 있지 않소? 먹다 보면 그냥 먹을 만합디다.”

“잉어라면 환장을 하는 네놈이니까 맛있는 거겠지! 네가 자꾸 오냐오냐 편을 들어주니까 지금 객잔 음식 맛이 요 모양 요 꼴이 아니냐?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줘야 해. 땡중아. 한번 말해 봐라. 너도 맛이 없지?”

“난 고기만 들어 있으면 뭐든 좋습니다.”

“이런 땡중을 봤나. 얘는 객잔 운영시키면 안 된다니까? 세상일이 그리 만만한 줄 알아? 빨리 운찬이 불러와!”

“운찬이 그놈은 장가가겠다고 옆 마을 갔다고 몇 번을 말해야겠소? 형님, 치매라도 온 거요?”

“오냐. 치매가 왔다. 네놈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 칼맛 좀 볼 테냐? 이 수적 놈아?”

“상대하기가 힘드네. 어째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성질이 더러워지는 거요?”

나이 지긋한 노인들끼리 툭탁거리는 소리마저 정겹다.

조서인은 그 뒤에 노인들을 달래는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지옥이 천당으로 바뀐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 시큰거리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좋은 건 좋은 거고,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것이다.

성큼.

한 걸음을 내딛자 서로 싸우던 노인들의 시선이 마침내 그에게로 쏟아진다.

여러 가지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탁자 옆.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긴 하지만, 멀쩡한 얼굴로 태양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 청년이 있다.

“어?”

그 청년.

장소호가 양팔을 벌리면서 조서인을 반겼다.

“서인아!”

어린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

그가 기억하는 무산학관 시절의 맑고 쾌활한 소호였다.

조서인은 가까이 다가오는 소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내공만 빼고 모든 것을 실어서, 있는 힘껏.

“켁.”

소호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얻어맞은 볼을 손으로 문질렀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어색하게 웃던 소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 이제는 내공도 없는데, 좀 살살 때려주면 안 될까?”

“두 대만 더 때리고.”

“야야, 살려 줘. 나 아직 다 안 나았어! 으악!”

퍽퍽 소리가 나게 때린 뒤 조서인은 소호를 끌어안았다.

불과 며칠 만에 왜소해진 몸.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 육체가 만져진다.

조서인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친구.”

“서인.”

소호는 조서인을 마주 끌어안았다.

조서인은 볼썽사납게 펑펑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팽자연이 따뜻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은자촌의 노인들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왁자지껄하게 웃는다.

그리고 저 멀리.

풍운객잔의 뒷문 너머로, 자신의 제자가 왔음을 깨달은 그의 사부가 주름진 눈으로 웃어 주었다.

“풍운객잔에 잘 왔어. 친구.”

大尾

風雲客棧 二部 終

# 작가 후기

안녕하십니까? 주비입니다.

우선 1000화가 넘는 작품을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여러분들의 애정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애정의 십 분의 일이라도 재미로 보답할 수 있었다면 저는 참 행복한 소설가가 될 것 같습니다.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저는 풍운객잔의 2부를 마무리하며 출간된 책의 1권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2010년 11월 1일. 풍운객잔 1부 1권이 그날 세상에 나왔으니, 2부를 완결하기까지 무려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더군요.

십 년이라니.

강산이 변할 만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제게 있어 풍운객잔은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십 대 초반이었던 몽상가 청년은 풍운객잔이 마무리되는 동안 그 십 년 사이에 삼십 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사는 지역도 바뀌었고 제 삶도 많이 변했습니다. 중간에는 군대도 다녀왔는데, 이 자리를 빌려 2015년도에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의 긴 휴재를 기다려 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풍운객잔 2부는 제가 명나라의 자료를 찾던 중에 느낀 한 가지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토목의 변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건이었습니다. 환관으로서 일인지하 만인지상,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던 왕진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었을까?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황제까지 앞세워서 친정을 해 놓고 그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이민족에게 붙잡히다니.

혹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얼굴만 똑같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몇 가지 상상력은 제게 글을 쓸 힘을 주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끝도 흥미로웠습니다.

왕진은 호위 무장에게 철퇴를 맞아 죽었고, 이민족에게 붙잡혔던 정통제 주기진은 실제로 그들에게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아 다시 명나라로 되돌려집니다.

주기진을 대신해 황위에 올랐던 주기옥은 7년여의 통치 끝에 병에 걸려 눕고, 그사이에 돌아온 탕아 주기진은 다시 쿠데타로 황위를 회복해 명나라 역사에 유일하게 연호를 두 개나 지닌 황제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나라를 지키는 데 큰 힘을 발휘했던 우겸은 주기진을 다시 옹립하면서 힘이 생긴 석형, 서유정, 조길상 등의 모함을 받아 죽지요. 여러모로 스펙타클하고 재미있는 소재였습니다.

비록 제 필력이 부족해 모든 것을 녹아들게 만들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풍운객잔의 세계에서 만큼은 주기옥이 실제 역사처럼 주기진의 뒤처리를 하다가 병들어 죽은 것이 아니라, 몰래 은자촌으로 돌아와 소호의 곁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삶을 살기를 상상해 봅니다.

1부 18권, 2부 22권.

화수로 1008화를 기점으로 저는 풍운객잔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참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리 정해 둔 시나리오 안에서 2부를 완결했음에도 자꾸만 다음 이야기에 눈이 갑니다.

무공을 잃었던 소호가 다시 무공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라든지, 팽가에 장가간 조서인이 창왕이 되어 가는 이야기. 또는 소호와 대미미 사이에서 태어난 천무지체 거력지체의 아이도 좋겠지요.

여러모로 제게는 아쉬운 이야기지만, 저는 다음 작품의 주인공에게 바통을 넘기고 여기서 일단락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데일리북스의 최영철 본부장님, 애정을 갖고 풍운객잔 2부의 편집을 도맡아 주셨던 김윤정 팀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항상 제게 힘을 주시는 사랑하는 어머니,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바다를 지키는 해군 전우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달려서 날아오른다는 제 필명처럼, 어려운 시기를 무탈히 넘겨 앞으로는 행복한 날만이 이어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음 작품에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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