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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외계인-2화 (2/383)

제2화

1년 만에 돌아온 필드라 그런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단 몇 초라도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 경기가 진행되기 전에 잠깐 눈을 감았다.

“눈 감고 뭐 하고 있냐?”

다가온 건 동갑인 황철호였다.

“그냥 오랜만에 들어와서 인사하는 중.”

“인사? 누구한테?”

“얘한테.”

발로 잔디를 쿡쿡 누르자 황철호는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참… 넌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특이한 건 변하질 않네.”

“너도 1년 동안 공식전 못 뛰다가 나와봐라. 그럼 이 감정 어떤지 알 거야.”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황철호를 보자 놀리고 싶어졌다.

“야.”

“어?”

“네 얼굴로 그런 표정 지으니까.”

“…….”

“더 못생겼어.”

“야!”

씩씩거리는 이 녀석은 생긴 거랑 다르게 순진하고 착한 녀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고맙다. 긴장 풀어줘서.”

“…쳇, 눈치만 더럽게 빠른 놈.”

이 녀석은 생긴 거랑 다르게 세심하단 말이야. 내가 긴장할까 봐 긴장도 풀어주고.

“세심한데 왜 여자친구가 안 생길까?”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덕분에 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약간의 긴장이 말끔히 사라졌다.

“죽는 건 오늘 경기 이긴 다음에.”

“진짜 이길 수 있어?”

“아마도.”

* * *

삐-익!

우리 팀의 볼로 경기가 진행됐다.

난 오른쪽 측면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지우야!”

자리를 잡음과 동시에 효석이 형에게 패스가 왔다.

탁.

안정적으로 볼을 받자 덩치가 큰 미드필더가 앞을 막아섰다.

부산 풋볼 클럽의 주장 강만오.

우리 팀의 공격을 막아내던 수비력이 좋은 미드필더였다.

그렇다고 공략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벤치에서 지켜본 그의 가장 큰 단점은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툭.

볼을 아웃사이드로 한 번 치고 순식간에 인사이드로 전환을 하며 상대를 돌파하는 개인기.

플립 플랩(Flip flap).

강만오는 균형을 잃으며 뒤로 넘어졌고 난 옆으로 빠져나갔다.

스윽.

여유가 생기자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보이는 골대로 향하는 수많은 길.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골대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스피드를 올렸다.

뒤에서 쫓아오던 선수의 숨소리는 점차 멀어졌고 골대는 점차 가까워졌다.

“지우야!”

촤----악!

뒤에서 들리는 철호의 목소리와 동시에 들어오는 태클에 걸려 넘어졌다.

쳇.

실전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시야가 좁아지긴 했구나.

삐-----익!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게 됐으니까.

유니폼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리 팀 주장 은식이 형이 걸어왔다.

“네가 찰래?”

“제가 차도 돼요? 전담 키커는 형이잖아요.”

“야, 그거야 네가 출전 정지 때문에 공식전에 못 나왔을 때 이야기고, 네가 나오면 달라지지.”

“감사히 받을게요.”

“그리고 저기 봐봐.”

보라는 곳을 보는데 그곳은 귀빈석이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 축구협회 부협회장이지? 너 그렇게 만든 감독 뒷배.”

부협회장 차성인이 앉아서 이곳을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 미래를 망치려고 한 장본인, 그를 보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예.”

“저 꼰대들한테 확실하게 보여줘. 네가 어떤 놈인지.”

선수들은 각자 자리로 갔고 나는 키커 자리에 홀로 선 채로 골대를 바라봤다.

부협회장을 보고 차오르는 분노는 애써 억눌렀다.

지금 상황에서 터트려봤자 나에게 득이 될 건 없으니까.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하곤 눈으로 골대와 거리를 쟀다.

‘거리는 대략 25m 정도?’

직접 노리기 가능한 위치였다.

수비벽으로 선 선수들은 골키퍼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다.

“더 옆으로! 옆으로! 두 걸음만 더!”

그걸 보며 난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주심의 휘슬 소리를 기다렸다.

삐-익!

신호가 떨어지자 골대에서 시선을 거두고 볼을 보며 걸음을 뗐다.

정확하게 세 걸음.

왼발을 볼 옆에 디디고 오른발 인사이드로 강하게 감아 찼다.

뻐-엉!

볼은 점프를 뛴 수비벽의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스르르르륵.

볼은 회전이 걸려 급격하게 떨어졌다.

왼쪽 상단이 아닌 왼쪽 하단으로 떨어지는 볼.

툭.

골라인 앞에서 한 번 튀더니.

철렁.

몸을 날린 골키퍼의 손을 지나쳐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골을 넣고 내가 바라본 곳은 다른 곳도 아닌 귀빈석이었다.

…그리고.

“야, 야!”

주먹을 쥐곤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

은식이 형을 비롯해 다른 동료들이 말리는데도 내 시선은 그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엿이나 먹어, 이 새끼들아.

* * *

로드리고는 말을 잃었다.

“…미스터 윤.”

“예?”

“저 녀석은 누구지?”

통역사 윤무태는 서류에 적힌 선수 명단을 확인했다.

“지우 유, 16세 선수입니다.”

“열여섯? 고작 그것밖에 안 됐다고? 저런 정교한 킥을 하는데?”

“한국 나이로는 열여섯인데 아르헨티나에선 열다섯입니다.”

“열다섯?!”

“마음에 드십니까?”

“…일단 더 봐야겠어.”

아직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보여준 건 잠깐의 돌파와 킥이 전부였으니까.

‘조금 더 보면 확신이 서겠지.’

평범한 선수들만 있던 곳에 갑자기 나타난 선수.

로드리고는 확신이 필요했다.

눈앞에 있는 선수가 다른 선수와는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지.

* * *

[충북 풋볼 클럽 1 – 2 부산 풋볼 클럽]

한 골 차이로 좁혀지자 부산 풋볼 클럽이 세운 수비벽은 더욱 굳건해졌다.

단 하나의 볼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려는지 그들은 몸을 날리며 충북 풋볼 클럽의 침입을 막아냈다.

“훈련받은 대로! 뒷공간은 절대 내주지 마!”

부산 풋볼 클럽 주장 강만오가 주도해서 만든 라인.

텐 백.

프로가 아닌 경험이 적은 유소년들이 뚫어내기엔 수비가 너무나 많았다.

번번이 패스 길이 막히자 볼이 나간 틈에 주장 박은식이 유지우에게 다가왔다.

“지우야!”

“예?”

“스위치로 가자. 너한테 압박이 몰리기 시작하니까 분산시킬 필요가 있어.”

스위치로 가자는 말에 유지우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자신도 그렇게 해서 부산 풋볼 클럽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네.”

그 뒤로 충북 풋볼 클럽은 유지우를 중심으로 부산 풋볼 클럽의 수비 라인을 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탁.

유지우가 중앙 미드필더인 박은식과 스위치를 하며 하프라인에서 살짝 올라온 위치에서 볼을 잡아도 부산 풋볼 클럽 선수들은 섣부르게 나오지 않았다.

툭.

툭.

그걸 본 유지우는 발등으로 볼을 밀면서 부산 풋볼 클럽 진영에서 드리블을 시작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부산 풋볼 클럽의 주장 강만오가 다가왔고 유지우는 발바닥으로 볼을 끌며 그가 발을 뻗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스르르륵.

예상된 타이밍에 발이 뻗어 나오자 강만오의 다리 사이로 볼을 굴리며 제치는 데 성공했다.

강만오가 뒤로 가지 못하게 손을 뻗어 반칙으로 끊어보려고 했으나 그의 손은 유니폼이 아닌 허공을 휘저었다.

‘…빠르다.’

화려한 개인기에 빠른 스피드.

콰직.

견고했던 성벽은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벤치에서 보고 있던 부산 풋볼 클럽 감독 장태봉이 소리쳤다.

“멍하니 있지 말고! 달라붙어!”

그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대로 유지우를 놓쳤다간 다 잡은 경기를 놓칠 수 있을 거라는 걸.

‘어라.’

부산 풋볼 클럽 선수들이 거리를 좁히기 전에 유지우의 시야에 보이는 한 곳.

수비수들이 내려앉는 바람에 약간의 슈팅 공간이 만들어졌다.

단 몇 초면 사라지고 안 보일 곳이 보인 거였다.

‘저기다.’

더 들어가지 않고 슈팅 자세를 잡자 수비수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려와 발을 뻗었으나 이미 늦었다.

뻐-엉!

볼은 유지우의 발을 떠나 레이저처럼 뻗으며 골대 오른쪽 상단에 그대로 꽂혔다.

철렁---!

2 - 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2 – 2 동점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이었다.

웅성웅성.

허무하게 끝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단시간에 동점이 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경기를 지켜보던 로드리고는 흥미를 잃은 눈빛이 아닌 별처럼 빛나는 눈을 하곤 턱을 쓸며 유지우를 판단했다.

‘스피드는 또래 중에서도 톱이야. 테크닉도 훌륭하고 이미 프로 레벨에 가깝다.’

정규 시간이 지나고 주어진 시간은 고작 2분.

순식간에 무승부가 된 부산 풋볼 클럽은 라인을 비상식적으로 올린 충북 풋볼 클럽의 뒷공간을 노리며 굳건히 잠갔던 문을 열었다.

촤----악!

그런 그들의 역습을 막은 황철호의 슬라이딩 태클.

넘어진 상황에서도 투혼을 발휘해 볼을 박은식에게 밀어줬다. 그리고 박은식은 오른쪽 아래에서 손을 드는 유지우에게 빠르게 패스를 내줬다.

“안 돼!”

하프라인에서 살짝 처진 위치.

부산 풋볼 클럽의 선수들은 일제히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하며 유지우를 에워싸려고 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포위망이 구축되기도 전에 오늘 경기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유지우의 드리블이 시작됐다.

한 명.

두 명.

세 명.

점점 골대와 가까워지자 마지막 방어선인 수비수들은 일제히 벽을 세우며 자세를 낮췄다.

꽉.

센터백이 유니폼을 잡아끌며 밸런스를 흔들었지만, 유지우는 작은 체구로도 버텨냈다.

마지막은 마르세유턴.

센터백들은 서로 뒤엉켜 충돌했고 유지우를 놓쳤다.

“키퍼!”

골키퍼가 슬라이딩으로 막으려고 했으나 유지우는 발등에 볼을 얹으며 점프를 뛰어 제쳐냈다.

이제 그를 막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비어 있는 골대.

뻐-엉!

그대로 때린 슈팅.

철렁.

무려 여섯 명의 선수를 제치고 마무리를 짓는 모습에 관중들은 말을 잃었다.

4분 만에 나온 3골.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지고 있던 경기를 4분에 뒤집어 버리자 지켜보는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1년의 공백.

그것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플레이.

[충북 풋볼 클럽 3 – 2 부산 풋볼 클럽]

불과 10분 전까지는 누구나 부산 풋볼 클럽이 이길 거라고 생각한 경기였지만, 유지우가 투입되고 단 4분 만에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미스터 윤, 당장 저 아이를 보러 가야겠어.”

그리고 로드리고는 마지막을 보고 확신이 생겼다.

“저 아이를요?”

“보물을 찾았어.”

“보는 건 상관없지만, 흠이 좀 있는 선수입니다.”

윤무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유지우가 가진 흠 때문이었다.

“흠이 있다고?”

“예.”

“축구 선수면 축구만 잘하면 되잖아?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로드리고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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