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20화 (20/383)

제20화

2029년 4월 26일.

아르헨티나 1부 리그 ‘리가 프로페셔날 데 푸트볼’

리그 50라운드, 보카 주니어스 vs 사르미엔토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가 떠들썩했다.

“아빠! 저거요!”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보카 주니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유!!!”

나도 약속 장소로 걸어갔고, 멀리서 디에고 로시가 나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고 있었다.

피식.

그 옆에선 기예르모 다린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입으로는 뭔가를 오물오물 씹으며 인사했다.

“응? 너 손에는 뭐야?”

디에고 로시의 손에는 각종 음식이 많았다.

“지나가다가 알아보시는 분들이 하나씩 주고 가셨어.”

“자.”

기예르모 다린이 돼지고기 꼬치를 하나 건네줬다.

“…여기 혹시 독이라도 발랐어?”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네가 음식을 양보해주는 게 이상해서. 평소에는 잘 안 주잖아.”

U-20에서 지내며 기예르모 다린과 친해지며 평소 습관도 알 수 있었다.

그 습관 가운데 기예르모 다린은 먹는 것을 타인에게 양보해주지 않았다.

“크크크큭.”

내 말에 기예르모 다린은 눈이 커졌고 디에고 로시는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디에고, 웃지 마!”

“유.”

“응?”

“기예르모가 음식을 양보해준다는 건 너를 신뢰한다는 뜻이야.”

응?

“이 녀석, 무뚝뚝해서 표현이 거의 없어. 그래서 그 표현을 음식을 주는 걸로 하는 거라 받아줘.”

기예르모 다린의 손에 들린 꼬치를 받았다.

그러자 기예르모 다린은 얼굴이 붉어져선 로봇처럼 걸어갔다.

그걸 뒤에서 따라 하는 디에고 로시를 보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참 이상했다.

이 녀석들이랑 있을 때는 뭔가 마음이 편안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야! 기예르모, 유가 또 웃어!”

“응? 유, 나랑 있을 때는 몇 번 웃어줬다.”

“뭐라고?! 아아아아아! 나만 2군이라서 자주 못 보잖아! 이것들아, 얼른 2군으로 올라오라고!”

“내려와! 음식 떨어진다!”

디에고가 기예르모의 등에 올라타서 투덜대자 기예르모는 음식을 보호하며 소리쳤다.

그렇게 투덕대면서 경기장으로 걸어가는데 유독 경찰들이 많았다. 골목마다 통제도 하고 티켓이 없으면 아예 통행하지 못하게 막았다.

“경비가 삼엄하네.”

“훌리건들이 많잖아. 티켓 없이 무단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서 통제는 불가피해.”

축구의 나라답게 거리는 축구 열기로 가득했다.

“저기.”

멀리 보이는 경기장으로 가는데 뒤에서 여성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유 아니에요? U-20 선수.”

뒤를 돌자 아이들과 같이 있는 여성분이 나를 알아봤다.

“맞습니다.”

“오오오오! 역시 맞았어! 사진 한 장 부탁드려도 되나요? 저희 아들이 유를 좋아하거든요.”

“저를 아세요?”

“네! 보카 주니어스를 사랑하는 팬들 사이에서 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축구 선수와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어릴 적부터 축구를 하면서 많은 슈퍼스타의 영상을 봤고 그중에서 한 사람이 한 말이 내 가슴 깊숙이 박혀 잊히지 않았다.

‘축구 선수는 팬들이 있어야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축구는 팬이 없으면 그저 멍청이들이 하는 공놀이에 불과한 스포츠다.’

이런 말을 가슴에 품고 살며 내 신념으로 삼았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자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활짝 웃으며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경기 보러 오신 거예요?”

“네, 오늘은 훈련이 없어서요.”

“유와 친구분들이 얼른 1군으로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리그 성적이 너무….”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곤 걸어갔다.

그렇게 걷기를 15분.

“보인다.”

디에고 로시의 말에 정면을 봤다.

그리고 그곳엔 거대한 경기장이 눈을 사로잡았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적절하게 섞인 색감.

외관에는 클럽의 전설적인 선수들의 벽화가 그려져 웅장함을 더했다.

두근.

두근.

보자마자 심장이 뛰었다.

내 표정을 본 디에고는 활짝 웃으며 경기장을 가리켰다.

“축구인의 성지! 라봄보네라에 온 걸 환영한다!”

* * *

보카 주니어스 팬들의 성지인 ‘라봄보네라(La Bombonera)’는 초콜릿 상자라는 뜻의 애칭이었다.

경기장이 일반적인 동그란 원 형태가 아닌 반원 형태였고 색감까지 합치니 정말로 초콜릿을 포장한 상자 같았다.

규모는 유스 경기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것의 절반, 아니 그보다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단번에 시선을 빼앗은 웅장한 스타디움을 한번 둘러보곤 티켓에 표시된 좌석으로 갔다.

“아르헨티나에 오고 첫 관전이지?”

“응.”

디에고 로시와 말을 하다 말고 옆을 슬쩍 보는데 먹을거리를 한 아름 들고 앉은 기예르모가 보였다.

“뭘 그렇게 많이 사 왔냐?”

“여기 가게가 꼬치를 잘한다. 먹어봐라. 맛이 끝내준다.”

“어? 아까 밖에서 먹었던 건 나무 꼬치 있던데 이건 먹을 수 있는 과자로 된 꼬치네?”

“응, 스타디움 안에서 파는 건 먹을 수 있는 꼬치로 만든다. 나무 꼬치로 했다가 경기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옆 사람 찌른 사건이 있어서 이렇게 판다.”

“뭐야, 그러면 보통 꼬치류는 판매 정지해야 하는 거 아니야?”

“꼬치가 매출이 높아서 구단에서 이렇게 한 거다.”

아… 그러면 인정. 이건 내가 지금껏 먹은 꼬치 음식 중에서도 진짜 맛있으니까.

꼬치를 심까지 씹어 먹고 있자 관중석 곳곳에서 홍염이 일어났다.

“시작한다.”

“와.”

라 봄보네라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차원이 다르구나.’

미니 엘 수페르클라시코와는 차원이 다른 열기였다.

진짜 왜 앞에 ‘미니’가 붙었는지 알 것만 같다.

일반 리그 경기에서도 이런 열기인데 만약 진짜 엘 수페르클라시코는 어떨지 내심 기대가 됐다.

“어때? 죽이지?”

“완전.”

“크크크크크크큭.”

“유의 눈이 평소보다 커졌다. 과일꼬치에 달린 토마토 같다.”

잠시 후.

양 클럽 선수들이 필드에 들어오면서 리그 50라운드가 시작됐다.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치는 양 클럽, 역동적으로 서로의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 하나하나를 놓칠 새도 없이 빠르게 눈으로 좇았다.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는 긴박한 경기 흐름.

그 순간이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선수가 볼을 잡은 건.

“하비에르가 잡았다.”

현 보카 주니어스의 에이스.

그가 볼을 잡자 마법이 펼쳐졌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완벽에 가까운 패스 센스, 공격적인 플레이 메이킹이 장점인 선수답게 곳곳에서 기회를 만들어냈다.

툭.

압박하는 선수를 스텝 오버로 제쳐낸 후에 시도한 패스.

뻐-----엉!

하비에르의 발을 떠난 패스는 대지를 가르며 최전방으로 침투한 선수까지 연결됐지만, 마무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골대 오른쪽으로 벗어나자 관중들은 탄식했다.

“아, 진짜! 리카르도 저 자식은 저걸 못 넣어?”

“리카르도도 나이가 들어서 이제 저런 패스에 반응하지를 못해서 늘 놓치잖아! 전반기에는 그래도 잘 넣던데 후반기에는 왜 이래!”

“하비에르만 잘하면 뭐 하냐고. 환상적인 패스를 살리는 선수가 없는데!”

“이게 다 필로가 유럽으로 가서 그래. 작년까지는 그래도 필로가 있어서 준우승은 가능했잖아.”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 후에도 거의 하비에르의 원맨쇼였다.

사르미엔토의 선수들의 압박을 벗어나는 우아하면서도 치명적인 움직임.

거기에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 날카로운 패스까지.

패스면 패스.

돌파면 돌파.

슈팅이면 슈팅.

왜 그가 보카 주니어스를 넘어 유럽 축구계의 시선을 사로잡는 선수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으으으으으으! 역시 하비에르의 패스는 최고라니까! 유, 너도 하비에르랑 뛰고 싶지 않아?”

“응? 갑자기?”

“난 항상 그랬거든. 얼른 1군으로 올라가서 하비에르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고 싶어.”

디에고의 말을 듣자 나도 묘하게 두근거렸다.

저 선수의 패스를 직접 필드 위에서 받아보고 싶었다.

전반 34분.

하비에르 카세로가 하프라인 밑에 있다가 폭발적인 가속도로 치고 나왔다.

그 앞으로 자로 잰 듯 주어지는 패스.

투-욱!

길게 밀며 붙던 수비를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르미엔토가 코너킥 때문에 라인을 올린 상황이라 뒷공간은 비어 있었다.

타다다다닷!

그곳을 하비에르는 특유의 빠른 스피드로 처참하게 무너트렸다.

옆에서 상대 선수가 견제하려고 따라오지만.

툭.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며 손쉽게 제쳐냈다.

‘와.’

감탄이 나왔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플레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오른발로 감아서 찬 슈팅.

철렁!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기다렸다고, 하비에르!”

“역시 네가 해주지 않으면 안 돼!”

“적어도 2위까지는 올라가야지! 남은 경기 동안 이렇게만 해줘!”

하비에르 카세로는 골을 넣은 뒤에 필드 위에 미끄러지는 세리머니를 했고 그 뒤에 보카 주니어스 선수들이 그를 덮쳤다.

- 보카! 보카! 보카! 보카!

터질 듯이 요동치는 열기.

팬들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웅장했고 발소리는 지진이 온 것처럼 모든 것을 울렸다.

아발란차.

이것이 ‘진짜’ 아발란차였다.

진짜 축구에 미친 나라라는 게 고스란히 피부로 전해졌다.

아아아아아!

선수가 아쉽게 찬스를 놓치면 같이 아쉬워했고.

와아아아아아!

골을 넣으면 함께 기뻐하는 곳.

여기서 얼른 뛰고 싶었다.

이 미친 팬들 앞에서 하루라도 빨리.

“기예르모, 쟤 눈 돌았는데?”

키득거리며 놀리는 녀석이랑.

“꼬치 맛있는데 하나 더 먹을래?”

꼬치에 미쳐버린 놈이랑 같이.

스윽.

그리고.

- 하비에르! 하비에르! 하비에르!

등번호 7번을 달고 필드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저 선수랑.

* * *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온 하비에르 카세로 곁으로 한 선수가 다가왔다.

“하비에르! 오늘 두 골 멋지던데?”

“아, 머리는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리카르도.”

“어쭈! 이게 아주 다 컸다고 기어올라!”

“아아아아아아! 그만요!”

리카르도 메사.

37세의 노장으로 보카 주니어스의 살아 있는 전설과도 같은 선수였다.

하비에르 카세로가 나타나기 전, 보카 주니어스의 암흑기를 지탱한 선수라 팬들의 지지도가 높았다.

“그나저나 아까 봤어?”

옆 라커에서 짐을 챙기는 리카르도는 하비에르에게 물었다.

“뭐를요?”

“우리 꼬맹이들이 보러 왔었잖아. 경기 끝나고도 한참 동안 안 나가던데?”

“아~ 디에고는 가끔 같이 훈련해서 아는 얼굴이라 손 흔들어서 인사해줬죠.”

짐을 챙기는데 리카르도는 한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옆에 있는 녀석은?”

“아시아에서 온 녀석이요? 이름이….”

“지우 유, 밑에서 날아다닌다고 소문이 자자해.”

하비에르 카세로도 몇 번 들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생생히 기억났다.

피식.

“그 녀석들이랑 같이 뛸 날이 기대되네요.”

하비에르 카세로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리카르도 메사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그러면 난 이제 슬슬 물러날 때가 된 건가?”

“네?!”

하비에르가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예요! 리카르도가 없으면 안 되죠! 또 경기력 떨어졌다고 누가 뭐라 그래요? 그놈들 데리고 와 봐요. 내가 아주 반 죽여놓을 테니까!”

1군으로 처음 올라왔을 때, 흔들리던 자신을 지탱해준 리카르도 메사라 하비에르 카세로는 그와 관련된 일이라면 가족보다 더 흥분했다.

쓰담.

리카르도 메사는 하비에르 카세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하비에르도 저항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그 손을 받아들였다.

“…여전히 따뜻하네요. 리카르도의 손은.”

“살아 있으니까 따뜻해야지. 내가 죽었으면 좋겠냐?”

“아니, 무슨 말을 못 하겠네.”

그때와 똑같았다.

자리를 잡지 못해 흔들릴 당시에 내밀어준 손의 온기와.

“내일 또 보자.”

“…은퇴한다는 소리 하지 마요.”

“야, 마흔까지 하라고?”

“제가 은퇴할 때, 같이 해요.”

“이놈이 날 어디까지 부려 먹으려고! 호르헤! 에스테반! 들었어?!”

리카르도 메사는 하비에르 카세로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이제는 제가 힘으로 이기거든요!”

“어쭈!”

“푸하하하하하! 하비에르,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리카르도의 발끝에도 못 미칠 거다.”

“이번에도 힘 싸움이야? 자자자! 내기합시다.”

“난 리카르도!”

“무조건 리카르도지.”

보카 주니어스 1군의 분위기는 언제나 좋았다.

“아니! 왜 내 편은 없어!”

하비에르 카세로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행복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자신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곳.

언제나 힘들고 괴로운 일을 함께하는 동료.

그리고.

자신의 정신적 지주까지 있는 이곳이 그에게는 천국이었다.

‘힘도 약해지셨네.’

힘을 쓰면 이기겠지만, 힘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헤드록에 걸린 상태로 하비에르는 넌지시 말했다.

“…떠나지 마요.”

스르르륵.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응? 야, 우냐?”

리카르도 메사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보려 하자 하비에르 카세로는 최대한 밀어냈다.

“하하하하하하! 얘들아, 이 자식 운다!”

리카르도 메사는 눈물을 보고선 빵 터져서 동네방네 소리쳤고 동료 선수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뭐라고? 하비에르가?”

“야야야야! 휴대폰 영상! 이거 올리면 조회 수 100만 그냥 간다!”

파티처럼 행복한 분위기.

하비에르는 눈물을 닦고 활짝 웃으며 어울렸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남미 챔피언 트로피는 안겨줄게요.’

곧 은퇴를 앞둔 리카르도 메사에게 남미 챔피언 트로피를 안겨주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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