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34화 (34/383)

제34화

전반전이 끝나고 시작된 후반전.

유지우는 쉬지 않고 슈팅이나 패스로 기회를 창출했지만, 더 이상의 공격 포인트를 만들지 못했다.

삐---익!

그리고 체력 안배 차원에서 64분에 교체가 됐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선수 교체를 합니다! 지우 유가 나오고 레나토 곤잘레스가!]

[체력 안배 차원에서 빼주는 것으로 보이네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데뷔전에 1골 1어시스트라니…. 하비에르나 앙헬의 데뷔 때보다 더 임팩트가 크지 않습니까?]

두 선수는 데뷔전 때, 후반 교체 출전으로 나오며 별다른 공격 포인트를 내지 못했다.

【 1골 1어시스트 】

그러니 유지우가 낸 데뷔전 기록은 보카 주니어스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될 게 분명했다.

“멋진 데뷔전이네.”

하비에르 카세로가 내민 손에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해준 뒤에 걸어 나갔다.

짝짝짝짝짝!

관중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최고의 데뷔전을 치른 신인 선수를 향해 박수를 보내줬다.

[최고의 활약을 보인 지우 유를 향해 관중들이 기립해서 박수를 보내줍니다!]

[데뷔전에 이렇게 환호를 받는 신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유지우는 마찬가지로 박수로 화답하며 레나토와 교체됐다.

“고생했다.”

세바스티안 란첼라의 무뚝뚝한 말투에 유지우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유지우의 데뷔전은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끝났다.

경기가 끝나고 마련된 인터뷰.

오늘 데뷔한 유지우에게 무수히 많은 기자가 몰려들었다.

“열여섯의 나이에 첫 데뷔전이었습니다. 부담이 되진 않으셨습니까?”

“부담은 있었지만, 제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아직 정식 프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경기 이후에 프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모든 건 구단의 결정입니다.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은 없네요.”

그 뒤로도 여러 질문에 답해주고 마지막 질문 차례가 됐다.

구단 관계자가 콕 집어서 한 기자를 지목했고 그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앞으로의 각오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러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많은 것을 이루겠습니다.’

등등 여러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형식적이고 루즈한 말들이었다.

그러던 중, 머릿속에 스치는 한 문장.

그걸 찍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습니다.”

기자들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아마 어린 선수의 치기 어린 소리로 치부할 거다.

그러나 유지우에겐 축구 선수라는 꿈을 꿀 때부터 적어놓은 ‘꿈 노트’가 있었다.

1. 축구를 배운다.

2. 유명 학교 축구부 주전이 된다.

3. 프로 구단에 입단한다.

4. 20인 엔트리에 들어간다.

5. 주전이 된다.

6. 베스트 11에 선정된다.

7. 국가대표가 된다.

8. 국가대표 주전이 된다.

9. 월드컵에 출전한다.

11. 유럽의 명문 구단 주전이 된다.

12.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다.

13. 월드컵에서 우승한다.

말도 안 되는 꿈도 있었다.

축구 선수라는 길을 걷기 위해서 유지우는 꿈 노트에 적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면 그 목록을 하나씩 지웠다.

그리고 방금 하나의 목표가 새롭게 생겼다.

[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 ]

이것이 노트에 새로이 적힌 유지우의 최종 목표였다.

* * *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자 통로에서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왔구나!”

가족들만이 아니었다.

유민하의 친구들도 옆에서 손을 흔들며 반겨줬다.

“아버지, 어머니.”

스윽.

“이거요.”

오늘 경기에서 입고 뛴 유니폼이었다.

“많이 넘어져서 더러워졌긴 해도 데뷔전 유니폼은 두 분께 드리고 싶어서요.”

서설희는 유니폼을 받고서 눈물을 흘렸고 유한우는 유지우를 꼭 끌어안았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아버지.”

“응? 왜?”

“저 갈비찜 먹고 싶어요.”

“오냐! 갈비찜 만들어서 동네 파티하자!”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다빈이 옆을 슬쩍 보자 유지우는 피곤이 몰려왔는지 자고 있었다.

“어? 지우, 자네요.”

뒷좌석에 앉은 유지우는 금세 잠이 들었다.

서설희는 유지우의 얼굴을 손으로 한 번 쓸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긴장이 풀린 모양이네.”

프로 첫 데뷔전.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참 대단해요.”

“너도 그렇게 생각해?”

“타국에서 이렇게 결과를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운동하는 입장에서 해외에서 결과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쉬질 않았으니까.”

말을 한 건 유한우였다.

“네?”

“오죽하면 감독들이 나한테 전화해서 지우 훈련 좀 쉬게 하라고 부탁하겠냐?”

유지우는 보카 주니어스 구단 내에서도 훈련 변태라고 알려졌다.

제일 먼저 와서 제일 늦게 나가는 습관.

어린 나이에 무리하는 거로 보여 감독들이 말려보기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늘 결과는 그동안 지우가 해온 노력의 결과야.”

서설희와 유민하는 최근에 노력하는 걸 봐왔지만, 유한우는 달랐다.

아르헨티나에 오자마자 아들이 노력하는 걸 가장 가까이서 봐왔다.

말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저렇게 하다간 몸이 버티지 못할 거라며.

하지만 꾹 참았다.

웃음을 잃었던 아들이 웃음을 찾아가는 것을 본 뒤로 더 말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노력의 결과가 데뷔전에서 인정받자 웃음이 났다.

“많이 힘들었겠지?”

서설희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미세하게 떨렸다.

“지우 팔이랑 다리 봐봐.”

서설희가 슬쩍 옷을 걷어 팔과 다리를 봤다.

다른 사람들도 보고서 말을 잇지 못했다. 거기엔 상처들이 있었다.

“…….”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자잘한 상처였지만, 그 수가 많았다.

다 축구를 하면서 생긴 상처들이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포기하지 않은 훈장들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거친 곳에서 축구 하는 거야, 우리 아들은.”

서설희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그래도 티 내지 마. 다쳐도 내가 걱정할까 봐 나 모르게 방에서 혼자 약 바르고 밴드 붙이더라.”

“…구단에서 관리 안 해줘?”

“아니, 구단에서 치료받고 집에서 씻고 자기 전에 소독할 때.”

“…….”

“참…. 열여섯이면 그냥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 걸, 꾹 참는 건 어디서 배웠는지.”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유지우는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필드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아들의 손을 서설희는 양손으로 꼭 잡았다.

‘…….’

축구를 하지 못할 지경까지 내몰렸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고생했다. 우리 아들.”

* * *

【 1골 1도움!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어린 왕자! 】

【 세바스티안 란첼라, “유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 그는 믿음에 보답했다.” 】

【 보카의 어린 왕자 유, “내 목표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 】

[데뷔전을 이렇게 화려하게 한 선수가 지금까지 있었나?]

[어쩌면 우리… 세계적인 선수의 시작을 보고 있는 거 아닐까?]

[보카의 어린 왕자라는 별명에 걸맞은 데뷔전이었어. 구단은 유를 클럽을 대표하는 선수로 키워야 해!]

[유가 어떤 과거를 가졌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는 보카의 역사를 쓸 선수니까!]

구단 커뮤니티를 비롯해 팬튜브에도 데뷔전 영상이 올라가며 센세이션(sensation)을 일으켰다.

“…와.”

갈비찜을 먹고 싶다고 한 다음 날 아침.

나랑 누나, 그리고 다빈 누나랑 주현 누나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량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아들!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먹고 푹 쉬어!”

어머니는 밥을 고봉밥으로 줬다.

“예. 맛있게 먹을게요.”

보니까 좋아하는 반찬들이 많았다.

제일 먼저 양념이 배서 야들야들한 갈비찜 한 점을 집어 먹자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오… 지우,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어!”

“크, 크흠! 누나들도 얼른 먹어.”

밥을 두 공기를 먹어 치우자 누나들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사인은 안 해줘?”

“아, 맞다. 잠깐만.”

2층 방으로 올라가 어제 구단에서 챙겨온 걸 가지고 내려왔다.

그건 유니폼이었고 거기엔 내가 한 사인도 있었다.

“선물.”

“우와아아아아아!”

“고마워, 지우야!”

“잘 가지고 있어, 나중에 엄청나게 비싸질 거니까.”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내 유니폼을 중고로 팔 누나들은 아니었다.

잘 보관해 주겠지.

“다음 경기는 못 보고 돌아가는 게 아쉽다.”

“그러게.”

“우리보다 아주머니랑 민하가 제일 아쉬울걸?”

어머니랑 누나도 이번 주말이면 떠나기로 예정이 됐다.

“…여기서 약국이나 차려서 아들 경기나 따라다닐까.”

“한국에 있어~. 살기는 한국이 더 좋잖아.”

“당신.”

움찔.

“우리가 얼른 갔으면 좋겠어?”

“그럴 리가! 우리 마누라랑 딸내미 가면 눈앞에 아른거려서 향수병 걸릴지도 몰라!”

“말이나 못 하면.”

“그리고.”

아버지는 갈비찜을 한 입 베어 무는 나를 보곤 말했다.

“지우가 언제까지고 여기 있는 게 아니잖아.”

“…그 말은.”

“맨체스터에 집 알아봐! 이 기세면 2년 안에 맨체스터로 간다!”

“시티로?”

“시티지?”

아, 그러고 보니.

“시티로 가즈아아아아아!”

이 누나들도 우리 누나랑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시티 팬이었지.

“무슨 소리야! 당연히 근본의 맨유지!”

…진짜 어지럽다, 어지러워.

* * *

며칠 후, 서설희와 유민하, 그리고 최다빈이랑 강주현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약간 집이 허전해지긴 했지만, 유지우는 흔들리지 않고 리그에 집중했다.

『 리그 2라운드 CA 우라칸전 [휴식] 』

『 리그 3라운드 아르세날 데 사란디전, 70분 교체 출전 3 – 1 승리. 』

[패스 – 42회 (성공률 96%)]

[결정적 패스 – 3회]

[태클 4회 (성공 – 3회)]

[돌파 6회 (성공 – 6회)]

파울 – 0개

도움 – 0개

득점 – 0개

.

.

.

8월 20일, 리그 4라운드 CA 투쿠만전.

라봄보네라에는 수만 명의 관중이 엄청난 열기를 내뿜었다.

- 보카! 우리의 영원한 친구!

85분이 지나고 있는 상황.

[보카 주니어스 4 – 0 CA 투쿠만]

승리는 이미 정해졌다.

그러나 보카 주니어스 선수들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한 개의 골을 기록한 유지우에게 볼이 가자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한 골 더 넣어!”

“요즘 너 보려고 경기장 온다!”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지우는 필드를 누볐다.

풀타임을 뛰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허벅지에 약간의 경련이 생기긴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타다다다다닷!

폭발적인 스피드.

휘익!

수준 높은 탈압박.

- 와아아아아아아아!

왜소한 선수가 커다란 선수들을 가차 없이 무너트리는 모습에서 관중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지우 유! 멈추지 않습니다! 세 명의 선수를 제치고 중앙으로 올라갑니다!]

[투쿠만 수비수들은 오늘 유에게 상당히 고전했습니다! 마지막은 과연 막을 수 있을지!]

프로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었다.

경기 내내 당했으니 마지막은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최종 수비수는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휙.

그러나 그걸 본 유지우는 드래그 백으로 볼을 멈춘 뒤에 비어 있는 왼쪽으로 살짝 툭 밀었다. 그리고 보인 골대까지의 길.

뻐---엉!

파 포스트를 노리며 감아 찬 슈팅은 골망을 흔들었다.

[고오오오오오올! 지우 유의 환상적인 왼발 슈팅이 골망을 갈랐습니다! 오른발 왼발! 양발을 저렇게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는 건 축구 선수로서 크나큰 축복이죠!]

[데뷔전에 이어 다시 골을 만들어내는 유! 데뷔전의 결과가 단순히 운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걸 증명합니다!]

광고판에 올라서서 가슴에 있는 보카 주니어스 엠블럼에 키스하는 세리머니를 하자.

- 유! 유! 유! 유! 유!

커다란 함성이 라봄보네라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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