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46화 (46/383)

제46화

삐---익!

- 유! 유! 유! 유! 유!

세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74분에 교체되는 유지우를 향해 라봄보네라에 온 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짝짝!

“진짜 저 녀석을 데려온 로드리고는 신이야.”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지? 내 아들은 20대 초반인데도 집에서 놀고 있는데.”

“뭐가 어찌 됐든! 유는 우리의 보물이야!”

“그건 맞지.”

“술만 마시면 헛소리하던 로벤이 오랜만에 맞는 소리를 하는군! 하하하하하!”

그렇게 경기는 보카 주니어스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유지우는 관중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관중석으로 걸어갔다.

유지우가 가까이 오자 관중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환호를 했고.

훌렁.

유지우는 유니폼 상의를 벗었다.

팬들은 자기들에게 달라고 했지만, 유지우는 이미 방향을 정했는지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광고판을 넘어 관중석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경기 전에 만난 여자아이에게 유니폼을 내밀었다.

“아까 약속했지?”

“…기억하고 계셨어요?”

“약속은 잘 잊지 않아서.”

아이는 기뻐서 활짝 웃었고 아버지는 유지우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저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워밍업을 하다가 눈이 마주쳐서요.”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딸에게 소중한 추억이 생겼어요.”

“다음에도 응원하러 와주실 거죠?”

“그럼요!”

유니폼을 건네준 뒤에 가려고 했는데 여자아이가 유니폼을 품에 꼭 안은 채 말을 걸었다.

“다음 리버전도 이겨주실 거죠?!”

아이의 말은 주변으로 퍼져 어느덧 사람들의 시선이 유지우를 향했다.

볼 보이를 비롯해 경호를 서는 사람들도 대답이 궁금했는지 힐끔거리며 봤고 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말했다.

“네가 보러 온다면 이겨야지.”

주변 사람들도 그런 유지우를 뿌듯하게 보며 응원가를 불렀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는 두려움을.

두 걸음을 내디딜 때는 환호를.

세 걸음을 내디딜 때는 승리를!

길을 비켜라, 그리고 무릎을 꿇어라.

새로운 왕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찬양하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우리의 새로운 왕 유에게 경배를!]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주며 필드를 나온 유지우 근처로 기자들이 몰렸다.

곳곳에 한국 기자들도 있었다.

외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고서 끝날 무렵, 한국어로 질문이 들렸다.

“주앙 달루트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에 유지우 선수의 소집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소집을 한다면 응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한국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있다면 저는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뛰고 싶습니다.”

귀화하면 나에게 오는 이익은 엄청날 거다.

군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세금 감면에 생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아마 모든 선수의 꿈인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내 뿌리를 잊고 싶진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랑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본 국가대표 친선경기.

관중석에서 느꼈던 감정을 필드에서 느끼고 싶었다.

* * *

12월 20일.

만으로 열일곱이 되는 날이었다.

오전 훈련 이후에는 훈련 일정도 없어서 아버지가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알리샤 아주머니와 마르시오 아저씨와 같이 장을 보고 이것저것 준비했다.

치---익!

요리가 시작됐고 난 마당 벤치에 앉아 어머니랑 통화했다.

- “아드으으으으을…. 생일 때, 엄마가 밥 챙겨줘야 하는데 미안해….”

“괜찮아요. 아버지가 어머니 몫까지 챙겨주세요.”

- “미안해.”

“아니에요. 미역국은 아버지가 한 솥으로 만들어서 이웃분들이랑 같이 배불리 먹었어요.”

어머니는 생일 때, 자기 손으로 미역국을 만들어주지 못한 게 마음이 아픈지 속상해했다.

- “한국에는 시즌 끝나고 올 거지?”

“아마 그럴 거 같아요.”

- “그런데 그것보다 더 빨리 볼 수도 있겠다!”

“왜요?”

- “왜긴 왜야! 국가대표지. 사람들이 우리 아들 국가대표로 뽑으라고 난리야!”

한국 소식은 차명훈이 얘기해줘서 잘 알고 있었다.

차성인이 여러 비리 정황을 끝까지 부인했지만, 측근들의 증언으로 결국 구속까지 진행됐다고 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협회 내부에선 대대적인 물갈이가 시작되고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벌써 국대는 이르죠.”

- “무슨 소리!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선수 중에 우리 아들이 최곤데 안 뽑으면 그 감독 눈이 생선 눈깔이지!”

어머니는 축구 얘기를 할 때면 입이 거칠었다.

그렇게 통화를 하고 시간이 지나 어느덧 파티가 시작될 저녁 시간이 됐다.

앞집 알리샤 아주머니네와 식당 식구들, 한인회에서 친해진 분들까지 집에 모였고 잠시 후,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여기가 우리 유의 집이지?”

보카 주니어스의 정신적 지주 리카르도 메사.

“리카르도, 술 마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징계 먹어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다가 온 공격대장 앙헬 몰리야.

“앙헬이 맞는 말을 하네요.”

보카 주니어스의 간판 하비에르 카세로까지.

초호화 손님들이 오자 보카 주니어스 팬인 손님들은 내적 환호를 질렀다.

“유!”

“오셨어요.”

“이거.”

“뭐예요?”

“빈손으로 좀 그래서. 그리고 너 선물도 같이 있어.”

아버지를 드릴 술이랑 내 선물로 보이는 축구 게임팩이 있었다.

“내 아들은 이거 되게 좋아하더라고.”

“고마워요.”

“아, 그리고 우리 아내가 전반기 끝나면 우리 집에서 밥 먹자고 하더라. 지난번에 못 먹었다고.”

“알겠어요.”

“내가 득점 순위 3위나 하는 거 너 덕분이라고 하니까, 너 배 터질 때까지 먹인다고 하더라.”

“그건 좀 무섭네요.”

세 사람은 금세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현 보카 주니어스 최고의 스타들을 직접 볼 수 있으니 사람들은 신났고 사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어서 온 손님은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이었다.

“와!”

두 사람은 세 선수를 보고 감격했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오! 루키들이구나.”

“디에고는 저번에 봤고, 이 키 큰 친구가 소문이 자자한 기예르모인가?”

“그렇습니다!”

두 녀석은 보카 주니어스 2군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었다.

내가 1군에서 날아다니는 게 배가 아픈지 2군 무대를 거의 폭격했고 리그 기록을 죄다 갈아엎었다고 들었다.

“아주 든든해.”

리카르도 메사는 두 녀석에게 따뜻하게 웃어주며 힘내라고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두 녀석은 세 사람과 인사를 하고 내가 있는 테이블로 와선 음식을 먹었고 그러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말을 꺼냈다.

“유! 우리도 준비한 선물 있어!”

“무슨?”

“우리도 1월부로 1군으로 콜업 되기로 했다!”

“그게 내 선물? 너희한테 좋은 거 아니야?”

“우리한테 좋은 게 너한테도 좋은 거지! 안 그래?”

“.... 뻔뻔하다. 진짜.”

두 녀석은 신이 나서 얘기했고 옆에서 음료를 마시던 리카르도 메사는 대화를 듣고서 농담을 던졌다.

“오! 꼬맹이들이 들어오면 난 은퇴해야 하나?”

그 소리를 들은 두 녀석은 석상처럼 굳었다.

자주 본 나는 이게 농담이라는 걸 알지만, 이 녀석들은 아니니까.

“그, 그게.”

디에고는 눈에 띄게 당황했고 기예르모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리카르도, 신인들이 올 때마다 그 소리 하면 안 지쳐요?”

“하하하하하! 반응이 재미있어서 말이야. 원래 이런 반응을 보여줘야 하는데 네가 이상했다고!”

이제야 농담이라는 걸 아는 녀석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묻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1군으로 올라오면 가뜩이나 시끄러운 선수단이 더 시끄러워지겠네.

* * *

12월 23일.

리그 28라운드.

전반기 최종 라운드인 [보카 주니어스 vs 리버 플레이트]

이번 시즌만 벌써 세 번째 맞대결에 많은 이목이 쏠렸다.

“이런 적이 있었나?”

“한 달 안에 엘 수페르클라시코가 세 번이나 열릴 줄 누가 알았겠냐고. 지금 취재진도 봐봐. 당황한 표정이잖아.”

중계 카메라들이 세팅될 때, 선수들은 워밍업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유지우는 보호 장비를 차면서 차분하게 준비했고 옆자리인 앙헬 몰리야가 축구화 끈을 묶으며 말을 걸었다.

“너 한국에서 유명하더라?”

“앙헬만큼은 아니죠.”

“오오~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앙헬 몰리야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겪은 경험으로 유지우에게 평소에도 많은 도움을 줘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졌다.

“한국 기사는 봤어?”

“네, 에이전트가 매일 보여줘서 알기 싫어도 알게 되더라고요.”

“크크크크큭. 네 에이전트라면 훈련 때마다 너 데리고 오는 그 파이팅 넘치는 사람 맞지?”

“네.”

차명훈은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유명세가 있었다.

유지우를 근거리에서 케어해주는 것도 대단했지만, 부당한 게 있으면 회장실을 쳐들어가서 따지는 거 보고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그나저나 진짜 귀화할 생각 없는 거야?”

“네. 저는 한국 사람이니까요.”

축구화에 새겨진 태극기.

이건 해외에서도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프로 데뷔하면서 새긴 거였다.

“아쉽다.”

“뭐가요?”

“아르헨티나로 귀화하면 우리랑 같이 국가대표 뛸 수 있는데.”

앙헬 몰리야와 하비에르 카세로.

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의 공격대장이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었다.

진짜.

이 사람들이랑 뛰면.

월드컵 우승은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월드컵에서 저한테 발목 붙잡힐까 봐 무서운 게 아니고요?”

“아! 사실 그게 제일 무섭다! 그러니까 아르헨티나 귀화해라, 응? 내가 도와줄게. 나 협회에 아는 사람 많다?”

앙헬 몰리야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지만, 유지우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 * *

전반기 최종 라운드이자 리그 1위를 결정짓는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양 클럽 선수들이 필드로 나왔다.

엘 모누멘탈을 뒤덮은 하얀 물결.

그들은 리버 플레이트의 클럽 응원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는 2연패를 당하며 수모를 겪었지만, 리그 경기에서만큼은 승리하고자 하는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찌릿찌릿.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열기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설 만큼 소름이 돋았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간절함.

멀리 있는 관중들조차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관중들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예리한 눈빛으로 필드에 선 선수들을 바라보는 그들은 유럽 각국에서 온 스카우터들이었다.

“흐음.”

“유를 보러 온 스카우터들이 저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는 거 같죠?”

“어,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

빅클럽을 비롯해 중소 클럽까지.

그들이 온 이유는 한 가지였다.

‘YOO JI WOO.’

요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보카 주니어스의 새로운 왕으로 오른 유지우를 보기 위해서였다.

삐익-!

선수들이 포지션에 서서 준비를 마치자 휘슬 소리가 울렸고 리그 28라운드.

세 번째 엘 수페르클라시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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