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52화 (52/383)

제52화

【 아르헨티나 명문 보카 주니어스! 산투스 FC의 2연패를 저지하며 2029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

【 5년 동안 브라질 리그에 밀렸던 대륙컵, 보카 주니어스가 아르헨티나의 자존심을 세우다! 】

【‘브라질 천재’ 히카르지뉴의 눈물. 】

【 산투스 FC 감독, “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선수다.” 】

【 보카 주니어스의 어린 왕자, 코파 수다메리카나 최우수 선수 선정! 】

[ 경기 보는 내내 어떻게 앙헬이랑 하비에르가 평범하게 느껴지냐. ]

[ 그래봤자 감독 폭행범이잖아. ]

[ 감독 폭행 그걸로 아직도 뭐라 하는 등신들이 있네. 그거 한국 기사 찾아봐라, 유는 개보다도 못한 인간들 때문에 축구를 포기할 지경까지 갔어. 만약 그 상황에서 유가 모든 걸 포기했다면 우린 저 환상적인 플레이를 평생 보지 못했을 거야. ]

[ 전에 구단에서도 기자회견을 했었잖아. 아직도 그걸로 유를 욕하는 놈들이 있다면 그건 보카의 팬이 아니라 다른 클럽의 팬이 분탕질하려는 놈들이지. ]

[ 첫 시즌에 이 정도면 다음 시즌은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걸까? ]

너튜브에는 경기 영상이 줄지어 올라왔다.

해외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유지우의 플레이를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일관됐다.

‘Amazing.’

놀랍다는 말이 가장 많았다.

각자 응원하는 클럽으로 당장 데려와야 한다며 유지우의 명성이 서서히 높아지는 시각.

한국에서는.

전 부협회장 차성인.

성천고등학교 구중태.

두 사람이 엮인 새로운 정황이 하루가 지날 때마다 쏟아져 나왔고 구중태는 사임 압박을 받았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지켜줄 차성인이라는 방패가 사라진 지금,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다 끝난 건가….”

대중들은 이미 그와 차성인에게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결정적인 증언이 나온 건 아니었으나, 모두 시간문제였다.

‘고민준… 그놈도 오래 버틸 놈은 아니야.’

당시 사건에 연루된 학생, 고민준.

그에게는 여러 혜택을 주며 입막음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게 뻔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하고 말 것이다.

‘역시 답은 하나뿐이야.’

구중태가 생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일이 커지기 전에 외국으로 도주하는 것이었다.

대단찮은 커리어긴 하지만, 축구 약소국에 간다면 지금처럼 감독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전에 꾸준한 인맥을 맺어둔 덕분에 도움을 받을 에이전트도 구할 수 있었다.

돈이 제법 많이 들긴 했지만, 이곳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매장당하는 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디리링

타이밍 좋게 핸드폰이 울렸다.

구중태는 얼른 테이블 위에 있던 핸드폰을 낚아챘다.

에이전트가 오늘 중으로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연락을 준 모양이었다.

과연 발신인을 확인해 보니 그가 기다리던 이름이었다.

구중태의 입가에 오랜만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다니까!’

그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핸드폰을 열었다.

“응?”

다만 그를 놀라게 한 건, 에이전트가 보낸 문자의 내용이었다.

- 말씀 주신 건은 진행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입금해주신 금액은 전부 환불해 드렸습니다.

“이게, 이게 뭐야!”

구중태는 당황해 에이전트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하나 전화는 금방 이어지지 않았고, 그는 한참을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에이전트는 무척이나 퉁명스러운 투로 전화를 받았다.

- “뭡니까.”

“아니, 뭐냐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문제없다고 한 게 불과 사흘 전인데.”

- “감독님… 아니 구중태 씨.”

“구, 구중태 씨?”

- “저희도 상도덕이란 게 있습니다. 그런 일 벌이고 도피를 하신다는데, 어떻게 도와드립니까?”

구중태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벌써 업계에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로서는 여기서 더더욱 물러날 수 없었다.

“돈이 문제입니까?”

- “예?”

“돈이 문제라면 이전 금액의 세 배를 드리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더 드릴 의향도 있고요. 그저 빠르게 준비만 해주시면 됩니다.”

구중태는 그렇게 말하고 땀을 훔쳤다.

에이전트 쪽에서 저렇게 나오는 게 괘씸했지만, 이해는 갔다.

그들도 대외적인 이미지를 무시할 순 없을 테니까.

하나, 이 정도 금액을 준다면 그 같은 이미지는 신경 쓰지 않고도 남을 것이다.

- “…….”

“수락하는 거로 알겠습니다. 금액은 다시 보낼 테니….”

- “아뇨 구중태 씨. 그럴 필요 없습니다.”

“뭐요?”

- “어떤 금액을 받아도 저희 쪽에서는 구중태 씨를 도와드릴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어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에이전트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 “한 선수가 계속 같은 회사에만 있을 필요는 없죠. 그리고 소속을 바꾸지 않더라도 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많고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요!”

- “어떤 에이전시들도 유지우 선수와 척 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

- “그러게, 건드릴 사람을 보고 건드리셨어야죠. 쯧. 이만 끊습니다.”

에이전트는 정말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구중태는 망연자실한 채로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이렇게 거물이….’

그가 한때 우습게 봤던 소년은, 이제 한국 축구계의 별 중 하나가 되어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한평생 악행을 저질러왔던 감독, 구중태.

이 같은 상황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그에게 남은 것은, 파멸을 맞이하는 일뿐이었다.

* * *

“어제 기사 봤냐? 유지우가 코파 수다메리카나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 거?”

축구 명문 성천고등학교 운동장.

축구부원들이 훈련을 앞두고 몸을 풀면서 얘기를 나눴다.

“봤지. 하아…. 우리는 언제 경험해보냐.”

자신들과 같은 나이에 해외에서 성과를 내는 유지우는 프로 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걔 초등학교 때부터 유명했잖아.”

“맞아.”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 학교랑 소년 체전 결승에서 붙은 적이 있거든? 혼자 다섯 골 박아 넣는 거 보고 다른 세상 사람 같더라.”

이야기를 나누던 축구부원들은 뒤늦게 훈련하러 나온 한 사람을 발견했다.

“쟤지?”

현재 대한민국 축구계를 뒤흔드는 사건의 당사자인 고민준이었다.

“어, 쟤가 유지우랑 절친이었는데 청대 뽑히려고 팔아먹었다고 강인석이 그러더라.”

“진짜?”

“인석이가 쟤보다 한 학년 선배잖아. 그때 진술하는 거 옆에서 다 들었대.”

“와… 저게 사람이냐?”

172cm의 작은 키.

특출 난 장점이 없는 평범한 재능.

그 사건 후에 구중태의 그늘에서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정작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유지우가 아주 작은, 눈에 보이지도 않은 기회를 잡아 성공했다면 고민준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만큼 커다란 기회도 잡지 못했다.

U-17 북중미 청소년 월드컵.

그곳에서 두 경기 출전했지만, 평점 4점이라는 처절한 성적표만 남겼다.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그만둬야지.”

“그러니까. 후배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

뒷담화는 하루가 끝이 아니었다.

날이 지날수록 살이 붙어 소문은 더 부풀어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해운중에 있을 때도 유지우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녀석이 뒤통수를 세게 치더라고.”

강인석을 비롯해 해운중 출신 학생들이 고민준에 관한 내용을 폭로했다.

“너희는 안 말렸냐?”

“말려도 말을 들어 처먹어야지.”

“우리는 안 된다고 했지만, 저놈이 거짓 진술로 유지우 매장한 뒤라 우리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이 고민준의 역린을 건드렸다.

“나 때문이었다고?”

고민준은 훈련하다 말고 강인석을 노려보며 다가갔다.

“반말은 좀 그렇지. 아무리 같은 학교 선후배 출신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어.”

강인석은 비아냥거렸다.

“그 선을 먼저 넘은 게 너희들이었잖아.”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강인석이 고민준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강인석.”

“뭐 강인석? 선배한테 말하는 게 참 예뻐졌다? 우리 민준이?”

“이우혁이랑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네가 한 짓 벌써 다 까먹었어?”

“…뭐?”

“너 때문에 축구 그만둔 애들 수두룩한 건 알지?”

“내,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네가 저지른 건 다 후배한테 덤터기 씌우고! 나는 너한테 당한 구타 때문에 발목 부러져서 6개월 동안 제대로 훈련도 못 했어!”

해운중은 부조리가 없어졌다고 했지만, 없어지지 않았다.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건 기본이었고 욕받이에 샤워 셔틀, 간식 셔틀 등 축구가 아닌 외적인 것으로 버티지 못하고 운동을 그만둔 사람도 많았다.

“무,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

“지우도 너한테 맞았잖아, 청룡기 16강에서 너한테 패스 안 하고 골 넣었다고! 벌써 잊은 거야?”

다른 사람들도 강인석과 해운중 출신 선수들을 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게 진짜야?”

“해운중에 그런 일이 있다고 소문은 들었는데…. 그러면 작년에 수원 FC에 입단한 이우혁 선배도?”

“미친.”

“요즘 시대에 학폭이 있다고?”

“와, 그런데 넌 뻔뻔하게 고민준 혼자 했다고 한 거야?”

“그냥 해운중 애들이 싸그리 유지우 골로 보내려고 작당한 거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해운중이 충남 공주에 있는 작은 학교라는 점과 구중태가 차성인이라는 방패를 사용해 사건을 다 묻었기 때문이었다.

고민준의 폭로.

그로 인해 다른 진실도 수면 위로 나왔다.

그 이후로도 강인석과 그 동료들이 후배들에게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짓을 했다는 것도 폭로했다.

“…나도 그러기 싫었다고…. 나도… 나도….”

모든 걸 폭로한 고민준은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유지우를 그렇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들어온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유지우와 달리 자신은 재능이 없었고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서 내려온 동아줄이 썩은 거라도 붙잡았다.

진심을 들은 선수들은 별말을 하지 않고 한심하게 쳐다봤고.

“지X.”

그때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다.

구석에서 축구 용품을 닦는 3학년 선수였다.

그는 2월 말에 졸업 후, 서울 FC 입단을 앞둔 권수찬이었다.

“그렇게 변명만 하면 네가 한 일이 없어지기라도 하냐? 친구를 절벽에 밀어 넣고?”

“…….”

“남을 질투할 시간에 볼이라도 더 차. 너 훈련도 설렁설렁하면서 다른 선수 자리 빼앗는 거 부끄럽지도 않냐?”

그렇다.

고민준은 재능이 없으면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기회를 많이 받았음에도 잡지 못한 건 순전히 본인 탓이었다.

“네가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봐.”

축구화를 들고 고민준의 눈앞까지 걸어와 한마디를 했다.

“네 잘못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릴 용기가 있다면 말이야.”

* * *

1월이 지나 2월이 됐다.

보카 주니어스는 1월에도 전승을 거두며 리그 1위 자리를 더 확고히 다졌고 어느 날, 감독님이 나를 불렀다.

“부르셨어요?”

감독실은 언제 와도 정리되지 않고 너저분했다.

벽에 붙은 수많은 전술 연구의 흔적.

감독님은 서류 뭉치 속에 파묻혀 있다가 나를 보더니, 웃으며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흐아.”

감독님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정수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차는 늘 먹던 걸로?”

“제가 가져다드린 거 좋아하시네요.”

“요즘 이거 없으면 못 살아. 만든 사람은 노벨상 줘야 해.”

얼마 전에 감독님은 아버지 가게에서 후식으로 커피 믹스를 맛본 뒤에 그 맛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타서 가지고 와 이야기를 나눴다.

“후반기 시작하고 3골 2도움, 아주 훌륭하다.”

이것으로 리그에서만 15골 16도움.

컵 대회를 제외하고도 30개의 공격 포인트를 넘겼다.

“벌써 30개 공격 포인트 달성한 건 알지?”

“계산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대체 필드 위에서 어떤 걸 보는 거냐?”

“음…. 설명해 드리기 좀 그런데, 대충 말씀드리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할까요?”

“마법이라도 부리는 거냐?”

“어떻게 아셨어요?”

“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감독님은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경계심 가득한 강아지 같더니, 어느새 농담도 하고 멋진 강아지가 됐구나.”

“…그냥 강아지예요?”

“아직 성인도 안 된 놈이.”

“그렇긴 하죠.”

“한국으로는 5일 뒤에 간다고 했지?”

“네. 리그 33라운드 끝나면 가요.”

“대표팀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건 너의 앞날에 큰 자산이 될 거다. 보카의 이름을 달고 가는 거니까 부끄러운 경기력을 보이지 마.”

감독님은 그 말을 하고 나를 보더니 웃었다.

왜 웃는 거지?

“뭐, 거기 사람들이 너를 보면 더 놀라겠지만.”

“왜요?”

“한 시즌도 지나지 않아 컵 대회를 포함해 40개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열일곱의 선수, 이건 기네스에 등재되어야 하는 기록이라고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 않았나?”

그 뒤에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감독님이 커피를 다 마시고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첫 국가대표지?”

“예.”

“긴장되지는 않고?”

연령대 대표팀에도 소집된 경험이 없고 곧장 성인 국가대표 합류라 조금 긴장되긴 했다.

“별로요.”

그래도 남에게 내 감정 상태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별로긴.”

하지만.

“너 얼굴에 다 티 나.”

감독님은 언제나 내 마음을 꿰뚫어 봤다.

“흐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아! 내가 내 국가대표 얘기해줬나?”

“아니요.”

“나도 너처럼 국가대표 처음 발탁됐을 때, 긴장해서 온몸에 땀이 나고 손이 덜덜 떨렸었다.”

“진짜요? 감독님이?”

“칠레랑 친선경기에서 선발로 출장을 앞두고 긴장했을 때, 선배가 해준 말이 긴장을 다 풀어줬지.”

“무슨 말인데요?”

툭.

감독님은 자기 왼쪽 가슴을 엄지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가슴에 국기를 단 이상, 필드 위에서 도망칠 곳은 없다. 국가의 대표로서 매 경기 국민의 자부심이 되어라.”

말을 듣자마자 가슴에 무언가 꽂힌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짜릿했고 내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가 됐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너는 그만한 각오가 됐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자부심이 될 각오가 말이야.”

어릴 적부터 그저 두루뭉술하게 국가대표가 되길 원하기만 했지, 세세하게 어떤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는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난 어떤 걸 위해 국가대표가 되고자 했나?

어릴 적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간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나.

아마 지금 감독님이 말한 게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을까.

“지금 당장은 확답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방향은 정했습니다.”

“방향?”

“어릴 때는 무작정 국가대표가 되길 원했지만, 되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었습니다. 프로 선수가 되면 저절로 모든 게 풀려나갈 줄 알았으니까요.”

“…….”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흰색의 도화지 상태였는데 감독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어떤 색으로 칠할지 결심이 섰습니다.”

나를 물끄러미 보는 감독님을 보며 대답을 했다.

“저는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감독님은 내 대답을 듣고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되지 못했지만, 넌 될 수 있을 거다. 잘 다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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