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유.”
주앙 달루트는 교체를 기다리는 유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필드 안에서는 어제 미팅 때 말한 대로 하면 돼.”
“네.”
“그리고 지금 너에게 줄 역할은.”
툭.
“최고의 플레이로 널 보러 온 사람들을 열광시켜라. 그게 스타플레이어의 숙명이니까.”
“자신 있습니다.”
주앙 달루트는 유지우의 표정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유지우는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권민창과 터치한 뒤에 그토록 원했던 필드 안으로 들어갔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시청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유지우 선수가 필드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등번호 10번! 유지우 선수는 많은 이들의 바람과 같이! 국가대표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카메라는 유지우를 잡았고 레바논 감독은 유지우를 뚫어져라 봤다.
‘드디어 들어왔군.’
레바논이 오늘 경기에서 가장 주의할 선수로 뽑은 건 유지우였다.
균형이 잘 잡힌 체구.
세계 최고 수준의 스피드.
플레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적인 플레이.
아르헨티나 리그를 폭격하고 있는 선수기에 경계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손짓으로 선수들에게 압박 강도를 높이라고 했고 유지우의 근처로 두 명의 선수가 거리를 좁혔다.
뻐-엉!
중원에서 볼을 잡고 두리번거리던 김기하가 유지우가 있는 오른쪽 측면으로 패스를 보냈다.
[유지우 선수에게 가는 패스!]
측면 깊숙한 곳에서 볼을 잡아놓고 돌아서자 두 명의 선수가 압박을 들어왔다.
[레바논의 빠른 압박! 유지우 선수에게 볼이 갈 것을 먼저 예상하고 움직인 탓에 압박 타이밍이 빠릅니다! 순식간에 에워싸이는 유지우 선수!]
레바논 선수는 유지우를 넘어트릴 목적으로 거칠게 몸을 부딪쳤다.
‘어?’
그러나 유지우는 밀리지 않았다.
쿠—웅!
오히려 무슨 돌에 부딪힌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부딪친 선수가 밀려났다.
185cm vs 179cm.
분명히 체격이 더 큰데도 밀리지 않자 레바논 선수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퍼--억!
‘아르헨티나에서 상대하던 선수들이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아르헨티나에서 거친 플레이에 적응해온 유지우에게 이런 몸싸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선수들 틈에서 숱한 몸싸움을 경험했으니까.
툭.
발뒤꿈치로 두 선수 사이로 볼을 보낸 뒤에 발은 라인 밖으로 디디며 돌파했다.
- 오오오오오!
[두 명을 한꺼번에 제치며! 측면을 여는 유지우 선수! 주력이 빨라 레바논 선수들이 잡질 못합니다!]
[이때! 라인을 내리며 측면을 커버하는 메흐디 하이다르!]
길목을 잡은 선수를 보고도 유지우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투---욱.
메흐디 하이다르 뒷공간으로 볼을 쭉 치고 나서 달렸다.
타다다다닷!
볼을 놓친 메흐디 하이다르는 옆을 지나가는 유지우만이라도 잡기 위해 손을 뻗어서 잡아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대체 저 스피드는 뭐죠? 레바논 선수들이 반응도 하지 못합니다!]
커지는 환호성.
커지는 기대감.
중압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유지우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스윽.
호흡을 내뱉으며 침착함을 유지했다.
[완전히 열린 레바논의 측면! 유지우 선수의 크로스으으으으!]
뒷공간으로 길게 보낸 볼을 잡기 전에 골대 앞 상황을 보곤 수비수 뒷공간과 골키퍼 사이 공간으로 땅볼 크로스를 올렸다.
스르르르륵.
회전이 걸린 볼은 곡선을 그리며 나아갔고 자로 잰 듯 쇄도하는 황우식의 발아래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갔다.
뻐--엉!
타이밍에 맞춰 시도한 황우식의 슈팅은 골대 왼쪽으로 종이 한 장 차이로 빗나갔다.
[아아아아! 황우식 선수의 슈팅이 골대 왼쪽으로 벗어납니다! 마지막 임팩트 과정에서 슈팅하는 발이 정확하지 못했습니다!]
황우식은 유지우가 보낸 패스에 상당히 놀랐다.
‘…그게 뭐였지?’
올림피크 리옹에서도 이런 패스를 받은 적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정확한 타이밍에 온 패스.
그리고.
패스에 끌려가듯 머리로 생각도 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마법처럼.
* * *
【 LIVE) 대한민국 vs 레바논, 1 – 0 <진행 중> 】
- 유지우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바뀌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뭐 하는 애냐?
- 레바논 애들 세 명 이상 달고 다니는데도 한 번도 빼앗기질 않음.
- 스트라이커 잘 받아주는 애만 있으면 벌써 세 골 이상은 나왔다 ㄹㅇ
- 황우식은 컨디션이 안 좋나? 한 박자씩 계속 늦네.
- 아니 유지우만 있으면 뭐 하냐 ㅋㅋㅋㅋㅋㅋㅋ 근처에 있는 애들이 구데기잖아.
- 유지우 혼자서 돌파하고 패스하고 다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래도 오른쪽 사이드 백인 김윤태 정도면 훌륭하지, 수비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잖아.
- 지우가 할 수비 가담을 김윤태가 해주니까 지우는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됨.
- 월드컵 최종 예선 때, 수비적으로 바꿀 점이 많다고 했었는데 오늘 경기에서 그걸 신경 쓴 게 보임.
- 그냥 유지우 쓰려고 김윤태 발탁한 걸로 보일 정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시간 반응도 뜨거웠다.
시청률도 유지우가 출전한 시점 이후로 늘어났고 사람들은 필드에서 펼치는 마법에 매료되어 갔다.
* * *
[어! 김기하 선수의 패스가 엉뚱한 곳으로!]
김기하가 보낸 패스가 부정확해 레바논 선수에게 가깝게 흘렀지만.
휘릭.
유지우는 재빠르게 볼이 떨어지는 곳으로 가 받은 뒤에 들어오는 오는 압박을 피해 볼을 감싸며 마르세유턴으로 볼을 지켜냈다.
[오오오오오! 레바논 선수들이 유지우 선수의 볼을 빼앗질 못합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삐---익!
[반칙으로 끊어내는 것뿐입니다!]
투-웅.
어느 각도에서 오듯 순두부처럼 받아내는 트래핑.
툭, 타닷!
상대 선수를 농락하는 화려한 개인기.
타다다다닷-!
그리고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폭발적인 스피드까지.
유지우는 마법을 부리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미쳤다.”
“한국 선수도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구나.”
한국 축구는 조직력을 앞세운 축구가 전부였다.
지금이야 지도자들이 개성을 존중하며 개인기를 마음껏 펼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걸 정작 실전에서 쓰는 선수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단 한 명의 선수가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전개는 전혀 없었다.
< 지루한 축구 >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에게 의존하는 전술.
이런 것 때문에 박찬우가 은퇴한 뒤에 사람들은 축구에 관한 관심을 잃어갔었다.
하지만 지금.
유지우의 플레이는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는 보지 못한 스타일이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관심을 잃었던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했다.
마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선수들처럼 보는 맛이 있었다.
뻐----엉!
[직접 중앙까지 올라와 시도한 슈팅! 하지만 아쉽게도 골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계속해서 레바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유지우 선수!]
레바논은 텐 백으로 라인을 내리며 유지우 근처에 다섯 명의 선수를 배치해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나섰다.
“지우!”
볼이 잠깐 나가자 김기하가 다가왔다.
“네?”
“압박은 괜찮아?”
“네. 아, 그리고 지금 저한테 압박이 몰리니까 예수 선배를 이용하죠.”
압박 때문에 여러 가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반대로 볼을 전개하면서 압박을 분산시키면 공간이 생길 겁니다.”
가장 알맞은 판단을 하고 있었다.
김기하는 살짝 놀랐다.
그런 플레이를 하면서도 필드 전체를 살필 시간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알겠어.”
그 뒤에 유지우는 자신에게 압박이 몰리자 비어 있는 곳으로 계속해서 볼을 배급했다.
뻐어엉!
“뒤로요!”
뻐어엉!
“반대로!”
다른 선수들을 돕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굳이 주연이 되지 않아도 됐다.
조연도 충분히 매력적인 역할이니까.
[유지우 선수가 영리하게 볼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압박이 몰리자 적극적으로 주변 선수들을 이용하고 있네요.]
그렇게.
10분 후.
레바논에 생긴 약간의 틈새.
그 틈새 안에서 움직이는 한 선수를 본 유지우는 압박하는 선수를 플리플랩으로 벗겨낸 뒤에.
뻐—엉!
로빙 패스를 찔렀다.
볼은 허공을 가르며 뒷공간으로 쇄도하는 황우식의 앞에 뚝 떨어졌다.
[황우식! 황우식입니다아아아아아!!!!!]
골키퍼가 나오는 걸 보고 왼쪽으로 낮게 때린 슈팅.
철렁.
그대로 득점으로 이어졌다.
[고오오오오오올! 황우식의 오늘 경기 두 번째 골이 74분에 터졌습니다!]
[황우식의 장점이 바로 저런 침투 플레이거든요! 키가 커서 제공권 싸움도 좋지만, 골 찬스를 찾는 저 감각! 저 감각이 황우식이 유럽에서 살아남은 이유입니다!]
황우식은 골을 넣은 뒤에 세리머니를 하곤 유지우에게 다가가 주먹을 내밀었다.
“용케 날 봤다?”
황우식이 내민 손을 보고 유지우는 씩 웃으며 주먹을 맞댔다.
“그렇게 큰 덩치가 안 보이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않아요?”
“그런가?”
“다음에도 기회가 오면 눈치 보다가 뛰세요.”
“응?”
“패스할 테니까.”
언제 어디서든 위협적인 패스를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패스 마스터’만이 할 수 있는 말.
‘그냥 달려, 내가 패스할 테니까.’
데이비드 베컴이 남긴 어록처럼 어떤 곳이든 정확하게 패스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말을 한 유지우를 보고 황우식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와, 존멋.”
* * *
2 – 0.
남은 시간은 5분.
레바논은 대한민국 골문을 위협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좋은 수비 조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센터백 두 선수의 호흡이 상당히 좋아 보이네요.]
최민연 / 정상훈 / 손준하 / 김윤태.
특히 센터백 두 명은 K리그 베스트 11에 단골로 뽑힐 만큼 높은 커버력과 패싱력을 갖췄다.
촤----악!
과감한 태클.
퍼---억!
스스로가 진흙에 뒹구는 걸 망설이지 않는 대담함에 주앙 달루트의 선택을 받은 선수들이었다.
[정상훈 선수의 깔끔한 태크으으으을! 흘러나온 볼은 잡는 건 최남일입니다!]
후방까지 내려와 볼을 잡은 최남일은 전방으로 길게 롱패스를 보냈다.
퍼—억!
황우식이 최종 라인인 메흐디 하이다르를 등지면서 자리싸움을 했고 고개를 돌리며 주변 선수들을 살폈다.
씩.
무언가를 보곤.
툭.
점프를 뛰어 머리로 볼을 돌려놨다.
[황우식 선수가 공중 볼을 따냅니다! 흐른 볼은… 유지우 선수 앞으로! 빠릅니다! 마크하던 선수들이 따라가질 못하는 스피드!]
타다다다닷-!
필드를 누비는 유지우는 한 마리의 치타였다.
골대와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고 골키퍼가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까지 나와 수비하려고 했다.
[골대를 비우고 나오는 골키퍼 하산 아타야!]
툭.
유지우는 가속력을 이용해 높게 점프를 뛰어 먼저 볼에 닿았다.
이마에 맞은 볼은 골키퍼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 안 돼!’
하산 아타야가 어떻게든 막으려고 핸들링 반칙을 각오한 채 손을 뻗어봤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타다다닷-!
그리고 유지우는 볼이 있는 곳으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뻐---엉!
더 들어가지도 않았다.
철렁.
비어 있는 골대 안에 볼을 넣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으니까.
- 와아아아아아아아!!!
[이거입니다! 아르헨티나 리그를 폭격하는 그 모습 그대로! 엄청난 돌파 후에 완벽한 마무리를 한 유지우 선수!!!]
[관중들이 열광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국가대표 경기에서 이런 함성을 듣는 게 대체 얼마 만인가요!]
관중들은 유지우가 골을 넣는 것과 동시에 열광했다.
쪽.
유지우는 광고판에 올라가 가슴에 있는 태극마크에 키스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는 그 뒤.
삐익! 삐익! 삐----익!
대한민국이 3 – 0으로 레바논을 꺾으며 승리를 가져갔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이 자식!”
“다들 뭐 해!”
“지우야아아아아아아아!”
주위 선수들이 화려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유지우를 덮쳐 헹가래를 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짝짝짝짝짝!
관중석에 나오는 기립 박수.
대한민국 축구가 쇠퇴하는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비춘 새로운 에이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