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데뷔 시즌에 활약하는 신인 선수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데뷔 시즌에 역사를 쓰는 선수는 없었다.
‘총 64개의 공격 포인트.’
유지우가 데뷔 시즌에 세운 기록이었다.
아직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한 경기가 남긴 했지만, 이 기록은 역대 데뷔 선수의 기록을 다 갈아치울 만큼 대단했다.
“이러다가 페드로의 기록도 넘어서는 거 아니야?”
페드로 발렌수엘라.
2010년도에 리그를 폭격하던 선수였다.
부상으로 빠른 은퇴를 하긴 했지만, 그가 세운 ‘총 73개의 공격 포인트.’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었다.
“한 경기밖에 안 남았는데 깨는 건 힘들지.”
“그래도 가까이는 가네.”
“데뷔 시즌에 저러는 게 미친 거지.”
“하비에르랑 앙헬로 데뷔 시즌엔 평범했잖아.”
“잘하긴 했어, 둘 다 데뷔 시즌에 공격 포인트 20개는 달성했거든.”
“…그러면 대체 다음 시즌에는 뭘 보여주는 거야?”
“페드로의 기록이랑 차이가 얼마나 나지?”
“9개.”
아르헨티나 리그 공격 포인트 신기록과 차이는 고작 9개.
이렇게 되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됐다.
“유가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거 아니야?”
보카 주니어스 팬들의 일상에선 유지우의 이름이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더구나 리그 최종 라운드 하이라이트 영상이 보카 주니어스 공식 계정을 통해 너튜브에 올라가자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저 30번은 경기마다 하이라이트를 찍네.]
[와…. 여섯 명을 제치고 수비수를 앞에 두고 골? 누가 저 녀석을 열일곱으로 보겠어.]
[우리 클럽은 뭐 하는 거야! 당장 아르헨티나로 가서 계약서에 도장 찍어야지!]
[지금 아르헨티나에 클럽 스카우터들 많이 갔을걸? 이미 접촉하고 있는 곳도 몇 군데 있다고 본다.]
[데뷔 시즌 어시스트 왕에 등극한 신인…. 이건 귀하디귀한 매물이지. 얼마가 됐던 데리고 와야 해.]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로.
유지우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 ‘황제.’ 유지우! 빅클럽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 】
* * *
【 남미 챔피언스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까지 하루!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하루 앞둔 어느 날.
“사이드 압박은 더 빠르게!”
보카 주니어스 훈련장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다.
“코린치안스는 측면보다는 중앙 위주의 공격을 하는 클럽이다! 간격을 유지하는 걸 명심해.”
땀은 잔디를 적셨고 코치진들은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볼을 빼앗겼으면 서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쫓아가! 내가 계속 얘기했잖아! 훈련을 실전처럼 하라고!”
감독님은 내일 있을 경기를 앞두고 열정적으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훈련은 실전처럼.
이 모토에 맞게 선수단을 운영했다.
그리고 나도 감독님의 지시에 맞춰 훈련에 집중했다.
“각자 상대할 선수를 떠올려!”
며칠 동안 내가 상대할 선수의 영상을 보고 연구했기에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연습했다.
촤-----악!
그때 내 다리 아래로 들어오는 태클 하나.
파우스토 바르코가 내가 들어가는 길목을 막으려고 몸을 날렸다.
스윽.
그걸 보고선 닿기 직전, 드래그 백으로 볼을 끌며 공간으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했는데.
찌릿.
갑작스럽게 디딤발인 왼쪽 발목에 통증이 생겼다.
‘쥐가 났나?’
볼을 처리한 뒤에 발목을 돌리며 자체적으로 상태를 체크하고 있자 ‘삐—익!’ 수석코치님이 휘슬을 불며 다가왔다.
“어디 불편해?”
“발목이 조금이요.”
발목이라고 하자 알베르토 수석코치님이 깜짝 놀라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발목? 왼쪽? 어떻게 아픈데?”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조금 저릿했는데 지금은 또 괜찮아졌다.
“병원 검진 때는 괜찮다고 했잖아.”
“저도 모르겠어요. 뛰다 보니까 갑자기 찌릿해서….”
알베르토 수석코치님의 말소리가 커서 금세 주변으로 퍼졌고 감독님까지 다급하게 왔다.
“코치님, 무슨 일이에요? 유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
“유가 왼쪽 발목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네?”
감독님의 두 눈이 커졌다.
“전 경기에서 발목에 태클이 들어간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 같습니다.”
“검진 결과는 괜찮았잖아요?”
“분명히 괜찮았는데 훈련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병원으로 후송해서 검진받아 보는 게 어떨까요?”
감독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석코치님에게 말했다.
“닥터와 동행해서 정확하게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코치진은 병원까지 동행했고 병원측과 연락을 한 뒤, 은밀하게 뒷문을 통해 들어갔다.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고 2시간이 넘는 정밀 검사 후, 결과가 나오자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 경기에서 당한 태클로 충격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이쪽을 보시면….”
엑스레이 사진과 검사 결과표를 보며 설명을 해주자 코치진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훈련하면서 서서히 발목에 부담이 갔고 그게 ‘펑’ 하고 터진 거였다.
“3~4일 정도 무리하지 않고 쉬면 돼서 심한 건 아니지만, 당장 다음 경기를 뛰는 건 무리입니다.”
코치진들의 얼굴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들자 나는 조심스럽게 의사에게 물었다.
“…진통제를 맞고 뛰는 건요?”
뛸 수만 있다면 진통제라도 맡고 뛰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말에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월드컵 뛰고 싶으시죠?”
“…….”
“그러면 참으셔야 합니다. 더 무리를 줬다간 3일이 아닌 3주 이상 쉬어야 할 수도 있어요.”
갑자기 불어닥친 악재.
“이런.”
동행한 팀닥터와 코치진들도 멘붕이 오긴 마찬가지였다.
“제길.”
“유가 출전하지 못하면 카를로스를 출전시켜야 하나?”
“우선 감독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코치진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못 나간다고?
그토록 기대했던 결승전인데?
이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턱.
고개를 숙인 내 어깨에 올라온 손 하나.
알베르토 수석코치님이었다.
“상황을 지켜보자.”
“…네.”
“괜찮을 거다.”
상황을 지켜보자며 내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그 말이 나에겐 다르게 들렸다.
‘출전 불가.’
그날, 내 소식이 선수단에 전해졌고 감독님을 비롯해 비상 회의에 들어갔다.
몇 시간 뒤, 결론이 나왔다.
【 유지우, 왼쪽 발목 통증, 결승전 출전 불투명. 】
【 보카 주니어스, “유의 출전 가능성은 희박하다.” 】
난 결국….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 * *
그 소식은 보카 주니어스 팬들에게도 금세 퍼졌다.
쾅!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어째서 유가 출전 못 하는 건데! 유가 없으면 우승 가능성이 적어지잖아!”
“티아고 그 자식 때문이야! 그때 그 태클 때문에!”
보카 주니어스 팬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차라리 거짓말이길 바랐지만,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기사들이 진실을 마주하게 했다.
“하아.”
“유가 없는 게 너무 커.”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어린 선수는 어느덧 팬들 마음속에선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
.
.
경기 당일.
“…….”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나는 창밖을 보며 노래를 듣고 있는데 옆에 앉은 디에고 로시가 물었다.
“너 벤치에만 앉아 있는 거지?”
“응, 관중석에서 보는 것보다는 벤치에서 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원래는 가족들이랑 스카이라운지에서 보려고 했으나 우승하게 되면 함께 기뻐해야 하니까 벤치에 앉기로 했다.
“내가 해트트릭으로 우승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디에고 로시는 애써 나를 위로해줬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해주면 내가 너 스무 살 되면 차 하나 뽑아준다.”
“진짜지? 약속한 거다!”
“날개까지 달아서 하늘 날게 해준다.”
버스는 스타디움에 도착했고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기다리던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 와아아아아아아!
결승을 앞둔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고 내가 제일 뒤에서 내리자.
“유우우우우우우!”
“어깨 펴!”
“당당하게 들어가!”
나를 발견하곤 응원을 해줬다.
난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에 선수들과 함께 라커룸으로 갔다.
라커룸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난 저지를 걸친 채, 워밍업하는 장소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나가지는 못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몸을 푸는 걸 도와주는 서포터 역할을 자처했다.
이렇게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유!!!!”
객석을 채우는 팬들이 이름을 부르는 게 들리자 뒤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 출전하는 거야?”
“모르겠어요.”
“나올 수도 있다는 거지?!”
“어쩌면요.”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팬들에게 희망적으로 대답했고 몸을 풀었다.
- 보카! 보카! 보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몸을 푼 뒤에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라커룸 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을 앞두고 있어서 선수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15년 만의 우승 도전.
10년 전에 결승 진출을 했지만, 아쉽게 준우승의 고배를 마시고 다시 찾아온 기회였다.
그래서 그런지 장난기는 사라지고 진지함만이 가득했다.
“집중.”
감독님은 선수들을 집중시켰다.
경기 전술에 대한 설명은 어제까지 지겹게 해서 그런지 간략하게 했다.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다.”
- “…….”
“여기서 우리가 이긴다면 우리는 남미 축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남미 축구 역사에서, 아직 그 어떤 클럽도 이루지 못한 ‘트레블’.
그게 눈앞에 있었다.
“상대가 두려운 놈이 있나?”
- “없습니다!”
“혹시라도 진다는 생각을 한 놈이 있나?”
- “없습니다!”
쾅!
“필드에 나가서 너희들의 모든 걸 부딪쳐라!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새겨라!”
감독님은 선수들의 사기를 높였다.
그리고 선수를 비롯해 코치진 모두가 라커룸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동그랗게 원을 둘렀다.
“우리는!”
감독님이 선창하고.
- “보카!”
모든 사람이 후창했다.
“이기는 곳은!”
- “보카!”
“가서 싸워라! 그리고 원하는 걸 너희들의 손으로 움켜쥐어라!”
다 같이 소리를 지르며 라커룸을 나섰다.
경기를 못 뛰는 나는 입구에 서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잘해.”
같이 못 뛰는 아쉬움이 크긴 해도 그걸 겉으로 표출하진 않았다.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걸 남들에게 퍼트릴 필요는 없으니까.
“우승하고 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같이 트로피 들어 올리자!”
“유! 기대해!”
“벤치에 앉아서 응원이나 잘해라!”
선수들은 웃으며 라커룸을 나섰다.
그리고 라커룸 밖으로 가서 전사가 되어 입장 터널로 걸어갔다.
후우.
난 터널이 아닌 벤치로 갔다.
필드 안이 아닌 필드 밖.
선수들이 우승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오늘 나의 역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