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뻐---엉!
유지우가 콜롬비아의 핵심인 라다멜 발란타와 존 로드리게스를 막고 있긴 하지만 필드 전체를 막는 건 역부족이었다.
[왼쪽으로 길게! 측면을 공략하는 콜롬비아!]
[압박이 강한 오른쪽을 피해 오른쪽으로 전개를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콜롬비아는 유지우가 있는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공격 방향을 잡고 보다 많은 볼 전개를 가져갔다.
날카로운 크로스.
그리고 탄력을 앞세운 헤딩으로 골문을 위협하지만.
까—앙!
울리는 골포스트 소리.
번번이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아직 득점이 나오고 있진 않지만, 대한민국이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드는군요. 이 흐름을 어서 날려버려야 합니다!]
플레이가 잠깐 멈춘 사이, 유지우는 한 선수를 바라봤다.
‘저 녀석 때문이야.’
저번 경기와 다른 점.
라다멜 발란타가 3선 라인까지 내려와 수비를 비롯해 빌드업에 관여하는 거였다.
툭.
빠른 압박에도 침착하게 패스를 보내며 대한민국의 중원을 차분하게 공략했고 순식간에 최전방으로 연결하는 롱패스는 위협적이었다.
[콜롬비아의 공격 찬스! 라다멜 발란타가 한발 빠르게 하프라인을 넘어갑니다!]
[라다멜 발란타에게 가는 패스! 김기하와 최민연이 앞을 막습니다!]
콜롬비아의 공격 기회.
경기 전체를 보던 유지우는 내려가려다가 동료들이 막아줄 거라는 걸 믿고 라인을 내리지 않았다.
휙.
라다멜 발란타의 페인트 모션에 최민연이 속았고 그대로 돌파하려고 하는 그때.
촤----악!
들어가는 하나의 태클.
[김기하의 태크으으으으을!]
[볼을 정확하게 건드립니다! 흘러나온 건 중앙으로! 내려와 있던 황우식이 잡고 전방으로!]
스트라이커까지 내려가서 수비에 관여했기에 지금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건 라인을 내리지 않은 유지우였다.
볼을 잡은 황우식는 앞 공간으로 패스를 찔렀다.
“달려어어어어어!”
라다멜 발란타는 본능적으로 유지우를 마크하려고 수비 백업을 하려고 했지만.
“…존!!!”
백업하지 못할 만큼 거리가 벌어졌다.
타다다다닷-!
존 로드리게스가 필사적으로 달렸다.
[압박하는 선수를 따돌리며 어느새 중앙으로 올라온 유지우 선수가 볼을 잡습니다!]
콜롬비아는 라인을 올려 공격하는 바람에 최종 수비 라인이 하프라인 인근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툭.
그걸 본 유지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바짝 붙어오는 선수를 보곤 타이밍을 맞춰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는 넛맥을 선보였다.
- 오오오오오오오!
[유지우 선수! 유지우! 유지우우우우우우!]
[기회입니다! 압박하는 선수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거리! 유지우 선수가 마무리를 지어줘야 합니다!]
찾아온 기회.
그리고 보이는 길.
모든 걸 확인한 후, 더 들어가지 않았다.
툭.
사각지대에서 달려오는 존 로드리게스를 템포 조절로 한 번 더 제친 뒤에 슈팅 자세를 잡았다.
뻐----엉!
골대와는 상당히 먼 거리.
망설임 없이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유지우 선수! 더 들어가지 않고 먼 거리에서 그대로 슈우우우우우웃!]
볼은 아래에서 위로 쭉쭉 뻗어가 골포스트를 스치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철렁.
뒤쫓아오던 라다멜 발란타는 멍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휘익-!
유지우는 그의 앞을 무심하게 지나가며 가족들이 있는 곳을 보며 하트 세리머니를 했다.
[대한민국의 선제골! 유지우 선수의 왼발이 제대로 콜롬비아의 숨통을 끊어 버렸습니다!]
[이거죠! 이거! 우리가 유지우 선수에게 바라는 점이 이겁니다! 이타적인 플레이도 좋지만! 결정지어 줄 때는 지어주는 플레이가 유지우 선수의 강점입니다!]
리플레이가 나오자 해설위원 중 한 명인 박성현은 놀랐다.
[…드리블부터 슈팅까지, 어쩜 저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죠?]
볼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 대~한민국!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의 응원 소리.
그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세리머니 후, 유지우는 진영으로 돌아갈 때, 라다멜 발란타에게 한마디 했다.
“내가 한눈팔지 말라고 했지?”
* * *
[대한민국 1 – 0 콜롬비아]
답답했던 균형이 깨지고 1점을 리드하기 시작하자 대한민국은 흐름을 탔다.
콜롬비아의 거친 압박에도 밀리지 않고 최대한 근처에 있는 동료 선수를 이용하며 볼을 지켜냈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볼을 유기적으로 잘 움직여주고 있습니다!]
[저렇게만 해주면 콜롬비아의 압박이 전혀 통하지 않죠!]
전반전에는 콜롬비아의 거친 플레이에 당황해서 실수가 잦았지만, 한 골이 들어가자 흐름을 찾아 유기적으로 패스를 돌렸다.
- 어어어어어!
관중들이 콜롬비아가 간격을 좁히며 압박하자 걱정하는 소리를 냈다.
툭.
툭.
툭.
하지만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선보인 짧은 원터치 플레이.
단 세 번의 터치로 콜롬비아의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안전한 곳으로 볼을 전개했다.
- 와아아아아아아!
[짜임새 있는 정교한 축구를 보여주는 대한민국! 주앙 달루트의 조직 축구가 제대로 뿌리가 박힌 모습입니다!]
4 – 4 – 2의 중요성.
그건 중원의 장악력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
“유를 자유롭게 두지 마!”
유지우였다.
여러 활약 중에서도 감각적인 원터치 플레이로 좁은 구역에서 볼을 빼내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뛰어!”
그렇게 소유권을 지켜낸 볼.
콜롬비아의 압박에서 잠깐 자유로워진 김기하가 전방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저 자식 막아!”
그걸 들은 라다멜 발란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존 로드리게스의 뒷공간으로 들어가는 유지우를 보며 소리쳤다.
“젠장!”
타다다다닷-!
폭발적인 주력.
볼은 왼쪽 사이드로 전달됐지만, 유지우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오프더 볼 움직임.’
유지우가 가진 장점 중 하나.
볼이 없을 때 보여주는 움직임이라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걸 아는 주앙 달루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볼이 없을 때의 유는… 마치 유령 같군.’
콜롬비아 선수들이 눈치채지도 못하게 흘러드는 뒷공간.
공간을 읽는 후각은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발달되어 있었다.
머릿속으로 스치는 여러 가지의 생각.
아르헨티나에서의 경험이 유지우에게 공간을 읽는 재능을 만개시켰다.
뻐---엉!
[강예수 선수의 크로스으으으으으! 황우식 선수가 점프!]
[아아앗! 하지만 크로스는 그대로 뒤로 흐릅니다! 유지우 선수가 있는 곳!]
볼이 오는 것을 본 유지우는.
투-웅!
가슴 트래핑 후, 수비수가 달려오는 것을 보곤.
툭.
떠 있는 볼을 어깨로 밀었다.
달려오는 센터백의 얼굴 옆으로 지난 볼이 향한 곳은 황우식의 머리 쪽이었다.
상대 선수에게 옷깃이 잡혔지만, 그걸 무시할 피지컬을 지닌 황우식은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서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볼의 방향을 틀었다.
툭-!
오른쪽 포스트 쪽.
철렁.
이마에 맞고 굴절된 볼은 콜롬비아의 골망을 흔들었다.
[대한민국의 추가 고오오오오오올! 콜롬비아가 이렇게 침몰합니다!]
[유지우 선수의 어깨 트래핑에 이은 황우식 선수의 깔끔한 마무리! 선제골을 넣은 지 불과 11분 만에 추가 골이 나옵니다!]
전광판에 달라지는 숫자.
[ 대한민국 2 - 0 콜롬비아 ]
승리의 여신이 대한민국을 향해 웃음 짓기 시작했다.
* * *
남은 시간 13분.
콜롬비아는 역전을 노렸다.
벨기에에게 패배한 지금, 대한민국을 이기지 않는 이상 16강으로 갈 확률은 없기에 필사적이었다.
촤---악!
유지우의 태클에 걸려 넘어진 존 로드리게스는 땅을 치며 아쉬워했다.
“빌어먹을!”
제대로 풀리지 않아 욕을 내뱉었고 콜롬비아는 10분밖에 남지 않자 극단적으로 라인을 올렸다.
순간 당황한 대한민국 중원에서 실수가 나왔고 그걸 놓치지 않은 라다멜 발란타의 슈팅이 골망을 갈랐다.
철렁.
오른쪽 구석에 꽂힌 볼.
그렇게 경기는 한 점 차이로 좁혀졌다.
라다멜 발란타는 별다른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골대 안에 있는 볼을 꺼내 하프라인으로 달렸다.
[콜롬비아의 골이 나왔습니다. 2 - 1로 좁혀진 격차, 한국 선수들! 조금 더 집중해야 합니다!]
10분.
7분.
5분.
전광판의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다.
한 골 차이라 콜롬비아의 사기는 더 올라왔고 어떻게든 동점 골을 넣으려고 했다.
“여기로!”
라다멜 발란타는 유지우의 맨마킹을 포기하곤 아예 2선 위치까지 올리며 공격 작업을 주도했다.
어떻게든 한 골을 넣겠다는 의지가 전해졌지만, 축구는 원하는 것을 이뤄주지 않았다.
[라다멜 발란타의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절묘한 태크으으으을! 최민연이 걷어낸 볼이 강예수에게!]
왼쪽 사이드로 흐른 볼.
강예수는 원터치 중앙으로 올라오는 유지우에게 연결했다.
- 오오오오오오오!
다시 온 득점 기회.
유지우는 화려한 개인기로 콜롬비아 진영을 휘저었지만.
촤----악!
뒤에서 들어온 태클에 넘어지고 말았다.
삐----익!
[카드가 나옵니다! 백태클을 한 존 로드리게스에게 옐로카드! 그리고 대한민국에겐 프리킥이 주어집니다!]
프리킥 전담 키커는 유지우였다.
김기하와 황우식, 강예수가 모여서 얘기를 나눴고 유지우는 왼발로 킥을 준비했다.
[대한민국의 키커는 유지우 선수가 준비합니다!]
[높은 프리킥 성공률을 가지고 있는 유지우 선수! 이번에 들어가게 되면 사실상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오른발이 아닌 왼발 자세를 잡으며 콜롬비아 골대를 바라봤다.
수비벽은 다섯 명.
바람은 좌에서 우로.
골대와의 거리는 23m.
모든 데이터를 머릿속에 입력한 뒤, 주심의 휘슬 소리가 들리자 천천히 발을 떼며 볼을 강하게 감아서 찼다.
뻐---엉!
중앙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뚝 떨어지는 볼.
강한 회전력을 머금고 있어서 골키퍼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도 닿지 못했고 골대 안 오른쪽 그물을 흔들었다.
철렁.
완벽한 프리킥.
유지우는 세리머니를 따로 하지 않고 콜롬비아 벤치를 바라보며 왼쪽 발목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걸 본 알바로 산체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벤치에 털썩 앉았다.
“감독님, 괜찮으세요?”
“…하하하, 완전히 당했군.”
“네?”
“보면 모르겠어? 저 녀석… 아까부터 왼발로만 플레이하잖아.”
“아…!”
골이 들어가거나 결정적인 패스를 할 때 유지우는 모두 왼발만 사용했다.
자기 발목을 집요하게 노린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저놈한테 완전히 당했어.”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지우 선수의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골키퍼가 반응하지 못하는 완벽한 프리킥입니다!]
[왼발로도 저런 정교한 킥을 할 수 있다니! 오른발 왼발! 세계를 놀라게 할 양발 키커가 대한민국에서 탄생합니다!]
전광판에 새겨지는 스코어.
[ 대한민국 3 – 1 콜롬비아 ]
정규 시간이 거의 다 흘러갔고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물었다.
삐익-! 삐익-! 삐이이이이익-!
그토록 원하던 종료 휘슬이 울리자 대한민국 벤치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뛰쳐나왔다.
[이 승리로 대한민국은 16강 진출을 확정 짓습니다!]
[2전 2승! 역대 월드컵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리며 20년 만의 16강 진출을 확정 짓는 대한민국! 월드컵 출전국 중! 가장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20년 만의 16강 진출.
이 소식은 대한민국을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월드컵 D조 2차전 MVP는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유지우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