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16강 상대가 독일로 정해지자 스포츠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 2030 월드컵 16강, 대한민국 vs 독일! 】
【 C조 1위 독일, 대한민국과 16강에서 만나다. 】
- …저기요? 갑자기 독일이요?
ㄴ 20년 만에 16강이라 기뻐했는데 갑자기 끝판왕이 등장했네.
ㄴ 애초에 C조가 지옥이었음, 독일 프랑스 ㄷㄷ 어디가 올라오든 헬은 마찬가지 ㅋㅋㅋㅋㅋ
- 미치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옴 ㅋㅋㅋㅋㅋㅋ
ㄴ 그래도 프랑스보단 독일이 낫지 않음?
ㄴ 무슨 소리야 프랑스가 더 낫지, 독일이 유로 2028 준우승한 거 벌써 잊었냐?
ㄴ 프랑스가 FIFA 랭킹 1위고 독일이 3위잖아.
ㄴ 랭킹도 중요한데 최근 성적을 봐야지.
ㄴ 랭킹이 최근 성적 기반으로 만든 거 아냐?
ㄴ 프랑스 유로 성적 봐봐라 걔네 8강에서 떨어졌잖아. 독일은 준우승까지 갔고.
ㄴ 다 닥쳐, 이번에 독일이 프랑스 2 – 1로 잡은 걸로 정리됨.
- 유지우가 있어도 쉽지 않을 듯.
ㄴ 지우가 멱살 잡고 16강 올려놨는데 바로 보스 몹이 나와버림.
ㄴ 독일 조직력 미쳤던데.
ㄴ ㅇㅇ 선수단 평균 나이가 26.2세인데 다들 경험치 만렙 포스 미쳤음.
ㄴ 갓지우가 세 명만 있었어도 ㅠㅠㅠㅠ
유로 2028 준우승.
완벽한 세대교체가 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불과 2년 전, 독일이 거둔 성적이었다.
.
.
.
호텔 회의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모여 미팅을 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다음 상대는 독일이다.”
주앙 달루트의 말이 시작되자 선수들의 표정에는 약간의 긴장이 나타났다.
“독일이라고 벌써 패배한다는 생각을 가진 놈이 있나?”
- “없습니다!”
“없기는.”
주앙 달루트는 독일전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플랜을 선수들에게 주입했다.
“너희들의 예상대로 독일은 지금껏 우리가 상대한 팀 중 가장 강한 팀이다.”
냉정하게 몇백 번을 생각해도 독일은 어려운 상대였다.
“하지만, 가능성이 0%가 아닌 이상 난 이길 수 있다고 본다.”
- “…….”
“플레이 중에는 망설이지 마! 망설이는 순간!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곳이 필드라는 곳이다!”
주앙 달루트는 연습 때도 확신이 든 찬스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하라고 했다.
“길이 있다면 계속해서 두드려! 패스가 잘리더라도! 자신 있게! 너희들의 플레이를 믿어!”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자신감을 강조했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완벽한 플레이를 하는 독일도 실수할 거다. 그게 보이면 물고 놓아주지 마.”
그렇게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독일전에서 사용할 전술을 설명했다.
선수들은 집중해서 들었고 주앙 달루트는 어려운 부분을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간격을 좁히고 패스 비율을 두 배로 높인다. 독일 녀석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라.”
축구에서 완벽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이변’ 때문이었다.
사소한 단 하나의 실수.
그 실수가 경기의 판도를 뒤바꾸는 게 가능했다.
“내가 강조하는 게 뭐지?”
- “……?”
“자이언트 킬링,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한 이 말에 너희들 모두 설레지 않았었나?”
자이언트 킬링.
약팀이 강팀을 이긴다.
언제나 약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말이었다.
- “네!”
“우리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가 독일이 8강행을 확정 지을 거라고만 했지.”
- “네!”
“부담감은 오히려 독일에게 있다. 우리는 잃을 게 없는 싸움이야. 그러니 부딪치고 또 부딪쳐라.”
- “네!”
“그 녀석들에게 한국 축구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줘라!”
주앙 달루트가 만든 대한민국은 그렇게 쉽게 당할 팀이 아니었다.
“이만 해산하고 유는 잠깐 남아라.”
미팅이 끝나자 선수들은 회의실을 나갔고 주앙 달루트는 자리에 남아 있는 유지우에게 다가갔다.
“전술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두 사람 다 에스파냐어를 할 줄 알아서 굳이 통역은 필요 없었다.
“유.”
“네.”
“네가 살아나야 대한민국이 살아난다.”
아직 어린 선수에게 부담감을 주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 대한민국의 에이스는 유지우고 유지우가 없다면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없었을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런 걸 유지우도 알고 있기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 속에 묘한 부담감이 내포되어 있다는 걸 주앙 달루트는 단번에 알아챘다.
* * *
조별 예선이 끝나고 본격적인 우승팀을 가리는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대한민국 vs 독일.
16강 경기 날이 밝아왔다.
아르헨티나 리버 플레이트 홈구장인 엘 모누멘탈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고 독일 축구 팬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하하하하! 한국이 우리를 어떻게 이긴다고?”
“벨기에가 아니라 한국이 상대니까 8강은 무난하게 올라가겠어.”
독일 팬들은 이미 승리라도 한 것처럼 스타디움으로 입장했다.
경기 전부터 독일 팬들은 이미 한국을 이겨서 8강에 간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독일 커뮤니티에서도.
[한국이 우리를 이긴다고? 하늘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2018 월드컵 때는 우리가 조급해서 그랬던 거야. 그때하고는 상황이 달라.]
[독일이 한국에게 지는 일은 없어.]
[우리 16강 상대가 한국이라는 건 행운이야. 덕분에 1.5군을 기용하더라도 이길 수 있으니까.]
[유가 잘하는 건 알아,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공격 포인트 60개 만들어내고 유럽 빅클럽이 영입하려고 난리니까. 하지만 국가대표는 달라. 태어날 때부터 난 차이를 좁히긴 힘들어.]
이런 판단을 하는 건 독일 언론만이 아니었다.
해외 각국의 언론에서도 면밀한 분석을 기반으로 독일의 큰 승리를 점쳤고 대한민국의 승리 가능성은 겨우 1%에 불과했다.
웅성웅성.
서서히 채워지는 관중석.
태극기와 함께 붉은 악마들이 입장했고 독일 팬들은 한국 팬들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뭔가 이상함을 느낀 최다빈이 유한우에게 묻자 유한우는 너튜브 촬영을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뭐, 우리가 지고 시작하는 기분이네.”
“독일이 잘하긴 하지만,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그렇게 없어요?”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 아악! 왜 때려!”
짝.
서설희가 유한우에게 등짝 스매시를 날렸다.
“우리 아들이 누구야!”
“세상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아들이지!”
“그렇지? 그러니까 힘없는 소리 하지 마. 우리 아들이 저놈들 입 다 다물게 해줄 거잖아!”
붉은 악마들마저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그때.
시간이 지나자 양 팀 선수들이 워밍업을 위해 필드로 나왔다.
짝짝짝짝짝!
관중들은 박수로 선수들을 맞이해줬고 각자 진영에서 몸을 풀었다.
한국 카메라들은 유지우를 중점적으로 찍었고 유지우는 침착하게 몸을 풀었다.
후우.
후우.
침착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경기 전,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우 집중력 높은데?”
“응, 경기 전부터 말 한마디도 없더라.”
“예수야, 아침에 어땠어?”
“잘 잤냐는 말만 하고 한마디도 안 했죠.”
대한민국의 패배 분위기로 뒤덮인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집중력을 끌어 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잠시 후.
워밍업이 끝나고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관중석의 빈 좌석들이 다 채워졌고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선수들이 필드 위로 입장했다.
[시청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말씀드리는 순간, 양 팀 선수들이 필드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유지우 선수를 앞세운 4 - 4 - 2 포메이션! 그리고 독일은 4 - 5 - 1 포메이션으로 나왔습니다!]
4 - 4 - 2의 대한민국.
4 - 5 - 1의 독일.
수많은 이목이 쏠렸고.
후우.
유지우는 포지션에 서서 심호흡하고 경기장을 둘러봤다.
비록 라이벌인 리버 플레이트의 홈이지만, 몇 번 뛴 경기장이라 그런지 몸이 가벼웠다.
삐이이이이이익!
그렇게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월드컵 16강 경기가 시작됐다.
* * *
독일의 축구 스타일은 스타플레이어 중심인 축구보단 ‘조직력’을 목숨처럼 여겼다.
부드럽고 간결한 패스.
언제든 볼을 받을 수 있는 적절한 위치.
조직력은 세계 제일이라고 불릴 만큼 독일은 정교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그런 독일에 맞서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강한 전방 압박을 가했다.
[대한민국의 강한 압박! 독일은 볼을 돌리면서 압박을 피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쫓아가는 대한민국! 독일을 자유롭게 해주면 안 됩니다!]
퍼----억!
독일을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독일 선수들은 대한민국의 강한 압박에 일순간 당황했지만, 후방으로 볼을 돌리며 차분함을 찾아갔다.
[독일은 후방 빌드업을 기반으로 한 축구를 구사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후방 빌드업을 막지 못하면 리드를 가져오는 게 힘들 겁니다.]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플리크.
바이에른 뮌헨 미드필더 토마스 에더.
두 홀딩 미드필더가 경기를 자유자재로 조율했다.
발이 빠르진 않았지만, 특유의 넓은 시야와 빠른 판단력으로 대한민국의 압박을 요리조리 피했다.
뻐----엉!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나온 롱패스.
대한민국이 라인을 올린 사이, 기습적으로 뒷공간을 노렸고 그걸 율리안 쿠겔이 반응해서 달려갔다.
탁.
안정적인 터치.
맨체스터 시티에서 케빈 더 브라위너의 뒤를 이어 주전 미드필더로 이름을 알리는 그의 장점은.
뻐----엉!
번개 같은 킬패스였다.
[율리안 쿠겔이 잡고 전방으로 침투하는 제프 하베르츠에게!]
단숨에 수비 라인을 꿰뚫고 뒷공간으로 흐르는 볼.
오프사이드도 아니었다.
그리고 제프 하베르츠가 왼발 원터치로 툭, 방향만 돌려놓은 볼은.
철렁.
골대 왼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독일의 선제골이 이른 시간에 나왔습니다. 경기 시작 10분도 되지 않아 나온 득점, 역시나 이 듀오! 율리안과 제프가 만들어 냅니다!]
[아… 이 두 선수는 같은 클럽 소속이라 발도 많이 맞춰봐서 그런지 호흡이 남다르긴 하네요.]
제대로 한 방 맞은 대한민국 선수들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집중해! 집중! 아직 10분도 안 지났어! 남은 시간만 생각해!”
주장인 김기하가 선수들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그 뒤.
경기는 재개됐다.
한 골을 넣은 독일은 흐름을 탔고 대한민국의 공격 중심인 유지우를 중점적으로 차단했다.
[독일이 유지우 선수에게 마크맨을 많이 붙여 놓습니다.]
[리그에서도 뛰어난 수비력으로 유명한 토마스 에더가 아예 떨어지질 않네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애초에 두 명이 있어서 한 명이 없어도 다른 한 명이 대체하면 됐다.
그래서 토마스 에더는 수비 시에 유지우만 전담해서 막을 것을 지시받았고 그걸 그대로 이행했다.
퍼---억!
패스가 유지우에게 오는 걸 보고서 어깨로 밀면서 위치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어? 뭐야. 왜 안 밀려.’
아르헨티나에서 거친 축구에 익숙해진 유지우는 단순한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았다.
탁.
그러곤 원터치로 방향만 돌려놓은 뒤에 단숨에 뒤로 달려가자 토마스 에더는 깜짝 놀랐다.
폭발적인 스피드.
곧장 돌아서서 쫓아가려고 했는데 어느새 세 걸음 이상 차이가 나버렸다.
이어서 왼쪽 풀백인 조나단 헬릭스가 막으려고 자세를 잡는데.
탓.
타닷!
유지우는 그를 보고선 라 크로케타로 제친 뒤에 중앙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유지우 선수! 측면에서 중앙으로! 독일 선수들이 따라오질 못합니다!]
크리스티안 플리크가 일찌감치 유지우의 돌파를 막으려고 반응했다.
다리를 뻗어 진행 경로를 차단하려고 했고 볼에 닿기 직전.
툭.
유지우는 템포를 살짝 늦춘 뒤, 볼을 살짝 밀어 크리스티안 플리크의 뒤로 볼을 보냈다.
‘읏!’
자세가 이상해진 크리스티안 플리크는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유지우를 쫓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멈췄다.
뻐----엉!
더 들어가지 않고 시도한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
까—앙!
왼발로 시도한 슈팅은 쭉쭉 뻗어가 골포스트 상단을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유지우 선수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이 골포스트를 강타! 볼은 그대로 라인 아웃이 됩니다!]
[비록 득점이 되진 않았지만!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강력한 중거리 슛이었습니다!]
“…쟤는 대체 뭐야? 그 상황에서 패스가 아니라 슈팅할 생각을 하네.”
유지우의 갑작스러운 슈팅에 독일 선수들은 당황했다.
“감독님이 말했잖아, 오늘 경기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선수라고.”
경기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영상을 분석하며 유지우의 버릇과 플레이 방식을 머릿속에 입력했지만, 영상과 실전은 완전히 달랐다.
독일의 선제골로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진 경기 흐름이 요동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