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95화 (95/383)

제95화

【 LIVE)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 0 – 2 <진행 중> 】

- 아르헨티나 미쳤다 ㄷㄷ

- 볼 빼앗기고 실점까지 몇 초 걸렸냐? 10초도 안 걸린 듯.

- 1점이면 모를까 2점은 가망 없다.

- 해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 vs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선수, 싸움 사이즈가 나오지도 않음 (유지우는 제외).

- 쟤 19번 누구냐?

- 디에고 로시임, 유지우랑 같은 팀이고.

- 플레이 스타일이 리오넬 메시 같지 않냐? 톡톡 치면서 애들 제치는 게, 옛날 리오넬 메시 보는 거 같음.

- 비슷하긴 하네.

- 아니 근데 지우한테 왜 주장 완장을 준 거야? 가뜩이나 부담 큰 애한테.

- 주장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지 않나?

- ㅇㅇ 17세가 한 나라의 주장이라니…. 말이 안 되지.

- 그러면 지금 필드 위에서 누가 차냐? 경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애가 주장 완장 차고 통솔하는 게 더 나아.

- 그것도 그렇지만.

- 김기하 다음 고참인 김재민이나 정상훈이 해야지.

- 꼰대들 많네, 잘하고 팀원들한테 인정받는 게 주장이지, 언제부터 나이로 됐냐?

- 김기하는 나이로 된 거 아님?

- 김기하는 22세부터 꾸준하게 대표팀에 소집돼서 인정받은 선수임, 클럽 성적은 별로지만, 그래도 대표팀에서 안정감을 주는 몇 안 되는 선수니까 주장이 된 거지 나이로 된 건 아님.

- 어쨌든 김기하 다음 세대 주장은 유지우로 확정된 거라고 봐도 무방하냐?

- 10대 주장 ㄷㄷ

김기하가 필드 밖으로 나가면서 유지우가 주장 대행이 된 거로 사람들의 토론은 끊이지 않았다.

* * *

“…….”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경기를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분명히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는데도 시선이 가는 곳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아닌 다른 선수였다.

“볼 줘!”

계속해서 볼을 달라고 외치는 유지우였다.

비어 있는 곳을 찾아서 어떻게든 볼을 받아 기회를 살리려고 했고 볼을 빼앗길 때는 최후방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촤----악!

[유지우 선수의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 하비에르 카세로에게서 볼을 빼앗는 데 성공합니다!]

[대한민국 공격과 수비 전부를 이끌고 유지우 선수! 대한민국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을 하고 있는데도 뿜어내는 아우라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65분.

70분.

아르헨티나는 라인을 유지하며 한 골을 더 넣겠다는 목적으로 대한민국을 압박했다.

“앙헬!!!”

훌리안 마르티네즈가 오른쪽 측면으로 볼을 보냈고 앙헬 몰리야가 가슴 트래핑으로 안전하게 잡아놨다.

휙.

그러곤.

타다다닷-!

한 번의 페인팅 뒤에 돌파해 들어갔다.

본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주목받았지만, 멀티 플레이가 가능해 측면 플레이도 준수하게 해내는 선수였다.

뻐----엉!

압박하는 선수를 떼어내기 위해 한 번 접은 뒤, 왼발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앙헬 몰리야가 올린 크로스으으으! 기예르모 다린의 헤딩! 다행히 빗나갑니다!]

아르헨티나의 별들은 대한민국의 골문을 꾸준히 위협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대한민국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지우를 혼자 두지 마! 옆에서 계속 도와줘!”

대한민국 선수들은 유지우를 위해 어떻게든 공간을 찾아갔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게 적절한 압박을 가했고 유지우가 볼을 잡으면.

“올라가!”

후방 미드필더 최남일의 신호에 맞춰 모두가 라인을 올리며 유지우가 조금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경우의 수를 높여줬다.

[그렇죠! 저렇게 움직여 주면서 유지우 선수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유지우를 제외한 선수들은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적당히 자리만 잡고 수비를 해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한민국은 이를 악물고 아르헨티나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간절함이 유지우의 앞을 막고 있던 벽에 조그마한 금을 냈고.

타다다다닷-!

그 금을 본 유지우는 단숨에 밀고 들어갔다.

거대한 벽에 그어진 금 하나.

금이 서서히 벌어지며 골대까지 가는 길을 열었다.

훌리안 마르티네즈와 산티아고 메디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볼을 길게 쳐놓고 달렸다.

- 와아아아아아아!

골대와 가까워질수록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라아아아아아아아!”

황우식이 달려와 헤라르드 비엘사를 끌어준 덕에 유지우의 앞엔 에르네스토 게레라 한 명뿐이었다.

스윽.

템포를 죽이며 타이밍을 빼앗은 뒤에 살짝 벌어진 거리를 보고선 슈팅 자세를 잡았다.

‘안 돼!’

전반전부터 유지우가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을 보여줘서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본능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판단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건 노림수였다.

‘페인트였나?’

슛 자세에서 물 흐르듯 볼을 툭 치며 에르네스토 게레라의 오른쪽으로 돌파해 들어갔다.

꽉.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지나는 유지우의 유니폼을 잡았다.

하지만 유지우는 끌리지 않았고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필사적으로 밀어붙였다.

‘슈팅이라도!’

발을 쭉 뻗어서 슈팅 각도를 없애려고 했고 유지우는 거기서 한 번 더 접는 침착함을 보여줬다.

골키퍼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유지우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툭, 밀어 찼다.

철렁.

다리 사이를 지난 볼은 골망을 흔들었다.

[드, 들어갑니다아아아아아! 유지우 선수의 득점이 드디어 76분에 나왔습니다!]

[스코어는 2 – 1! 한 점 따라가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아아아아아아!]

유지우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골대 안에 들어간 볼을 잡고 하프라인으로 달렸다.

- 유지우! 유지우! 유지우!

실점을 막아내지 못한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필드에 쓰러졌다.

“허억… 헉….”

“괜찮냐?”

누워서 숨을 토해내는 에르네스토 게레라에게 헤라르드 비엘사가 다가가 일으켜 세워줬다.

“저 괴물은 대체 뭐냐.”

일어난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멀어지는 유지우의 뒷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진짜… 다시는 붙고 싶지 않은 놈.”

같은 팀일 때는 너무 든든했지만, 상대로 만나니, 죽을 맛이었다.

* * *

< 아르헨티나 2 – 1 대한민국 >

남은 시간은 10분,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대한민국은 교체 카드를 전부 꺼내며 승부수를 띄웠고 아르헨티나는 라인을 내려 걸어 잠그는 방향을 선택했다.

[다소 의아하네요.]

[어떤 부분이요?]

[공격력으로는 월드컵 최고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가 경기 종료 직전, 수비적인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줬습니다.]

후안 페케르만 감독은 클럽을 맡았던 시절부터 공격 성향이 짙은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런 감독이 공격을 버리고 수비에 비중을 높인 건.

[유지우 선수의 공격력을 경계해서 저런 배치를 한 게 아닐까요?]

유지우 때문이었다.

한 골이 더 들어갔다간 경기가 원점으로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수비적인 전술로 변화를 줬다.

퍼---억!

거칠어지는 경기.

선수들은 필드 위에서 뒹굴었고 주심의 휘슬은 쉬지 않고 불렸다.

90분.

어느덧 정규 시간이 다 지나고 추가 시간 3분이 주어졌다.

1분.

2분.

아르헨티나가 걸어 잠그면서 대한민국은 기회를 잡는 게 어려웠다.

간신히 슈팅 기회를 잡아도 금세 태클이 들어왔고 추가 시간도 금방 지나 어느덧 시간은 1분밖에 남지 않았다.

허억.

허억.

선수들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볼을 쫓았다.

정신력 싸움,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역습을 막아낸 대한민국에게 마지막 공격 기회가 찾아왔다.

“지우!”

선수들의 간절함은 유지우에게 전달됐다.

볼을 받고 돌아서자 잽싸게 길목을 차단한 선수를 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유지우 선수와 디에고 로시! 같은 팀 메이트인 두 선수가 지금은 서로를 마주 보며 대치합니다!]

‘해보자.’

‘무조건 막아주겠어.’

천천히 발등으로 볼을 밀고 들어가며 타이밍을 쟀다.

보는 이들마저 입을 열지 못하고 집중한 순간.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유지우가 승부를 걸었다.

타다다닷-!

스텝 오버를 하며 오른쪽으로 단숨에 들어갔고 디에고 로시는 당황하지 않고 금방 따라왔다.

평소 주력은 유지우가 더 빨라 차이는 났지만, 유지우는 볼까지 컨트롤해야 해서 디에고 로시가 따라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탁.

이대로라면 잡힐 가능성이 커 유지우는 볼을 한 번 멈춰 세우며 템포를 죽인 뒤, 디에고 로시의 균형을 한차례 무너트렸다.

오른쪽으로 쏠린 균형.

유지우는 왼쪽으로 치고 들어가며 디에고 로시를 역동작에 걸리게 했다.

끝까지 따라오려고 억지로 균형을 튼 디에고 로시를 보곤.

‘너라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게 한 번 더 볼을 쳤다.

스르르르르륵.

그 볼은 살짝 회전을 머금으며 디에고 로시의 뒤로 흘렀고 유지우는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며 완전히 제쳐냈다.

‘…와, 역시 넌 대단해.’

수많은 페이크를 하며 제쳐낸 유지우를 보곤 디에고 로시는 속으로 감탄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아르헨티나의 신성! 디에고 로시를 무너트린 유지우 선수! 보십시오! 이 선수가 우리 대한민국의 에이스입니다!]

디에고 로시를 제치며 공간을 연 유지우의 앞에 훌리안 마르티네즈와 산티아고 메디나가 나타났다.

휘릭.

마르세유턴으로 훌리안 마르티네즈를.

툭, 타닷!

이어서 라 크로케타로 산티아고 메디나까지.

골까지 가는 길을 시원하게 열자 대한민국 관중석에선 폭발적인 함성이 쏟아졌다.

[유지우 선수! 화려한 돌파아아아! 더 안으로! 안으로오오오오오!]

[골대와 거리가 좁혀집니다! 여기서 득점을 하면! 연장전으로 승부를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앞을 막은 건 두 명의 수비수와 골키퍼, 단 세 명이었다.

속도는 줄이지 않고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수비수를 등지며 버티고 있던 황우식과 원투 패스를 하면서 뒷공간을 공략했다.

툭.

황우식이 헤라르드 비엘사를 등지고 발만 뻗어 슬쩍 방향만 틀어준 볼.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 뒷공간으로 흘렀고 유지우가 전력으로 달려갔다.

- 오오오오오오!

옆에선 에르네스토 게레라 바짝 붙었고 골키퍼가 각도를 좁히며 나왔다.

찰나의 순간, 유지우는 모든 상황을 보며 판단을 내렸다.

투---웅.

에르네스토 게레라의 차징 때문에 균형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골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거리낌 없이 로빙 슛을 시도했다.

스르르르르륵.

모든 사람의 시선은 허공에 있는 볼에 꽂혔다.

허공에 머무는 단 몇 초의 시간.

그 시간은 마치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고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볼은.

까---앙!

골포스트 상단에 맞고 라인 아웃이 되어버렸다.

- 아아아아아!

아쉬워하는 대한민국 관중들의 탄식 소리와 안도하는 아르헨티나 팬들의 소리가 라봄보네라를 가득 채웠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골포스트인가요! 조금만 낮았다면 월드컵 최고의 골이 나올 수 있었는데요!]

[아르헨티나에 행운까지 따라줍니다!]

[이게 들어갔다면 경기가 원점이 되는 건데…. 정말 아쉽습니다.]

추가 시간까지 모두 지나갔고 잠시 후.

삐익-! 삐익-! 삐이이이이익-!

월드컵 8강의 끝을 알리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 대한민국 1 - 2 아르헨티나 >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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