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삐익-! 삐익-! 삐이이이이익-!
종료 휘슬이 들리자 방전이 된 유지우는 필드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경기가 종료됩니다. 최종 스코어 2 – 1…. 대한민국의 월드컵이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결국, 처음에 벌어진 2점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게 크네요. 하지만 대한민국 선수들! 잘 싸웠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그게 바로 월드컵 정신이자 스포츠 정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가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라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다 조별 예선에서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를 보십시오! 태극 전사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당신들은 당당히 고개를 들 자격이 있습니다!]
고된 경기 때문에 대한민국 선수들은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거친 숨을 토하며 일어나지 못했고 다리에 경련이 난 선수들도 생겼다.
“…결국, 졌네.”
그들을 본 붉은 악마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잘했다!”
단 세 글자.
그 세 글자는 관중석 곳곳으로 퍼졌고 사람들은 일어나서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을 향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패배하긴 했지만, 경기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근성은 관중들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관중들이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졌다곤 하지만 비난받을 경기력이 아니었으니까요. 저도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 멋졌습니다!]
“…지우야.”
서설희는 아들이 필드 위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자 눈물이 났다.
당장이라도 가서 안아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속상했다.
그건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우… 많이 속상하겠죠?”
최다빈의 말에 유민하와 강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부터 지면 그날은 밥도 안 먹을 만큼 분해했어. 너희도 알지?”
“그래서 우리가 몇 번 억지로 먹이려고도 했잖아.”
“패배한 거 분석한다고 공책에 오답 노트처럼 적어놓기도 했었고.”
“…….”
“뭐라 해줄 말이 없네. 진짜… 진짜… 진짜 너무 잘했는데.”
유민하도 결국, 울컥했다. 그리고 유한우는 가만히 있다가 벌떡 일어나선 펜스를 잡고 소리쳤다.
“우리 아들이 최고다!”
아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월드컵을 준비했는지 알기에 유한우는 눈물을 훔치며 유지우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점점 커지는 박수 소리.
귓가에 들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유지우는 어두워진 하늘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아까 그것만 실패하지 않았어도.
아쉬운 부분만 계속해서 떠올랐고 흐르는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유.”
눈물을 흘리는 유지우에게 디에고 로시와 보카 주니어스 동료들이 다가왔다.
누워 있다가 살짝 몸을 일으키자.
와락.
디에고 로시가 포옹을 해왔다.
“울지 마, 넌 최고니까.”
“…그게 진 사람한테 할 말이야?”
“솔직히 조금이라도 널 받쳐주는 선수들이랑 뛰었으면 결과는 달랐을 거야.”
위로받으니까 더 눈물이 났다.
애써 꾹 참아보지만, 하비에르 카세로는 그 마음을 아는 듯 유지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럴 때는 그냥 시원하게 울어. 그래야 나중에 고생 안 한다.”
그 말에 가까스로 막고 있던 샘이 터져버렸다.
유지우가 이렇게까지 우는 걸 처음 봐서 선수들은 잠깐 당황했지만, 토닥이며 위로해줬다.
“…잘한 녀석이 왜 우냐?”
“아무리 졌다곤 하지만 K.O.M(King Of the Match) 뽑으라면 전부 너를 뽑을걸?”
“맞아! 유는 화려했고 멋졌다.”
“너랑은 역시 같은 팀이어야 해, 상대 팀에 있으니까 죽을 맛이더라.”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유지우를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고 알리샤 가족들도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박수와 함께 들려오기 시작하는 멜로디.
보카 주니어스 팬들이 에이스를 위해 부르는 응원가였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는 두려움을.
두 걸음을 내디딜 때는 환호를.
세 걸음을 내디딜 때는 승리를!
길을 비켜라, 그리고 무릎을 꿇어라.
새로운 왕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찬양하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우리의 새로운 왕 유에게 경배를!]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아르헨티나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선수인 유지우의 응원가를 불렀다.
월드컵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광경이었다.
그걸 본 기자들은 당황하는 것도 잠시, 대박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고 유지우는 다시.
주르르륵.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을 본 팬들은 감정이 동화됐는지 같이 눈물을 흘렸다.
“이 새끼야! 울지 마! 네가 우니까 나도 눈물 나잖아!”
“넌 항상 최고야! 좋은 경기 보여줘서 고맙다!”
“유! 네 팬이라는 게 너무 행복해!”
“너 플레이는 최고였으니까 어깨 펴! 당당하게 나가!”
“마지막은 진짜 당하는 줄 알았다고!”
유지우는 자신을 향해 환호해주는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한국 스타일의 90도 인사에 팬들은 목청껏 유지우가 필드를 떠나는 길을 외롭지 않게 해줬다.
“유.”
필드를 나가려던 유지우에게 디에고 로시가 유니폼 상의를 건넸다.
그걸 보고 유지우도 유니폼 상의를 건네주며 말했다.
“꼭 우승해라.”
“당연하지! 네 유니폼도 꼭 결승까지 가져갈게!”
7월 6일, 대한민국의 월드컵 여정은 종료됐다.
* * *
경기 종료 후, 아르헨티나 감독 후안 페케르만은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승리하고 4강을 어떻게 준비할 건지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해주자 뒤이어 오늘 경기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살짝 고전한 모습이었는데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까?”
전문가들이 예상한 건 3점 이상의 점수 차이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전을 하며 1점 차이로 간신히 승리한 그림이 만들어지자 기자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유입니다.”
후안 페케르만이 가장 고전한 부분으로 꼽은 건 유지우였다.
경기가 끝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등번호 10번.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필드 위를 자신의 빛으로 물들이는 모습이.
“그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선수들의 기량이 부족했던 건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건 유지우를 인정한다는 극찬이었다.
‘만약 그 녀석이 아르헨티나로 귀화를 했다면.’
전에 있었던 유지우의 아르헨티나 귀화 얘기.
그게 현실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했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이상입니다.”
.
.
.
패배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 주앙 달루트도 침울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앞에 섰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주앙 달루트의 말에 당황한 건 기자들이었다.
‘응? 8강이 죄송할 성적이라고?’
대한민국이 16강 진출도 불확실한 전력인데도 8강까지 올렸다면 그건 ‘죄송’이 아닌 자랑스러워해야 할 성적이었다.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8강에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다 제가 부족해서겠죠.”
- “…….”
“아쉽긴 하지만 후회는 남지 않습니다. 그만큼 선수들은 제가 원하는 것을 전부 보여 줬으니까요.”
기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앙 달루트의 말을 경청했다.
“대한민국 월드컵은 끝났지만! 축구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겁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축구를 많이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짧고 간결한 소감.
주앙 달루트는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 * *
【 대한민국, 아르헨티나에 2 – 1로 패배하며 월드컵을 마무리하다! 】
【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
【 후안 페케르만, “내가 부족한 건지, 선수들이 부족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유지우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
【 아르헨티나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는 유지우! 이색적인 광경! 】
【 아르헨티나 팬, “난 아르헨티나 국민이지만, 보카 주니어스의 팬이다. 유가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
- 아르헨티나 관중들이 박수 보내주고 유지우 응원가 불러줄 때 소름 돋았다.
ㄴ 괜히 내가 다 고맙더라.
ㄴ ㅠㅠㅠㅠ 지우 고개 숙이면서 인사할 때, 눈물샘 터짐.
ㄴ …진심 저런 선수가 국위선양 하는 거 아니냐? 상대 팬들마저 동화시키는 실력이라니 ㄷㄷ
ㄴ 지우 군 면제는 언제 됨?
ㄴ 아시안게임 출전 안 한다고 하니까 잘 모르겠다.
ㄴ 군대 보내면 국가적인 손해다 ㄹㅇ
- 그동안 한국 축구 암흑기라 팬들 많이 떠났었는데 월드컵 계기로 다시 팬들 급증하겠다.
ㄴ 이미 엄청 늘어남.
ㄴ 더구나 지우 외모도 잘생겨서 여성 팬들 많이 늘어날 듯.
ㄴ 강예수랑 황우식도 여성 팬 많더라.
ㄴ 매 경기 이런 경기력이면 암표를 사서라도 들어간다 ㄹㅇ
- 마지막 득점만 들어갔어도 ㅠㅠㅠㅠㅠ
ㄴ 저게 제일 아쉬움.
ㄴ 꿈에 나올 지경.
ㄴ 아… 진심 저거 들어갔으면 ㄹㅈㄷ였는데.
ㄴ 돌파랑 슈팅까지 완벽했는데 골포스트 맞고 나가는 거 보고 우리 동네 집에서 전부 다 탄식하는 소리 들렸다.
-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전력이었던 걸, 유지우가 멱살 잡고 캐리했음.
ㄴ ㅇㅈ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유지우 아니었으면 애초에 조별 예선 탈락해서 진즉에 짐 쌌음.
ㄴ 4경기 출전해서 9개 공격 포인트 ㄷㄷ
ㄴ 그중 골을 7골 꽂아버림 ㅋㅋㅋㅋㅋ 대한민국 역대 월드컵 최다 득점자 됨.
ㄴ 사람이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유지우 성적 실화냐? 4경기 나가서 7골 2도움 ㄷㄷ 역대 한국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세운 기록 중에 최고 아님?
ㄴ 개인이 만든 성적은 최고임.
ㄴ ㄹㅇ 만 17세에 이런 경기력이 말이 되냐?
ㄴ 성인 되면 얼마나 날아다니겠어.
ㄴ 이러면 빅클럽들이 데려가려고 베팅 최대치로 하겠네.
사람들은 유지우의 성적을 보고 놀랐다.
7골 2도움.
9개의 공격 포인트.
대한민국이 월드컵을 참가한 역사상 단일 선수로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거였다.
각종 방송에서 월드컵 관련 소식을 다뤘고 국민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끈 건 하나의 영상이었다.
< 유지우 인터뷰 영상 >
월드컵 8강이 끝난 뒤, 유지우가 믹스트 존에서 한 인터뷰 영상이었다.
‘…죄송합니다.’
고된 경기로 엉망이 된 유니폼.
땀이 흘러 얼굴에 묻은 잔디를 미처 떼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려 붉어진 눈가를 본 사람들은 괜히 눈물이 났다.
눈을 즐겁게 해준 선수.
대한민국 축구를 암흑기에서 구해준 선수.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을 해도 모자란 선수의 입에서 이 같은 말이 나올 줄 사람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고, 그에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들은 게 실화냐? 아니 이런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왜 나옴?
- 죄송하다고 하지 마요! 최고의 경기였습니다!
매번 고개를 젓게 만들던 경기.
우린 안 될 거야, 라고 외치며 TV를 껐던 게 몇 번인가.
사람들은 모처럼 가슴을 뛰게 해준 유지우와 국가대표팀의 헌신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멋진 경기를 볼 수 있어 자랑스러웠어요!
-고개 숙이지 마! 네가 왜 고개를 숙여!
-악플 다는 새끼들 다 정신병원에 넣어버려야 해. 우리가 우승을 원했냐? 그냥 우리는 세계 강팀을 상대로 기죽지 않고 시원시원한 경기를 펼쳐주는 걸 원했어!
그렇게 시작된 댓글 행렬은 하나둘 이어졌고.
경기를 본 이들은 모두 하나 같이 한 마음이 되어 유지우의 인터뷰 글에 댓글을 달았다.
-비록 월드컵에서 떨어졌지만, 다음 월드컵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면 됨.
그날,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모두 유례없이 선플로 댓글이 폭발했다.
한 선수, 아니 한 팀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