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98화 (98/383)

제98화

월드컵이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FIFA에서는 100주년 기념 2030 FIFA 월드컵 베스트 11을 발표했다.

대부분 4강에 든 4개국의 선수들의 이름만 있는 곳에.

‘Yoo Ji Woo’

당당하게 대한민국 유지우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그 소식은 빠르게 국내에도 보도됐고 관련 기사가 비처럼 쏟아졌다.

【 FIFA 월드컵 베스트 11, 유지우 포함! 】

【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유지우! 】

【 FIFA 회장, “뛰어난 선수들이 있었지만, 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선수에게 표를 던졌다.” 】

【 월드컵 최고의 명장면 TOP3에 뽑힌 유지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다! 】

【 아르헨티나 우승 순간에 등장한 유지우의 유니폼! 】

【 디에고 로시, “유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

【 해외 빅클럽, 보카 3대장에게 관심 폭발! 】

- 와, 월드컵 베스트 11에 아시아 선수가 뽑힌 건 처음 아님?

ㄴ ㅇㅇ 처음임.

ㄴ ㄹㅈㄷ

ㄴ 진심 프로 데뷔하고 매 순간 역사를 쓰는구나….

ㄴ 첫 시즌에 공포 60개 이상에 월드컵 8강, 스펙 뭐냐? ㄹㅇ.

ㄴ 경력직 신인이 아니라 생초짜 신인이 만들어낸 기적임 ㅋㅋㅋㅋㅋㅋ

ㄴ 이러니, 유럽 빅클럽들이 미치지.

ㄴ 이적 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

- 가운데 제라르 레오랑 같이 있는 거 겁나 멋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현 세계 최고랑 같이 있으니까 내가 다 소름이네.

ㄴ 이번 발롱도르도 제라르 레오가 받겠다.

ㄴ ㅇㅇ 챔스 우승에 월드컵 준우승이니까 확률이 제일 높지.

ㄴ 지우도 후보에 들려나?

ㄴ 들면 좋겠지만, 가능할까? 남미 리그가 유럽 리그보단 낮은 수준이잖아.

- 디에고 로시랑 기예르모 다린이 지우 유니폼 들고 있는 거 보니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냐.

ㄴ 세 사람 같이 있는 사진 엄청 많잖아?

ㄴ 아르헨티나에서도 매일 붙어 다니더라.

ㄴ 잊지 않고 지우 챙겨줘서 고맙다!

ㄴ 쟤네 주소 찍어라! 초코빵 상자째로 보내준다.

ㄴ 라면도 같이 보내야 돼, 쟤네 지우 집에서 라면 자주 먹음.

베스트 11 공개와 같이 월드컵은 마무리됐다.

44년 만의 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고 선수들은 영웅처럼 대우받았다.

* * *

이 주일 정도 한국에서 지낸 뒤에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기로 했다.

“밥 좀 더 먹지.”

식탁에서 서설희가 차려준 밥을 먹던 유지우는 밥을 반 그릇도 먹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놨다.

“배불러요.”

“…알았어, 출출하면 말해. 알았지?”

“네.”

일어나서 방으로 올라가는 유지우의 뒷모습을 유민하와 서설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봤다.

“지우… 언제까지 저럴까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더 심해진 거 같지?”

처음에는 월드컵의 여운이 남아서 그러는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지우의 증상은 심해졌다.

밥을 먹는 양도 줄고 훈련을 할 때도 집중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선 운동하는 선수가 없으니까, 어디 상담할 곳이 없을까요?”

“주변에 운동선수가 있으면…. 아!”

서설희는 누군가를 떠올렸고 유민하를 보며 말했다.

“다빈이!”

“아!”

“훈련하느라 바쁘나?”

“세계선수권은 5월에 끝났는데 12월 아시안게임 있잖아요. 그거 준비하고 있어요.”

“살짝 부탁만 해보면 안 될까?”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최다빈.

현 펜싱 플뢰레 세계 랭킹 1위이자 대한민국 펜싱 여제가 떠올랐다.

* * *

아르헨티나로 갈 날이 점점 다가왔다.

유지우는 단 하루도 쉬지 않은 채 개인 훈련에 몰두했고 충북 풋볼 클럽에선 비어 있는 곳을 개인 공간으로 내줬다.

뻐---엉!

프리킥 벽을 세워두고서 정확도를 높이는 훈련을 했고 주위에선 사람들이 동영상과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와아아아아아! 유지우 선수!”

구경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자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시선 속에서 묵묵히 앞에 놓인 볼을 차며 훈련을 하는데 이상했다.

뭔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

몸이 이상하리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그만하는 게 어때?”

“네?”

“너 점심도 안 먹고 훈련하고 있잖아. 그러다가 몸 상해.”

이채운이 다가와서 유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훈련을 그만하라고 했다.

“몇 개만 더 차고요.”

“약속해, 지금부터 딱 10개만 차고 그만하는 거다.”

“네.”

그렇게 10개를 찬 뒤에 잠깐 휴게실로 들어가 얘기를 나눴다.

유지우의 맞은편에 앉은 이채운은 포장해온 초밥을 유지우의 앞으로 스윽 밀어준 뒤, 음료수를 마시며 훈련하는 어린 선수들을 바라봤다.

“쟤네 보니까 너 생각 나더라.”

“…….”

“너도 여기 처음 왔을 때, 저렇게 미친 듯이 했었잖아.”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필드 위에서 하얀 볼을 필사적으로 쫓고 있었다.

“그랬나요?”

“뭐에 쫓기는 놈처럼 말도 안 듣고 남들 배가 되는 훈련량을 소화하는 거 보고 다들 놀랐었어.”

잠깐 추억에 빠졌다.

그렇게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이채운은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슬쩍 유지우를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조급해. 월드컵 베스트 11에 든 놈이.”

“…네?”

“다 보여, 너 월드컵 이후에 뭐 때문에 조급해진 거냐?”

정곡이 찔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패배는 경험했었다.

근데 이상하게 국가대표에서의 패배는 머릿속에 남아 떠나질 않았다.

“이미 잘하고 있잖아. 너 나이 이제 겨우 열일곱이다. 한국 나이로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야.”

“…….”

“월드컵 베스트 11, 아시아 최초로 들어가고 그 거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마음도 사로잡았으면서 뭘 더 잘해?”

유지우의 행보는 다른 열일곱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동생뻘인 나이.

누군가에겐 아들뻘인 나이.

그 나이에 유지우는 아르헨티나 리그를 폭격하고 월드컵에서 조국을 8강으로 올려놓는 활약을 보여준 거였다.

“솔직히 주앙 달루트 감독 찾아가서 죽빵이라도 시원하게 날리고 싶다.”

“…네?”

“아직 어린 너한테 얼마나 부담감을 줬으면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건지….”

클럽이 주는 부담감과 국가대표가 주는 부담감은 차원이 달랐다.

더구나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과 같이 뛰는 것이 아닌 자기가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국가대표라면 말이 더 달라진다.

‘부담감.’

‘중압감.’

‘책임감.’

대한민국의 에이스라는 타이틀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이채운이 나지막이 말했다.

“백번 천번 말해서 달라질 거라면 하겠지만, 이건 근본적인 거라 말로 풀지도 못해.”

“…….”

위로하는 말을 해줘도 그건 유지우의 마음에 있는 근본적인 부담감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해줄 말이라곤 넌 너만의 축구를 하면 돼.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넌 언제나 결과로 보여줬잖아?”

감독 폭행 사건으로 모두의 외면을 받았을 때도.

이방인으로 아르헨티나에 가서 수많은 고생을 했을 때도.

유지우는 항상 결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렸다.

“이번에도 보여줘, 네가 어떤 선수인지.”

* * *

풋볼 클럽에서 얘기를 나눈 뒤에 저녁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하아.”

밥이 준비되는 사이, 답답한 마음을 풀까 하고 집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가만히 노을을 바라봤다.

‘나만의 축구라….’

머릿속에선 이채운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땅 꺼지겠다.”

여러 생각을 하는 그때, 들려오는 말소리.

고개를 돌려보는데 거기엔 최다빈이 있었다.

“어? 누나? 언제 왔어?”

“하룻밤 자고 가려고 들렀지.”

“훈련 안 해? 12월에 아시안게임이잖아.”

“목요일까지 휴식하고 달려야지.”

최다빈이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어머니한테 들으니까 밥도 잘 안 먹는다며? 그러다가 병나.”

“…밥 생각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오고 유지우는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소 분위기와 달랐다.

“월드컵에 미련이 남아서?”

“…….”

“하긴 안 남는 게 이상하지. 너무 아쉬웠잖아.”

축구와 펜싱, 종목은 엄연히 다르지만, 같은 운동선수라 가족들보다 유지우를 더 잘 이해했다.

“나도 그랬어.”

“…….”

“2025년도 세계선수권 결승전에서 한 포인트 차이로 지고 분해서 이불에 처박혀서 눈물도 흘리고 며칠 밥도 안 먹어봤고.”

최다빈은 명실상부 현 펜싱 세계 랭킹 1위.

그 자리로 올라가기까지 실패를 겪은 경험은 유지우보다도 선배였다.

예선 탈락.

16강 탈락.

준우승.

…….

그 외에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거듭해서 지금의 세계 랭킹 1위, 펜싱 여제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가슴에 있는 태극마크가 무서워서 벗어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어.”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항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그래서 최다빈은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나는 어떻게 극복했어?”

“극복하는 사람은 없어, 그냥 다들 버티는 거지.”

“…….”

“너도 웃고는 있지만,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 내가 자주 그러기도 했고 너처럼 그러는 사람 많이 보기도 했거든.”

최다빈의 말대로였다.

유지우는 괜찮아진 게 아니었다.

그저 현실과 타협하며 괜찮아진 척을 한 거였다.

와락.

“괜찮아.”

최다빈은 그런 유지우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눈물이 안 나면 속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 그래야 속에 안 쌓여.”

경험에서 우러나는 말이었다.

“…고마워.”

“고맙긴, 너 기억 안 나?”

“무슨 기억?”

“내가 2024 올림픽에서 은메달 따고 엄청 속상했을 때.”

“…….”

“은메달 바닥에 던지고 울던 나한테 다가와서 내 어깨 토닥이면서 위로해 줬잖아.”

“내가?”

“응.”

최다빈은 아직도 그때 유지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하다고 펜싱 그만둘 거 아니잖아?’

‘뭐?’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으면 그냥 즐겨. 그리고….’

고작 11세였던 유지우가 그때 했던 말을 똑같이 해줬다.

“국가대표라면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다음에는 더 나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해야지. 안 그래?”

그 말을 듣자 가슴에 막혀 있던 게 뚫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이네.”

“기억나?”

“어, 박규필 선수가 한 말인데 잠시 잊고 있었다.”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선수인 박규필.

유지우는 어린 시절에 한 방송에서 나와 박규필이 한 말을 좌우명처럼 여겼다.

‘나도 언젠가 국가대표가 되면 저런 마음으로 뛰어야겠다.’

어릴 때, 순수한 마음으로 했던 약속.

잠깐 잊고 있었던 게 최다빈 덕분에 떠올랐다.

“고마워, 누나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어.”

“뭘.”

둘은 나란히 노을을 바라봤다.

“그리고 네가 한 말이 내 좌우명이기도 해.”

“진짜?”

“어, 국가대표로 오래 있다 보니까 그게 국가대표가 가져야 하는 자세더라.”

국가대표에 필요한 건 딱 하나였다.

가슴에 있는 태극마크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

유지우는 그제야 이채운이 얘기한, 자신이 하려는 축구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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