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7월 23일.
시간이 지나 아르헨티나로 가는 당일이 됐다.
인천국제공항.
공항 안은 인파가 많아서 주차장에서 어머니하고 누나랑 작별 인사를 했다.
“안에 사람이 많으니까 여기서 인사해요.”
“짐은 다 챙겼고? 빠트린 건 없지?”
“다 챙겼어요. 벌써 열 번째 똑같은 거 묻고 있는 거 아시죠?”
어머니는 계속 내 걱정뿐이었다.
처음 아르헨티나로 떠난다고 했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의 눈은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와락.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꼭 안아줬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하고 올게요.”
“우리 아들이야 늘 잘하니까 내가 무슨 걱정을 해.”
“밥 잘 챙겨 드시고요.”
“누가 할 소릴 하는 거니?”
“저야 가면 아버지가 실컷 먹여 주시려고 준비하고 있잖아요.”
“너 한 끼라도 굶게 하면 내가 바로 아르헨티나로 날아갈 거라고 해.”
“알았어요. 또 아르헨티나 오실 거죠?”
“그럼! 시간 날 때마다 우리 아들 보러 가야지.”
“오시는 길이 불편하니까 너무 자주 오시진 마세요.”
어머니는 눈물을 꾹 참고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울컥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어머니가 슬퍼하시니까.
그렇게 인사하는 우리를 보고 누나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슥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
“이게 뭔데?”
“선물.”
“…누나가?”
“야! 누가 보면 내가 한 번도 선물 안 해준 줄 알겠다?”
“고마워서 그러지, 고마워서.”
“고마우면 얼른 받기나 해, 팔 아파.”
“열어봐도 돼?”
끄덕.
누나가 건네준 것은 손목 보호대였다.
게다가 그냥 손목 보호대가 아니었다.
직접 만든 검은색 손목 보호대에 태극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다빈이랑 같이 준비했어.”
“다빈 누나가?”
“어.”
“고맙다고 전해줘, 경기 때마다 끼고 뛸게.”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취재진이 모여서 유지우를 따라다녔고 수속을 밟기 전, 미리 약속한 장소에서 인터뷰를 했다.
“월드컵 후,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을 향한 여러 클럽의 제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알고 계십니까?”
얼마 전에 인수 형이랑 통화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 형은 조만간 스페인 세비야로 갈 거 같던데.
“알고 있습니다.”
“월드컵의 주인공인 유지우 선수에게도 빅클럽의 제안이 끊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적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직은 이적할 생각이 없습니다.”
해외 빅클럽들의 전화가 어제도 걸려왔었다.
그때마다 정중히 거절했고 아직 아르헨티나를 떠날 시기가 아니라고 전했다.
“보카 주니어스보다 유럽에서 뛰는 게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 많습니다. 유지우 선수도 아시다시피, 아르헨티나 리그나 보카 주니어스가 최상위 리그와 팀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다른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방금 한 질문은 명백히 보카 주니어스를 깎아내리는 말이었으니까.
“…….”
기자들은 일제히 유지우를 쳐다봤다.
그리고 유지우는 무표정으로 질문을 한 기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자님은 보카 주니어스 경기를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르헨티나에 온 적은요?”
“없습니다.”
“기자라는 분이 보지도 않고 한 클럽의 수준을 판단하는 게 맞습니까?”
몸쪽 꽉 찬 돌직구에 차명훈은 옆에서 듣다가 깜짝 놀랐다.
항의하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어 말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유지우가 말하는 게 먼저였다.
“제가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준 클럽입니다. 그런 클럽을 무시하는 발언은 듣기 거북하네요.”
질문을 한 기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지우는 가만히 기자의 목에 걸린 취재증을 보곤.
“선데이 신문 기자님?”
“네?”
“앞으로 제 인터뷰 자리에는 그쪽 회사의 기자분들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저를 깎아내리는 건 상관없지만, 제가 사랑하는 곳을 깎아내리는 건 못 참아서요.”
열일곱의 선수가 내뿜는 아우라에 베테랑 기자들은 압도됐다.
선데이 신문의 기자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그러면 저희는 계속 이어서 할까요? 아직 약속한 시간은 3분 남았잖아요.”
유지우는 태연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질문이 이어졌고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의 목표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마지막 질문을 듣고 유지우는 당당히 말했다.
“작년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내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대답.
“…….”
하지만.
“아르헨티나라 리그 최초 트레블, 우선 그것부터 이뤄야죠.”
유지우는 형식적인 대답 위에 양념을 잔뜩 발라 기자들에게 던져줬다.
대답이 끝나자 차명훈이 경호원들과 나서서 인터뷰를 종료시켰다.
저벅.
저벅.
기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자 차명훈이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저었다.
“기자분들하고 신경전을 벌이는 건 되도록 자제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사실 인터뷰에서 말을 조심해 달라는 건 차명훈이 예전부터 강조한 부분이었다.
“선데이 신문 쪽에 질문 내용이랑 항의서를 보낼 생각입니다.”
“예, 그렇게 해주세요.”
“유지우 선수.”
“네?”
“유지우 선수는 단순한 공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셨으니까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셨죠?”
“이번 일은 죄송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사실 속이 시원했거든요.”
“그랬나요?”
“선데이 신문 쪽의 기자들은 앞으로 유지우 선수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대한민국의 에이스는 기자들에게 강렬한 한 방을 날리며 다시금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 * *
아르헨티나로 돌아오고 이틀간의 시차 적응을 끝낸 뒤, 팀 훈련에 참여했다.
보카 주니어스 클럽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선수들이 훈련을 앞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오오오오! 유!”
그때 유지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디에고 로시가 제일 먼저 반겨줬고 뒤이어 선수들이 다가와 환영해줬다.
“월드컵 우승 축하해.”
유지우의 말에 하비에르 카세로가 축구화 끈을 묶으며 말했다.
“아쉽지는 않아?”
“아쉽긴 하지만 괜찮아. 아직 이루지 못했으니까 목표라는 게 생겼거든.”
“목표?”
“다음 월드컵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둘 거야.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언젠가 우승컵이 손에 잡히지 않겠어?”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유지우를 본 선수들을 말을 잇지 못했다.
“뭔가 많이 달라졌네.”
“그러니까 유가 원래 웃는 성격은 아니었잖아.”
“한국에서 무슨 일 생겼나?”
“설마 여자친구?”
“여자친구 생기면 모든 게 행복해 보인다는데, 정말 그런 거야?”
선수들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고 어느새 선수들의 중심에는 유지우가 있었다.
그걸 멀리서 보고 있는 세바스티안 란첼라와 알베르토 수석코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유가 침울해하진 않아서 다행이네요.”
“잘 이겨낸 거 같죠?”
어린 열일곱의 나이, 월드컵에서 8강이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그들이 걱정한 건 유지우의 승부욕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승부욕에 사로잡혀 혹시라도 슬럼프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유의 멘탈을 잡아주는 사람이라면, 가족일까요?”
“그렇겠죠.”
“아무튼, 다행이네요. 월드컵 이후에 슬럼프에 빠지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유가 거기에 속하지 않아서요.”
“이제 같이 올라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어쨌든 유지우가 ‘월드컵 후유증’을 겪지 않은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만족스러웠다.
“자! 집합!”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선수들을 소집했다.
새롭게 2군에서 올라온 선수도 몇 명 보였고 가장 눈길을 끈 건 리카르도 메사가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거였다.
늘 서 있던 선수들이 있는 곳이 아닌 선수들을 마주하고 있는 코치진들 사이에 있었다.
“크크큭, 리카르도! 저지 잘 어울려요!”
“이제 보니 코치가 적성에 맞는 거 아니야?”
작년 부로 은퇴를 한 그는 이번 시즌부터 보카 주니어스 어택 코치로 임명됐다.
“웃지 마! 감독님 말씀하시잖아!”
“개막전에 은퇴식 하는데 소감 준비나 해요!”
“맞아! 벌벌 떨지 말고요.”
“하하하하하! 리카르도 얼굴 빨개진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도 엄격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억압하진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걸 좋아했다.
언제나 정겨운 분위기.
유지우는 이런 분위기에서 심적인 편안함을 느꼈다.
“리카르도는 조금 있다가 더 놀리고 내 말을 좀 해도 되겠나?”
“감독님! 말려야지! 조금 있다가 또 하라뇨!”
리카르도 메사의 반응에 다들 빵 터졌고 곧이어 조용해지자 세바스티안 란첼라의 말이 시작됐다.
“다음 시즌 목표를 너희들에게 확실하게 주입하려고 한다.”
선수들은 무슨 말을 할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다음 시즌, 우리의 목표는 너희들도 잘 알 거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선수들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남미 리그 최초의 트레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보카 주니어스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거다!”
리그가 만들어지고 아직도 탄생하지 않은 트레블이라는 역사의 문턱까지 갔던 보카 주니어스는 작년 시즌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30-31시즌에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 * *
리그가 개막하기 일주일 전, 유지우는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이쪽입니다.”
차명훈과 맥스하고 같이 간 곳에는 미리 와 있던 한국인들이 있었다.
“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하셨다고요?”
다소 긴장한 표정인 그들은 유지우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SMC 방송국 사람들이었다.
김무호 메인 PD와 황화연 메인 작가, 그 외에도 5명이 더 있었다.
“네, 유지우 선수가 아르헨티나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월드컵 이후, 유지우의 인기는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 중에 제일 높았다.
특히 유한우가 운영하는 너튜브 채널의 구독자가 60만 명에서 600만 명이 되어 버렸으니,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래서 방송국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지우 선수의 다큐멘터리만 제작하면…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는 무조건 할 수 있어.’
현재 화제성으로 유지우를 이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SMC는 전에 얘기했던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고 싶다며 차명훈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왔고 오늘 드디어 자리가 마련된 거였다.
“기간은요?”
“시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입니다.”
“훈련 과정도 찍나요?”
“유지우 선수가 불편하면 찍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나요?”
“네, 저희는 어디까지나 유지우 선수의 편의를 위한 방송을 하는 거지, 유지우 선수께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촬영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
“혹시라도 뭔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다고 느끼시면 언제든 얘기해 주십시오. 곧바로 촬영을 멈추겠습니다.”
김무호 PD는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로지 유지우를 위해서만 찍겠다고.
“좋습니다. 축구하는 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다큐멘터리 촬영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유지우의 답변은, 승낙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구단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찍지 않겠습니다.”
“물론이죠! 이렇게 말씀해주신 것만으로도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PD는 승낙하는 답변이 나오자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다음 날.
SMC 방송국 측은 보카 주니어스의 협의를 구하기 위해 구단으로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