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03화 (103/383)

제103화

다큐멘터리 촬영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촬영팀은 유지우를 쫓아다니며 여러 그림을 땄다.

첫 촬영은 유지우의 집에서 미팅하는 장면.

그 뒤로는 일상 위주의 촬영이 이어졌다.

밥을 먹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기를 뛰는 날에는 팬들의 인터뷰도 땄다.

“유요? 환상적인 선수죠.”

“영웅이죠, 영웅. 유가 없었다면 우승은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유가 없는 보카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우리 가족은 대대로 보카의 서포터즈입니다. 현재는 유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가족이 됐습니다!”

“창의적이면서 화려한 선수죠. 축구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난다니까요.”

촬영팀은 유지우를 쫓아다니며 여러 분야에서 놀랐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사랑을 받는 건 알았지만, 직접 느끼는 것은 듣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아르헨티나에서 유지우 선수의 영향력을 따라올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거야.’

특히 제작진들이 가장 놀란 부분은.

“인성이 뭐 저래요?”

나쁜 뜻이 아니었다.

“이것도 드실래요?”

너무 좋아 흥분해서 세게 나온 말이었다.

항상 촬영 때마다 알게 모르게 몸에 묻어나오는 매너는 제작진들을 감동시켰다.

“감사합니다!”

유지우는 첫인상이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표정 변화가 없지만, 나중에 가까워지면 한없이 베푸는 스타일이었다.

더구나.

“유!!! 사인해 주세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요청해도 단 한 번의 거절 없이 모두 들어줬다.

“어디에 해드려요?”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팬 서비스를 마친 뒤에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자 사장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조용하게 먹을 수 있는 룸으로 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제작진들의 음식도 시켜주면서 가볍게 인터뷰가 이어졌다.

“지우 선수,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피곤하긴 하죠.”

“그런데도 팬 서비스는 꼭 하시네요?”

물을 한 잔 마시고 대답했다.

“저분들이 있어야 제가 있는 거니까요.”

“…….”

“저에게는 단 몇 초의 시간이 저분들에게는 평생 기억될 추억이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유지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투로 말했지만, 듣는 제작진들은 가슴이 뛰었다.

이 선수가.

눈앞에 있는 선수가.

같은 국적인 대한민국 선수라는 게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 * *

“그래서? 새롭게 선수단에 합류한 선수들이랑 친해졌는데 유독 한 녀석이랑은 가까워지는 게 어렵다고?”

훈련이 끝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아버지 식당에 왔다.

“그렇다니까요!”

“유가 처음에 왔을 때랑 같은 분위기입니다.”

어느새 한식 마니아가 된 디에고, 기예르모 이 두 녀석도 함께였다.

“흐음, 우리 지우랑 같은 분위기라니… 다가가기 힘들겠다.”

“이해해 주시는군요!”

“디에고의 말이라면 뭐든!”

어느새 아버지랑 디에고는 친부자 사이처럼 가까워졌다.

디에고는 일주일에 네 번 이상은 이곳에 와서 가족들하고 식사를 하니 아버지에겐 단골손님이었다.

“그나저나 아버지.”

어쭈, 이제 아버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

“왜 그래, 우리 작은아들?”

이제 아들이 됐고?

“이거 맛있는데 포장 가능해요? 에바가 좋아하는 거라…. 하하하!”

“그럴 줄 알고 미리 얘기해놨지! 이따가 갈 때쯤에 포장해서 줄게.”

“오오오오오오! 제가 많이 사랑합니다!”

“나도 사랑한다!”

기예르모는 이 분위기에 익숙해졌는지 별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볶음밥을 먹어 치웠다.

“저도 이거.”

“기예르모 아버지랑 어머니가 볶음밥을 좋아했지? 걱정하지 마라! 갈 때 푸짐하게 싸줄게!”

“감사합니다.”

“그러면 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네!”

“편하게 먹어, 너희들이 먹는 동안 아무도 안 다가올 테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아버지는 주문이 밀린 탓에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고 우리 세 사람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아버지 말대로 식사하는 중에는 아무도 안 다가오네.”

디에고가 밥을 먹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원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근래에는 아예 사라졌다.

“저기 붙여놨잖아.”

그건 아버지의 경고 때문이었다.

내가 가리킨 곳, 그곳엔 식당 입구에 붙여진 종이 한 장이 보였다.

< 보카 주니어스 선수들이 자주 옵니다. 식사만큼은 편하게 하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만약 식사 중에 사인이나 사진 요청을 할 시에는 퇴장 조치를 취할 테니 알아주십시오. >

선수들이 와서 마음 편히 밥을 먹지 못한 것이 마음에 쓰여 아예 저런 경고문을 붙여놨다.

그 뒤로 사람들은 식당에서 선수들을 발견해도 섣부르게 다가가지 못했다.

“저게 지켜져? 식당은 손님이 없으면 안 되잖아.”

“나도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일이 있었어.”

“일?”

“하비에르가 가족들이랑 식사하는 중에 팬 한 분이 식사 중인 하비에르에게 사인을 요청했었어.”

“그래서?”

“사인도 해주고 사진 촬영까지 해줬지.”

“잘된 거 아니야?”

“그게 끝이겠냐?”

“왜?”

“그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인 받으려고 해서 하비에르는 나중에 다 식은 밥 먹었어.”

그게 이 경고장의 시작이 됐다.

“그래서 저거 붙여놓고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내쫓아버려. 내가 본 것만 해도 세 번은 될걸?”

[일이 힘들더라도 식사는 편하고 맛있게!]

아버지는 식당에 찾아오는 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손님’으로 오는 거니, 편하게 먹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크으, 대단하시다니까!”

“우리 아버지가 실행력이 끝내주긴 해.”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 중에 제일 큰 게 바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라는 거였다.

식사를 다 하자.

“저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식사까지는 다가오지 않아도 식사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드는 이 풍경.

“안녕하세요.”

이제는 익숙했다.

* * *

『 리그 6라운드 / CA 알도시비 vs 보카 주니어스, 0 – 3 승리 – 65분 교체 아웃 』

[패스 – 98회 (성공률 96%)]

[결정적 패스 – 6회]

[태클 – 4회 (성공 – 4회)]

[돌파 – 12회 (성공 – 12회)]

[파울 – 0회]

[도움 – 0개]

[득점 – 1개]

『 리그 7라운드 / CA 투쿠만 vs 보카 주니어스, 1 - 3 승리 – 휴식 』

『 리그 8라운드 / 보카 주니어스 vs CA 반필드 5 – 0 승리 』

[패스 – 133회 (성공률 90%)]

[결정적 패스 – 8회]

[태클 – 7회 (성공 – 7회)]

[돌파 – 20회 (성공 – 20회)]

[파울 – 0회]

[도움 – 3개]

[득점 – 0개]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 보카 주니어스! 리그 8연승! 무패 행진 중! 】

【 보카 주니어스 측, “유와 재계약? 아직 얘기된 건 없다.” 】

사람들은 유지우가 재계약을 할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작년 시즌에 우승의 주역인 선수인 만큼 구단에서 재계약을 논의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유하고 당연히 재계약해야지! 무조건!]

[작년에 그런 성적을 내준 선수를 재계약 안 하면 구단이 멍청한 거지.]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았으니까 재계약 안 해도 괜찮지 않나?]

[안 해도 상관없긴 한데 선수들은 연봉으로 대우를 받고 싶어 하지, 말로 대우를 받고 싶어 하진 않잖아.]

[돈이 곧 그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는 거니까.]

[얼마나 받을까?]

[지금이 44만 페소가량 받고 있으니까… 적어도 100만 페소는 넘기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 받고 있다고?]

[신인치고는 많이 받는 거야. 신인 평균 주급이 30만 페소 수준이잖아.]

팬들은 당연히 유지우가 높은 연봉으로 재계약을 할 거라고 믿었다.

* * *

“단장님.”

무패 행진에 구단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지만, 엔리케 보토는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훈련장을 찾아 세바스티안 란첼라와 만났다.

“시즌 초에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목표가 보이네요.”

시즌 초,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있어서 엔리케 보토가 많은 힘을 썼다.

“그런데.”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훈련을 하는 유지우를 보며 말했다.

“유의 재계약 논의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현재 사람들의 관심은 보카 주니어스와 유지우의 재계약이었다.

여러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는 지금, 막대한 연봉을 주며 유지우를 붙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 유지우가 받는 주급은 ‘44만 5,000페소(한화 약 500만 원)’ 이것의 10배는 인상해도 될 만큼 보여준 것이 많았다.

“논의 중이긴 한데 연봉을 어떻게 제안할지 고민하는 중이죠.”

“회장도 허락했나요?”

“네.”

“진짜요?”

“그것도 한 번에 해서 모두 놀랐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로 라몬 카세레스 회장은 선수를 상품으로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떠난다고 공표까지 한 선수에게 재계약을 제안한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180도 다른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 딱 감독님 표정이 다른 이사들 표정이었어요.”

“…하하하하.”

엔리케 보토는 전에 회장과 한 대화를 떠올렸다.

수뇌부 회의를 마친 뒤에 엔리케 보토와 회장실에서 한 대화였다.

‘유와 재계약은 어떤 식으로 제안할까요?’

‘유의 에이전트와 상의해서 결정해야죠.’

‘따로 생각해놓은 조건은 없으신 거죠?’

‘네.’

‘알겠습니다. 통상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최종본이 나오면 그때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엔리케 보토가 나가려고 할 때, 라몬 카세레스 회장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네?’

‘최고 대우로 해줘요.’

‘…네?’

듣고도 믿지 못한 말.

‘지난 시즌에 어중간하게 보냈으면 모를까, 우승까지 한 에이스인데 그만한 대우는 해줘야죠.’

그렇게 대화를 마쳤고 엔리케 보토는 지금 유지우의 에이전트와 협상 중이었다.

“놀랐어요. 유는 사실상 떠난다고 공표까지 한 상황이잖아요.”

“그렇죠.”

작년 유지우는 이적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 아직 보카 주니어스에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이룬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

떠날 생각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 라몬 카세레스는 굳이 많은 연봉을 줄 필요성이 없다고 여길 거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재계약 논의를 해줘서 챙겨주려고 했다.

“…흐음.”

“왜요?”

“큰 그림을 보신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어떤 부분이요?”

“선수를 상품처럼 여기긴 하지만…. 결국에 선수들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잖아요?”

“…….”

“이적한 선수들도 결국은 자기들이 가고 싶어서 간 거고.”

라몬 카세레스가 선수를 팔아치웠다고 표현은 하지만 결국에는 해당 선수들도 떠나고 싶어서 간 거라 한쪽만 비난할 건 아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라몬 카세레스 회장이 돈을 더 챙기려고 무리수를 둔 것도 있었지만.

“듣고보니 그러네요.”

“유의 주급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감독님만 알고 계십시오.”

“네.”

엔리케 보토는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세바스티안 란첼라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500만 페소(한화 약 5,300만).”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깜짝 놀랐다.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팀 내 3위 주급이군요.”

리그에서도 10위 안에 들 만큼 상위 주급 액수였다.

“원래 1위 연봉으로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하비에르와 앙헬의 위치도 있으니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