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06화 (106/383)

제106화

훈련이 없는 휴일이 되자 유지우는 오전에 개인 훈련을 한 뒤, 오후에는 차명훈과 같이 구단을 찾았다.

“완성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구단에 도착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단장실로 갔다.

“오셨습니까.”

단장실 안에선 엔리케 보토가 인자한 미소로 맞이해줬다.

“안녕하세요.”

“오는 길은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네, 늘 오는 길인데요.”

“하하하하! 그렇군요!”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엔리케 보토는 비서에게 손짓했고 곧 비서가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며칠에 걸친 합의 끝에 드디어 재계약 계약서 최종본이 나온 거였다.

“검토해보시죠.”

유지우는 차명훈과 함께 계약서를 검토했다.

미리 어떤 조항이 들어갔는지 알기에 설명만 들으면 됐다.

‘내가 넣어달라는 조항은 다 넣었네.’

그리고 시선이 닿은 곳.

주급이 적힌 곳이었다.

“주급이 정말 더 올랐네요.”

“네, 회장님이 지시한 사항이라서요.”

기존 500만 페소가 아닌 700만 페소라는 주급이 적혀 있었다.

한화로 따지면 7,050만 원 정도 하는 금액이었다.

상당히 오른 금액에 유지우는 살짝 놀랐다.

‘올려도 예상한 건 600만 페소 정도였는데 500만 페소에서 200만 페소를 더 올릴 줄이야.’

남들이 보면 무표정이었지만, 그 안에서 묘한 변화를 본 엔리케 보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주급입니다.”

같은 10대인 디에고 로시와 기에르모 다린도 재계약하면서 받은 주급이 400만 페소 수준이라는 걸 따지면 엄청나게 올려준 셈이었다.

“사인하면 되죠?”

“검토하시고 이상이 없으시면 사인해주시면 됩니다.”

주급 700만 페소.

바이아웃 조항 80억 페소.

기타 조항들도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스스스슥.

계약서 서명란에 사인했다.

“재계약 얘기가 나오고 2달이나 지났네요.”

원래 일정에서 재계약은 8월 안에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일정이 길어지면서 시일이 걸렸고 결국에 10월이 되고서야 계약서 최종본이 나왔다.

“다른 조항은 바로 협의가 됐습니다만 바이아웃 조항에서 좀 걸렸죠.”

애초에 구단에서는 유지우의 재계약을 최고 수준으로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유지우 측에서 바이아웃 조항을 넣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그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시간이 걸린 거였다.

바이아웃이라는 게 구단을 통하지 않고 선수와 곧장 협의할 수 있는 조항이라 구단에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일이지만… 유를 생각하는 저희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서로 싸우면서 한 재계약이 아니라 더 퍼주려고 오래 걸린 재계약이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언제 일정이 여유로워지면 식사 한번 하시죠!”

“좋습니다.”

재계약까지 마무리했으니, 엔리케 보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보카의 트레블, 잘 부탁합니다.”

그 말을 듣고 유지우도 마찬가지로 손을 뻗어 잡았다.

“예.”

“유는 저희 보카의 자랑입니다. 가능하다면… 오래 봤으면 좋겠습니다.”

유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리케 보토가 말하는 건 이적하지 말고 더 오래 보자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적하겠다고 얘기는 했지만, 무조건 이번 시즌에 떠나는 건 아니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하지 못하면 또 남아서 도전할 생각이었으니까.

【 ‘황제’ 유지우! 재계약 확정! 주급 700만 페소! 리그 5위 몸값! 】

재계약 확정 소식은 언론에 보도됐다.

* * *

【 보카 주니어스! 유와 재계약 체결! 계약기간 2년! 】

【 유의 재계약 주급! 700만 페소! 아르헨티나 리그 전체 5위! 】

【 드디어 재계약한 유, “어려운 결정을 해준 구단에 감사하다. 경기력으로 보답하겠다.” 】

유지우가 엄청난 주급으로 재계약한 사실은 언론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아르헨티나 리그의 슈퍼스타.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타 클럽 팬들은 하루라도 빨리 유지우가 눈앞에서 사라지길 원했지만, 재계약을 맺은 사실에 충격에 빠졌다.

그런 그들을 무시한 채, 보카 주니어스 공식 커뮤니티 사이트엔 연신 글들이 올라왔다.

[ 그렇지! 이거지! 에이스에 대한 대우가 있어야 클럽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거야! ]

[ 난 이런 결정을 내린 보드진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유가 이적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도 저런 수준의 재계약이면 구단이 크게 결심한 거라고 봐. ]

[ 라몬 카세레스가 이렇게 해주다니, 보카 주니어스가 진짜 달라지려나 보다. ]

[ 내가 원하는 게 이뤄졌다! 유의 작년 활약을 보면 재계약은 당연했어! 그것도 리그 5위! 보카에서 3위 주급으로! ]

사람들은 유지우가 재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냉정한 시선으로 봤다.

[ 아직 어린 선수한테 너무 많이 제안한 거 아니야? 디에고나 기예르모같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선수들도 그보다 적게 받는데. ]

[ 맞아, 괜히 버릇만 나빠질 수 있어. ]

냉정한 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글들의 수는 적어 곧 수많은 글에 파묻혀 사라졌다.

.

.

.

대한민국에도 뉴스가 보도됐다.

- 보카가 우리 애 대우 잘해준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ㄴ ㄹㅇ 에이스 대우 제대로임.

ㄴ 구단 최고 연봉을 주기엔 앙헬이랑 하비에르가 있으니까 적절한 수준이라고 봄.

ㄴ 이렇게 해줘야 충성심 가지는 선수들이 늘어날 듯.

- 아니…. 저기요. 만 17세에 주급 7,000만 원이요? 형님 실례가 아니면 아이스크림 하나만….

ㄴ 형님이라니.

ㄴ 돈 많으면 형님이다.

ㄴ ㅇㅈ 형님, 둘째 동생이 인사드립니다.

ㄴ 여기 셋째도요!

ㄴ 오빠!!!!!!!!!!!!!!!!!!!!

ㄴ 이렇게 받으면 유럽 가서는 1억 넘겠는데?

- 10대에 주급 1억 가까이 가는 경우는 처음 보네 ㄹㅇ

ㄴ 보카가 저렇게까지 줄 줄은 몰랐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벌써 이런 주급이면 나중에는 대체 얼마를 받겠다는 거지?ㄴ ㄹㅇ 나중에 주급 10억은 그냥 넘기는 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주급 10억이면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고 아니야? 제라르 레오가 지금 주급 11억 받잖아.

ㄴ ㅅㅂ 한 달에 50억이 통장에 꽂히면 어떤 기분일까?

ㄴ 1년이면 600억이다.

ㄴ 그것만 있겠냐? 광고랑 부수적인 거 포함하면 1년에 2억 달러 찍음.

ㄴ 2억 달러 ㄷㄷ

그렇게 유지우는 재계약을 맺으며 보카 주니어스에 더 오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유럽 빅클럽들의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재계약을 맺었다고? 그게 뭐? 바이아웃 조항이 있잖아!’

원래 없었던 바이아웃 조항.

‘80억 페소.’

805억 정도 되는 금액.

1,000억이 넘지 않는 걸 보고 희망을 품은 클럽들이 생겨났다.

“…뭐? 유의 바이아웃이 6,000만 유로라고?”

유로로는 6,000만.

“5,100만 파운드? 당장 아르헨티나로 갈 팀 꾸려!”

파운드로는 5,100만.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의 몸값이 기본 1,000억이 넘는 걸 따지면 아르헨티나 리그를 찢어버리는 유지우의 몸값으로 800억은 저렴한 수준이었다.

* * *

사람들에게 보카 주니어스 최고의 스타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앙헬 몰리야와 하비에르 카세로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올 게 분명했다.

【 앙헬 몰리야! 리그 도움 3위에 오르다! 】

【 하비에르 카세로, 리그 득점 3위에 오르며 득점왕에 다가가다! 】

두 사람은 보카 주니어스의 기둥답게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고 유지우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선수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 20경기 출전, 15골 18도움 - 총 33개 공격 포인트 (컵대회 포함) 】

리그 득점 4위.

리그 도움 1위.

아직 전반기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33개의 공격 포인트를 생성해내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 한 시즌 공격 포인트 50개 이상 생성 능력 >

< 유니폼 판매율 1위 >

< 팬 지지도 1위 >

현재 보카 주니어스를 넘어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선수를 꼽으라면 열에 여덟은 유지우라고 말할 정도였다.

11월 초.

전반기 컵 대회인 코파 수다메리카나는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4강에 진출했고 라봄보네라에선 리그 22라운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 유! 유! 유!

유지우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런 팬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유지우는 결과로서 대답을 대신했다.

투-웅.

오른쪽 비어 있는 공간에서 앙헬 몰리야가 주는 패스를 페널티 가슴 트래핑 후에 앞으로 떨어트렸다.

휙.

마크하는 선수를 스텝 오버로 제친 뒤.

타다다다다닷-!

단번에 가속도가 붙으며 측면을 내달렸다.

[유가 달립니다! 쫓아가지 못하는 수비수!]

점점 골대가 가까워지자 고개를 들어 시야를 확보했다.

압박이 오지 않아 침착하고 여유롭게 살피는데 센터백이 자신이 들어가는 방향으로 백업을 오는 게 보였다.

툭.

센터백의 스텝을 유심히 보다가 기습적인 방향 전환으로 역동작에 걸리게 했다.

‘윽.’

센터백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곤 뒤로 넘어졌고 유지우의 시야에는 하나의 길이 뚜렷이 보였다.

뻐----엉!

왼발 인사이드로 강하게 감아 찬 슈팅.

부메랑처럼 휘며 파 포스트 구석으로 꽂혔다.

철렁.

흔들리는 골망.

오늘 경기 두 번째 골이 나왔다.

[환상적인 왼발 고오오오오오올! 저 위치는 유가 가장 선호하는 곳이죠!]

[벌써 두 골째를 넣고 있는 유! 오른발! 왼발! 모든 발로 골을 넣고 있습니다!]

작년보다 더 다듬어진 에이스의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스코어는 2 – 0.

유지우는 만족하지 않은 듯 세리머니도 하지 않은 채, 골대에 있는 볼을 들고 센터서클로 달렸다.

72분.

경기의 판도는 이미 보카 주니어스에게 넘어왔고 프리킥이 주어졌다.

[하비에르 카세로가 넘어지면서 얻은 프리킥!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입니다. 그리고 키커는 당연히 이 선수죠!]

볼이 멈춘 곳으로 오는 건 유지우였다.

[이번 시즌 여러 번의 프리킥을 차며 성공률 75%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는 유! 또 마법을 보여줄까요!]

한 시즌 프리킥 성공률이 50%가 넘으면 세계적인 키커라고 알려진다.

세계적인 키커들도 40%대면 뛰어나다고 여겨졌는데 유지우는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75%의 놀라운 성공률을 자랑했다.

즉, 미친 거였다.

삐----익!

휘슬이 들리자 호흡을 가다듬곤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그리고 처음에 생각한 곳을 향해.

뻐---엉!

날카롭게 찼다.

점프를 뛴 수비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볼.

그 볼은 수비벽을 지나며 뚝 떨어졌다.

철렁.

오른쪽 상단.

골포스트를 스치며 골대 안으로 들어가 골망을 흔들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프리킥으로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유! 괜히 킥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게 아닙니다!]

[이것으로 리그 13호 골을 만들어내며 1위 페르난도 벨몬트와 2골 차이로 좁힙니다! 작년 시즌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활약! 과연 73개의 페드로 발렌수엘라의 기록을 깰 수 있을까요!]

촤----악!

코너 플래그 쪽으로 달려가더니, 슬라이딩 세레머니를 하며 엠블럼에 키스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울려 퍼지는 응원가.

라봄보네라의 금빛 파도가 향하는 곳에 서 있는 보카 주니어스의 에이스는 그렇게 다시 한번 자신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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