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오셨습니까?”
며칠 후, 에이전트 차명훈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사람을 만났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자신의 명함을 꺼내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온 파블로 가르시아입니다.”
그 사람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카우터였다.
“반갑습니다. 유의 에이전트 명훈 차입니다. 미스터 차라고 불러주세요.”
통성명을 한 뒤에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분위기가 정말 좋군요. 거리 곳곳이 축구 열기로 물든 게 제 마음에 딱 맞습니다!”
“오는 길은 괜찮았습니까?”
“그럼요. 저희 같은 직업이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는 터라 비행기 타는 건 침대에 누워 자는 것처럼 편한 일이니까요.”
두 사람은 차를 한 잔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10분 뒤, 스카우터는 가져온 서류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차명훈 앞으로 내밀었다.
“이걸 보시면서 대화를 나누시죠.”
“이게 뭐죠?”
“저희 구단에서 유에게 제안할 임시 계약서입니다. 아직 정식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협의할 수 있습니다.”
차명훈은 파블로 가르시아가 가방에서 꺼낸 서류를 봤다.
‘이건 나쁘지 않다.’
이 서류로 인해 지금 유럽에서 유지우를 어떤 가치로 보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여기 보시면….”
그렇게 서류를 보다가 한 군데를 가리켰다.
거기엔 연봉이 적혀 있었다.
“유의 연봉은 이 정도 수준으로 지급할 수 있습니다.”
차명훈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확실히 대우해 주겠다는 거군.’
아직 20세가 되지도 않은 선수가 받기에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이었다.
그만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유지우를 원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군요. 바이아웃 조항은요?”
“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를 데려올 수 있는 금액이 명확하게 나왔으니까 긍정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그렇군요. 샐러리캡은요?”
샐러리캡은 선수단 총액 연봉이 일정 금액을 넘기면 안 된다는 규정으로, 만약 넘기게 되면 큰 제재를 받게 된다.
“몇몇 선수가 방출될 거라 제재에 걸리지 않게 조절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가 아틀레티코로 오면 지낼 자택과 훈련장….”
중요한 금액을 알려준 뒤, 그곳에 와서 지낼 환경에 관해 설명해줬다.
차명훈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
‘환경적으로는 다른 곳과 별반 차이가 없군.’
이렇게 제안해온 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뿐만이 아니었다.
< 바이에른 뮌헨 >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독일의 명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 맨체스터 시티 >
< 첼시 FC >
< 리버풀 FC >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의 명가.
< 바르셀로나 >
< 레알 마드리드 >
라리가 양대 산맥.
< 파리 생제르맹 >
프랑스의 패왕.
< 유벤투스 FC >
이탈리아의 명문까지.
유럽 클럽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고 이들은 언론에 관심이 있다는 걸 의도적으로 흘리기까지 했다.
“잘 들었습니다. 유에게 얘기해보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미팅 시간.
이 시간을 위해 파블로 가르시아를 비롯해 유럽 곳곳의 스카우터들은 며칠에 걸쳐 바다를 건너왔다.
【 유럽 5대 리그에서 러브콜을 받는 유! 행선지는 어디?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 “유를 데려오고 싶다.” 】
【 보카 주니어스, 정말 이대로 에이스를 보낼 생각인가? 】
【 아직 유의 이적 선언에 공식 발표문을 내고 있지 않은 보카 주니어스, 그들의 선택은? 】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사였다.
* * *
연전연승에 무패 행진.
엄청난 성적에 라봄보네라는 연신 매진을 기록했고 구단 재정 상태는 흑자를 기록했다.
“하하하하하하!”
라몬 카세레스 회장은 재정 지표를 보곤 크게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수치가 좋군!”
정기 보고를 하러 온 재정 이사가 고개를 숙였다.
“네, 특히 유의 상품 매출이 큽니다.”
“역시 우리의 보물이야!”
라몬 카세레스 회장은 유지우를 만나서 뽀뽀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기뻐했다.
그만큼 흑자 수치가 지난 시즌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
“상품 생산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듣기로는 상품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수량을 늘려서 찍어가고 있는데 계속 매진 중입니다.”
선수들의 굿즈 상품은 아무리 많은 물량을 찍어도 계속해서 팔렸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시키고 있어 그 수가 나날이 늘어갔다.
“최대 수량까지 찍으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라봄보네라 개편은 어떻게 진행 중입니까?”
라몬 카세레스는 막대한 돈을 들여 라봄보네라를 증편하려고 했다.
관중석을 6만 석까지 늘리고 낡은 부분을 다 뜯어고쳐 거의 새 경기장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실무진들과 계획을 짜는 중입니다. 확실하게 틀이 완성되면 그때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
.
.
12월.
전반기의 마지막 달이 됐고 보카 주니어스는 아직 단 한 차례의 패배도 하지 않았다.
코파 수다메리카나 준결승 2차전.
<보카 주니어스 vs 레드불 브라간치누>
이미 1차전에서 대승을 거둔 탓에 결승 진출은 무난하다고 보는 여론이 많았고 경기가 시작하기 전, 기사 하나가 나왔다.
【 보카 주니어스의 성지, 라봄보네라를 찾은 스카우터들, 유의 영입에 한 발짝? 】
【 재계약을 맺은 유, 이적 가능성은? 】
【 보카 주니어스, “유는 월드클래스의 선수. 그를 영입하고 싶다면 그 가치를 알아야 할 것.” 】
기사 내용대로 유럽 각지에서 찾아온 스카우터들이 관중석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각자 방식대로 경기 관전을 준비했고 곧이어 함성이 들리자 일제히 선수들이 들어오는 통로에 시선이 집중됐다.
“저기 나옵니다.”
“유.”
“영상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려니까 떨리네요.”
“넌 나 따라서 벌써 몇 명을 봤는데 아직도 그런 소리야?”
“당연하죠! 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그 플레이를 보는 건데! 안 떨리겠어요?”
필드로 나오는 선수들 가운데 가장 뒷열에서 나오는 선수.
등번호 10번.
현재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보카 주니어스의 에이스 유지우였다.
[오늘 경기는 스카우터들도 많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네, 유를 보려고 온 사람들일 겁니다. 아마 지금쯤 관중석 곳곳에서 유의 플레이를 보려고 앉아 있을 겁니다.]
스카우터들의 시선은 오로지 유지우 한 선수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그 주변에 있는 선수들에게도 향했다.
디에고 로시.
기예르모 다린.
이 두 선수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월드컵 우승의 한 축으로 활약해 유지우 못지않은 재능으로 여러 클럽의 관심을 받는 상황이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이 들리자 시작되는 경기.
전력 차이는 컸다.
1차전에서 4 - 1이라는 대승을 거둔 뒤라 선수들의 기세도 올라왔고 1.5군을 활용하며 여유로운 운영을 가져갔다.
급하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하면서도 정교하게.
정교하면서도 치명적으로.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팀에 그대로 녹였다.
후보 선수들도 보강했기에 주전 선수들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고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유지우였다.
[바로 중앙으로 올라온 유! 볼을 한 번 터치하며 띄웁니다!]
[그러곤 솜브레로!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트래핑으로 압박하는 상대 선수를 농락합니다!]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유지우의 플레이는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투---욱.
솜브레로로 압박하는 두 명을 제친 뒤,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비어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오자 다른 선수들의 압박이 오기 전, 오른발로 빠르게 패스를 찔렀다.
뻐----엉!
상대 수비수들이 라인을 올린 상태라 뒷공간은 무방비로 뚫렸다.
[유의 패스으으으으! 기예르모 다린이 반응합니다! 기예르모!!!]
오프사이드에도 걸리지 않은 절묘한 침투.
패스는 정확히 골을 노리며 침투한 기예르모 다린의 발아래로 흘러갔다.
- 오오오오오오오!
순식간에 찾아온 기회.
기예르모 다린은 유지우가 찌른 패스를 보고 달려갔다.
‘…와.’
그리고 볼은 회전을 머금으며 보폭에 정확하게 맞게 들어왔고 굳이 잡아놓을 필요성이 없는 완벽한 패스였다.
[골키퍼와 1 vs 1! 기예르모오오오오오오! 1차전에서 해트트릭을 한 기예르모 다린! 이번에도!!!]
툭.
각도를 좁히는 골키퍼를 보곤 원터치로 방향만 바꾼 슈팅.
기예르모 다린은 볼이 골대로 들어가는 것을 보지 않고 세리머니를 하러 뛰어갔다.
철렁.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골이 들어간 건 함성으로 확인하면 충분하니까.
폭발하는 라봄보네라.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스카우터들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상황에서 저런 패스라니, 공격 포인트 생산 능력이 진짜… 타고났네요. 마치 본능적으로 볼을 차고 있는 거 같아요.”
“왜 감독님이 그렇게 원하는지 직접 보니까 알겠어.”
감독이 한 ‘천재’라는 말이 뭔지 단 하나의 플레이로 알게 됐다.
타고난 재능.
만약 저 선수를 데리고 가면 클럽의 위치가 지금보다 올라갈 거라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눈에 들어오고요.”
골을 넣고 포효하는 기예르모 다린에게 시선이 갔다.
그 외에도 디에고 로시, 카를로스 로호, 막 1군으로 올라온 라우타로 오르반까지.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머지않아 유럽에 나오겠어.”
보카 주니어스의 황금세대는 유럽에서도 통할 재목들이 많았다.
“그런데 유가 라리가에 와서도 저런 생산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아르헨티나 리그와 라리가의 수준 차이는 명확했다.
그래서 다소 의아했다.
과연 저런 생산 능력을 라리가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지.
물끄러미 보던 팀장이 턱을 쓸며 대답했다.
“아르헨티나 리그라 정확하게 판단은 불가능하지만… 저런 능력이라면 다른 리그에서도 절반은 해줄 거다.”
“절반이라도 엄청난 수치 아닙니까.”
60개 공격 포인트의 절반은 30개, 그것만 해도 리그 MVP를 경쟁하기 충분한 수치였다.
“절대 놓쳐선 안 돼, 케빈.”
“네.”
“구단에 연락해.”
“어떤 걸로…?”
“걸린 바이아웃 금액은 저렴해도 너무 저렴한 수준이라고.”
이제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온 스카우터들 모두가 느꼈을 거다.
‘저 선수는 놓쳐선 안 된다.’
옹이눈이 아니라면 눈앞에 있는 보카 주니어스 10번은 유럽에서도 충분히 먹힐 카드니까.
“머지않아 전쟁이 벌어질 거야.”
“전쟁이요?”
“저런 재능을 가진 선수를 넌 본 적이 있어?”
옆에서 보던 직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껏 스카우터 신분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여러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봤었다.
그런데 그 선수들과 유지우는 뭔가 달랐다.
‘특별하다.’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유지우의 플레이는 시선을 사로잡는 것뿐만 아니라 가슴을 뛰게 했다.
“유를 중심으로 쟁탈전이 벌어지겠네요.”
“그래, 결국에 유의 선택에 따라 갈리겠지만 유가 이적을 결심하면 유럽 클럽들은 죄다 돈다발을 들고 아르헨티나에 올 거야.”
필드 위에서 자신만의 빛을 내며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를 보며 스카우터들은 매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