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2030년 12월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2031년 1월에 AFC 아시안컵이 개최됐다.
유지우는 아시안게임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측에 정중히 차출 요청을 거절했다.
【 ‘대표팀 에이스’ 유지우, “리그 일정이 타이트해 합류하긴 힘들다. 정말 죄송하다.” 】
【 대한축구협회 측, “유지우 선수의 의견을 존중한다.” 】
【 주앙 달루트, “전화로 의견을 전해 들었다. 나는 유지우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가 없어도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기사들이 나가자 유지우가 당연히 아시안컵에 출전할 거로 생각했던 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 진짜? 왜? 어째서? 지우가 있어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잖아.
- 아 ㅠㅠ 지우가 나와야 하는데.
- 아르헨티나 리그가 일정이 워낙 미쳐서 체력 안배하려면 시즌 중 차출은 거의 불가능하지.
- 경기를 좀 줄인다고 몇 년 전부터 얘기가 나오긴 했는데 적용되려면 적어도 5~6년은 기다려야 할 듯.
- 한 시즌에 60경기 이상 뛰는 애들이잖아, 이해해야지.
- ㅇㅇ 유럽 리그로 이적하면 자주 볼 수 있으니까 이번만 참자.
국가대표팀 에이스인 유지우가 합류하지 않자 팬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며칠 후.
2031 AFC 아시안컵은 호주에서 개최됐다.
월드컵 8강에 진출한 주역들이 포진한 대한민국은 조별 예선부터 뛰어난 경기력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 16강 대한민국 vs 이라크 >
3 – 1 승리.
< 8강 대한민국 vs 중국 >
2 – 0 승리.
< 4강 대한민국 vs 우즈베키스탄 >
2 – 1 승리.
2023년 이후 8년 만에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결승 상대는 개최국 호주였다.
2015 아시안컵 리벤지를 목표로 혈투를 벌인 선수단은 연장전까지 가는 공방전 끝에.
[대한민국 2 – 3 호주]
연장 118분에 페널티킥을 내주게 되면서 준우승을 하게 됐다.
눈앞에 보이던 트로피는 다시 멀어졌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씁쓸하게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호주 국가대표팀에게 박수를 보내줬다.
【 2031 AFC 아시안컵! 개최국 호주 우승! 】
【 호주 대표팀 감독, “대한민국 선수들의 투지는 대단했다. 마지막까지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
【 7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 호주에 2 - 3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으로 마무리. 】
【 2031 AFC 아시안컵, 유지우를 차출하지 않은 채, 준우승! 】
【 유지우 부재의 아쉬움이 짙게 남겨지다. 】
【 주앙 달루트 감독,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
준우승도 대단한 기록이긴 하지만 경기력을 본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 지우 있었으면 우승 아니냐?
유지우의 부재가 고스란히 느껴진 거였다.
- 아쉽긴 했어, 마지막에 페널티킥 내준 게 컸다니까.
- 공격의 질은 높아졌지만, 수비의 질은 그대로였어…. 어떤 미친놈이 슬라이딩 태클을 하면서 만세를 하고 있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에 인현수도 ㄹㅈㄷ 하나 찍었지, 소용돌이 슛이었나?
- 압박하는 선수도 없었는데 혼자 삽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앙 달루트가 감독직을 맡으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수준이 올라왔다곤 하지만 아직 세계 축구에선 변방국에 속했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
그 선수들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 나타난 유지우라는 존재에 우승이라는 목표에 갈증을 느끼던 팬들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아직 어린 나이, 유럽과 달리 제대로 길이 알려지지 않은 남미를 택하며 자신을 증명한 선수.
- 우리나라는 유지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구나.
선수단에 합류하지 않아도 존재감을 표출하는 대표팀의 절대적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7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 * *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축구 팬들이 좋아하는 건 ‘화려한 플레이’였다.
자유로운 플레이를 추구하는 성향이 짙은 선수들이 대거 몰린 리그라 그런 것이 눈에 익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건 대부분의 축구 팬들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였다.
평범한 슛과 오버헤드킥.
평범한 패스와 노룩 패스.
평범한 것보다 특별한 것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시선이 더 가는 건 당연했다.
그런 부문을 놓고 보면 유지우는 당연히 눈에 확 들어오는 선수였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폭발적인 함성이 들려오는 라봄보네라.
보카 주니어스 vs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60분이 지나가는 시점, 스코어는 1 – 1로 비기는 중이었다.
작년 시즌 이후에 수비에 투자를 많이 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높은 조직력의 수비를 선보였다.
삐----익!
반칙을 하는 것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유지우의 봉쇄였다.
볼을 잡지 못할 정도로 강도 높은 그림자 마크를 시도했고 유지우가 비어 있는 곳으로 나와 볼을 잡자.
“따라가!”
세 명이 에워싼 상황.
툭.
툭.
현란한 뱀 드리블로 상대 선수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빈 곳을 발견하곤 스텝 오버로 돌파했고 오른쪽 측면을 여는 데 성공했다.
- 오오오오오오!
관중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듣고선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쇄도하는 선수를 보곤 한 템포 빠른 얼리 크로스를 올렸다.
뻐----엉!
부메랑처럼 꺾이는 궤적을 본 기예르모 다린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달려들었다.
[유의 크로스으으으! 그리고 기예르모 다리이이인!]
크로스를 올린 뒤에 오늘 계속해서 유지우에게 당했던 상대 선수는 열을 받았는지 주심의 눈이 골대 앞으로 쏠린 사이, 일부러 유지우에게 부딪쳐서 넘어트렸다.
“…….”
넘어진 유지우는 상대 선수를 그냥 무시했고 곧이어 웃음을 지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골을 넣은 기예르모 다린이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멋진 헤더 골을 넣은 기예르모 다린! 이것으로 오늘 경기 균형이 깨집니다! 2 – 1로 앞서가는 보카 주니어스! 승리에 한 걸음 다가갑니다!]
세리머니를 하러 달려오는 기예르모 다린은 디에고 로시와 함께 유지우에게 손짓했다.
“그거 하자!”
디에고 로시가 해맑게 말하자 유지우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해, 죽어도 안 해.”
미리 훈련할 때나 평소에 하자고 했던 세리머니를 얘기하자 유지우는 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양쪽에서 잡는 두 선수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싫다면! 네가 가운데 해! 기예르모! 너랑 나랑 양옆!”
“알았다!”
“이거 안 놓냐? 이것들아!”
카메라 앞으로 가서야 포박했던 걸 풀어주고 두 선수는 유지우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한쪽 무릎을 굽힌 뒤, 옆으로 팔을 쭉 뻗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가운데 선 유지우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세 선수가 한 건 ‘파워레인저 세리머니’였다.
“저 미친놈들! 하하하하!”
“내가 이래서 너희를 좋아하는 거야!”
“유! 디에고! 기예르모! 사랑한다!”
팬들은 세 선수가 보여준 합동 세리머니를 좋아했다.
세 선수, 아니 정확하게는 두 선수가 준비한 세리머니였고 유지우는 세리머니 후에 진영으로 돌아가면서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에게 말했다.
“…즐겁냐?”
디에고 로시는 활짝 웃으며.
기예르모 다린은 무표정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 “어!”
동시에 대답했다.
즐거워하는 두 선수를 보곤 유지우도 고개를 저으며 결국에는 체념했다.
‘즐거우면 됐지 뭐.’
어느새 동화가 된 유지우였다.
* * *
2월.
3월.
유지우는 체력 안배를 하며 컨디션을 유지했고 3월 초에 진행된 리그 40라운드에서 마침내.
컵대회 포함 총 24골 3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54개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다.
【 2시즌 연속 50개 공격 포인트 달성! 】
【 50클럽에 연속 가입하며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에 이름을 새긴 유! 】
【 “그는 외계인인가?” 】
비교적 일정이 여유로운 3월 A매치 데이 기간이 되자 유지우는 A매치를 위해 한국으로 출국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
비즈니스석은 만석이었고 이상하리만큼 연예인들이 많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 때문에 미국에 있다가 귀국하는 연예인들과 제작진들이었다.
힐끗.
그들이 보는 곳은 한 곳이었다.
‘맛있네.’
기내식을 먹고 있는 유지우였다.
“저… 유지우 선수님?”
기내식을 다 먹고 쉬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라 유지우는 금세 기억해냈다.
“아, 서도연 배우님?”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아르헨티나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찍을 당시에 같이 밥을 먹었던 사람이었다.
“기억하시네요!”
“물론이죠.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서요.”
“혹시라도 기억 못 하실까 봐 걱정했거든요.”
“이번에 찍으신 영화도 잘 봤어요.”
“감사해요! 다름이 아니라 사인 좀 부탁드리려고…. 아! 안 해주셔도 됩니다!”
서도연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내밀었다.
“펜 있으세요?”
“네, 가져왔습니다!”
유지우는 펜을 받아서 정성스럽게 사인해줬다.
“아시안게임이랑 아시안컵에 안 나오셔서 아쉬웠어요.”
“나가고 싶었는데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요.”
“이번에 A매치는 나오시는 거죠?”
“네.”
“저도 지인들이랑 구경하러 가요.”
“그래요? 꼭 이겨야 하겠네요.”
서도연이 스타트를 끊자 다른 분들도 조심스럽게 사인을 요청했다.
잠도 오지 않아 한 명 한 명 사인을 해줬고 그렇게 한국에 도착하기 30분 전이 됐다.
“지우 선수, 나가시면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할 겁니다. 이건 예상 질문지입니다.”
차명훈이 질문지를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30분 뒤에 도착 예정이니까 천천히 읽어봐 주세요.”
“네.”
곧이어 대한민국에 도착했고 유지우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게이트로 걸어갔다.
뒤에는 연예인 일행이 있었고 유지우는 게이트 밖으로 나가기 전에 서도연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
인사를 한 뒤,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유지우 선수!”
“사랑해요! 유지우 선수!”
인천국제공항은 그야말로 마비 상태였다.
꾸벅.
유지우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차명훈과 맥스의 안내를 받아 인터뷰가 마련된 장소로 이동했다.
“유지우 선수!”
처음은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했고 잠시 후, 본격적인 질문이 나왔다.
“A매치 경기 중, 가장 기대되는 경기가 어떤 경기인가요?”
“두 나라 모두 기대되지만, 제일 기대되는 건 스페인입니다.”
2031년 3월 A매치 데이는 두 경기였다.
대한민국 vs 스페인.
대한민국 vs 온두라스.
이 두 경기에서 제일 관심을 많이 받는 경기는 3월 16일, 대한민국 vs 스페인 경기였다.
“어떤 각오로 임하실 생각인가요?”
질문을 들은 유지우는 기자들을 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스페인 선수들이 뛰어난 선수들이긴 하지만 저는 언제나 그랬듯 동료 선수들과 승리하기 위해 플레이 하나하나 최선을 다할 겁니다.”
담담한 소감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친 유지우는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A매치를 5일 앞두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선수.
제라르 레오.
레알 마드리드 에이스이자 2030 발롱도르 수상자.
【 2030 발롱도르 수상자 제라르 레오! 대한민국 입국! 】
【 현 세계 최고의 선수! 제라르 레오가 이끄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입국! 】
【 제라르 레오, “반갑게 맞이해줘서 고맙다. 최고의 경기력으로 한국 팬들께 인사드릴 것.” 】
30세의 나이에 발롱도르 5개를 수상한 현 축구계 최고의 선수가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