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19화 (119/383)

제119화

광고 촬영이 끝난 뒤, 나는 누나랑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갔다.

“지우 선수, 저는 잠깐 에이전시 좀 다녀오겠습니다. 두 시간 정도 걸릴 테니까 천천히 드시고 계세요!”

원래 누나 매니저까지 해서 네 명이 먹으려고 했는데 다 일이 있어서 빠지고 둘이서 먹어야 했다.

누나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라 조용하게 먹으려고 룸으로 자리를 잡았다.

치----익.

불판에서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난 소고기보다 삼겹살이 좋더라.”

“특별한 날에는 소고기고 평소에는 삼겹살이지.”

“우리 광고 찍은 날이니까 특별한 날 아니야?”

“뭘, 늘 만나는 누나랑 먹는 건데 비싼 소고깃집을 왜 가.”

“…돈도 많이 버는 놈이.”

“얼마 못 벌어.”

“주에 7천만 원 버는 건 다른 사람이냐.”

“누나는 연금 받잖아.”

“내가 죽을 때까지 받을 연봉을 1년에 버는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미안합니다.”

삼겹살과 된장찌개 조합은 아르헨티나에서도 가장 많이 생각이 났다.

먹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긴 했지만, 역시 한국에서 먹는 게 더 맛있다.

“하아.”

배불리 먹은 뒤,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예능도 나간다며?”

“아시안게임 이후에 방송 스케줄이 많아졌다.”

아시안게임 펜싱 2연패를 달성한 다빈 누나는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너도 예능 나와야 하지 않나?”

“나 바쁘거든.”

“어쭈! 누나 앞에서 바쁜 척을?”

“시즌도 아직 안 끝났고 방송 출연은 일단 지금 찍는 다큐부터 마무리하고 생각하려고.”

“다큐는 시즌 종료할 때까지 찍는다고 했지?”

“응.”

그 후로도 여러 얘기를 나눴다.

차를 다 마신 뒤에 룸을 나왔고 누나가 계산하려는 걸 잽싸게 가로채서 내가 했다.

“야, 내가 계산해야지.”

“돈 잘 버는 동생이 살 테니까 누님께서는 나중에 더 비싼 거 사주세요.”

어릴 때부터 누나한테 많이 얻어먹었으니까 이제는 조금씩 갚아야지.

결제를 하자 사장님이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을 하길래 정성스럽게 팬 서비스를 하곤 가게 밖으로 나왔다.

“하아, 배 터지겠다.”

“누나는 집에 어떻게 가?”

“내일 오전에 라디오 출연이 있어서 오늘은 호텔에서 자고 내일 저녁에 내려가려고.”

“오케이, 난 에이전트가 오는 중이래.”

“내가 태워다줄까?”

“청주까지? 내일 조심해서 내려오기나 해.”

잠시 후, 차명훈이 도착했고 난 누나가 가는 것을 본 뒤에 청주로 내려갔다.

* * *

“일어나봐! 일어나!”

아침부터 누나 목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하---암, 가게 안 나갔어?”

“내가 가게 갈 정신이겠냐? 이거 뭐냐고, 이거!”

엥?

【 ‘국가대표 에이스’ 유지우! ‘펜싱 여제’ 최다빈과 데이트? 】

“너 이게 뭐야! 다빈이랑 왜 열애설이 나는데!”

자세히 보니 어제 고깃집에서 나온 사진을 누가 찍었나 보다.

난 또 뭐라고.

“우리 어제 광고 찍고 저녁 먹었지. 아버지랑 어머니한테 얘기했는데 못 들었어?”

“드, 들었지.”

“누나는 사실 아니라는 거 알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근데 왜 소란?”

“난 그냥 깜짝 놀라서! 네가 열애설이 난 게 내 친구잖아!”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누나랑 연애를?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어여 나가.”

누나 등을 밀어 방 밖으로 내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내가 누나랑 열애설이 나다니, 참 별일이긴 하다.

슬쩍.

메인 기사에 들어갔는데 댓글이 이미 2만 개를 넘기고 있었다.

- 실화야? 둘이 진짜 사귐?

ㄴ 모야 모야 나 촉 되게 좋은데.

ㄴ 선남선녀긴 함.

ㄴ ㅇㅇ 둘이 잘 어울려.

ㄴ ㄹㅇ 축구 황제랑 펜싱 여제가 결혼하면 그 아이는 어떤 괴물이 되는 거냐?

ㄴ 펜싱 여제는 ㅇㅈ인데 축구 황제는 아직 아니지.

- 둘이 친한 사이라고 들었는데 유지우 누나랑 최다빈 선수가 초등학교 동창이라 그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했었음.

ㄴ 이건 팬들은 다 알고 있지 않나?

ㄴ ㅇㅇ 최다빈이 아르헨티나로 여행 갔을 때도 같이 만나고 했었잖아.

최다빈이 강주현과 아르헨티나에 왔을 때, 유지우 가족들이랑 같이 있는 사진을 SNS에 올린 적이 있었다.

- 강주현 너튜브 영상에도 많이 거론됐었잖아. 이거 믿는 사람 있냐?

ㄴ 와, 이렇게 보니 지우 누나들 대체 뭐냐?

ㄴ 왜?

ㄴ 한 명은 요리 여신, 한 명은 너튜브 여신, 나머지 한 명은 펜싱 여제…. ㄷㄷ

ㄴ ㄹㅇ 세 명 다 이 세상 외모가 아니긴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원래 누나 됐다가 여보 되는 거 아니겠어?

ㄴ 솔직히 외모 봐봐라, 둘이 눈 맞을 만도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맞아. 남사친 여사친은 존재할 수가 없는 개념이야.

ㄴ 지금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얼마 지나고 ‘열애 인정!’ 이렇게 뜨는 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잠시 후.

【 유지우 측, “열애설은 사실무근, 광고 촬영 후 식사한 것뿐.” 】

【 최다빈 측, “친한 누나 동생 사이일 뿐, 연인 사이가 아니다.” 】

같은 에이전시라 그런지 빠르게 반박 기사들이 올라왔다.

* * *

그날 저녁.

스포츠 코리아 본사.

다양한 스포츠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로 이번에 스포츠음료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었다.

인지도는 메이저 브랜드에 밀려 있었지만, 막대한 해외 자본금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회사였다.

“어떻습니까?”

스포츠 코리아 대회의실.

그곳에서 강문희 감독이 광고 촬영 초안을 스포츠 코리아 대표 권승민에게 보여줬다.

“호오, 이 영상이 정말 초안이 맞나요?”

권승민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영상에 집중했다.

“네, 사전에 협의한 콘티대로 촬영을 했습니다.”

“바로 내보내도 괜찮을 만큼 퀄리티가 좋군요. 역시 강 감독님께 맡기길 잘했습니다.”

“아닙니다. 음료 디자인이 너무 예쁘게 나와 영상미를 살려줬죠.”

두 사람은 웃으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최종본은 언제 나오죠?”

“일주일 뒤입니다.”

“일주일 뒤면 유지우 선수가 아르헨티나로 간 후라 함께 보지는 못하겠군요.”

“네. 그래서 유지우 선수 측에는 따로 영상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권승민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 중 가장 핫한 선수.

‘유지우라.’

영상에 나오는 유지우의 모습에서 눈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도출한 결론.

이번 광고를 시작으로 기나긴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졌다.

“문 이사님, 내일 유지우 선수 쪽 스케줄이 어떻게 되죠?”

* * *

“하하하하하! 둘이 열애설이라니!”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날 밤, 가족들과 지인들이 모여 집 마당에서 파티를 했다.

온갖 음식이 올라온 테이블.

주된 주제는 유지우와 최다빈의 열애설이었다.

“왜? 다빈이 정도면 최고의 신붓감 아니야?”

유지우와 최다빈의 부모는 오래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온 이웃 주민이라 자주 만나 가까운 사이였다.

“형님, 다빈이는 줄 서서 모셔가야 하는 신붓감이죠.”

유한우가 최다빈을 칭찬하면.

“우리 지우도 마찬가지지! 저런 신랑감은 절대 못 찾아!”

최다빈 아버지, 최도진은 유지우를 칭찬했다.

“형님! 전 다빈이가 며느리 되는 거 대찬성입니다!”

“나도 지우가 우리 사위 되는 거 대찬성!”

“이럴 게 아니라 아예 약혼이라도 해버릴까요?”

“그럴까? 하하하하하! 우리야 좋지!”

“그럼 사돈~ 한 잔 받으시죠.”

“아이고! 우리 사돈이랑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답니다! 꿀이라도 탔습니까?”

- “하하하하하하하!”

술을 함께 마시니 파티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밤이 늦어지자 몇몇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서 잠을 잤고, 내일이면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유지우는 잠이 오지 않아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별구경을 했다.

“안 자?”

두 개의 잔을 들고 다가온 건 최다빈이었다.

“잠이 안 와서.”

“그래도 자야지, 내일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잖아.”

“졸리면 비행기 안에서 자면 돼. 가는 데만 20시간 넘게 걸리니까.”

스윽.

최다빈은 가져온 두 개의 잔 중 하나를 유지우에게 내밀었다.

“네 건 코코아.”

“…나도 이제 커피 마실 줄 알거든?”

“알긴 뭘 알아, 아메리카노 연하게 타 줘도 쓰다고 뱉던 놈이.”

“그걸 아직도 기억해?”

“내가 기억력이 좋잖아.”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별구경을 했다.

“아, 그런데 누나도 내일 스포츠 코리아 본사 가?”

“아니 나는 안 가는데.”

“왜 나만 가는 거지?”

30분 뒤, 바람이 불면서 추워지자 집으로 들어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다빈이 말했다.

“내일 너한테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좋은 일?”

“그렇게만 알고 있어. 내일 되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뭔데? 스포츠 코리아랑 관련된 일이야?”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지.”

* * *

아르헨티나 출국은 저녁 7시 비행기였다.

그래서 오후는 시간이 남아 차명훈과 함께 스포츠 코리아 본사로 갔다.

“다빈 누나는 안 간다는데 왜 저만 가요?”

어제 오후에 스포츠 코리아 본사 쪽에서 연락이 와 만나고 싶다고 해서 가는 거였다.

“유지우 선수에게 중요한 일이라서요.”

“저한테요?”

궁금해하자 차명훈은 웃음꽃을 피우며 오늘 왜 가는지 설명해줬다.

그 설명을 듣고 살짝 놀랐다.

“…진짜요?”

“네.”

그 뒤로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도착한 스포츠 코리아 본사.

외국계 자본의 힘으로 무섭게 성장하는 회사라 빌딩부터 차원이 달랐다.

“오셨습니까!”

입구에서 정장을 입고 기다리던 남성이 허리를 90도 숙이며 인사해왔다.

그 뒤로는 열 명가량의 수행원이 서 있었고 우리는 안내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탄 뒤, 대표실이 있는 56층에 올라갔다.

스포츠 코리아 대표실.

안으로 들어가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표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포츠 코리아 대표 권승민이라고 합니다.”

시원시원한 인상에 지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권승민은 대한민국에서 떠오르는 재력가였다.

3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 해외 투자사를 차린 뒤, 그곳에서 막대한 자금을 벌어 7년 전, 스포츠 코리아를 설립했고 마침내 대한민국 10위 안에 드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유지우입니다.”

“오시는 길은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괜찮았습니다.”

“자세한 건 앉아서 말씀하시죠. 이쪽으로!”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가벼운 안부.

그리고 광고 촬영 영상을 잘 봤다는 덕담까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권승민은 비서에게 손짓했고 비서는 서류를 하나 가져왔다.

“저희가 이렇게 유지우 선수를 모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스윽.

“이걸 제안하고 싶어서입니다.”

권승민이 비서에게 받은 자료를 내밀었다.

차명훈이 서류 봉투를 열어 자료를 유지우에게 내밀었고 유지우는 첫 페이지에 있는 글자를 읽었다.

“후원 계획서.”

“네, 거기 적힌 대로 저희 스포츠 코리아가 유지우 선수의 공식 스폰서를 맡고 싶습니다.”

스포츠 코리아 대표 권승민이 유지우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스폰서를 맡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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