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20화 (120/383)

제120화

‘스폰서 계약.’

스타 선수들은 자체가 브랜드라서 걸치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광고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메이저 브랜드들은 스타 선수들과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시장구조 속에서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선수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계약을 맺으려고 할 게 당연했다.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유지우 선수가 아직 스폰서가 없다고 하셨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대답을 듣자 권승민 대표는 의아해했다.

“유지우 선수라면 모든 스폰서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거 같은데, 다른 업체들이 접촉을 안 한 거라면 저희에겐 큰 행운이네요.”

접촉을 안 한 게 아니었다.

이미 여러 업체에서 스폰서 계약을 맺자고 접촉했지만,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을 관계.’

자신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듯 구는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했다.

“개인 사정이라고 해두죠.”

대답을 들은 권승민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하하하하,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광고는 최다빈 선수랑도 같이 찍었는데 저한테만 제안하는 건가요?”

“최다빈 선수는 이미 아디아스 쪽이랑 스폰이 되어 있습니다.”

유명 선수들은 웬만하면 다들 스폰서가 있었다.

특히 개인 종목은 스폰서의 존재가 중요했다. 개인 훈련 비용부터 장비 부분을 지원받을 수 있어서 일찌감치 메인 스폰서를 잡아놓는 경우가 많았다.

“저희는 메이저들과 비교하면 아직 밀리는 처지죠.”

권승민은 스포츠 코리아가 메이저 브랜드에 밀린다는 걸 숨김없이 말했다.

“하지만 유지우 선수가 그런 부분을 다 생각하신 뒤 저희와 계약을 맺게 되면 어떤 조건이라도 수락할 의향이 있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을 하더라도 권승민은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아디아스.

나이스.

치타.

세계 굴지의 스포츠 기업들의 시장에서 살아남아 최고로 올라서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얼굴로 내세울 메인 모델이 필요했다.

‘세계의 모델이 될 선수.’

야구, 배구, 농구, 수영, 양궁 등 모든 종목의 선수들과 계약을 맺고 있지만, 높은 명성을 지닌 선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아르헨티나 리그를 폭격하고 유럽 클럽들의 이목을 끄는 한국 선수가.

“당장 결정을 내리긴 어렵습니다.”

유지우가 고민하는 것을 본 차명훈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물론 지금 당장 답변을 달라는 건 아닙니다. 오늘 아르헨티나로 출국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급하게 자리를 마련해서 오히려 죄송하죠.”

오늘 처음 만났는데 당장 계약을 체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자세한 걸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이곳을 보시면 우선 제안할 건 2년 계약입니다. 모든 용품이며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훈련 비용은 저희가 전부 지원할 것입니다.”

권승민은 서류에 적힌 계약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그리고 부가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매년 후원해 드리는 금액은 밑에 적힌 금액입니다.”

모두 합쳐서 연에 20억가량의 금액을 후원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만 18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선수에겐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처음에만 이 정도입니다.”

권승민은 유독 ‘처음’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2년 뒤에 새 계약을 맺을 때는 더 좋은 조건의 계약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단발성 제안이 아닌 장기적으로 내다본 제안이었다.

권승민의 제안을 들은 뒤, 유지우는 생각에 잠겼다.

‘…….’

유지우가 고민하는 사이.

차명훈은 여러 가지를 물어보며 의견 차이를 좁혀 갔고 잠시 후, 유지우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제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궁금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

“냉정하게 사업자 시선에서 말씀드리자면,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권승민은 솔직하게 말했다.

“유지우 선수는 단시간에 엄청난 실력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신뢰하는 에이스가 됐죠. 저희는 그런 이미지를 원합니다.”

자신이 유지우를 원하는 이유를.

“유수의 기업들을 제치고, 최고가 되는 것.”

오래전부터 간직했던 꿈.

그 꿈을 같이 이루고 싶다는 의지를 담으며 진심을 말했다.

“우리 스포츠 코리아는 유지우 선수와 함께 메이저 기업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습니다.”

* * *

그 시각.

SMC 채널에선 유지우 다큐멘터리 12화가 방영됐다.

“아빠 얼른요!”

“잠깐만 기다려봐!”

저녁 8시 30분에 방영되어 온 가족이 같이 볼 수 있었다.

“누구야! 누가 먼저 닭 다리 먹었어?”

“우물우물… 그러게 일찍 오시지 그랬어요.”

“손만 씻고 온다고 했잖아.”

“여기 양념 닭 다리는 아빠 드세요! 어어어어! 시작해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30분에 방영되는 ‘유지우, 축구 천재가 가는 길’은 요즘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프로그램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연신 높은 관심을 받아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놓치지 않았고 나날이 시청률이 높아졌다.

- 팬 서비스는 매 화 빠지질 않네.

영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팬 서비스였다.

거의 매 화 팬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는 게 나올 만큼 유지우의 팬 서비스는 유명했다.

- 와.

그리고 사람들이 놀란 부분.

- 보육원 봉사?

바로 보육원에 봉사하러 간 부분이었다.

- 바쁜데도 쉬지 않고 한다고 함.

- 아르헨티나 교민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내용임.

- 실화야? 진심?

- ㅇㅇ 저 보육원이 특히 시설이 안 좋아서 아이들이 입을 옷도 없고 먹을 것도 하루에 한 끼도 간신히 먹는 곳이었음. 외곽에 있는 곳이라 사람들 눈길도 안 갔는데 유지우가 그거 알고 후원해 주면서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핌.

- …뭐지, 천사야?

- ㄹㅇ 유지우 성을 ‘갓’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님?

매달 후원금을 기부하며, 아이들과 노는 장면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 …축구 외적으로도 진짜 인성 미쳤구나.

- 저러니, 내가 유지우한테 미쳤지.

- 아르헨티나 리그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이들이랑 볼을 차주는 거 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

실시간으로 수많은 글이 올라왔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장면이 나왔다.

‘저도 유처럼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어요?’

코흘리개 아이가 한 말에 유지우는 보기 드문 화사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아이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

차에 타서 귀가하던 중 PD가 질문했다.

‘평소에도 아이들 좋아하세요?’

‘네, 좋아하는 편입니다.’

‘후원은 언제부터 생각하신 거예요?’

‘처음은 클럽 봉사 활동으로 알게 됐어요.’

‘그러면 그 후에도?’

‘네,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힘들진 않으세요?’

‘전혀요. 나중에 지원 재단도 만들려고요. 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예쁜 꽃을 피울 수 있게요.’

평소 알지 못했던 유지우의 속마음까지 나오자 댓글은 읽을 수 없는 속도로 채팅창을 도배했다.

- 갓지우시다.

- 찬양해라.

- 아이들을 대하는 거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지?

- 철이 엄청 빨리 들었다.

- 지우 집도 유한우 셰프가 성공하기 전에는 그렇게 여유로운 집안은 아니었다고 함.

다큐멘터리가 큰 인기를 끈 이유는 화려한 필드 위의 생활과 다른 일상 모습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다.

평소 유지우는 어떻게 지낼까?

시청자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한 성공적인 다큐였다.

* * *

스포츠 코리아를 나와 공항으로 가는 길.

“지우 선수, 스포츠 코리아의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침묵을 깨고 차명훈이 묻자 난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확실히 좋은 제안이긴 하네요. 신인에게 파격적인 조건이기도 하고요.”

“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겠어요.”

“스폰서를 맺게 되면 스포츠 코리아 용품만 써야 한다는 점 때문이죠?”

“네.”

좋은 조건이긴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쓴 용품들을 모두 스포츠 코리아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었다.

익숙한 장비를 바꾸는 건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 만큼,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우 선수, 다른 곳이랑 맺겠다면 거절해도 됩니다.”

스폰서 계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굳이 스포츠 코리아랑 인연을 맺을 필요는 없었다.

아디아스나 나이스 등 유명 메이커들과 계약을 맺을 여건은 충분하니까.

“하지만 지우 선수.”

차가 신호에 걸려서 잠시 멈추자 차명훈이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입니다. 지우 선수가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려면 스폰서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봉만 받아서 살 수도 있겠지만, 스폰서를 두게 되면 환경부터가 달라진다.

적게는 수억.

많게는 수백억까지 오가는 계약.

세계적인 선수들은 모두가 스폰서를 끼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스포츠 코리아가 지우 선수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합니다.”

“그런가요?”

“지우 선수만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지우 선수가 만족할 때까지 제품을 개선, 개량할 준비가 되었다더군요. 다른 업체들이라고 해서 이 정도까지 성의를 보이긴 쉽지 않을 겁니다.”

“…….”

“다른 곳의 제안도 들어오는 거 보고 결정하실 거면 스포츠 코리아 말고 다른 곳도 알아볼까요?”

“아뇨. 일단 이 계약서를 검토해 주세요. 문제가 없다면 계약하겠습니다.”

“정말요?”

“네. 적응하면 되죠, 뭐.”

“스포츠 코리아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조금은요.”

어차피 해야 하는 계약이라면 이곳과 하고 싶었다.

최고가 아닌 최고가 되려는 곳.

나랑 입장이 비슷한 곳이니까.

그렇게 난 새로운 파트너를 얻고 아르헨티나로 출국했다.

* * *

그 시각 한국 축구협회에선 2031년 7월에 일본에서 개최될 U-20 월드컵을 앞두고 회의가 한창이었다.

“선수 선발은 마무리가 됐나요?”

장문기 협회장의 말에 안동환 U-20 감독이 대답했다.

“대부분 마무리가 됐고 몇 명의 선수와는 아직 조율 중입니다.”

“차선호 선수는 어떻게 됐습니까?”

“차선호 선수의 합류는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면 남은 선수는….”

수뇌부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곳에 향했다.

‘유지우.’

그곳에 적힌 건 현 대한민국 에이스의 이름이었다.

“유지우 선수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안동환 감독은 누구보다 유지우의 합류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목표로 한 U-20 월드컵 우승을 위해선 유지우가 반드시 합류해야만 했으니까.

“부회장님?”

“아, 어제 지우 선수랑 통화했습니다.”

박우근은 며칠 전부터 U-20 월드컵 합류 요청으로 유지우와 여러 얘기를 나눴고 어제 확답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유지우는 U-20월드컵 차출을 정중히 거절했다.

월드컵에 리그 일정까지 모두 수행하고 나면 컨디션 관리가 되지 않을 것이 자명한 사실.

이 같은 저조한 컨디션으로 괜히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기에, 다들 아쉬워했지만 놀란 기색은 없었다.

“…하아, 아쉽네요. 이번에 팀을 잘 꾸려서 유지우 선수와 발을 맞추는 걸 보고 싶었는데.”

안동환 감독은 직접 발로 뛰며 선수들을 선발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재목들.

그리고 최종적으로 훗날 그들의 리더가 될 유지우가 합류해 호흡을 맞추는 걸 보고 싶었다.

“어쩔 수 없죠. 이번 시즌이 지우 선수에게 중요한 시즌이기도 하고 우승하게 되면 이적할 가능성도 있으니, 이해해야죠.”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안 감독님.”

“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 유지우, U-20 월드컵 참가 최종 고사! 】

【 유지우 측, “대표팀 합류를 거절한 건 마음이 아프지만, 나 없이도 훌륭히 해낼 팀이라는 걸 믿고 있다.” 】

회의는 정리되었고, 이날 나눈 대화 내용은 기사로 빠르게 보도되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유지우의 상황을 잘 알게 되었던 국민들은 유지우의 상황을 이해했고, 하나 같이 응원을 보내주었다.

- 이게 맞지.

-괜히 무리해서 부르지 말자. 이미 지우는 성인 무대에서 뛰는 데 청소년 대회 때문에 부르는 건 오버잖아.

-ㅇㅇ A대표팀 에이스한테 자원봉사를 원하는 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우가 합류하지 않아도 멤버 괜찮던데?

-지우는 혹사시키지 말자, 안 그래도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바빠 죽을 것 같은 애인데.

그렇게 U-20 대표팀은 최종멤버를 확정 지으며 남은 대회 일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지우가 없다는 사실에 대중의 관심은 낮아졌지만, 이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이들이, 앞으로 유지우와 함께 어떤 파란을 일으킬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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