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유지우는 바로 팀에 합류해 리그를 소화했다.
리그 40라운드, 보카 주니어스 vs 센트랄 코르도바.
유지우는 선발로 출장해 전반전에만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이것으로 통산 공격 포인트 55개를 넘기는 유! 작년의 기록을 깰 기세입니다!]
[저게 어딜 봐서 10대의 모습입니까! 이미 많은 경험을 한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대의 나이.
보여주는 건 베테랑.
그 갭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흡수력이 이렇게 좋은 녀석은 처음이군.’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매일 놀라는 중이었다.
선수들이 라인을 올리는 게 늦을 때는 볼을 감싸며 템포를 죽이고 역습할 때는 빠르게 전개하며 템포를 살렸다.
경기 템포를 자유자재로 자기 것으로 만들며 상대 진영을 흔들었다.
또 압박 시에는 거친 몸싸움을 버텨내며 상대 선수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뒤.
뻐---엉!
비어 있는 공간으로 패스를 찔러 센트랄 코르도바의 골문을 꾸준히 위협했다.
[기예르모 다린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납니다아아아아!]
패스면 패스, 슈팅이면 슈팅.
유지우는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 정교한 축구를 구사했다.
볼만 잡으면 높아지는 기대감.
상대의 강한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넓은 시야.
높은 전술 이해도.
그걸 바탕으로 나오는 플레이 메이킹 능력.
철렁.
그 종점은 골대 안이었다.
[오오오오! 유가 중앙으로 올라오면서 찌른 노룩 패스! 왼쪽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던 디에고 로시를 정확하게 겨냥한 패스였습니다!]
[디에고 로시의 마무리까지 깔끔했습니다! 필드를 지배하는 이 선수들을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후반전.
67분에 유지우는 하비에르 카세로의 패스를 받아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코르도바의 골망을 흔들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폭발적인 함성.
그리고 그 함성에 가려진 원정 팬들의 절규.
“쟤 이적한다며! 제발 좀 빨리 사라져!”
유지우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상대 팀 팬들의 절규를 들으며 필드를 자유롭게 누볐다.
등번호 10번.
이 번호는 보카 주니어스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졌다.
* * *
리그가 진행되던 어느 날.
“유!!!”
훈련이 없는 날에 유지우는 디에고 로시의 초대로 디에고의 집으로 갔다.
‘진짜 많이 달라지긴 했네.’
커다란 집 입구에서 기다리던 디에고 로시는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준 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짜잔!”
초대한 이유는 디에고 로시의 집이 만들어져서였다.
원래 디에고의 집은 가난해서 거의 판잣집 수준이었다.
그래서 디에고는 프로로 데뷔하고 모은 돈으로 가족들에게 근사한 집을 선물했다.
“와, 깔끔하고 멋지게 지었네.”
“그렇지? 내가 우리 누나가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어서 전체 디자인은 누나 지인분이 해주셨어!”
거대한 마당에 개인 차고.
연못까지 있는 3층 저택이었다.
“무리 좀 했겠다?”
“우리 가족이 살 곳인데 대충할 수가 있나.”
마당에선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유!!!”
그때 멀리서 달려오는 한 아이.
디에고 로시가 애지중지하는 여동생, 에바 로시였다.
에바는 이미 여러 번 해봤다는 듯 유지우의 품에 와락 안겼다.
“왔어요?”
“아이고, 못 보던 사이에 더 귀여워졌네?”
“진짜요?”
에바 로시는 애교가 많고 귀여운 아이였다.
“에바! 왜 오빠한테 안 오고!”
“오빠는 맨날 안아서 이제 지겨워.”
“으으으으으으윽! 에바아아아아아!”
디에고 로시는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가슴을 움켜쥐며 울먹였고 에바는 유지우의 품에 안겨서 키득거렸다.
“근데 유.”
“응?”
“아르헨티나 떠나요?”
“응? 왜?”
“동네 친구들이나 어른들이 다 그러더라고요. 유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아르헨티나 떠날 거라고요….”
에바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디에고 로시가 눈치를 보다가 에바를 확 낚아챘다.
“우리 동생은 오빠랑 간식 먹으러 갈까?”
“아아아아아아아아! 놔줘! 유랑 있을래!”
“자! 비행기 놀이다! 슈우우우웅!”
디에고 로시가 눈치 있게 에바를 데리고 가주자 유지우는 가족들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우리 에이스가 오셨네!”
“안녕하세요. 이건 선물이에요.”
“뭘 이런 걸 가지고 와.”
“제 마음입니다.”
“다음에는 몸만 와! 알았지?”
“알겠습니다.”
디에고의 가족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따뜻하게 맞이해줬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기예르모 다린도 뒤늦게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길을 잃었다.”
“아, 맞다. 너 길 잘 잃어버리지.”
“내가 길눈이 어둡다.”
“그러게 내가 같이 가자고 할 때, 말을 듣지 그랬냐.”
잠시 후, 손님들이 다 도착했고 기다리던 파티가 시작됐다.
다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노을이 지고 밤이 되자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유지우도 가기 전.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디에고 로시가 얘기를 더 하자고 해서 집 옥상에 있는 테라스에서 포도 주스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냥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디에고 로시가 본론을 꺼냈다.
“유, 나랑 기예르모도 유럽으로 나갈 거야.”
디에고 로시의 말에 기예르모 다린도 대답했다.
“나도 유럽으로 갈 거다.”
“둘 다? 언제?”
“당장은 아니고, 네가 보카에서 떠나고 나면 2년에서 3년 뒤에.”
“왜?”
“더 넓은 세계에서 나를 증명해보고 싶거든.”
디에고 로시랑 기예르모 다린도 유지우와 마찬가지로 향상심이 있었다.
지금은 보카 주니어스 에이스 자리를 유지우에게 빼앗겼지만, 그들도 홀로 경기를 뒤바꿀 재능이 있어서 어느 클럽에 가더라도 에이스로 뛸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같이 가면 좋지 않아?”
“너한테 밀린 모습으로 유럽에 가고 싶진 않아.”
“맞다. 이대로 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
“2년에서 3년, 보카에서 너의 향기를 싹 지우고 따라갈게.”
유지우가 목표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유지우는 이해했다.
자기와 같은 마음을 가졌다는 건 눈빛만 봐도 아니까.
“쉽지 않을걸?”
“그럴 거 같긴 해.”
웃으면서 얘기를 하자 기예르모 다린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 그리고 내가 생각해 봤는데, 다 유럽으로 갈 거면 우리 셋은 다 다른 클럽으로 가야 한다.”
유지우와 디에고 로시는 그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왜?”
“그야 같이 뛰는 것도 즐겁지만, 상대방으로 만나서 경기하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유지우와 디에고 로시도 수긍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네.”
보카 주니어스 유스부터 같은 팀에서 뛰었으니, 이제는 다른 팀에서 서로 적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이러다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못 한 채, 내가 몇 년이나 여기 있으면?”
“그러면 같이 있으면 되지!”
“답도 없다.”
“디에고는 원래 머리에 생각이라는 걸 담고 다니지 않는다.”
“그건 맞아.”
“아아아아아! 맨날 나만 놀리냐!”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유지우는 피식 웃었다.
“너희들 늦게 나오면 유럽에서도 나한테 밀린다?”
“2년에서 3년만 기다려, 우리가 나가서 금방 따라잡을 테니까.”
“득점은 여기서 내가 제일 많이 할 거다.”
“무슨 소리! 그건 나지!”
대화를 나누던 유지우는 두 선수와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처음 아르헨티나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온 친구들.
“나중에 우리 셋이서 발롱도르 경쟁하는 거다.”
두 선수라면 후회 없는 경쟁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그래!”
* * *
시즌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클럽의 오퍼가 있었지만, 유지우가 곧바로 떠나지 않고 잔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리그 우승,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등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뤘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대륙컵 대회는 우승하지 못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8강 2차전.
1차전에서 2 – 1로 이겼지만, 아직 4강 진출이 확정되진 않았다.
최소 무승부를 해야 하는 경기.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1군을 기용하며 상대의 숨통을 조였다.
[유!!!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환상적인 왼발 슈팅이 골망을 가릅니다! 플라멩구의 강한 수비도 그를 막지 못합니다!]
[오른발과 왼발!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니, 상대하는 수비수 입장에서는 정말 지옥이 따로 없죠!]
반전을 위해 플라멩구가 압박 숫자를 늘려 집중 견제를 해도 유지우를 막는 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스윽.
어떻게든 틈을 찾는 시야.
툭.
그리고 돌파하는 움직임까지.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브라질의 모든 클럽이 유지우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172cm 키로 아르헨티나로 와서 어느덧 183cm까지 자란 키.
키가 훌쩍 큰 탓에 밸런스가 맞지 않아 잠시 고생할 때도 있었지만, 천부적인 재능으로 그것을 극복한 지금은 더는 피지컬이 약점으로 꼽히지 않았다.
거친 몸싸움에도 밀리지 않으며 공중볼 다툼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능력.
이에 더해, 원래도 뛰어났던 스킬들은 더욱 일취월장해 있었다.
자신에게 압박이 몰리면 공간으로 찔러주는 패스 능력.
무엇보다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화려한 테크닉.
철렁.
새로운 10번의 플레이에 라봄보네라에 금빛 물결이 요동치는 건 이제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다시 터지는 득점포오오오오! 유를 보기 위해 찾아온 유럽 스카우터들이 곳곳에 있을 겁니다! 지금 그들은 이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이적하겠다고 선언한 유! 만약 유가 정말 그 말을 지키게 된다면, 이제 보카 주니어스에서 그와 함께할 시간은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시즌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그래서 유럽 클럽 스카우터들은 아르헨티나에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허구한 날 찾아왔다.
이 기세라면 유지우가 목표로 했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이 가능해 이적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과연 수많은 클럽 중 유를 품을 클럽은 어느 클럽일까요!]
유지우를 향한 관심은 여름 이적 시장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열기도 뜨거워졌다.
삐-익! 삐-익! 삐------익!
[유의 2골에 힘입어! 보카 주니어스가 플라멩구를 4 - 1로 꺾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강에 진출합니다!]
[작년 준우승의 아픔을 딛고 다시 우승에 도전하는 보카 주니어스! 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강에 오르며 점차 원했던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K.O.M으로 뽑힌 유지우는 관중석으로 가 언제나처럼 팬 서비스를 했다.
【 보카 주니어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강 진출! 】
유지우가 목표로 했던 것들이 점차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