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22화 (122/383)

제122화

시즌이 진행되면서 유지우의 다큐멘터리 촬영도 흐름을 탔다.

매주 시청률이 높아졌고 SMC가 운영하는 너튜브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이 유지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와, 훈련을 저렇게까지 하니까 그런 플레이가 나오는구나.

-훈련 영상은 거의 매주 안 빠지고 나오는데 볼 때마다 감탄함 ㅋㅋㅋㅋㅋㅋㅋ

-훈련만 하냐? 혼자 비디오 분석까지 하잖아.

-노력 + 노력은 뭐다? 천재다.

그렇게 여러 주제로 유지우의 일상을 담던 촬영팀은 아시아에서 스카우트팀 활동을 하다가 아르헨티나에 입국한 스카우터 로드리고를 만났다.

-“제가 유를 발굴하게 된 계기요?”

-“네, 많은 분이 궁금해하세요.”

유지우가 대한민국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가게 된 일화는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 막 유지우를 알게 된 이들이 그런 사실까지는 알기 힘들었고, 자연히 SMC 방송국 사이트엔 그런 부분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그래서 촬영팀은 이 기회에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고자 로드리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음.”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는 로드리고는 어떤 것부터 이야기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2028년 3월에 한국에 일이 있어서 입국했는데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근처 축구 경기를 보러 갔어요.”

2028년 3월에 개최됐던 ‘Future Cup’, 로드리고가 유지우를 처음 본 경기였다.

-“원래 대회를 자주 보러 다니시나요?”

-“늘 버릇처럼 대회를 보러 다녀서 그때도 그냥 슬쩍 가본 겁니다.”

로드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곳에서 본 선수들의 수준은 너무 평범했어요. 특출난 선수도 없고 지루해질 때쯤 종료 5분을 남겨두고 한 선수가 필드로 들어왔죠.”

-“그 선수가…?”

-“네, 유였습니다.”

로드리고는 아직 그때가 잊히지 않았는지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종료 5분을 남기고 들어온 유지우가 0 – 2의 경기를 3 – 2로 역전시킬 때,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는 걸 생생하게 말했다.

-“필드에서 가장 빛났어요. 제가 본 어느 선수들보다도 더 강한 빛을요.”

-“그래서 바로 유를 만났나요?”

-“바로는 아니고 만난 건 다음 날이었어요. 제가 유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갔거든요.”

찾아가서 처음에는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는 것도 얘기하고 직접 정장을 입고 집에 가서 설득한 것도 얘기했다.

-“그렇게 보카의 역사를 바꾸는 선수를 데려올 수 있게 된 거죠.”

제작진도 얼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세한 이야기는 몰랐기에 대박을 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며칠 뒤, 로드리고의 인터뷰가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갓드리고시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분이 갓지우를 발굴하신 갓드리고시군요.

-이분 업적은 갓지우만이 아님, 하비에르랑 앙헬, 디에고, 기예르모, 라우타로 등 보카에서 활약하는 선수 대부분 발굴하신 분.

-이 정도면 구단에서 동상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상이 아니라 금상으로 세워야 함.

-ㄹㅇ 이러다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까지 우승하면 ㄹㅈㄷ 아님?

-현 보카의 황금세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될 분임.

* * *

【 한 시즌 60개 공격 포인트를 넘기는 유! 】

【 조기 우승 가능성에 미소 짓는 보카 주니어스! 】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가능성은? 】

“어, 유의 다큐멘터리 촬영팀이네?”

다큐멘터리팀은 구단에서 마련해준 장소에서 카메라를 세팅해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담았다.

시즌 초부터 함께한 다큐멘터리팀이라 선수들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 미스터 강! 밥은 먹었어요?”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이제는 가벼운 인사말을 나누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그렇게 훈련이 끝난 뒤.

유지우는 훈련장 한쪽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의자에 앉아서 제작진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자.

“나 등장!”

디에고 로시와.

“나도 등장.”

기예르모 다린이 양옆에서 파워레인저 포즈를 취하며 장난스럽게 등장했다.

제작진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자주 보는 그림이었으니까.

“인터뷰 중이니까 잠깐 뒤로 가 있어.”

“오케이! 기예르모!”

두 사람은 언제 준비해 왔는지 선글라스를 착용하곤 유지우의 뒤편으로 이동해 경호원처럼 섰다.

유지우가 머리를 감싸 쥐며 한숨을 쉬고 두 선수가 장난을 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그림이었다.

10분 뒤.

“이상으로 오늘 인터뷰는 마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카메라를 끄고 정리하려고 했는데 디에고 로시가 훅 하고 다가왔다.

“아!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한국말로 인사는 어떻게 해?”

카메라 감독은 강 감독을 쳐다봤고 강 감독은 카메라를 계속해서 돌리라고 했다.

“갑자기?”

“나도 한국 사람들 보면 인사하고 싶어서! 요새 경기장에 대한민국 국기 자주 보이잖아!”

유지우는 곧바로 대답하려다가 움찔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바보입니다.”

디에고 로시는 그대로.

“나눈, 바포, 입니돠?”

“자~ 따라 해봐, 나는.”

“나는.”

“바보.”

“바보.”

“입니다.”

“임니다.”

“나는 바보입니다.”

“나눈 바보임니다.”

어색한 한국말.

유지우의 장난에 제작진은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인사말로 착각한 디에고 로시가 동료 선수들에게 퍼트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모두! 제가 한국말 인사 알려 드릴게요!”

* * *

리그 52라운드, 보카 주니어스 vs 라싱 클루브.

경기가 진행되는 라봄보네라에는 유독 많은 사람이 몰렸다.

‘70개 공격 포인트’

그 고지를 넘은 유지우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까지 남은 건 고작 3개라 그걸 달성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사람들로 관중석이 채워졌다.

뻐----엉!

[무려 세 명을 제치며 측면에서 올라와 슈팅까지 시도했지만! 유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납니다!]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슈팅에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아! 저게 빗나가네.”

“골대가 눈치가 없네! 슬쩍 옆으로 이동해줘야지!”

“유가 페르로의 기록을 언제쯤 넘길 수 있을까?”

“이 기세라면 이번 달 정도? 유!!! 73개 넘기고 74개 가자!”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경기는 계속 진행됐다.

[보카 주니어스 1 – 0 라싱 클루브]

전반전에 기예르모 다린의 득점이 터지며 경기는 보카 주니어스가 리드했다.

후반전에서도 그들은 라인을 내리지 않고 올려 라싱 클루브 진형에서 공격적인 빌드업을 만들었다.

‘흠.’

그걸 유심히 보던 유지우는 라싱 클루브의 리듬이 점점 빨라지자 볼이 나간 틈을 타 하비에르 카세로에게 다가갔다.

“하비에르, 템포 한 번 늦추죠.”

“네가 봐도 라싱 녀석들 템포가 올라오고 있지?”

“네, 한 번 죽여놓을 필요성이 있어요.”

“알았다. 미드진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넌 공격에만 집중해.”

그 중심에선 유지우가 경기를 지휘했다.

하비에르 카세로, 앙헬 몰리야.

이 두 선수와 같이 경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보카 주니어스 팬들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

“감독님.”

알베르토 코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세바스티안 란첼라에게 물었다.

“유의 자리를 카를로스가 대체를 잘해줄까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하게 되면 유지우가 이적할 거라는 사실은 이미 선수단은 물론 팬들에게도 퍼져 있었다.

그래서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머리가 아팠다.

경기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오른쪽 윙포워드.

현재 선수단에선 그 자리를 대체할 선수가 없었다.

“안 된다면 영입이라도 해와야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 자리에 선다고 해도, 빈자리는 크게 느껴질 겁니다.”

- 오오오오오오오오!

말을 나누던 그때, 하프라인 아래까지 수비 가담을 한 하비에르 카세로가 볼을 스틸한 뒤 날카롭게 찌른 롱패스.

스르르르르륵.

탑 스핀이 걸린 채, 오른쪽 측면으로 빠르게 날아가며 그곳으로 침투하는 유지우에게 떨어졌다.

투---웅.

떨어지는 볼을 가슴 트래핑으로 받은 뒤.

공중에 있는 볼을 한 번 더 차며 압박을 온 수비수의 키를 넘겼다.

[솜브레로 플릭으로 제치는 유! 측면이 열렸습니다!]

[감각적인 볼 컨트롤! 라싱 클루브가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린 측면으로 달리면서 중앙으로 시선을 돌려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최종 수비수 라인을 타며 침투를 준비하던 기예르모 다린과 눈이 마주쳤다.

‘아직?’

‘조금 더… 지금!’

뻐----엉!

유지우의 땅볼 크로스가 나오자 동시에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한 기예르모 다린.

[오오오오오오! 오프사이드가 아닙니다! 골키퍼가 각도를 좁히며 나오고!]

부심의 기는 올라오지 않았고 기예르모 다린은 땅에 커다란 무지개를 그리는 볼에 집중했다.

‘이제 이런 패스를 받는 날도 얼마 안 남은 건가.’

100억 페소를 줘도 아깝지 않은 패스.

기예르모 다린은 침착하게 발아래로 오는 볼을 원터치로 방향만 틀어 각도를 좁히던 골키퍼의 왼쪽 옆구리를 노렸다.

철렁.

흔들리는 골망.

- 와아아아아아아아!

폭발하는 함성.

이 골을 마지막으로 보카 주니어스는 승리를 하나 더 챙겨갔고.

[이것으로 리그 22호 골을 달성한 기예르모 다린과! 리그 28호 어시스트를 기록한 유! 유는 이걸로 어시스트 신기록을 달성합니다!]

[그것만이 아니죠!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과 한 개를 좁히며! 이제 기록 달성까지 두 개만을 남겨놓게 됩니다!]

작년 시즌에 이어서 유지우는 아르헨티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선수들은 골을 넣은 기예르모 다린과 유지우를 동시에 축하해줬다.

포지션으로 돌아가는 유지우에게 하비에르 카세로가 다가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 미친놈. 어디까지 하려고?”

“이왕 시작한 거 끝은 봐야죠.”

“그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유럽 가서도 성공하겠다.”

“저 이적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왜?”

“그야 앙헬이 이적할 때는 실망했다면서요.”

“그거야 앙헬은 끝까지 남겠다고 약속하고 뒤통수를 친 거라서 화난 거였지.”

“…….”

“너는 아예 처음부터 입에 발린 소리는 안 하고 떠나겠다고 공표를 했잖아. 그런데 실망할 일이 뭐가 있겠어.”

하비에르 카세로는 선수들이 이적하는 것에 대해선 쿨했다.

프로 축구 선수는 많은 이별을 경험하는 직업이니까 멘탈이 단단해진 거였다.

.

.

.

경기 후.

유지우는 팬 서비스를 위해 팬들에게 다가갔다.

관중석 곳곳에선 유지우의 유니폼이 휘날렸고 팬들은 펜스에 매달려 소리쳤다.

“유! 두 개 남은 거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

스스스스스슥.

유지우는 팬들이 내민 유니폼에 사인해주며 미소를 지었다.

“네. 노력하겠습니다.”

담담한 대답.

이게 유지우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답이었다.

크게 오버하지도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선수.

그래서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유지우를 사랑하는 거였다.

“유….”

잠시 후, 아이가 서툰 한국어로 쓴 팻말이 보였다.

- 유니폼 주세요!

삐뚤빼뚤한 글자.

진심이 담긴 글자였다.

유지우는 팻말을 든 아이에게 유니폼을 벗어서 건네줬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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