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23화 (123/383)

제123화

그러던 어느 날.

보카 주니어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보카 주니어스가 우승에 가까워질수록 유가 이적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기분이 들어, 그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하고 떠난다고 했잖아…. 그게 이번 시즌이 아닐까? ]

팬들도 내심 생각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에이스와의 이별.

이건 그 어떤 클럽의 팬들도 겪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 보카 주니어스 팬 일동, “유! 떠나지 마!” 】

해당 기사가 보도되며 보카 주니어스 운영팀에는 유지우의 거취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또야?”

“네, 구단 사이트에 계속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왜 이러지? 앙헬이 떠날 때도 이러지는 않았잖아.”

구단 사이트에는 유지우를 이적시키면 안 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왔다.

“유가 보여준 게 그만큼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구단 직원들도 모두 인정할 정도의 활약.

보카 주니어스의 역사만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에 이름을 새겼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보카가 대회에서 탈락하기를 조금 바라게 되네.”

그들도 가능하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유지우의 이적을 막고 싶었다.

리그 최고 연봉을 줘도 아깝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고 구단 재정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올라오는 글을 보며 아쉬워하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것뿐이었다.

[유를 떠나보내게 된다면 보카의 기세는 거기서 끊길 거야.]

[디에고랑 기예르모가 있어서 리그 우승은 하겠지만, 그래도 유가 없으면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질 거 같긴 해.]

[이건 말도 안 돼! 나의 히어로가 떠난다니! 구단은 유를 붙잡을 생각을 해야 해!]

[우리 아들은 매일 울고 있어, 유가 비가 오는 날, 카페에서 해준 사인지를 끌어안고서.]

[그는 최고의 선수야.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인성마저 최고니까…. 난 그가 남았으면 좋겠지만, 떠나야 한다면 행복을 빌어줄 거야. 그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여야 할 자세니까.]

몇몇 사람들은 유지우의 이적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했지만, 거친 훌리건들은 유지우의 집 앞까지 찾아와 떠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서서히 시간이 흘러갔다.

* * *

【 보카 주니어스, ‘리그 최초’ 조기 우승의 가능성! 】

【 리그 52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조기 우승의 기대감을 높이다! 】

【 유! 대기록까지 앞으로 두 개! 】

【 세바스티안 란첼라, “우리는 늘 하던 대로 할 것.” 】

현재 리그 성적.

「 52전 40승 12무 2패 (132) - 보카 주니어스 」

리그 1위.

「 52전 37승 10무 5패 (121) - 리버 플레이트 」

2위인 리버 플레이트하고 승점 차이는 11점이었다.

4경기를 남겨놓은 상태라 다음 경기만 이겨도 3경기에 11점의 차이를 뒤집지 못하니, 조기 우승이 확정되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르헨티나 축구인을 비롯해 남미 축구인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보카가 작년에 이어서 또 우승하겠던데?”

“리버가 필사적으로 쫓아가긴 하는데 잡히질 않아.”

“리버가 이렇게 밀리던 시즌이 있었나?”

“내 기억으로는 없어, 최근에는 리버가 보카를 제치고 리그 우승을 독점했었으니까.”

리버 플레이트도 나쁜 성적을 거둔 건 아니었다.

보카 주니어스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그렇지, 작년 시즌보다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아니 이게 말이 돼? 리버 플레이트가 이렇게 밀린다고?]

리버 플레이트 팬들은 이 상황을 믿기 싫었다.

[…우리,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이잖아. 근데 어째서 작년 시즌이랑 똑같이 보카의 등만 쫓고 있는 거야!]

[보카는 미쳤어, 전부 마약 검사해야 한다고! 아르헨티나의 왕은 우리 리버란 말이야!]

[이게 다 유랑 디에고, 기예르모! 그 3인방이 낸 결과야! 그 녀석들 셋이서만 낸 공격 포인트를 합치면 100개가 넘는다고!]

[100개? 세 명이? 와, 보카가 공격 포인트 개수가 지난 시즌보다 높던데 그 세 명 때문이었네.]

그건 보카의 3대장이 만든 기록 때문이었다.

새로운 역사를 향해 가는 유지우.

그 밑을 바짝 쫓는 디에고 로시.

그 두 사람보다 득점 비율이 높은 기예르모 다린까지.

[…이건 악몽이야.]

리버의 팬들은 악몽처럼 느껴졌다.

.

.

.

5월 3일.

축구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 ‘라봄보네라.’

리그 53라운드.

6만 석이 넘는 관중석은 만석이었고 심지어 자리에 앉지 못해서 서서 보는 사람도 많았다.

해외 각국에서 온 외신들도 집중하는 엄청난 인파 속, 유지우의 지인도 모두 그곳에 있었다.

한인회.

식당 직원.

알리샤의 가족.

리그 53라운드가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오늘 경기만 이기면 리그 역사상 최초로 보카 주니어스의 조기 우승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전반전이 끝나고 시작된 후반전, 그리고 전광판에 기록된 오늘 경기의 스코어.

[보카 주니어스 3 – 1 클루브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

상대는 리그 16위인 클럽이라 1위인 보카 주니어스하고 전력 차이가 심했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1.5군을 운영했고 유지우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경기를 이끌었다.

“라우타로!”

1월에 1군으로 콜업된 라우타로 오르반과 발을 맞추는 것도 익숙해졌다.

[백업이 빠른 데 라플라타! 라우타로 오르반이 그걸 보곤 템포를 늦춥니다!]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이 있는 선수입니다. 빠를 때는 빠르게, 느릴 때는 느리게, 경기를 운영하는 머리가 좋습니다!]

하비에르 카세로와 앙헬 몰리야의 후계자로 떠오르는 라우타로 오르반은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장점이 많은 선수였다.

무엇보다.

동료에게 뭐가 필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입맛에 맞춰 움직이는 플레이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이 녀석이랑 뛸 때는 뭔가 여유로워져.’

유지우마저 이렇게 느낄 만큼 라우타로 오르반의 플레이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줬다.

살짝 고개를 돌려 파악하는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

넓은 시야와 높은 전술 이해도.

축구 머리는 유지우만큼 좋은 선수라 동료 선수의 빈자리를 메꿔주며 궂은일을 도맡았다.

- 라우타로! 라우타로! 라우타로!

헌신적인 플레이는 자연스럽게 팬들의 환호를 불러왔다.

“유! 뒤로!”

거칠게 압박당하는 유지우 근처로 가 원투 패스를 받아주며 압박을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주변 상황을 살피며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일이 말해줬다.

“유! 붙는다! 조심!”

볼을 받으려고 올라온 유지우의 양쪽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퍼----억!

부딪치는 몸.

하지만 이런 상황을 숱하게 겪어온 유지우에게 압박을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바디 페인팅으로 다리를 벌린 뒤,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는 넛맥은 유지우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가장 자주 보는 동작이었다.

- 오오오오오오오!

[넛맥! 그리고 옆으로 돌아나가며! 볼을 길게 치고 빠른 스피드로 압박을 벗어납니다!]

[탈압박 능력은 리그에서도 최고라고 불리는 선수가 바로 유입니다! 퍼스트 터치를 잡아놓는 것 좀 보십시오! 아름답지 않습니까?]

비어 있는 공간으로 달리다가 정면을 보고선.

- 오오오오오오오!

반 박자 빠르게 패스를 찔렀다.

수비수들의 타이밍을 빼앗으며 센터백과 왼쪽 풀백의 사이로 빠져 뒷공간으로 흐른 볼.

타다다다닷-!

살짝 왼쪽으로 휘면서 침투하는 디에고 로시의 보폭에 딱 맞게 들어갔다.

[기에르모를 지나 디에고에게 정확하게 향한 패스으으으으으!]

디에고 로시는 침착하게 골문을 살피곤 파 포스트로 가볍게 돌려놓는 논스톱 슈팅을 때렸다.

철렁.

보카의 3대장을 막을 클럽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디에고 로시의 득점이 나옵니다!]

[이게 디에고 로시의 강점이죠! 상대 수비수가 따라오지 못하는 타이밍의 라인 브레이킹! 그리고 골대 안으로 안정적으로 밀어 넣는 결정력까지! 괜히 빅클럽의 관심을 받는 선수가 아닙니다!]

디에고 로시도 유지우처럼 많은 클럽의 관심을 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유!!! 사랑해!”

그리고.

누구보다 유지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선수였다.

삐익! 삐익! 삐-------익!

[리그 53라운드에 승리하며! 조기 우승을 확정을 짓는 보카 주니어스! 비록 무패는 아니지만! 2패라는 최소 패배를 기록하며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리버 플레이트를 따돌리며 2연패를 차지합니다!]

[그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이 선수!]

화면에 유지우의 모습이 담겼다.

[유가 있었습니다! 작년 컵 대회를 제외한 리그 성적은 22골 25어시스트 그리고 이번에는 아직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23골 31어시스트로! 리그에서만 작년보다 7개 많은 54개의 공격 포인트를 세웠습니다!]

리그에서만 50개의 공격 포인트.

컵 대회 성적까지 합치면 72개의 공격 포인트로 작년 기록을 깨고 최다 기록까지 위협하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이것으로 최다 공격 포인트! 페드로 발렌수엘라의 기록과 고작 1개 차이로 좁히는 데 성공합니다!]

사람들은 조기 우승도 조기 우승이지만, 유지우가 써 내려가는 새로운 역사에도 관심을 가졌다.

“…와, 우리가 보는 게 정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페드로가 세운 기록과 가까워지는 걸 볼 줄이야.”

“지금까지 제일 가깝게 간 게 하비에르였지?”

“어, 24-25시즌에 63개 공격 포인트 세웠었잖아.”

“하비에르가 못한 걸 지금 유가?”

페드로 발렌수엘라가 세운 73개의 공격 포인트.

이건 그 누가 와도 깨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그 위대한 기록을 위협하는 선수의 모습을.

【 유! 페르도 발렌수엘라의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을 깰 수 있을까? 】

점차 이런 기사가 많아지자 조용히 있던 페드로 발렌수엘라가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 페드로 발렌수엘라, “유의 폼은 좋다. 하지만 내 기록을 넘기지는 못할 것.” 】

주인공이 등장하며 열기는 더 활활 타올랐다.

남은 경기는 리그 3경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강 2차전, 그리고 이긴다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까지.

총 5경기.

보카 주니어스가 더블을 기록하며 트레블 달성을 코앞에 두었듯 유지우가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에 관한 관심도 끊이지 않았다.

“유! 대기록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세울 자신이 있으신가요?”

이러한 질문에 유지우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담담히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그리고 기대하는 팬들의 눈빛이 생각나며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말했다.

“기록을 경신해 보카 주니어스라는 이름을 역사에 새길 겁니다.”

유지우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 공은 보카 주니어스의 금빛 바다에 떨어지며 큰 파도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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