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24화 (124/383)

제124화

경기 후, 기자들이 모인 믹스트 존에선 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쓴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기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상 최초로 조기 우승을 달성하셨는데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전 그저 뒤에서 푸시만 해줬을 뿐,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최선을 다해 이뤄낸 성과입니다. 모든 영광을 선수들과 곁에서 도와준 스태프들에게 돌립니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서 이뤘다는 걸 강조했다.

그만큼 선수단 모두가 노력해서 이룬 결과였다.

‘리그 최초’.

이 수식어를 단 감독이 되니, 가슴이 저절로 두근거렸다.

꿈꿔왔던 일.

하지만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어려운 일.

1%의 가능성을 100%로 실현할 때 오는 만족감은 최고였다.

그 뒤로도 여러 질문이 나왔고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한 가지의 질문이 나왔다.

“오늘 경기가 종료되며 유의 총 공격 포인트가 72개가 됐습니다. 이제 한 개가 채워지면 페드로 발렌수엘라와 동률의 기록을 갖게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유가 그걸로 만족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유는 73개가 아닌 74개, 75개, 그 이상을 노리고 있으니까요.”

그 말이 맞았다.

유지우는 타이기록으로 만족할 선수가 아니었다.

눈앞의 대기록을 넘어 새로운 기록을 세울 자격을 갖춘 선수였다.

“유는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을 해주는 선수입니다. 그러니 그 선수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기대하고 지켜봐 주십시오.”

* * *

【 보카 주니어스! 리그 역사상 최초로 조기 우승 달성! 】

【 ‘2연패’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의 진정한 주인이 되다! 】

【 세바스티안 란첼라, “내가 아닌 선수들이 이룬 업적.” 】

【 31개로 리그 어시스트 신기록을 세운 유! 지난 시즌에 이어 새롭게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기다! 】

【 보카 주니어스는 남미 축구 리그 역사상 ‘최초’ 트레블을 달성하는 클럽이 될 수 있을까! 】

보카 주니어스가 조기 우승을 확정 짓자 언론은 앞다투어 기사를 다뤘다.

신문 1면에 실린 디에고 로시와 유지우가 포옹하는 모습은 화제가 됐고 보카 주니어스 팬 커뮤니티에는 연신 글이 올라왔다.

[우리가 조기 우승? 이거 꿈 아니지? 내가 보는 게 정말 맞는 거지?]

[리그 역사상 최초라고! 내 사랑 보카! 보카여 영원하라!]

[이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까지 우승하면 유는 정말 떠나게 되겠네. 유가 보카 주니어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을 보는 날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게 너무 슬퍼.]

[유가 떠나는 건 슬프지만… 마지막에는 제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싶다. 작년에 못 든 거 이번에 시원하게 들어 올리자! 제발!]

이어지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강 2차전까지 승리하며 마침내 작년에 이어서 결승에 진출했다.

【 보카 주니어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진출 확정! 】

【 유! 결승 골로 최다 공격 포인트 타이기록을 세우다! 】

리그 54라운드, 리그 55라운드에선 결승을 대비해 휴식을 가졌다.

리그 최종 라운드인 56라운드를 앞둔 어느 날.

세바스티안 란첼라의 호출로 감독실로 갔다.

“부르셨어요?”

감독실 안으로 들어가자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미리 준비해둔 차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앉았다.

“앉아라.”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차를 반 정도 마시자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입을 열었다.

“‘우승하게 되면’이란 말은 하지 않도록 하지. 우린 어차피 우승할 거니까.”

“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음이 네가 보카 주니어스에서 뛰는 마지막 홈경기가 될 거야. 그렇지?”

“…그렇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하게 된다면 떠날 생각이었다.

시즌 초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시즌 초만 해도 와닿지 않았던 ‘마지막 홈경기’.

그게 바로 앞으로 다가오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기분이 어때?”

“아쉽죠.”

그동안 라봄보네라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도 아쉽다.”

“더 있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계약할 곳은 알아보고 있고?”

“오퍼 오는 곳이 많아서 우승한 뒤에 협상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초심만 잃지 않으면 넌 뭘 하든 성공할 거야.”

“감사합니다.”

유지우에게 여러 무기가 있지만, 그중 최고는 ‘성실함’이었다.

뛰어난 재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배는 노력하는 성실함이야말로 세바스티안 란첼라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뽑는 유지우의 최대 강점이었다.

“그리고 내일 리그 최종 라운드에 너를 선발로 기용할 거니까 마지막 홈경기에서 팬들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경기를 보여줘라.”

“네.”

“그리고 기록도 확실하게 달성해.”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말하는 기록은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이었다.

“알겠습니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유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한다.”

그 손을 본 유지우는 웃으며 손을 잡았다.

“맡겨주세요.”

“아쉬워서 미치겠네. 나도 같이 가야 하나?”

“정말요?”

“정말이겠냐?”

“…이제 농담도 잘하시네요.”

“너야말로 이제는 자주 웃어서 좋다. 처음에는 감정도 없는 로봇인 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에 처음 왔을 때는 웃지 않았던 작은 아이가 아르헨티나를 떠날 때가 되자 활짝 웃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최고의 감독으로 만들어드린 뒤, 떠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인생을 바꿔준 보카 주니어스.

그곳에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고 떠나고 싶었다.

* * *

보카 주니어스 홈, 라봄보네라.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조기 우승을 확정 지을 때보다 인파가 더 많이 몰렸다.

라봄보네라 입구부터 관중석을 가득 채운 금빛 물결.

“어쩌면 오늘이 유와 마지막이네.”

“무슨 소리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이 남았잖아!”

“아니, 홈에서 뛰는 거.”

어쩌면 라봄보네라에서 뛰는 마지막 경기.

팬들은 에이스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관중석을 채웠다.

잠시 후.

삐----익!

만석이 되며 시작된 리그 최종 라운드.

응원가는 쉬지 않고 들렸고 골망도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전반전은 보카 주니어스가 두 골을 넣은 채 끝났고, 시작된 후반전.

툭.

툭.

툭.

선수들은 유지우에게 볼을 몰아줬다.

평소 경기에도 유지우가 경기를 메이킹하기 때문에 볼이 많이 가지만, 오늘은 유독 그 횟수가 많았다.

“유! 어디 있어!”

“유!”

“달려! 내가 패스할 테니까!”

동료 선수들은 자기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돌려 유지우를 먼저 찾았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작년부터 올해까지 최고의 활약으로 보카 주니어스를 아르헨티나 최고로 만들어준 에이스를 위한 그들만의 작은 선물이었다.

[오늘 공격 포인트를 달성하게 되면! 유는 새로운 기록을 가진 주인이 됩니다!]

모두가 기대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후반 21분.

유지우가 측면에서 올라오기 시작하자 두 명의 선수가 따라붙었다.

퍼---억!

더 들어가지 못하게 거칠게 몸으로 밀어보지만, 유지우는 주력으로 따돌렸고 빈 곳으로 가자.

“때려!”

절묘한 타이밍에 하비에르 카세로의 패스가 왔다.

눈앞에 놓인 맛있는 밥상에 유지우는 숟가락만 올렸다.

철렁.

왼쪽 구석으로 들어가는 볼.

그렇게 유지우의 시즌 통산 74개의 공격 포인트가 달성됐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자 몰아치는 금빛 물결.

촤-----악!

유지우는 유니폼 상의를 벗으며 포효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올! 유가 드디어! 드디어! 74개의 공격 포인트를 달성하며 새로운 기록의 주인이 됩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 그리고 보카의 팬들은 관중석으로 뛰어나올 듯이 요동칩니다!]

새로운 기록을 세운 에이스를 향해 관중들은 아발란차 세레머니로 화답했다.

“사랑한다아아아아아!”

표정에서 드러나는 행복감.

관중들은 유지우의 응원가를 부르며 기뻐했다.

“아드으으으으으을!”

관중석에 있던 유한우는 누구보다도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에서 힘들어했던 아들.

지금은 그 힘든 걸 모두 잊고 화려하게 날아오른 걸 보자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졌다.

그 뜨거움은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 * *

그렇게 새로운 기록을 세운 유지우는 동료 선수들의 도움으로 한 골을 추가로 넣었다.

[벌써 두 골을 넣고 있는 유! 우승도 확정 짓고 기록도 세웠지만, 최선을 다해 필드를 누빕니다!]

70분.

75분.

상대 팀은 더 이상의 실점을 막으려고 유지우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라인 근처까지 압박해서 몰아붙이려고 했는데.

유지우는 아주 미세한 좁은 틈새를 라 크로케타로 빠져나갔다.

라인에 걸친 볼.

상대 선수들은 나갔다고 손을 들었지만, 부심의 기는 올라오지 않았다.

- 오오오오오오오!

화려한 돌파 후, 폭발적인 스피드로 공간을 찢어버렸다.

[유! 중앙으로 올라오면서 하비에르 카세로와 원투 패스로 한 명 더 제칩니다! 수비수들이 올라오는 타이밍이 늦습니다!]

돌파를 경계하며 라인을 내린 수비진.

그걸 본 유지우는 하비에르 카세로가 내준 볼을 왼발로 강하게 때렸다.

레이저처럼 쭉 뻗는 볼.

골키퍼가 볼이 날아오는 궤적을 보곤 점프를 뛰며 손을 뻗었고.

철렁.

볼은 골키퍼의 손을 지나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 리그 최종 라운드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해트트릭을 달성한 유! 이것으로 통산 76개의 공격 포인트를 만들며!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차이를 벌립니다!]

해트트릭을 달성한 유지우는 시선을 하늘로 두고 양쪽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했다.

라봄보네라의 하늘.

이곳에서 득점하고 보는 마지막 하늘이라는 걸 직감하듯이 하늘로 뻗은 손은 내려오지 않았다.

* * *

점수는 좁혀지지 않았고.

< 보카 주니어스 5 – 0 CD 고도이크루스 >

유지우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했다.

89분이 지날 때.

삐----익!

보카 주니어스 측에선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한 장 남은 교체 카드를 유지우에게 썼다.

[세바스티안 란첼라 감독이 그러더군요. ‘우린 우승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번이 유의 마지막 홈경기가 될 것이다.’ 라고요.]

[하하.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그 말대로라면 저흰 지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9-30시즌부터 보카 주니어스의 역사를 새롭게 쓴 에이스! 유가 해트트릭을 기록해 새로운 기록의 주인이 되어 필드를 나옵니다!]

팬들에게 박수받고 나오라는 대우였다.

유지우가 걸어서 나오자 팀 동료들은 박수를 보내줬고 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들려오는 노랫말.

[한 걸음을 내디딜 때는 두려움을.

두 걸음을 내디딜 때는 환호를.

세 걸음을 내디딜 때는 승리를!

길을 비켜라, 그리고 무릎을 꿇어라.

새로운 왕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찬양하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우리의 새로운 왕 유에게 경배를!]

어쩌면 라봄보네라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응원가가 들려왔다.

응원가를 들으며 필드를 나온 유지우는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삐익-! 삐익-! 삐이이이이이이익!

[종료 휘슬이 울리며 이렇게! 30-31시즌의 리그 경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보카 주니어스는 42승 12무 2패로! 리그 1위로 리그를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코파 수다메리카나 + 리그 우승을 완성하며 ‘더블’이 완성됐다.

작년에도 기록했던 성적.

그리고 작년에 코앞까지 왔었지만 놓쳤던, 남미 축구 리그 역사상 최초 트레블까지 남은 건 하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보카 주니어스 vs 코린치안스.

작년 결승의 리벤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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