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상승세 속에서 아스날 선수단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게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아드리안! 제로톱 전술일 때는 네가 라인을 내려와서 양 사이드로 이동하는 것도 중요해.”
폴 사르 감독은 휘슬을 불며 선수들에게 일일이 지시했다.
개막을 준비하면서도 발을 맞춰보긴 했지만,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마틴! 종적인 움직임 말고 횡적인 움직임도!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오른발로 슈팅도 시도해보고!”
“네!”
폴 사르 감독은 자신의 가치관을 선수단에 녹이는 데 주력했다.
작년 시즌은 기존의 선수들로만 한 시즌을 꾸렸던 터라 한계가 있었는데, 올 시즌은 원하는 선수들을 영입하며 숨통이 트였다.
“솔! 그리고 메이슨. 후방에서 시야가 넓은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해?”
“볼 배급이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
“…아, 상대 선수들의 위치 파악?”
짝.
“그렇지! 아무리 공격력이 좋은 팀이라도 수비가 약하면 지게 되어 있는 게 축구야! 너희들이 할 역할은 공격작업을 하는 선수들을 보조해주면서 포백 보호를 착실하게 하는 거라는 걸 명심해.”
솔 테일러와 메이슨 가벗.
이 두 선수는 알려주는 걸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선수들이었다.
그래서 폴 사르 감독은 이 두 선수를 신임했다.
“훈련 때, 흘린 땀의 양만큼! 실전에서 실수는 준다!”
폴 사르 감독은 선수들과 발을 맞췄다.
40대의 젊은 감독.
도르트문트로 유럽을 뒤흔들었던 그때처럼 그는 선수들에게 채찍을 꺼내 들었다.
삐----익!
“슈팅 타이밍이 늦잖아!”
삐---익!
“압박 들어오는데 언제까지 볼만 잡고 있을 거야! 무슨 볼이 애인이라도 돼?”
삐---익!
“야! 다른 선수들 뛰어다니는 데 넌 걸어? 영영 두 다리 부러트려서 기어 다니게 해줘? 어?”
사석에서 늘 웃으며 다녔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폴 사르 감독은 훈련 때 설렁설렁하는 건 두 눈 뜨고 보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우리는 도전자 입장이다! 챔피언들과의 격차를 좁히려면! 챔피언들이 걸을 때, 달리고! 챔피언들이 잘 때, 달리고! 챔피언들이 방심할 때, 창을 꽂아 넣어야 한다!”
구단 직원 중에는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리그 3연승 중인데 저렇게까지 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아스날 선수단의 분위기는 좋았다.
리그 3연승.
최근 몇 년간 가장 좋은 출발을 보인 터라 구단 전체가 들뜬 상태였다.
“긴장감.”
직원의 말에 대니 그레이 수석 코치가 말했다.
도르트문트 시절부터 폴 사르 감독과 함께한 그는 도르트문트가 유럽에 반향을 일으킬 때의 폴 사르 감독의 모습을 똑바로 기억했다.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겁니다.”
상승세라고 해도 순간 방심했다간 바로 하락세로 간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감독님을 믿고 따라보죠, 감독님께서 저런 표정을 지으실 때면, 항상 기적을 만들어내셨으니까요.”
선수들에게 화를 내는 듯하면서도 아닌 듯한 표정.
그건 폴 사르 감독의 열정을 나타내는 표정이었다.
삐----익!
“잠시 휴식! 10분 뒤에 다시 모인다!”
선수들은 휴식했고, 폴 사르 감독은 조금도 쉬지 않고 다음 경기 상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훈련 시스템을 짰다.
“그리고….”
폴 사르 감독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는 감독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그의 신념은 하나.
‘내 머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머리도 최대한 활용해야 100%에 가까운 전술이 나온다.’
이런 신념으로 폴 사르는 항상 주변 코치진들의 생각을 묻고 일을 진행 시켰다.
* * *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하고 아스날의 소식은 전 세계로 전해졌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도 뉴스가 보도되며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유지우의 활약을 보며 함께 기뻐했다.
[오! 나의 히어로가 아스날의 히어로가 되어가고 있군!]
[아스날로 간다고 했을 때, 그게 옳은 선택인가 의문이 들었어. 그런데 그는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어.]
[기뻐해라! 영국 놈들아! 너희들이 지금껏 보지 못한 마법이 그의 발에서 시작될지니!]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커뮤니티에 유지우의 활약에 대한 댓글을 달았다.
떠난 선수를 왜 그렇게 좋아하냐는 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팬들은 유지우를 그리워했다.
[떠난 선수라고? 유가 우리한테 주고 간 커다란 선물을 봐봐!]
[대응할 필요 없어, 저 댓글을 쓴 놈은 분명히 강 너머의 닭장에서 온 녀석일 거야.]
그들은 여전히 유지우를 지지했다.
그만큼 유지우가 보카 주니어스 유니폼으로 이룬 업적을 존중하는 거였다.
【 보카 주니어스! 리그 5연승! 디에고 로시! 3골 3도움 기록! 】
【 세바스티안 란첼라, “우리는 원팀. 2연속 트레블을 이루겠다!” 】
【 디에고 로시, “유! 보고 있어?” , 시즌 2호 해트트릭 달성! 】
유지우가 떠난 보카 주니어스는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이 에이스가 되어 이끌었다.
그리고 그 두 선수는.
- “유! 우리 경기 봤어?”
매일 유지우에게 전화를 걸어 일과를 보고했다.
* * *
아스날FC – 4전 3승 1무.
현재 아스날의 리그 순위는 리그 3위였다.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동일한 성적을 낸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 FC에게 골득실이 밀리며 이렇게 랭크됐다.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아스날 vs 뉴캐슬 유나이티드.
경기는 전반전이 끝나 후반전이 됐고 스코어는.
[ 2 – 1 ]
아스날이 이기고 있었다.
특히 마틴 그라임스의 폼이 바짝 올라왔다.
주력이 그렇게 빠른 선수는 아니지만, 신체 밸런스가 좋아 간단한 탈압박은 기본이었고 가장 강력한 무기는 크로스였다.
뻐----엉!
[마틴 그라임스의 크로스으으으으으!]
[아! 이게 아드리안의 머리를 맞고 골대 위로 벗어납니다!]
아드리안 로마오는 아쉬움에 바닥을 치며 일어났고 유지우가 옆으로 다가갔다.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골키퍼가 갑자기 거리를 좁히는 바람에.”
“그럴 때는 그냥 골대 안으로만 꽂는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지 않아요?”
유지우는 필드 안에서 선수들은 멘탈관리도 같이 해줬다.
그렇게 여러 기회를 만들어갔다.
패스는 물론 돌파.
그리고 마무리는 뉴캐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까—앙!
[유지우 선수의 왼발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 아쉽게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공격이 가능하게 된 건 수비 덕분이기도 했다.
후방에서 확실하게 뉴캐슬의 공격을 막아주니, 공격자원의 선수들이 수비 가담하는 부담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너희들은 내려오지 마! 뒤는 우리가 맡을 테니까!”
솔 테일러도 중앙 미드필더지만, 수비적인 성향이 짙은 선수였다.
그래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수비지역을 통솔했고 그곳에서 두드러지는 선수는 바로.
데------릭!
아스날 팬들의 영원한 거너스 데릭 레드먼드였다.
“으아아아아아!”
포효하면서 태클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 파이팅 넘치는 모습에 아스날 팬들도 같이 텐션이 올라갔다.
“그거야! 데릭! 뉴캐슬 녀석들을 다 죽여버리라고!”
얼핏 보면 가벼운 몸싸움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데릭 레드먼드를 상대한 선수가 느끼는 건 달랐다.
‘…미친! 이놈이랑 부딪치면 무슨 트럭이랑 부딪치는 느낌이야.’
뉴캐슬 스트라이커 뱅상 타왐바가는 데릭 레드먼드와 부딪힌 뒤, 필드에서 거하게 한 바퀴를 굴러야 했다.
그는 곧장 일어나 주심에게 어필했지만, 주심은 정상적인 플레이라고 판단했다.
[아스날이 암흑기라고 하지만! 그 암흑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내는 선수! 아스날에는 데릭 레드먼드! 레장군이 있습니다아아!]
몸싸움을 통해 빼앗은 볼을 데릭 레드먼드가 솔 테일러에게 넘겨주며 소리쳤다.
“몇 골이던 막아줄 테니까 팍팍 넣어!”
당당한 모습.
아스날의 악동에서 주장이 된 사나이의 포스는 필드에서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다.
* * *
수비에서 메이슨 가벗, 솔 테일러, 데릭 레드먼드가 지켜주고 있다면 공격을 이끄는 건 크리스티안 페레스와 유지우의 역할이었다.
[크리스티안 페레스에게 강하게 붙는 뉴캐슬!]
순식간에 두 명의 선수에게 몰린 크리스티안 페레스.
“크리스티안! 옆!”
그런 그를 도와주는 건 유지우의 역할이었다.
[유지우 선수입니다! 중앙으로 올라오며 볼을 받아주고! 그대로 전방으로 스루 패스으으으으! 아드리안! 아드리아---안!]
단 몇 초 사이에 볼을 잡고 패스를 찔렀다.
뉴캐슬도 타이밍을 잡지 못한 빠른 타이밍의 패스에 아드리안 로마오가 필사적으로 쫓아가 발을 뻗어보지만.
- 아아아아아아아!
간발의 차이로 골라인 아웃이 되고 말았다.
[빗나가는 회심의 패스! 아드리안 로마오가 조금만 더 빨리 반응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겁니다!]
번개 같은 패스.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플레이 메이킹을 하지 않아도 아스날에는 아르헨티나를 지배하고 온 플레이 메이커가 있었다.
툭.
툭.
툭.
중원에서 패스로 풀어가고.
뻐----엉!
기회가 오면 가차 없이 볼을 넣어주는 모습에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쟤랑 플레이하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이야.’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스루패스가 주 무기인 선수였다.
간단한 드리블이나 볼 보호 능력도 탁월해 기회를 만드는 ‘메이킹’ 능력도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강한 압박에 시달렸는데, 유지우와 함께 뛰니 프랑스 리그보다 더 압박이 강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게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삐---익!
볼이 나간 틈을 타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유지우에게 다가갔다.
“유, 너는 어떤 종류의 패스를 원해?”
이 물음에 유지우는 물로 입안을 한 번 헹구고 뱉은 뒤 말했다.
“네가 원하는 코스로 해, 네가 찌르면 내가 어떻게든 잡아서 마무리할 테니까.”
보통은 자기가 원하는 코스를 얘기하는 데 상대방이 원하는 코스를 원하다니.
그런데 그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67분.
뉴캐슬의 역습이 끊긴 뒤, 아스날의 역습이 빠르게 전개됐고 솔 테일러가 준 패스를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받기 전에 고개를 돌려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왼쪽은 늦고 중앙은 빨라…. 그리고 오른쪽은… 완벽해.’
뻐---엉!
퍼스트 터치로 등 뒤에 붙은 압박을 떼어낸 뒤에 벼락같은 패스를 찔렀다.
[크리스티안 페레스! 뉴캐슬의 수비백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빈틈! 정확히 빈틈을 노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파고드는 한 선수!!! 유지우 선수입니다!]
본래 패스를 주 무기로 하는 선수들은 본인이 원하는 패스로 경기를 만들어가는 걸 원했다.
‘이건 완전.’
그런데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방금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본인이 원한 패스는 맞았지만, 순서가 달랐다.
‘패스를 하게끔 만드는 선수라.’
유지우는 패서들을 본인의 입맛대로 패스를 찌르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는 선수였다.
순식간에 볼을 잡고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보고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실소를 터트렸다.
철렁.
말을 내뱉으면 지키는 사람.
그것이 유지우였다.
[ 유지우! 유지우! 유지우우우우우우우우! 고오오오오올! 이걸로 리그 3호골을 신고합니다! ]
유지우는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며 가슴에 있는 엠블럼을 강하게 쳤다.
그리고 마지막엔 엠블럼에 키스까지.
근본 넘치는 모습에 아스날 팬들은 열광했고 경기는 그렇게 유지우의 골을 마지막으로 아스날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 아스날! 5전 4승 1무! 리그 3위 유지! 】
프리미어리그에 아스날이라는 돌풍이 불어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