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48화 (148/383)

제148화

아스날 라커룸 안.

치열했던 전반전이 끝난 뒤, 지친 선수들은 라커룸에 들어와 후반전을 앞두고 짧은 휴식을 가졌다.

“하아, 맨체스터 시티랑 이렇게 경기해보는 게 얼마 만이냐.”

그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묻어있었다.

그동안 무기력하게 진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를 이렇게 대등하게 하고 있으니,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기억도 안 나네.”

“그래도 왠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말은 이렇게 해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차이 나는 전력.

그것을 메꾼 것은 선수들의 정신력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체력소모가 더 심했다.

“자, 다들 주목해라.”

폴 사르가 코치진들과 라커룸으로 들어와 곧장 대형 모니터를 틀어 전반전 데이터를 띄웠다.

“지금부터….”

폴 사르는 전반전의 경기 양상을 선수들에게 말해줬다.

첫 번째로는 칭찬.

두 번째로는 실수한 부분에 대한 지적.

그리고 마지막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아직도 맨체스터 시티가 두려운 상대라고 느끼나?”

폴 사르의 말에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이자 프리미어리그의 최강 클럽을 상대하는 데 두려움이 안 생긴다는 게 이상한 거였다.

더구나 아스날은 작년까지 패배 의식에 찌든 팀이었으니까 더더욱 두려움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든 상관없어, 두려움과 희망은 항상 같이 공존하는 감정이니까.”

스포츠에선 강팀과 약팀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승패가 명확하니까.

중요한 건 그런 구조 속에서 가지는 마음가짐이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새겨넣어라.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생각하는 걸 멈춰선 안 돼!”

폴 사르는 선수들에게 계속해서 얘기했다.

“최고의 선택이라는 건 그냥 찾아오는 게 아닌 끊임없이 고뇌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라는 걸 명심해라.”

맨체스터 시티를 잡는 데 필요한 건 ‘간절함’이었다.

아스날 선수들은 가슴에 간절함을 품었다.

암흑기였던 지난 세월.

이제는 달라졌다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겁쟁이처럼 굴지 말고! 용기를 가져라! 이곳까지 응원을 온 팬들을 실망시키지 마!”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클럽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본 아스날 선수들은 의욕을 불태웠다.

* * *

10분.

후반전이 시작되고 맨체스터 시티는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그걸 지켜보는 아스날 팬들은 더 목소리를 높여 힘든 싸움을 하는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다.

[율리안 쿠겔이 왼쪽 사이드로! 안드레 마르틴스가 잡는데요!]

안드레 마르틴스가 마크하던 스티븐 하머를 스텝 오버로 떨쳐내고 크로스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크로스를 올리려고 하는 순간.

촤----악!

옆에서 들어오는 태클.

멀리서 단숨에 수비 가담을 들어온 유지우가 슬라이딩 태클로 깔끔하게 볼만 건드는 데 성공했다.

[오---! 유지우 선수입니다! 유지우 선수가 최후방까지 수비 가담을 해줍니다!]

[그리고 볼은 라인 아웃이 되지 않은 상황! 유지우 선수가 아웃 직전! 볼을 멀리 걷어내며 위험지역 밖으로 처리합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고전하는 이유는 아스날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도 한몫했다.

특히 유지우가 있는 측면은 맨체스터 시티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이런 투혼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아스날 팬들은 목청껏 소리쳤다.

“이길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시티 녀석들한테 제발 이겨줘!”

“유---! 시티 녀석들한테 한 방 먹여줄 건 너밖에 없다!”

팬들의 염원이 선수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염원의 끝에 볼을 받은 건 유지우였다.

[유지우 선수가 볼을 잡자! 근처에서 두 명의 선수가 압박합니다!]

[맨시티는 어떻게든 유지우 선수를 봉쇄하려고 할 겁니다!]

전반전부터 꾸준한 위협이 된 유지우는 집중 견제 대상이 됐다.

마크하는 두 선수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살폈다.

어느 방향으로 스텝을 밟는지.

어느 방향으로 중심을 옮기는지.

어느 방향을 쳐다보는지.

그 모든 데이터를 찰나의 순간 분석해냈다.

‘저기다!’

데일 모리슨의 뒷공간으로 볼을 보낸 뒤, 가속도를 이용해 달려갔다.

마르크 아하나흐가 볼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볼과 가까운 쪽은 마르크 아하나흐였다.

하지만 유지우는 이런 걸 다 머릿속으로 계산해놨다.

‘이 정도면 제칠 수 있다.’

스피드로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폭발적인 가속도로 간발의 차이로 먼저 볼을 터치했고, 마르크 아하나흐의 태클을 벗어났다.

[엄청난 스피드! 유지우 선수의 강점은 바로 이 스피드입니다!]

[두 명의 선수를 제치며! 측면을 여는 유지우 선수! 맨체스터 시티의 골문 앞은 아드리안 로마오와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쇄도합니다!]

선수들의 위치를 입력하곤 크로스를 올렸다.

뻐--엉!

수비수의 틈을 파고드는 아드리안 로마오의 머리를 겨냥한 크로스는 부메랑처럼 휘었다.

[아드리안 로마오---!]

머리에 맞은 볼은 골대가 아닌 다른 쪽으로 향했다.

왼쪽 측면에서 침투하는 마틴 그라임스의 앞이었다.

글렌 테일러 골키퍼를 일순간 속인 플레이, 그리고 그 플레이의 끝은.

철렁.

득점으로 연결됐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고----올! 아스날이! 1 – 1 균형을 먼저 깨트립니다!]

[아드리안 로마오와 마틴 그라임스의 완벽한 합! 이 두 선수가 악스날의 개와 고양이입니다!]

골을 넣은 마틴 그라임스는 가슴에 있는 엠블럼을 치며 포효했고 아드리안 로마오는 유지우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갔다.

“…아, 아까 실수 이걸로 묻어주면 안 될까?”

“잘했어요.”

“진짜?”

“왜 직접 슈팅안 하고 마틴한테 넘긴 거예요?”

“아, 각도가 쉽지 않았거든…. 그래서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어.”

말을 들은 유지우는 웃으며 아드리안 로마오의 어깨를 토닥였다.

“멋졌어요.”

“…하하하하!”

완벽한 기회에서 득점을 실패한 실수를 잊은 아드리안 로마오는 선수들이 세레머니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흐하하하하! 유가 칭찬해줬어!”

아스날의 개 아드리안 로마오.

“네 멍청한 머리가 도움이 될 때가 다 있다?”

아스날의 고양이 마틴 그라임스.

이 두 선수의 활약과 함께 스코어는 다시 벌어졌다.

[아스날 2 – 1 맨체스터 시티]

* * *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의 체력소모는 심해졌다.

특히 아스날의 체력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뒤였다.

‘제길!’

맨체스터 시티와의 전력 차이를 좁히기 위해 두 배는 뛰어야 했던 레이턴 버트란드는 오스마르 토레스를 마크하다가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 쓰러졌다.

[아스날 선수들의 체력소모가 심해 보입니다.]

[기량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스날은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하면서 평소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스코어를 만들 수 없었을 테니까요.]

호셉 과르디올라는 이런 틈을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선수를 적절히 교체했고, 단번에 전술을 더블 제로톱으로 변화시켜 수비진에 더 큰 혼란을 줬다.

그에 따른 효과는 빠르게 찾아왔다.

오스마르 토레스의 패스를 받은 저메인 팔머가 동점 골을 터트린 것이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저메인 팔머의 강력한 왼발이! 아스날의 골망을 흔듭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당하고 있을 클럽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오로지 역전만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뒤를 바짝 쫓아오는 리버풀을 확실하게 떼어놓기 위해서라도 오늘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했다.

2 – 2 동점.

시간은 7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퍼---억!

한 골 싸움이 되자 경기는 더 거칠어졌고 선수들 간의 신경전도 일어났다.

마치 북런던 더비같은 치열함.

이런 치열함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일상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선수들은 기합까지 질렀고 아스날은 몸을 날려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렇게 5분 후.

아스날의 역습 기회에서 유지우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올라왔다.

[아스날의 역습 기회!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볼을 잡자! 윌리엄 폴크가 강하게 마크하는데요! 하지만 볼을 지켜내는 크리스티안 페레스! 그가 볼을 내준 곳은! 유지우 선수 쪽입니다!]

뒷공간에 정확하게 떨어진 볼.

마르크 아하나흐는 유지우를 마크하기 위해 달렸지만,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은 지치지도 않아?’

체력이 좋다는 건 경기 전에 들어서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뛴 거리나 커버 범위가 자신보다도 넓었는데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은 걸 보고 경악했다.

‘…이게 사람이야, 짐승이야.’

빠른 스피드에 마크르 아하나흐는 벗겨졌다.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진의 백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글렌 테일러 골키퍼가 유지우가 볼을 잡기 전에 처리하려고 급히 측면까지 나왔다.

투—욱!

골대를 비우고 나온 글렌 테일러를 보곤, 볼을 길게 차 제치려고 했다.

하나, 글렌 테일러의 발이 유지우가 가려는 경로에 들어왔고 막히고 말았다.

[글렌 테일러의 반사신경이 미쳤습니다! 골대를 비우고 페널티 에어리어 밖까지 과감하게 나오며! 유지우 선수가 볼을 잡는 것을 빠르게 차단합니다!]

2m의 어마어마한 장신.

긴 팔을 이용한 슈퍼 세이브 능력을 갖춘 덕에, 글렌 테일러는 맨체스터 시티의 골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불렸다.

‘하아.’

유지우는 멍하니 글렌 테일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 발을 내 쪽이 아니라 볼이 가는 방향으로 뻗을 줄이야.’

글렌 테일러가 나오는 건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래서 제칠 방법도 머릿속으로 구상해놨다.

하지만 글렌 테일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들어왔고 결국에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최고팀의 골키퍼는 역시 다르네.’

반사신경이라면 이전에 상대해본 골키퍼 중 최고인 건 확실했다.

하나, 도리어 그렇기에 좋은 것도 있었다.

이 골키퍼를 넘을 수 있다면, 그건 그가 최고의 공격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유지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삐---익!

그렇게 경기는 다시 시작됐다.

* * *

아스날이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작전을 많이 준비했다곤 하지만 전력은 맨체스터 시티가 더 우위였다.

까---앙!

[저메인 팔머의 왼발 슈팅이 아스날의 골대를 맞추고 라인 밖으로 나갑니다!]

계속되는 슈팅.

뒤로 갈수록 그 격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오스마르 토레스의 슈팅이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넘깁니다!]

[아스날은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습니다!]

어느덧 맨체스터 시티가 유효 슈팅의 개수에서 아스날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득점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수비 때문이었다.

“레이턴!”

“네!”

“못 들어가게 잡고 늘어져!”

아스날 선수들은 몸을 날리고 또 날렸다.

흙투성이가 돼도 그들은 망설임 없이 골대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기량에서 밀리더라도 집념으로.

삐—익!

이게 아스날이 준비한 진흙탕 수비였다.

어떻게든 막아내면, 역습 찬스는 오기 마련.

단 한 번의 기회.

아스날이 노리는 게 바로 그거였다.

잠시 후.

율리안 쿠겔의 패스가 오스마르 토레스에게 가자 데릭 레드먼드가 몸을 날려 차단해냈다.

[다시 막아내는 아스날! 데릭 레드먼드가 패스를 잘라내고 길게 걷어냅니다!]

추가시간도 5분이 주어졌지만, 치열한 공방전 끝에 4분이 지나갔다.

1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

사실상 아스날의 마지막 공격 기회였다.

“……!”

호셉 과르디올라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 소리쳤다.

“뒤로! 뒤로! 마르크!!!”

이 기회만 노리고 있던 한 명의 선수.

유지우가 볼의 낙하지점을 예상하며 달려가고 있었다.

[유지우 선수의 앞 공간으로 떨어지는 볼! 마르크 아흐나흐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달립니다! 달립니다! 골대와 가까워지는 유지우 선수---! 이걸 넣으면 결승 골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프라인부터 시작된 유지우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아스날의 선수들은 따라갈 거리가 아니었지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함께 뛰며 소리 질렀다.

“가라!”

그리고 유지우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선수는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진 두 명과 골키퍼까지 총 세 명이었다.

[좁혀지는 골대와의 거리! 맨체스터 시티도 필사적으로 유지우 선수를 방해하는데요!]

앞을 막은 선수들을 보던 유지우는 찰나의 순간.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투—욱!

거리가 좁혀지자 타이밍을 재고 있다가 두 선수 사이 공간으로 볼을 차 놓고 파고들었다.

두 선수는 어깨로 밀며 공간을 좁혀 나가지 못하게 했지만.

유지우는 기어코 비집고 들어갔다.

[아앗! 유지우 선수의 균형이 흔들립니다!]

거친 몸싸움으로 균형이 순간 흔들려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손을 뻗어 바닥을 짚고 반동을 이용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유지우 선수! 넘어지지 않습니다! 유지우! 유지우----!!!!!]

수만 명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

유지우는 달려 나오는 글렌 테일러를 보고 한발 먼저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로빙슛을 했다.

그대로 빈 골대로 날아가는 볼.

이게 들어가면 아스날의 승리가 확정되는 시간대였다.

‘제발.’

‘제발.’

‘제발.’

수많은 사람의 염원과 함께.

까—앙!

볼은 크로스바를 맞추고 흘러나왔고 디오구 바렐라가 멀리 걷어냈다.

- 아아아아아아아!

들려오는 탄식 소리에 유지우는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워했다.

[빗나갑니다---! 이게 들어갔다면! 아스날이 이길 가능성이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유지우 선수가 주저앉아 필드를 강하게 치며 아쉬움을 토해냅니다…. 아, 정말 저희도 이렇게 아쉬운데 당사자는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마지막 임팩트 순간에 균형이 살짝 흔들렸던 게 이렇게 작용한 것도 있었지만.

“…닿았지?”

“가까스로 손끝에.”

글렌 테일러의 반사신경도 한몫했다.

삐-익! 삐-익! 삐---익!

얼마 가지 않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며.

[ 맨체스터 시티 2 – 2 아스날 FC ]

경기는 종료됐다.

“…….”

잠시간의 정적.

엄청난 긴장감 속에 경기가 진행된 탓에 관객들은 잠시 침을 삼키며 눈앞의 결과를 지켜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정적이 걷히며, 경기장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와아아아--!

최고 수준의 경기를 보여준 두 팀에게, 관객들이 아낌없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스날과 맨체스터 시티.

두 팀의 대결은 비록 무승부로 끝났지만, 관객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두 팀이야말로, 남은 시즌 동안 치열한 경쟁을 다툴 우승 후보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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