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맨체스터 시티 전이 끝난 뒤, 12라운드 경기들이 모두 종료가 됐고 A매치 기간이 됐다.
나는 한국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한국행을 준비했다.
“누나, 진짜 나랑 같이 안 가?”
“안 가, 괜히 너랑 같이 입국하면 눈치만 보이고…. 난 그냥 여기서 주현이랑 같이 더 관광 다니는 게 편해.”
어차피 누나는 한 달 이상은 쉬러 온 거라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아버지도 이번에 같이 안 가시는 거고요?”
“이번에 영국 방송에서 출연해달라고 해서 그것 때문에 못 간다.”
“알겠어요.”
아버지와 누나가 못 간다고 해서 섭섭할 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번에 한국에 가면, 혼자 계신 어머니와 최대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맞다.”
그때 주현 누나가 뭔가 떠올랐는지 말을 꺼냈다.
“너 갔다가 오면 13라운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이지?”
A매치에 갔다가 오면 바로 맨유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응.”
“그러면 너 올 때 어머니도 같이 모시고 온다고 했지?”
“오랜만에 가족들이 뭉쳐야지.”
맨유의 광팬이신 어머니는 내가 맨유와 경기하는 날만 벼르고 계셨다.
마침 일정이 잘 맞아 A매치 직후에 맨유전이 치러질 참이었으니, 함께 영국으로 오면 될 듯했다.
“아스날 대 맨유라, 아! 아스날이 이기면 리버풀이랑 공동 2위 되는 거지?”
“그건 아직, 리버풀이 이기면 순위 변동 없어.”
현재 프리미어리그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위 - 맨체스터 시티 / 12전 10승 2무 [32점]
2위 리버풀 / 12전 9승 2무 1패 [29점]
3위 - 아스날 / 12전 8승 4무 [28점]
4위 – 첼시 / 12전 7승 3무 2패 [24점]
현재 상위권 클럽들은 승점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다.
1~2경기만 실수해도 순위가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기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 중이었다.
“그래? 그러면 맨유는… 몇 위지?”
아.
빌드업이 이쪽이었구나.
이제 보니 누나의 빌드업 능력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
“크, 크흠!”
아버지는 물을 마시다가 헛기침을 했다.
“괜한 소리를 하고 있어!”
“지금 8위일걸?”
“오, 많이 올라왔네.”
“많이 올라오긴 뭘 올라와! 이것들이! 굶고 싶어?!”
“우리 시티를 상대로 무승부를 했으니까 맨유는 6 – 0으로 이기는 건가?”
누나의 도발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무, 물론! 우리 아들이 이기겠지!”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정말요?”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누나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마치, 생쥐를 앞에 둔 고양이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보며 내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셨지만, 나는 그것을 못 본 척하고 눈을 감았다.
미안해요 아버지.
가족일수록 이럴 땐 공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구단에 좀 다녀올게요.”
“감독이랑 미팅이 있다고 했나?”
“네, A매치 때문에 몇 가지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해서요.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애처로운 눈빛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누나들이 아버지를 놀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또한 아버지가 맨유팬으로서 견디셔야 하는 업보겠지.
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어머니가 오시면 나아질 겁니다.
…아.
그럼 난 집안에서 훌리건들끼리 싸우는 걸 직관해야 하는 건가?
* * *
한국으로 가기 전.
폴 사르 감독님은 나를 불러서 이것저것 주의할 것을 알려주셨다.
뭐, 그렇게 중요한 얘기도 아닌 걱정어린 잔소리였다.
“가서 매일 연락하고.”
“네.”
“밥 먹는 것도 조심해서 먹어, 알았지?”
“걱정하지 마세요. 국가대표 식단이 더 엄격한 거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안 되겠다. 감독 전화번호 좀 줘.”
“여기요.”
“몸 상태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출전하지 말고! 너 개인 코치인 에디도 같이 가나?”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후우,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군.”
요새 부쩍 폴 사르 감독님이 나를 신경 쓰는 게 늘어났다.
먹는 거나 훈련하는 거.
저번에는 내가 발목이 뻐근하다고 했다가 강제로 병원행을 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폴 사르 감독님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챙기시려 했지만, 이대로면 끝도 없을 것 같아 슬쩍 말을 중단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심해서 잘하고 올게요.”
“널 믿는데 내가 불안해서 그렇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없어도 전화는 자주 해. 알았지?”
“노력해볼게요.”
이렇게 말해도 결국에 폴 사르 감독님이 매일 전화나 문자할 것을 알기에 알겠다고 대답해준 뒤에 구단에서 나왔다.
“유---! 조심해서 다녀와!”
뒤에서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저 A매치 끝나면 돌아올 건데요.”
“당연하지! 안 오려고 했나?”
“아니, 너무 애틋한 표정으로 보셔서 하는 말이에요.”
“젠장, 솔직히 FIFA에 건의하고 싶은 심정이야. 왜 남의 선수를 데려가냐고!”
감독님과 애틋한(?) 이별을 마치는 데는, 그로부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아스날 소속이 되고 처음으로 한국으로 입국했다.
* * *
한국에 입국하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혼자 계시는 거 괜찮아요? 누나까지 런던으로 가 있잖아요.”
“자유롭고 좋지.”
혼자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긴 했지만, 막상 어머니는 혼자 지내는 게 자유롭고 좋다고 하셨다.
“A매치 끝나고 저랑 같이 런던 가는 건 안 잊으셨죠?”
“그럼~ 이미 뭐 입고 갈지도 다 정했는걸?”
말로는 자유롭다고 했지만, 막상 내가 본 어머니는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늘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티를 안 내시는데, 적어도 가족에게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셨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었다.
“A매치 끝나고 런던가기까지 이틀 정도 여유 있으니까 그때 근처 바다라도 가서 바람 쐬실래요?”
“응?”
“방해꾼들도 없으니까 오랜만에 어머니랑 둘이 데이트 좀 해보려고요.”
“좋지!”
어머니가 활짝 웃으셨다.
이상하게 가족들이 진심으로 웃는 것만 보면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니까.
.
.
.
난 집에서 푹 쉬면서 시차 적응을 마쳤고, 파주 국가대표 캠프에 합류하기 위해 차명훈과 같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번 A매치는 괜히 제가 더 긴장되네요.”
“네, 상대가 상대니까요.”
이번 A매치는 지난 A매치만큼이나 관심이 집중됐다.
최근 대한민국 대표팀이 호성적을 거둔 것이 주효했고, 무엇보다 유지우의 선전으로 축구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대한민국 대표팀이 치르는 두 경기는 모두 매진된 상태였다.
다만, 대한민국 대표팀이 치르는 두 경기 중 팬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압도적으로 두 번째 경기였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두 번째로 맞붙어야 하는 상대가, 대한민국의 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기:
대한민국 VS 코스타리카
두 번째 경기:
대한민국 VS 일본
어떤 종목이든, 연령이든 상관없었다.
한일전은 한국대표팀에 있어 언제든지 꼭 이겨야 할 경기였다.
‘일본이랑은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해.’
이건 정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일본이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이야기에 모두 공감할 게 분명했다.
* * *
“도착했습니다!”
잠시 후, 파주 국가대표 캠프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주차한 뒤에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저는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제가 할 일인데요!”
차명훈과 매니저 덱스와 인사를 나눈 뒤.
개인 코치로 합류하기로 한 에디와 함께 캐리어를 끌고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캠프 입구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모여있었다.
“유지우 선수다!”
“유지우 선수!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고 첫 시즌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짧게 소감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코치진을 비롯해 경호원들이 나와서 통제했다.
“자세한 건 오후에 기자회견을 열 테니까 그때 질문을 해주십시오!”
나는 기자들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방으로 가 짐을 푼 뒤.
감독실로 향했다.
“감독님과 미팅 후에 방에서 쉬시면 됩니다.”
“훈련 일정은 없나요?”
“오후 3시부터라 그때까지는 편하게 쉬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아,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합류한 건 알고 계시죠?”
“기사를 통해 들었습니다.”
감독님은 협회가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박우근 선배님과 함께 국가대표에서 많은 것을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이번에 합류한 선수들은 2031 U-20 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들이었다.
【 U-20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 대거 소집! 】
【 차선호, “첫 A 국가대표팀 합류라 설렌다!” 】
【 ‘K리그의 괴물’ 최원우, “가슴에 단 태극마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4강 신화의 주인공들이 합류하며 대한민국의 평균 나이는 두 살이나 더 젊어졌다.
“왔군!”
감독실로 들어온 나를 본 주앙 달루트 감독님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꼭 끌어안았다.
“보고 싶어서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 말은 어디서 배웠어요?”
“하하! 코치진들에게 배웠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주앙 달루트 감독님은 많이 밝아져 있으셨다.
월드컵에서 호성적을 거둔 것을 바탕으로 협회에 전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들었는데, 덕분에 안정감을 찾으신 모양이었다.
“짐은 다 풀었고?”
“네.”
“훈련은 오후 3시에 가볍게 한 시간 정도 진행할 예정이다. 뭐 불편한 건 없지?”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경기 나갈 수 있는 컨디션이에요.”
일상 이야기를 나누곤 본론에 들어갔다.
“유, 난 융통성 있는 사람이야.”
“…갑자기요?”
“너희 감독이 나한테 그렇게 득달같이 연락하지 않아도, 너를 무리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지.”
아.
이 감독님이 또.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자, 주앙 달루트 감독님께서는 이쪽도 마찬가지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셨다.
“소중한 선수를 혹사할 생각은 없어. 무엇보다, 이번엔 여러 선수를 최대한 시험해볼 생각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자넨 한 경기에선 45분, 나머지 경기에서는 풀타임으로 뛰게 될 거야.”
“좋습니다.”
나로서도 이렇게 배려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휴식 시간을 가진다고 해도, 장거리 기간을 이동한 신체는 피로감이 쉽게 쌓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경기로 할지 내가 생각했는데… 첫 번째 코스타리카와 1차전에서 45분만 출전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좋습니다.”
“다행이군, 사실 2차전이라고 하면 난감할 뻔했어.”
A매치 2차전.
한국 vs 일본.
내가 경험할 첫 번째 한일전이라서 그 경기는 꼭 풀타임으로 출전하고 싶었다.
“한일전은 풀타임으로 뛰고 싶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는군. 사실, 일본 놈들이 제대로 한 방을 날렸거든.”
“한 방이요?”
감독님이 내민 노트북.
화면에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일본 대표팀 감독인 루카 포제토라는 사람이었다.
【 루카 포제토, “유?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그는 주변 선수들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못 하는 선수.” 】
경기 전에 일본 매체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모양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이 같은 인터뷰를 하는 의도는, 명확했다.
도발과 기선제압.
한 선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꺼내, 그가 압박감에 시달리도록 의도한 것이다.
“어때?”
“아무 생각 없어요. 이렇게 도발한 사람들은 다….”
“응?”
“저한테 진 이후로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실제로 유지우는 이런 도발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아르헨티나.
프리미어리그.
그리고 지금까지 유지우는 그 도발 속에서 늘 살아남았고.
이번에도, 그럴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