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55화 (155/383)

제155화

아스날이 선제골을 넣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 패스 안 해?”

경기가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자 선수들 간의 불화도 생겼다.

“내가 줬는데 네가 못 받은 거잖아.”

“패스를 그렇게 개판으로 준 걸 줬다고 봐야 하나?”

“뭐? 이 새끼야?”

아스날의 개와 고양이가 다투는 건 장난이라면 이 선수들이 다투는 건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할 것만 신경 써.”

솔 테일러는 유지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태연히 말했다.

“저것들 저러는 거 한두 번이 아니거든.”

같은 암흑기를 걷고 있지만,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였다.

아스날이 침체한 분위기가 있긴 했어도 선수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런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수들 사이에 골이 생겼는지 플레이가 따로 놀았다.

그 불협화음 속의 실수를 유지우가 놓칠 리가 없었다.

촤---악!

[유지우 선수의 깔끔한 태클--! 그대로 크리스티안 페레스에게!]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볼을 잡고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진영으로 돌파했다.

라 크로케타로 한 명을 제친 뒤에 선수들의 위치를 머릿속에 입력한 뒤.

뻐---엉!

낮고 강한 스루패스를 찔렀다.

그것에 반응한 것은 아드리안 로마오였다.

오른쪽 바깥 발로 감각적으로 터치하며 슈팅하기 편하게 만든 다음.

오른쪽 구석으로 깔아 찼다.

- 아아아아아아!

그러나 슈팅은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아드낭 드루프의 선방! 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희망으로 불리는 선수답습니다!]

[암흑기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일한 빛이라고 불리는 선수죠, 만약 저 선수마저 없었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0위권 밖으로 추락했을지도 모릅니다.]

팀이 완전 엉망은 아니었다.

그래도 명문이라고 불렸던 클럽이라 그들만의 저력이 꿈틀거렸다.

안정적인 선방을 펼치는 골키퍼 아드낭 드루프.

잉글랜드 국가대표 마커스 코널리.

독일 전차 마츠 고메스.

한 명 한 명만 놓고 보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력은 빅클럽 못지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첫 번째, 3선 라인의 부진.

두 번째, 중심을 잡아줄 수비진의 부재.

세 번째, 확실한 골잡이의 부재.

네 번째, 2선 공격 작업의 단순함.

다섯 번째, 잦은 감독 교체로 인해 선수단이 흔들림.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작정 투자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고 쌓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점점 추락하는 중이었다.

삐---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이 끊기며 라인 아웃이 되자 한 선수가 소리쳤다.

“아아아아아아!”

그 선수는 페르난두 레앙이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는 패스를 찌른 선수에게 다가갔다.

“똑바로 안 해?”

“…똑바로 하고 있잖아.”

“나한테 패스를 줘야지! 왜 엉뚱한 곳으로 줘!”

“네가 움직여야지, 움직이지도 않는 석상한테 무슨 패스를 하라고?”

심지어 때리려는 모션까지 취하다가 욕을 한바탕 쏟아내고 본인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저거 왜 저래?

*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문제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최근 생긴 문제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뻐--엉!

페르난두 레앙이었다.

[다니엘 아일링의 날카로운 패스를 페르난두 레앙이! 한 번 접고서 템포빠르게 슈팅으로 연결해보지만! 무리한 슈팅으로 기회를 날립니다!]

[데릭 레드먼드에게 밀리면서 흔들린 탓에 짜증을 내는 페르난두 레앙!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이 전체적으로 급한 느낌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며 본성이 나온다고 했지만, 페르난두 레앙은 여전히 실력이 있는 선수였다.

35세라는 나이에 세리에A 득점 3위를 할 만큼 득점력은 아직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쿠—웅!

게다가 몸싸움도 훌륭했다.

밸런스를 잡는 거나 기회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아스날 수비진에 균열이 생기게 할 만큼 아직 좋았지만.

삐---익!

욕심이 너무 많았다.

분명히 비어있는 곳에 동료 선수가 있었는데 억지로 골대로 전개하려다가 스티븐 하머의 스탠딩 태클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페르난두 레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볼을 빼앗긴 페르난두 레앙이 스티븐 하머의 유니폼을 잡고 늘어집니다!]

볼을 빼앗겼어도 집념을 발휘하며 다시 빼앗으려고 했지만, 스티븐 하머가 라인 밖으로 걷어냈다.

그 뒤, 모두의 예상과 다른 장면이 나왔다.

꽉.

페르난두 레앙이 넘어진 스티븐 하머의 손을 일부러 밟은 거였다.

스티븐 하머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본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어어? 무슨 일이죠?]

[스티븐 하머가 넘어져 있고 페르난두 레앙이 어이없어합니다. 잠시 리플레이를 보겠습니다.]

리플레이 영상에 페르난두 레앙이 손등을 밟는 장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 명백한 반칙입니다! 고의성이 다분해 보이는 반칙! 주심은 구두 경고만 하는데요!]

[일부러 다른 곳으로 보고 밟았습니다. 참 영리하네요, 저러니 주심이 구두 경고로 끝내는 거겠죠.]

스티븐 하머의 손등이 밟히는 것을 본 데릭 레드먼드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분노를 표출했다.

선수들이 달려들어 막았지만, 충돌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야.”

유지우였다.

“…나한테 그랬냐?”

새까맣게 어린 선수가 자기에게 말을 걸자 페르난두 레앙은 비웃었다.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다고.”

“어쭈.”

“사과 안 해?”

“사과?”

페르난두 레앙은 슬쩍 뒤를 봤다.

손을 감싸 쥔 스티븐 하머가 보고 있자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내가 왜?”

“일부러 밟았으니까.”

“고의가 아닌데? 내가 가려는 방향에 저놈이 일부러 손을 내민 거였잖아.”

증거가 없었다.

페르난두 레앙은 교묘하게 자신의 진로 방향에 놓인 손을 밟은 거였으니까.

“이거 완전 쓰레기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유지우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리그에서도 성질 더러운 선수들과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밀리지 않고 받아친 이력이 있어서 페르난두 레앙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나한테 그랬냐?”

“나이 먹고 경기력만 떨어진 게 아니라 귀도 안 좋아졌나 보네? 여기에 나랑 대화하는 게 너 말고 누가 있다고.”

“이 자식이.”

두 선수가 부딪치자 양 클럽 선수들이 달려와 말렸다.

“유!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본래 충돌 상황을 일으키는 건 유지우가 아니었다.

유지우가 상대 선수에게 당하면 동료 선수들이 충돌하는 그림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지우가 먼저 부딪치자 다들 당황했다.

“스티븐 손을 밟고서 그냥 가려고 하잖아!”

평소에 엄마처럼 잘 챙겨주던 스티븐 하머가 당한 것을 보곤 그냥 넘어가지 못한 거였다.

여전히 페르난두 레앙은 비웃었고 그걸 본 유지우가 그를 보며 강하게 말했다.

“기대해, 오늘 내가 너희를 어떻게 짓밟는지.”

“…….”

“네가 스티븐의 손을 밟은 것처럼 아주 지그시 밟아줄게.”

명백한 도발에 페르난두 레앙의 얼굴에 핏줄이 곤두섰다.

왕년에 제라르 레오의 대항마로 떠올랐던 사나이.

TV를 보면서 그의 플레이에 매료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유지우는 눈앞에 있는 선수를 어떻게 요리를 할지 그것만 생각했다.

* * *

“야 너희.”

전반전이 끝난 라커룸 안에서 페르난두 레앙이 동료 선수들에게 공격적으로 말했다.

“아시아 애송이한테 당하면 나한테 죽는다?”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유지우에게 볼이 없는 상태에서도 공격적으로 몰아붙였고 심지어 주심이 보이지 않게 발목을 건드렸다.

‘이 새끼들이 진짜.’

집중적인 견제.

스트레스를 주며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유지우는 거친 견제를 뚫고 빈 공간으로 나왔다.

“패스해!”

평소보다 의욕이 불타올랐다.

뒤에 바짝 붙으며 볼을 받는 것을 방해하는 마커스 코널리.

유지우는 볼을 터치하지 않고 다리를 벌려 그 사이로 볼을 흘린 뒤, 마크를 붙은 선수의 옆으로 돌아서 뛰었다.

- 오오오오오오!

라인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볼을 발을 뻗어 살려내고 반동을 살려 그대로 달려갔다.

“어딜.”

앞을 막은 선수.

오른쪽으로 나가는 척, 다리를 벌리게 한 다음 뒷발로 볼을 차서 넛맥을 먹였다.

제친 뒤에 다음 플레이를 이어가려고 하는 그때.

쿠—웅!

옆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몸싸움을 한 선수는 어느새 수비 가담을 한 페르난두 레앙이었다.

189cm.

큰 체구에 강한 몸싸움을 자랑하는 그는 유지우를 밀어붙였다.

‘아시아 애송이 주제에!’

볼이 목적이 아닌 유지우가 목적인 몸싸움이었다.

쉽게 밀리지 않자 아예 체중 전체를 실어 라인 밖 광고판이 있는 곳까지 밀어버리자 유지우는 광고판에 충돌했다.

[유지우 선수가 광고판에 부딪힙니다! 이건 페르난두 레앙에게 카드가 나와야 합니다!]

[주심이 옐로카드를 주고 아스날 선수들이 흥분해서 달려옵니다!]

데릭 레드먼드는 콧김을 내뿜으며 페르난두 레앙에게 소리쳤다.

여전히 페르난두 레앙은 어깨를 으쓱하며 도발했고 폴 사르 감독마저 흥분했다.

그리고 그때 유지우가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자 페르난두 레앙은 비웃으며 말했다.

“어디서 설쳐, 그딴 실력으로.”

실력으로 찍어누른 것으로 착각을 하는 페르난두 레앙에게 유지우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선수들이 말리는 곳까지 와선 한마디 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성질부리는 것밖에 안 남은 놈이.”

기죽지 않는 눈빛을 한 채.

“어디서 설쳐, 그딴 실력으로.”

똑같은 말로 갚아줬다.

빨개진 페르난두 레앙의 얼굴.

유지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포지션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 * *

선수들 간의 충돌로 경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페르난두 레앙의 날카로운 슈티---잉!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넘깁니다!]

[전성기가 지났긴 했지만! 여전히 감각은 살아 있습니다!]

페르난두 레앙이 나이가 들긴 했어도 클래스라는 게 있었다.

성질머리가 더러워도 여전히 발끝 감각은 예리했다.

그렇게 시작된 양 클럽 서포터즈들의 열띤 응원.

아스날 팬들의 응원 소리에 유지우는 계속해서 필드를 누볐다.

삐---익!

내가 돌파하려고 하자 마커스 코널리는 카드에 받지 않는 선에서 반칙으로 끊었다.

[벌써 몇 번째 반칙이죠?]

[유지우 선수를 막으려면 반칙밖에 없다는 걸 아는 거죠.]

그 후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집중 견제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저놈의 얼굴에 한 방을 날리기 전까지는.

60분.

70분이 되어가는 시점에 기회가 생겨났다.

아스날의 강한 압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패스 실수가 나왔고 그게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발아래로 흘러갔다.

“크리스티안! 앞으로!”

곧장 마크를 따돌리며 중앙으로 올라갔다.

내가 중앙으로 올라가자 아드리안 로마오가 측면으로 내려가며 유기적으로 움직였고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패스를 받고 돌아섰다.

[마이클 깁슨이 유지우 선수의 앞을 막아섭니다!]

몰고 가다가 타이밍에 맞춰서 발 사이에 볼을 끼워 띄우는 레인보우 플릭을 시도했다.

[여기서 레인보우 플릭! 정말 대단합니다! 화려하게 맨체스터 유나이티 진영을 휘젓는 유지우 선수! 아직 그의 질주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명.

그리고 두 명.

다음으로 세 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사이를 돌파하며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선수가 돌파 경로를 차단했다.

찰나의 순간.

보이는 틈.

탓, 타닷-!

라 크로케타로 지나가다가 기습적인 플리플랩으로 허를 찌르며 다섯 명째를 제쳐냈다.

남은 건 수문장 아드낭 드루프 뿐이었다.

거리를 좁혀오는 게 보였지만.

뻐---엉!

맞고 뒈져라 슛을 때렸다.

철렁.

찢길 듯이 강하게 흔들리는 골망.

2 – 0으로 벌어진 스코어.

난 별다른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골대 안에 들어간 볼을 가지고 나와 센터서클로 뛰었다.

아.

이걸 놓치면 안 되지.

센터서클에 볼을 내려두고 포지션으로 가다가 페르난두 페앙의 옆을 지나가면서 손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이걸로 두 골.”

“건방진 아시아인 주제에….”

“언제적 인종차별을 하려고. 아, 이탈리아에서 배운 게 그런 것밖에 없어서 그런가…. 하긴, 마음이 넓은 내가 이해를 해줘야지 누가 이해를 해주겠어, 안 그래?”

부들부들 떠는 페르난두 레앙이 뒤를 돌아서 가는 걸 보고 뒷모습을 향해.

“내가 어떻게 설치는지 잘 봐,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도발을 한 번 더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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