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아스날 0 – 1 리버풀]
선제골을 넣은 리버풀은 템포를 타며 아스날에게 강한 압박을 시도했다.
퍼—억!
리버풀 선수들은 아스날 선수들이 볼을 여유롭게 전개할 수 없도록 바짝 붙어서 밀착 수비를 했다.
체력소모가 큰 압박 전술이긴 하지만, 이것이 리버풀의 아이덴티티 ‘게겐 프레싱’이었다.
[리버풀의 강한 압박! 아스날은 이 압박 속에서 과연 어떤 식으로 경기를 풀어갈까요?]
리버풀의 압박이 강하다는 건 폴 사르 감독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리버풀 전을 준비하면서 주가 되어 훈련했던 게 패스였다.
짧고 간결한 패스.
리버풀의 템포 빠른 압박을 벗어나는 건 한 템포 빠른 패스밖에는 없었다.
“비어있는 곳으로 계속해서 움직여!”
.
.
.
리버풀의 선제골이 들어가고 잠시 정체된 경기.
그들이 펼친 그물에 아스날이 걸려 허우적거렸고 마침내 37분경, 그물을 빠져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기회를 잡았다.
[빈 곳으로 움직인 크리스티안 페레스! 그러나 곧장 따라붙는 곤살루 고메스!]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수비라인에서 살짝 올라온 위치에서 볼을 잡자.
타다다닷-!
다시 시작된 리버풀의 게겐 프레싱.
하지만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현란한 발재간을 부리며 간발의 차이로 곤살루 고메스의 압박을 벗어난 뒤.
뻐---엉!
측면으로 길게 연결했다.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오른쪽으로! 유지우 선수를 봤습니다!]
유지우는 리키 에드워즈와 몸싸움을 하며 오는 패스를 봤다.
상대 선수를 등지며 몸싸움을 버틴 뒤, 떨어지는 볼을 안전하게 가슴 트래핑으로 받았다.
그리고 트래핑으로 볼을 띄운 뒤, 왼쪽으로 들어가며 힐킥으로 리키 에드워즈의 머리 위로 볼을 넘겼다.
- 오오오오오오!
[유지우 선수의 솜브레로 플릭! 정말! 볼 때마다 놀라운 개인기입니다!]
리키 에드워즈를 제친 뒤에 중앙으로 올라갔고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을 타며 각을 쟀다.
패스?
슛?
잠깐의 고민 끝에 시도한 건.
뻐---엉!
슈팅이었다.
왼발로 잔뜩 감아서 파 포스트를 노린 기습적인 슈팅은 게임에서나 볼법한 궤적으로 꺾이며 다이빙한 골키퍼의 손을 피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철렁.
골망이 흔들리는 걸 본 유지우는 양팔을 비행기처럼 펼치며 달려갔고, 아스날 원정팬 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유지우 선수의 동점 골이 작렬합니다---! 스코어는 1 – 1 전반 종료 직전에 경기를 원점으로 만듭니다!]
[와…. 방금 궤적 보셨습니까? 주발인 오른발도 아닌 왼발로 저런 정확도라니, 저러면 상대 수비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지우는 오른쪽 윙포워드로서 중앙으로 올라오는 플레이를 하거나 공격형 침투 패스를 주로 찔러줬다.
그러면서 왼발보다 오른발로 플레이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그들이 살짝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유지우는 양발 모두 정교해 따로 주발을 정할 필요가 없는 선수라는 점이었다.
“…어떤 수비 전술도 뚫고 들어오는 선수라.”
리버풀 감독 데이브 시드웰은 유지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생각대로 어려운 경기가 되겠어.”
* * *
【 프리미어리그 19라운드, 아스날 vs 리버풀 1 – 1 (진행 중) 】
아스날 대 리버풀전은 한국에서 새벽 시간대에 방송되었지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인기 클럽인 리버풀과 유지우가 뛰는 아스날의 맞대결이라 맨체스터 시티전과 마찬가지로 이목이 쏠린 탓이었다.
- 궤적 실화냐?
- 갓지우께서 리버풀을 올바른 자리로 인도하실 거니까 기다려봐라.
- 올바른 자리라니? 어디?
- 리중딱.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오랜만에 듣네.
- 10년 동안 리버풀이 중위권으로 내려간 적이 없어서 사람들 입에서 서서히 사라진 단어긴 함.
리버풀은 중위권이 딱이야.
이 밈은 이제 잘 쓰이지 않았다.
근 10년간은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어 리버풀 팬들은 ‘리상딱(리버풀은 상위권이 딱이야)’ 밈을 밀었다.
- 리버풀이 갓지우 압박을 너무 심하게 하네.
경기 중, 유지우를 거칠게 끊어내는 모습이 보이자 댓글 창은 폭발했다.
- 리키! 저 새끼가!
- 지우 부상 입으면 리키 사냥 갑니다.
- 근데 리키도 주력 빠른 선수지 않나?
- ㅇㅇ 프리미어리그 풀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 …그런 선수가 따라가질 못하네.
피지컬로 밀어붙이긴 했지만, 스피드에서 차이가 났다.
유지우는 마크가 강하게 오면 일부러 피하면서 거리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면.
마르세유턴.
플리플랩.
화려한 개인기가 펼쳐졌다.
개인 기량으로 리버풀의 측면을 계속해서 여는 유지우를 보며 시청자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대한민국의 새벽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 * *
전반전이 1 – 1로 마무리됐고 아스날 라커룸에서 폴 사르가 선수들에게 강하게 말했다.
“리버풀의 압박에 왜 자꾸 흔들려? 우리가 할 것만 생각하라고 했잖아!”
“…….”
“계속 움직여! 가만히 서 있는 놈은 바로 교체할 거니까! 압박이 들어오면 주변에서 도와주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볼의 소유를 이어가라고!”
리버풀의 게겐 프레싱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볼 탈취율 1위를 기록할 만큼 강했다.
그래서 아스날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지만, 폴 사르는 준비한 걸 보여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선수들에게 강하게 요구했다.
“후반에 메이슨이 빠지고 조던이 들어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활동량이 높은 중원 미드필더를 투입하는 거였다.
“Y.M.C.A! 너희는 공격에만 집중해! 내려오는 건 크리스티안이랑 유, 너희 둘이고 마틴이랑 아드리안은 역습하는 걸 대비해서 항상 하프라인 인근에 머물러.”
선수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폴 사르의 말을 경청했다.
간절하게 이기고 싶었다.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는 아쉽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리버풀만큼은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2강 중 한 곳은 이겨봐야지.’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FC.
현 프리미어리그의 2강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후반기를 위해서라도, 리버풀을 이기면 선수들이 챙겨갈 경험은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질 게 분명했다.
“리버풀을 이기면 2위로 전반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그걸 알기에 폴 사르는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했다.
“우리가 이걸 얼마나 기다렸나?”
늘 중하위권에 있던 팀 성적.
“우리를 무시했던 놈들한테 우리는 이미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어퍼컷 한 방을 날렸어.”
꼬리표처럼 달렸던 ‘망한 클럽’이라는 이미지를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간신히 떼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리버풀은 어퍼컷이 아니라 다운을 시켜버려.”
이제는 이겨야 했다.
암흑기가 아닌 황금기.
그걸 이 경기에서 증명해내야만 했다.
“가서 안필드를 도서관으로 만들어라!”
선수들은 의지를 다지며 라커룸을 나가 다시금 뜨거운 열기에 사로잡힌 필드로 걸어갔다.
* * *
맨체스터 시티가 전체적인 공수 밸런스가 좋은 팀이라면 리버풀은 수비력도 좋았지만, 공격력이 더 높은 클럽이었다.
[히카르지뉴와 베르나르두 코헤이아, 이 두 브라질 선수들이 공격 작업을 만들어가는 것 좀 보십시오.]
리버풀의 브라질 듀오는 아스날의 압박에도 여유롭게 탈압박을 한 뒤, 사방으로 패스를 전달했다.
브라질 선수들 특유의 리듬.
그 리듬이 보이자 사람들은 작게 감탄했다.
뻐—엉!
그러던 중, 비어있는 공간을 본 히카르지뉴가 노룩 패스로 왼쪽으로 보냈다.
[아! 이때 히카르지뉴가 왼쪽 측면으로!]
그레이엄 뱅크스가 볼을 잡곤 드리블을 치다가 컷백으로 패스를 찔렀다.
“디디에!”
데릭 레드먼드의 강한 마크를 받은 디디에 모페스가 골대를 보지도 않고 노룩으로 발만 가져다 대며 방향만 틀었다.
니어포스트를 겨냥한 슈팅.
툭.
노룩이라 타이밍도 예상하기 힘든 슈팅을 리암 베인스가 손끝으로 슈팅을 건드리며 궤적을 틀어지게 했다.
- 오오오오오오!
[리암 베인스의 선방! 디디에 모페의 예측 불가한 슈팅을 완벽하게 막아냈습니다!]
수비에서 고군분투를 해주며 분위기를 서서히 가져왔고 아스날의 공격 기회가 되자 유지우는 라인을 하나 내려와 볼을 받아줬다.
‘압박이 강하니까 라인을 내려가서 볼 작업을 같이해주는 게 더 나아.’
경기 전체를 읽는 눈.
유지우는 라인을 내려 경기 조율을 했다.
압박에 고전하는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근처로 가며 볼을 받아줬다.
“크리스티안!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전혀 급할 필요 없어.”
투-웅!
“솔! 제가 옆에 있을 테니까 압박이 온다 싶으면 저한테 주세요.”
침착하게 주변 상황을 파악하며 리버풀의 강한 압박에 흔들리는 선수들을 잡아줬다.
필드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
그 모습에 솔 테일러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누가 베테랑이야.’
그런 유지우의 모습에 아스날은 안정감을 찾아갔다.
그걸 놓칠 데이브 시드웰이 아니었다.
“유를 집중적으로.”
아스날의 흐름이 유지우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걸 보고 유지우를 필드에서 봉쇄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마틴이랑 아드리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밀착 마크해.”
혹시라도 유지우에게 기회가 가서 결정적인 패스가 나올 것을 우려해 공격수들의 봉쇄까지 마쳐놨다.
어딘가 막혀 보이는 답답한 흐름.
아스날의 패스 길을 유지우가 뛰어다니며 열어주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몸은 하나였으니까.
[아! 크리스티안의 패스가 끊기고 맙니다!]
그러면서 패스 미스가 나왔고 리버풀의 역습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
곤살루 고메스가 히카르지뉴에게 패스를 하는 길목에 난입한 선수가 있었다.
촤---악!
[유지우 선수---! 리버풀의 패스 길을 예측하고 몸을 날려 끊어냅니다!]
역습을 대비하고 미리 반응한 덕에 나온 플레이였다.
그렇게 리버풀은 역습을 하려고 라인을 올렸다가 역동작에 걸리고 말았다.
뻐—엉!
“가! 크리스티안!”
유지우는 일어나지 않고 넘어진 상태에서 빠르게 크리스티안 페레스에게 볼을 넘겼다.
“모두 백업!”
역동작에 걸린 리버풀 선수들이 잽싸게 백업을 했지만, 아스날의 공격이 반 박자 빠르게 이뤄졌다.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위로! 위로 올라가면서 수비수를 끌어당깁니다!]
툭.
수비수가 오자 아드리안 로마오에게 주며 안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갔고.
툭.
아드리안 로마오가 리턴패스를 보내줬다.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리턴패스를 잡지 않고 흘렸다.
- 오오오오오!
압박을 붙는 수비수를 한 차례 속인 거였다.
그렇게 페이크를 건 뒤에 침투했고 흐른 패스는 마틴 그라임스에게 갔다.
마틴 그라임스는 지체하지 않고 안쪽으로 원터치 패스를 넣었다.
[들어가는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아-----안!]
모든 게 원터치로 이뤄진 플레이.
견고하던 리버풀의 진영은 무너지고 말았고.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침착하게 골키퍼 가랑이 사이로 슈팅하며.
철렁.
골망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득점에 성공한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아스날 서포터즈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촤----악!
무릎 슬라이딩 후, 고개를 끄덕이는 세레머니를 했다.
[아름다운 골이었습니다! 게겐 프레싱의 약점인 뒷공간! 그것을 정확하게 노려 2 – 1 역전을 이뤄냈습니다!]
리버풀의 아이덴티티가 공격적인 압박의 게겐 프레싱이라면.
선수들의 순간적인 창의성이 묻어나온 예술적인 플레이.
이것이 아스날의 아이덴티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