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 유지우, “북런던의 주인을 건드린 대가는 필드에서 치르게 할 것.” 】
유지우의 발언은 타 클럽 커뮤니티에도 거론될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고 아스날 팬들은 열광했다.
[말 한번 잘했다! 제대로 보여줘! 저 빌어먹을 스퍼스 놈들 다시는 입도 못 열게 만들어!]
[아이를 위해서라도 죽을힘을 다해라.]
[인터뷰 봤어? 유가 한 말 하나 같이 다 인상적이었지만, ‘누구라도 아스날을 건드리면 X 된다.’ 이거 듣고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이 기회에 유의 말처럼 누가 북런던의 주인인지 정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어.]
팬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에이스 유지우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뷰에 토트넘이 분개했다.
[북런던의 주인? 드디어 미쳤구나.]
북런던의 주인이라는 말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건 예전부터 그랬다.
예민한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유지우가 그걸 깬 거였다.
토트넘 팬들은 사고를 잊고 유지우를 비난했고, 아스날 팬들은 분개했고 설전을 이어갔다.
그때 하나의 기사가 보도됐다.
【 다이애나 월시, 폭행당한 아이의 치료비 전액 부담! 】
【 다이애나 월시, “당연한 일을 했을 뿐.” 】
아스날 골수팬인 여배우 다이애나 월시가 아이의 치료비를 대신 내준 사실이 알려졌다.
워낙 인성도 좋은 배우라 아스날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토트넘 팬들의 입은 자연스럽게 다물어졌다.
여기서 한마디를 했다간 몰매를 맞을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참다 참다 폭발한 데릭 레드먼드가 SNS에 한 마디 남겼기 때문이었다.
『 양심이 있으면 주둥아리 닥쳐, 미개한 스퍼스 놈들아. 』
잠잠해지던 불에 화끈하게 기름을 부어버렸다.
* * *
아스날의 성지, 애슈버턴 그로브(Ashburton Grove).
카라바오컵 4강 1차전을 보기 위한 인파들로 거리는 가득 찼다.
거리 곳곳엔 경찰들이 쫙 깔려 충돌이 일어날 걸 대비했고 역시나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퍼—억!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애 하나를 병원에 입원시킨 건 생각 안 나?”
“그건 미안하다고!”
“그러면 입 다물어! 더러운 침을 이슬링턴 거리에 흘리지 마!”
경찰들의 통제에도 사고 때문에 아스날 팬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걔네들! 경찰에 연행돼서 조사받고 있다며!”
“그게 뭐! 결국 너랑 같은 스퍼스 놈들이잖아!”
“우리는 그런 짓 안 한다고! 아이 병원비도 원래 우리가 해주려고 했어!”
“말만 하는 놈들, 우리 여신님처럼 행동으로 옮겨야지!”
“…….”
“이래서 닭도 되지 못한 병아리 새끼들이랑은 말도 섞으면 안 되는 건데.”
토트넘 홋스퍼 팬들은 유지우가 ‘북런던의 주인’이라는 발언 때문에 화가 났는데도 아스날 팬들과 충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슨 짐승 새끼들인가?’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물 것 같은 태세였으니까.
“고개 숙여 이 새끼들아! 어디서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어!”
“이것들이 진짜!”
“덤벼! 오늘 경기 병원에서 보게 해줄게.”
또 충돌하려고 하자 경찰들이 개입했다.
“당장 연행해!”
폭력을 쓴 팬은 경찰에게 연행당했고 연행당하는 팬은 아스날 서포터즈들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멋지고 오래된 아스날,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르는 게 자랑스럽다!”
그건 아스날의 응원가 ‘Good old Arsenal’이었다.
워낙 대표적인 응원가라 팬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토트넘 팬들을 노려보면서.
-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목소리에는 독기가 있었다.
연행되는 팬의 목소리는 어느덧 아스날 팬 전체의 목소리가 됐고 노랫말처럼 노래는 끊이지 않고 애슈버턴 그로브까지 이어졌다.
* * *
워밍업을 마친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차분하게 경기를 준비했고 폴 사르는 그런 선수들을 바라봤다.
‘눈빛이 좋군.’
선수들의 집중력이 높은 게 느껴졌다.
“지금 다들 분노했을 거다. 스퍼스 놈들이 우리의 천사한테 한 짓 때문에.”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최근에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오늘만을 기다렸다.
스퍼스의 만행을 갚아 줄 생각으로 의욕이 넘쳤다.
“당장 나가서 다 죽여버리고 싶겠지.”
팬, 그것도 아이 팬이 다쳤다는 소식은 선수들의 역린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특히 데릭 레드먼드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이것만 명심해.”
“…….”
“퇴장만 당하지 마.”
“경고는요?”
“배고프면 치즈 한 장씩만 먹어, 두 장 먹으면 배 터져 죽는다.”
선수들은 웃음을 지었다.
거칠게 하더라도 퇴장만 안 당하면 그냥 눈감아주겠다는 말이었으니까.
“두 장 먹는 놈들 있으면 제가 먼저 교육 들어가겠습니다.”
“어쭈, 지난번에 빨간 상한 치즈 먹은 녀석이 할 말은 아닌 거 같다?”
“아~ 감독님, 그건 감독님을 위해서였잖아요!”
“응? 그냥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야?”
“아, 아니거든요!”
“하하-! 뭐 그렇다고 치자!”
“벌금 없는 거죠?”
“오늘 경기는 특별히 단장님과 구단주님의 지시사항으로 벌금은 단 한 푼도 매기지 않는다고 했다.”
- 오오오오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 진지해졌다.
폴 사르는 화면에 오늘 사용할 포메이션을 띄워둔 후, 선수들에게 오늘 뛸 전술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뭘 해야 할지 알지?”
그 말에 선수들은 웃음을 지었다.
- “네!”
“좋아! 이곳을 찾은 병아리들 모가지를 비틀어 기름통에 던져버리고 와!”
아스날의 탈을 쓴 저승사자들이 필드로 나갔다.
* * *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열기 속.
삐—익!
카라바오컵 4강 1차전은 아스날의 킥오프로 시작됐다.
[카라바오컵 4강 1차전이 시작됩니다! 아스날은 4 – 3 – 3 포메이션! 이에 맞서는 토트넘은 5 – 4 – 1로 나왔습니다!]
[토트넘이 이번 경기에서 아스날의 공격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보여주는 포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토트넘 홋스퍼는 시작부터 몰아세울 작정으로 라인을 올려 압박을 가했고 아스날은 원터치로 패스를 돌렸다.
툭.
툭.
툭.
솔 테일러는 가볍게 볼을 돌리다가 유지우가 움직이자 스루패스를 보냈다.
[갑자기 템포를 올리는 아스날! 유지우 선수가 하프라인 근처까지 내려와서 볼을 잡습니다!]
토트넘 홋스퍼는 전반기에 유지우를 한 번 겪어봐서 그 위험성을 잘 알았다.
“측면으로 밀어붙여!”
조금이라도 공간을 내주면 득점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였다.
그래서 수비력이 좋기로 유명한 세 명의 선수가 동시 압박을 가했다.
유지우를 측면으로 고립시켜서 중앙 진출을 막겠다는 의도였고.
타다다닷-!
혹시라도 유지우가 화려한 개인기로 압박을 벗어나 비어있는 곳에 진출할 때면.
토트넘에 새롭게 합류한 치타, ‘구스타보 무라라’가 쫓아와.
촤—악.
볼만 빼내는 깔끔한 태클로 흐름을 끊었다.
완벽하게 약속된 플레이.
토트넘은 유지우 맞춤 전술을 들고나왔다.
[오오-! 구스타보 무라라! 정말 빠릅니다! 유지우 선수가 정확하게 역동작을 노리고 스텝 오버를 했는데 저걸 바로 몸을 돌리며 쫓아오네요.]
[유지우 선수와 마찬가지로 주력을 무기로 하는 선수입니다. 영리한데다가 신체 밸런스가 좋기로 소문이 난 선수죠.]
볼을 컨트롤하며 스피드를 내는 유지우와 볼이 없는 상태의 구스타보 무라라의 주력은 비슷해 보였다.
‘할 만한데?’
구스타보 무라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미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느끼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고작 3분이면 충분했다.
‘언제!’
분명히 근처에서 마크하며 언제라도 따라가려고 집중했다.
그런데 잠깐 볼의 흐름을 보던 중, 시야에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유지우 선수! 어느새 마크를 따돌리며 중앙으로!]
폴 사르의 제로톱은 유지우에게 안성맞춤인 전술이었다.
‘틀에 박혀 있지 않고 자유를 부여하는 롤.’
공격진영에서 3명의 공격수가 전부 프리롤을 부여받는 것만 보면 극단적인 전술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걸 장점으로 승화시킬 선수가 존재한다면 말이 달라졌다.
적절한 스위칭과 볼이 오는 곳을 정확하게 캐치하는 능력.
탁.
강한 패스를 순두부 트래핑 후.
압박이 붙기 전,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쭉 밀어줬다.
그리곤 토트넘의 파이브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핀 뒤, 무언가를 보고선 바로 침투했다.
[Y.M.C.A라인을 가동한 아스날! 토트넘의 수비가 많은데요! 과연 오늘도 마법을 부릴 수 있을지!]
[마틴 그라임스가 볼을 터치! 아스날이 기회를 잡습니다!]
Y.M.C.A라인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합산 공격 포인트 1위를 기록할 만큼 뛰어난 공격 포인트 생산력을 가졌다.
그래서 토트넘은 이 라인을 효율적으로 막고자 했고 곧바로 라인을 움직였다.
“들어온다!”
마틴 그라임스가 드리블하며 더 깊숙하게 들어오자 윙백과 센터백이 동시에 압박을 들어갔다.
유지우보다 탈압박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선수라 빠르게 압박해 빼앗으려고 했으나.
뻐—엉!
마틴 그라임스가 수비수를 끌어당긴 다음 컷백으로 찌른 패스가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 있던 크리스티안 페레스에게로 연결됐다.
일순간 흔들린 균형.
토트넘 수비진 틈새에 균열이 생겼고 토트넘 선수들은 패스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무조건 막아!”
위협적인 패스를 통해 현재 어시스트 16개를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어시스트 1위를 달리는 선수.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유지우만큼이나 주의할 선수였다.
토트넘 홋스퍼는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자유롭게 패스를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으나, 아직 경기 초반이라 호흡이 맞지 않아 흔들렸다.
[크리스티안 페레스---!]
그걸 놓칠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아니었다.
스윽.
넓은 시야로 상황을 인지하고 동료 선수들의 위치를 머릿속에 입력했다.
‘이대로 패스를 했다간 타이밍이 안 맞겠어.’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슈팅 모션을 가져가다가 접는 모션을 했고, 그 덕분에 달려오던 수비수는 속아서 균형을 잃은 채 휘청거렸다.
단 한 번의 페인팅.
어긋났던 타이밍이 맞아지자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왼발은 마법을 부렸다.
투-웅.
반 박자 빠르게 수비수의 키만 아슬아슬하게 넘긴 패스.
“유---!”
어느새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들어간 유지우를 토트넘 수비진은 놓쳤고, 구스타보 무라라가 그 뒤를 쫓았다.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거리.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뻗었는데 정작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좁혀지질 않냐고! 왜!’
스피드라면 자신이 있었다.
포르투갈 리그에서 스피드로 유명한 선수들도 모조리 잡으며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어째서 눈앞에 있는 선수는 잡을 수 없는 건가.
구스타보 무라라는 거리를 좁히지 못했고.
촤—악!
유지우는 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슬라이딩하며 발을 뻗었다.
발끝에 닿은 볼은, 달려 나오던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비어있는 골대 안으로 굴러갔다.
철렁.
[들어갑니다----! 유지우 선수의 선제골이 나오자 아스날의 홈팬들은 화산이 폭발하듯 폭발합니다! 어? 그런데 유지우 선수, 어디로 가는 거죠?]
유지우는 토트넘의 골망을 흔든 뒤에 어디론가 달렸다.
모두가 당황했으나 뒤따라왔다.
사전에 선수들과 약속했던 세레머니.
‘누가 먼저 골을 넣던 첫 골 세레머니는 그거다.’
그리고 그것을 필드 위에서 선보였다.
촤—악!
제일 앞에는 골을 넣은 유지우가.
촤—악!
그 뒤로 다른 선수들이 따라오며 같이 토트넘 메인 서포터즈들이 있는 곳으로 무릎 슬라이딩을 했다.
완벽한 도발.
“저 새끼들이!”
“야---! 다 죽여버린다!”
게다가 유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팔짱을 끼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뒤로 돌아 등번호를 가리켰다.
‘너희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지켜봐.’
이 뜻이 담긴 세레머니였다.
명백한 도발 세레머니에 관중들은 물건을 집어 던지며 금방이라도 경기장에 난입하려고 했고 토트넘 선수들조차 흥분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날릴 것 같은 포스를 풍기는 선수들에게 유지우는 한마디 했다.
“억울하면 골을 넣고 말해, 너희가 갱단이 아닌 축구선수라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