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73화 (173/383)

제173화

경기 시작 후, 9분 만에 나온 선제골에 아스날의 홈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다.

“이거지!”

“내가 원한 게 이거라고!”

“저것들 얼굴 좀 봐봐!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군!”

“유-! 해트트릭 가자!”

도발 세레머니 후에 경기는 거칠어졌다.

‘죽여버린다.’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선수들은 마치 경기 종료를 앞둔 선수들처럼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유니폼 좀 그만 잡지?”

“너야말로 몸 좀 그만 비벼, 여기가 클럽도 아니잖아. 아, 습관인가?”

신경전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서로 총만 쏘지 않았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퍼—억!

잔뜩 열받은 토트넘은 자랑인 ‘제 – 유 – 스’라인을 이용해 아스날에 한 방 먹이고자 했다.

골을 넣고 보여주고 싶었다.

북런던의 주인은 토트넘이라는 걸.

그러나 그들의 간절함이 담긴 공격은 아스날의 질식 수비에 막혀 번번이 볼을 놓쳤다.

[제이미 포든이 데릭 레드먼드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오늘 여러 번 터치를 가져가며 슈팅 기회까지 만들어보지만! 데릭 레드먼드가 작심하고 제이미 포든 앞에 벽을 세웁니다!]

데릭 레드먼드는 유니폼이 넝마가 될 때까지 몸을 날려 제이미 포든의 발에서 볼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뻐—엉!

위험지역 밖으로 걷어낸 볼.

그냥 아무렇게나 걷어낸 게 아니었다.

정확한 위치로 보낸 패스는 공격진 쪽에 도달했고, 그 위치에서 볼을 잡은 건 크리스티안 페레스였다.

윌리엄 페레이라가 어깨를 부딪치며 볼을 잡는 걸 방해했지만.

탁.

깔끔하게 등을 진 채, 볼을 안전하게 잡아냈다.

“윌리엄! 패스하지 못하게 해!”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위협적인 패스는 경계 대상이었다.

윌리엄 페레이라는 손을 쓰며 패스를 못 하게 방해했지만,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버텨냈다.

‘응? 왜 이렇게 잘 버텨.’

분명히 전반기에는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그런데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같이 개인훈련과 더불어 데릭 레드먼드의 웨이트를 받고 있었으니까.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등을 지고 버티다가 한순간에 돌아서자 윌리엄 페레이라는 휘청거렸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압박을 벗어난 순간을 활용해 비어있는 곳으로 올라오는 선수에게 패스했다.

그렇게 발을 떠난 볼은, 아스날의 에이스에게 연결됐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유지우가 터치하자마자 폭발하는 함성.

경기 전 인터뷰 발언과 첫 골은 넣은 후 한 세레머니로 유지우는 아스날의 에이스를 넘어 영웅이 되어 있었다.

“잡아! 돌파하지 못하게 반칙으로 끊으라고!”

토트넘 감독 마르첼로 파브리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토트넘 수비진들이 일제히 유지우를 마크하려 했지만, 유지우는 스텝 오버로 방향 전환을 해 중앙으로 올라가선.

앞에 수비수를 놓고서 왼발 슈팅을 시도했다.

뻐—엉!

유지우가 슈팅한 볼의 궤적은 파 포스트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아웃이 선언됐다.

- 아아아아아!

아쉬움에 관중석에서 흘러나오는 탄성.

유지우는 얼굴을 한 번 쓸며 아쉬움을 표현했고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다가와 어깨를 감쌌다.

“급했지?”

“어.”

“다음에 또 줄 테니까 그때는 무조건 넣어.”

“당연하지.”

Y.M.C.A라인.

이 라인에서도 가장 폭발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건.

‘유 – 페 듀오.’

에이스 라인이었다.

* * *

“구스타보! 너무 멀리 있잖아! 더 가까이!”

날카로운 슈팅 이후에도 여러 번 위협적인 기회를 창출한 에이스 듀오를 상대로 토트넘은 그림자 마크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경기기에 최악의 수로 유지우를 부상 입혀서 내보낼 생각도 약간은 있었다.

[세르히오 멜루가 유지우에게! 바짝 붙습니다!]

[손까지 써보지만, 유지우 선수! 볼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주심이 어드벤티지를 부여하며 계속 진행되는 경기!]

순식간에 두 명의 선수에게 에워싸였지만, 유지우는 뱀 드리블로 볼을 보호했다.

“유!”

그렇게 시간을 벌자 아스날 선수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드리안 로마오가 유지우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왔고, 유지우는 그를 보고는 곧장 볼을 보냈다.

툭.

두 명의 선수 사이로 빠진 볼.

수비수들은 당황했지만, 유지우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달렸다.

“유!”

어느 순간 달려온 아드리안 로마오가 원터치 백힐로 밀어준 볼.

폭발적인 가속도로 볼을 향해 달려가던 유지우는 볼을 잡기 전, 토트넘의 수비진이 일제히 나오려고 하는 게 보이자.

투—웅.

그들의 머리 위로 감각적인 원터치 로빙 패스를 보냈다.

수비벽의 머리 위를 지난 볼은 왼쪽에서 쇄도하는 마틴 그라임스의 앞으로 갔다.

[오---! 오프사이드 아닙니다! 마틴 그라임스의 절묘한 침투! 머리로 한 번 떨어트린 뒤! 니어포스트를 향해 강슈우우우웃!]

[아! 골포스트를 때리고 맙니다!]

마틴 그라임스는 아쉬움에 머리를 감싸 쥐었고 토트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토트넘의 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5분 뒤.

[다시 볼을 탈취하는 아스날!]

토트넘의 역습을 차단한 아스날의 볼은 유지우의 앞에서 멈췄다.

머릿속에 그린 그림.

그대로 그리기 위해 볼을 컨트롤하며 타이밍을 쟀다.

10초.

판단은 이 시간이면 충분했다.

왼쪽으로 볼을 길게 보낼 것처럼 모션을 가져갔다.

그 움직임에 토트넘은 순간 당황했다.

첫 골이 마틴 그라임스에게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기억이 그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투-욱.

그래서 그들은 유지우의 페인팅에 걸려들었다.

일제히 유지우가 시선을 준 쪽으로 쏠리는 균형.

그것을 본 유지우는 왼쪽을 쳐다보며 전방으로 노룩 스루패스를 찔렀다.

완전히 타이밍을 빼앗긴 토트넘의 수비진은 속수무책으로 뚫려버렸다.

- 오오오오오오오!

노룩 패스에 모두가 멈춘 것처럼 역동작에 걸렸으나 아드라인 로마오는 달랐다.

전반기부터 꾸준하게 호흡을 맞춰왔기에 그는 유지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아드리안 로마오는 패스 타이밍에 맞춰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무너트리며 침투했다.

[아드리안 로마오! 아드리안! 아드리안---!]

[오프사이드가 아닙니다! 유지우 선수의 패스가 정확하게 배달되면서! 슈----웃!]

뻐—엉!

나오는 골키퍼를 보고 니어포스트로 낮게 깔아 찬 논스톱 슈팅.

철렁.

골키퍼가 뻗은 다리를 피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아드리안 로마오의 슈팅이 토트넘의 골망을 가릅니다! 2 – 0을 만드는 아스날!]

[그리고 아드리안 로마오가 토트넘 홋스퍼 광고판 위로 올라가 귓가에 손을 가져갑니다!]

아스날 2 – 0 토트넘.

골이 들어가자 아드리안 로마오는 엠블럼을 강하게 치며 토트넘 홋스퍼 서포터즈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광고판에 올라섰다.

“이게 아스날이다----!”

잔뜩 흥분해서 외친 소리는 토트넘 팬들의 귓가에 정확하게 박혔고.

“으아아아아아!”

폭동이 일어날 뻔했다.

* * *

“토트넘이 이대로 밀릴 리가 없겠지.”

토트넘은 현재 리그 6위 클럽이었다.

쟁쟁한 클럽들을 상대로도 경쟁력을 겸비한 클럽인데 아스날에게 이렇게 밀릴 때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뻐—엉!

[제이미 포든의 슈팅이 골대를 넘깁니다!]

[데릭 레드먼드에게 밀리면서 슈팅 타이밍이 흔들렸어요. 그러면서 볼의 궤적도 틀어진 거죠.]

제이미 포든을 앞세운 제 – 유 – 스 라인은 꾸준히 틈새를 노렸다.

1차전을 내준다고 해도 2차전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점수 차이를 좁혀야만 했으니까.

“제발 집중하라고! 집중!”

그러나 계속되는 실수.

제이미 포든은 답답한 나머지 볼이 나간 사이, 선수들을 향해 폭발했다.

“제이미,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템포를 끊어먹는 건?”

“…압박이 세게 들어오잖아.”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하는 호흡.

제이미 포든은 마음이 급해졌고,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하다가 데릭 레드먼드에게 밀리며 볼썽사납게 넘어져 버렸다.

삐—익!

“아이고야, 뭘 그렇게 급하게 가?”

“…….”

“자칫 잘못했으면 저기로 밀어버릴 뻔했잖아.”

“…젠장.”

제이미 포든은 데릭 레드먼드의 그물에 잡혀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의 원래 성격은 차분한 편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변한 것은 데릭 레드먼드 때문이었다.

카드를 받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반칙들.

그리고 아스날이 준비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폴 사르가 토트넘을 분석하며 준비한 수비 전술은 제이미 포든에게 가는 패스 길을 끊어내는 거였다.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효과를 나타내자 제이미 포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성공적이군.’

계획한 대로 풀리자 폴 사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토트넘 패스의 절반은 제이미 포든에게 갔다.

근데 오늘 경기에서는 절반은커녕 30분이 지나는 동안, 고작 2번밖에 연결되지 못했다.

‘이걸로 만족할 순 없어, 더 철저하게 무너트려야지.’

폴 사르가 수신호를 내리자 선수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제이미 포든이 강한 압박을 피해 라인을 내려 볼을 받으려고 하자.

퍼—억!

그들은 끝까지 따라가 몸을 부딪쳤다.

하지만 이건 제이미 포든이 노린 거였다.

제이미 포든이 라인을 내리며 생긴 공간에 스티븐 드나예르가 침투했다.

[스티븐 드나예르가 침투하는 방향으로 제이미 포든이 볼을 밀어줍니다!]

제이미 포든이 데릭 레드먼드의 다리 사이로 패스를 찔렀다.

“스티븐--!”

이대로 연결만 되면 골까지는 간단했다.

하지만.

촤---악!

그들의 희망은 아스날의 또 다른 벽에게 가로막혔다.

[레이턴 버트란드가 몸을 날리며 패스를 끊어냈습니다!]

[순간적으로 스티븐 드나예르를 놓치는 모습이 보였는데요! 빠른 판단으로 패스를 차단합니다!]

레이턴 버트란드는 넘어진 상태에서 볼을 밀었고 골키퍼가 멀리 걷어내며 토트넘의 찬스는 무산됐다.

“레이턴!”

“데릭!”

짝.

“잘했다!”

두 선수는 하이 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토트넘의 공격진을 거칠게 무너트리는 데-레 콤비! 아스날의 두 철벽이 빛을 발합니다!]

공격이 득점으로 복수를 한다면.

수비는 무실점으로 복수하는 것이 최고의 복수였다.

데릭 레드먼드.

레이턴 버트란드.

이 두 선수가 분노로 세운 벽은 상상 이상으로 견고했다.

* * *

45분.

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추가 시간이 2분이 주어졌다.

그리고 추가 시간 1분 만에 나온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중거리 슈팅이 토트넘의 골망을 갈랐다.

[토트넘이 득점한 선수들을 견제하느라 라인을 너무 내렸어요. 저렇게 되면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한 방에 당할 수밖에 없죠!]

[이것으로 3 – 0! 토트넘이 전반전에만 3실점을 기록합니다! 폭발하는 아스날의 홈! 그리고 토트넘 팬들의 침묵은 더욱 길어집니다!]

답답한 경기 흐름.

연이은 도발 세레머니에 토트넘 선수들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것들을 어떻게 죽이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

이대로 진다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게 뻔히 보였다.

‘우리만 당할 순 없지.’

그리고 그것을 플레이로 보여줬다.

유지우가 솜브레로 플릭을 하며 제치려고 할 때.

퍼---억.

“으아아아아악!”

뒤에서 구스타보 무라라의 백태클이 들어왔다.

축구화 밑창이 들려 무릎을 겨냥한 태클.

그 태클에 유지우는 넘어져서 오른쪽 무릎을 감싸며 고통스러워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선수들이 달려왔다.

고통스러워하는 유지우를 보며 아스날 선수들은 흥분해서 토트넘 선수들과 충돌했고 구스타보 무라라는 쓰러진 유지우를 봤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원래는 무릎을 겨냥하려던 게 아니었다.

발목을 노리고 들어간 태클이었는데 그게 궤도가 더 올라가며 무릎에 맞은 거였다.

처-억!

주심은 지체하지 않고 퇴장을 선언했고 아스날 팀닥터들이 모조리 필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고통스러워하는 유지우를 우선 들것에 실어 필드 밖으로 이송했고 잠시 후.

삐익-! 삐익-! 삐---익!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3 – 0으로 경기를 리드하는 아스날! 하지만 필드를 떠나는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유지우 선수 때문이겠죠…. 전반 종료 직전에 그런 끔찍한 태클에 당하다니…. 만약 유지우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면 아스날의 경기 운영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리드를 잡은 아스날은 기쁜 것보다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종료 직전에 유지우가 백태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팬들도 걱정했다.

유지우가 없으면 아스날의 경기력에 지장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 후.

후반전을 위해 선수들이 필드로 나왔고 아스날 팬들은 한 선수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 유----!

꼼짝없이 부상으로 아웃 됐을 거로 생각했던 유지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유지우 선수가 후반전을 위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상이 아니라 다행인데…. 어? 유지우 선수가 웃으며 들어오네요?]

그들이 놀란 부분은 유지우가 웃으며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상으로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화를 내는 게 당연한 일.

하나, 유지우는 도리어 웃고 있었기에 그들로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반전의 일은 이미 잊은 모양이네요.]

[프로로서 귀감이 될 자세입니다. 정말 멋지네요.]

해설자들은 그런 유지우의 모습을 두고 감탄했지만.

정작 그를 잘 아는 아스날 선수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봤어? 유 웃고 있는 거?”

“…X됐다. 어휴, 건드릴 사람을 건드려야지 저놈들.”

“무조건 5점 차이 이상으로 끝내. 안 그러면 오늘 남아서 훈련하자고 들러붙을 거야.”

유지우가 진짜로 열 받을 때면, 오히려 웃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삐—익!

그렇게 유지우가 다시 필드로 들어오며 카라바오컵 4강 1차전, 후반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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