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리버풀 전이 있기 일주일 전.
폴 사르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리버풀과 경기에서 볼 운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게겐 프레싱에 당할 거야.’
리버풀은 지금껏 상대한 중하위권 클럽과 달랐다.
우승 경쟁을 하는 클럽답게 치밀하게 상대 팀을 분석한 후, 4월의 저주에 빠진 자신들을 공략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볼 운영을 책임지는 3선 미드필더인 솔 테일러와 메이슨 가벗이 부상으로 빠진 지금, 리버풀이 게겐 프레싱으로 나온다면 꼼짝없이 당할 게 눈앞에 그려졌다.
“감독님, 마테오는 이적하고 아직 적응 기간이라 3선 지휘를 맡기기엔 이릅니다.”
“볼 배급을 위해서는 헤나투를 기용하는 것이….”
“헤나투는 2월 부상에서 복귀하긴 했지만, 경기력이 올라오진 않았습니다. 리버풀전에 기용하긴 어렵습니다.”
“현재 대책은 마테오긴 하죠.”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대책이긴 했지만, 볼 운반하는 플레이는 부족한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폴 사르는 선수들이 훈련하는 걸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
‘3선을 맡을 녀석이….’
그때였다.
유지우가 라인을 내려서 플레이하는 게 보였다.
‘안정적이긴 해.’
어떤 포지션이든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는 유지우의 모습.
그걸 본 폴 사르는 3일에 걸쳐 유지우의 플레이 영상을 찾아봤다.
그렇게.
“유, 어떻게 생각해?”
확신이 들자 유지우를 불러서 물어봤다.
“홀딩이요?”
“파격적인 기용이긴 할 거야. 너에게 부담도 많이 갈 거고. 그래도 내 판단은 네가 잘해줄 거라는 거다.”
“해보겠습니다.”
“부담되면…. 응? 뭐라고?”
“하겠습니다.”
“정말?”
“3선은 유소년 때도 몇 번 뛰어봤습니다.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기초는 알고 있으니까 리버풀전이 있기 전까지 죽어라 연습해보죠. 뭐.”
들려오는 쿨한 대답에 폴 사르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진짜 넌 내 예상을 한없이 뛰어넘는구나.”
“감독님도 대책이 있으시니까 저한테 제안하신 거 아닌가요?”
“…눈치도 빠르고.”
사실 폴 사르도 무작정 유지우를 홀딩 미드필더에 세울 생각이 없었다.
“내가 노하우는 다 전수해주마.”
프로 선수 시절에 3선 미드필더로서 뛰었던 자신의 경험치 또한 전수해 줄 생각이었다.
“단기간에 머릿속에 박아넣어야 한다.”
“자신 있습니다.”
“좋아, 해보자!”
선수 시절 홀딩 미드필더로서 뛰며 누적했던 한평생의 노하우를, 폴 사르는 유지우에게 전수해줬다.
* * *
마틴 그라임스 – 아드리안 로마오 – 라르스 볼프
유지우 – 크리스티안 페레스 – 마테오 크리스단테
마커스 넬슨 – 데릭 레드먼드 – 크리스토퍼 르마 – 루크 홀게이트.
리안 베인스.
4 – 3 – 3 의 아스날.
그레이엄 뱅크스 - 디디에 모페 – 앙투안 클라우스
히카르지뉴 – 곤살루 고메스 – 베르나루드 코헤이아.
리키 에드워즈 – 제프리 루스 – 레오나르도 베르디 – 카일 테일러.
다비드 레이나.
4 – 3 – 3의 리버풀.
사람들은 리그 34라운드에서 아스날의 승률을 낮게 봤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4월의 저주에서 돌아오지 못한 주전선수들의 부재 때문이었다.
[오늘 아스날에게는 다소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돌아오면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 라인으로 불리기 시작한 Y.M.C.A라인이 가동되긴 했지만, 여전히 수비에서의 부재가 컸다.
중하위권 클럽이면 모를까, 공격력이 좋기로 유명한 리버풀을 상대로 로테이션 멤버가 버티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지우의 홀딩 미드필더 기용은.
[이 선택이 맞을까요?]
많은 이의 의문을 품게 했다.
[홀딩 미드필더는 까다로운 롤입니다. 유지우 선수가 지금껏 뛰던 공격적인 롤과는 정반대라 걱정이 앞서네요.]
공격적으로 골문을 노릴 때와는 달리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더 많았다.
처음 5분은 불협화음이 보였다.
그걸 놓치지 않은 리버풀이 브라질 듀오를 활용해 빠른 템포로 공격을 가동했다.
빠른 패스와 뛰어난 볼 컨트롤.
그렇게 나온 틈새로 베르나루드 코헤이아가 패스를 찔렀는데.
촤—악!
패스 길로 들어온 태클 하나.
유지우가 몸을 날려 패스를 잘라냈다.
“…진짜 미치겠군. 하다 하다 홀딩까지 저렇게 본다고? 허어….”
높은 활동량으로 공간을 커버하는 모습은 리버풀 감독의 이마를 짚게 했다.
믿기지 않았다.
30세를 넘은 베테랑도 아닌, 19세 어린 선수가 보여주는 노련함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뻐—엉!
그래도 약간의 어색함이 묻어나는 플레이를 보이자 그곳을 노리려고 했는데.
촤—악!
주변의 선수들이 유지우를 커버해주며 리버풀의 찬스는 무산이 됐다.
“…폴 사르 감독이 제대로 준비했군.”
홀딩 미드필더를 처음 뛰는 유지우를 위해, 아스날은 근처에 백업해주는 선수들을 설정하여 빈틈이 없게 만들었다.
[아스날이 유지우 선수를 홀딩 미드필더로 내세우며 리버풀의 공세를 막아냅니다!]
[대단합니다! 공격적인 재능뿐만이 아닌 수비적인 재능까지 갖춘 유지우 선수!]
그리고 폴 사르가 유지우를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한 가장 큰 이유는.
탁.
그건 압박 지역이 아닌 빈 곳에서 여유롭게 볼을 잡고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지우는 여유 있게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했고.
탓, 타닷!
라 크로케타로 압박하는 베르나루드 코헤이아를 제친 뒤에 빈 곳으로 롱패스를 보냈다.
[오오오오-! 유지우 선수가 전방으로 길게 넘겨주는 패스! 최전방인 아드리안 로마오가 잡고서 마무리하지만! 골대를 넘어가고 맙니다!]
[방금 유지우 선수의 패스 보셨습니까? 하프라인 아래에서 최전방까지 단숨에 패스를 찔러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걸 본 전문가들은 눈치를 챘다.
유지우가 맡은 역할은 단순한 홀딩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2선 플레이메이커가 아닌 3선 플레이메이커.
‘딥라잉플레이메이커(Deep-lying playmaker).’
이것이 이번 경기에서 폴 사르가 설정한 유지우의 역할이었다.
* * *
‘유, 생각하는 게 어려우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그저 뛰는 곳만 달라졌을 뿐이야.’
‘뛰는 곳이요?’
‘네가 활동하는 지역만 1선에서 3선으로 바뀌었을 뿐, 모든 게 동일해. 그러니까 나올 기회가 생기면 과감하게 나와.’
폴 사르가 유지우에게 부여한 롤은 3선에서 플레이 메이킹을 하는 딥라잉플레이메이커 롤이었다.
팀의 전체적인 플레이를 만들어가는 자리라 라인을 자주 옮기는 탓에 수비적인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 약점이었지만, 폴 사르는 그것을 커버할 선수도 지정해놨다.
촤---악!
그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는 아스날에서 유지우 다음으로 체력이 많은 마테오 크리스단테였다.
폴 사르는 유지우가 라인을 2선으로 올릴 때를 대비해 수비력이 뛰어난 마테오 크리스단테의 라인을 내려 대기시켰다.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히카르지뉴에게서 볼을 탈취! 그리고 어느새! 라인을 내려와 볼을 잡을 준비를 하는 유지우 선수!]
“유! 뒤는 걱정하지 마!”
그렇게 치밀한 설계 끝에 볼이 유지우에게 향했으나.
[리버풀의 압박이 빠릅니다!]
볼을 받기 전부터 리버풀의 게겐 프레싱이 강하게 들어왔다.
어느새 준비하고 있던 히카르지뉴가 빠르게 유지우에게 붙으며 방해했다.
‘돌아서지만 못하게, 그다음은 베르나르두와 협력으로 막으면 돼.’
미리 준비한 대로 신중한 수비를 펼치는 히카르지뉴를 상대하는 유지우는.
뻐—엉!
몸싸움을 등진 상태에서 버티고 바디 페인팅으로 균형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다가 생긴 틈새로 빠져나가며 롱패스로 그들의 압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뻐--엉!
좁은 지역에서 압박을 빠져나오면서 정확하게 빈 곳으로 볼을 보내는 것을 본 리버풀 감독, 데이브 시드웰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탈압박 능력을 갖춘 딥라잉이라.”
유지우가 찌른 볼은 왼쪽 공간으로 향했다.
[왼쪽으로 길게! 마틴 그라임스에게 정확하게 배달됩니다! 마틴 그라임스가 받아서 투 터치 후! 빠르게 크로스---!]
수비의 견제를 뚫고 올린 크로스는 아드리안 로마오에게 연결됐지만, 골키퍼의 펀칭으로 아쉽게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득점만 나와준다면 아스날이 경기를 운영하는 데 여유로울 텐데 아쉽습니다!]
[그런데 유지우 선수가 후방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줄지는 몰랐습니다. 정말… 뭐 하는 선수죠?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는 포지션인데 저렇게 능숙하다니.]
끊임없이 움직이는 고개.
넓은 시야로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찔러주는 패스는 저절로 감탄이 나오게 했다.
그리고 보여주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운데로!”
플레이메이커로서 공격의 방향을 정해줬다.
마틴 그라임스 – 아드리안 로마오 – 라르스 볼프.
세 명의 공격수와 그 뒤를 받쳐주는 크리스티안 페레스까지.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전방으로 찔러준 패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라르스 볼프가 잡고 가운데로 넣어줍니다!]
[아드리안 로마오! 로마오-----! 아! 골키퍼가 한발 먼저 펀칭으로 쳐냅니다!]
아스날은 계속해서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어갔다.
20분.
30분.
아스날이 기회를 만들어가긴 해도 리버풀의 공세가 조금 더 위협적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스날이 아무리 치밀한 설계를 했다곤 해도 리버풀을 상대로 1.5군을 기용하는 건 위험한 선택이었으니까.
자꾸 중앙에서 공격의 흐름이 끊기자 데이브 시드웰 감독은 바로 변화를 지시했다.
“곤살루! 공격 방향을 바꾼다!”
유지우가 버티는 중앙이 아닌 비교적 얇은 측면을 공략하기로 했고.
그건, 보기 좋게 먹혔다.
[그레이엄 뱅크스의 날카로운 크로스!!! 순식간에 돌아 나온 디디에 모페의 오버 헤더 키이이이이익-!]
디디에 모페가 정확하게 오버헤더 킥을 했지만, 슈팅은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넘어가고 말았다.
[아스날의 측면이 오늘 자주 열립니다! 언제 실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요.]
[운이 따라주긴 하지만 그 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 * *
유지우는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리버풀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자 시간이 흐를수록 리버풀의 리듬으로 경기가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템포를 조금 줄여보자.’
리버풀의 게겐 프레싱으로 올라온 경기의 템포를 일부러 한 번 끊었다.
스르르르륵.
볼을 끌면서 선수들의 타이밍을 조절한 뒤.
뻐—엉!
왼쪽으로 보내는 척 페이크를 준 다음에 오른쪽으로 보내줬다.
그 뒤로도 그런 패스를 자주 보여줬다.
뻐—엉!
“침착하게!”
뻐—엉!
“줄 곳이 없으면 다시 뒤로!”
패스를 하면서도 지휘는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린 그림대로 경기를 천천히 만들어갔고 하프라인 근방에서 꾸준히 찔러주는 위협적인 패스는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의 롤을 정확하게 이해한 모습이었다.
[3선에서 위협적인 패스를 뿌려주는 유지우 선수! 오늘 처음으로 홀딩 미드필더에서 뛰는데 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리버풀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유지우는 수비 시에 마테오 크리스단테와 포백 보호도 수행하며 리버풀의 기회를 번번이 차단해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유지우가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하자 폴 사르의 입꼬리는 하늘로 승천할 기세였다.
“축구를 저렇게 예쁘게 하는 녀석은 처음이야.”
“저도요.”
“가슴이 뛰어.”
“전 가슴이 터질 거 같습니다.”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의 깊이가….”
뻐—엉!
“차원이 달라.”
유지우가 이렇게까지 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축구 지능이었다.
포지션 이해도.
전술 이해도.
그것을 포함해 전체적인 경기를 읽는 눈과 경기 운영 능력까지.
재능이 차고 넘쳤다.
* * *
이 경기는 대한민국에도 생중계가 됐다.
【 LIVE) 아스날 vs 리버풀, 0 – 0 진행 중. 】
- 갓지우는 못 하는 게 뭐야?
사람들이 놀라는 부분은 유지우의 포지션이었다.
홀딩 미드필더를 처음 뛰어서 실수할 줄 알았는데 완벽에 가까운 수행력을 보여주자 입을 벌리고 놀라기 바빴다.
- 저게 말이 되냐고 ㅋㅋㅋㅋ
- 만화 주인공임?
- 그냥 홀딩도 아니라 딥 라잉 플레이 메이커임, 패스 전부 지우 발끝에서 시작되잖아.
- ㄹㅇ 리버풀 감독도 어이없겠다.
- 이쯤 되면 무슨 포지션을 못 하는지 궁금해지는데.
- 유지우 열 명 더 복제하면 월드컵 우승 쌉가능 ㄹㅇ ㅋㅋ
- 이과 놈들아 뭐 하냐 유지우 복제 안 하고
아스날과 리버풀의 대결은, 그렇게 경기장 안팎 모두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