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아스날~”
훈련이 없어 쉬는 날.
우리 집에선 아침부터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은 아침을 준비하면서 춤까지 추셨고 누나는 굳은 표정으로 밥을 먹었다.
“누나.”
“…뭐.”
“아직도 삐졌어?”
“내가 왜!”
“카라바오컵 결승.”
흠칫.
“거기서 아스날이 이기니까 이틀은 말 없었잖아.”
맨체스터 시티 팬인 누나는 내가 카라바오컵에서 우승하자 축하한다는 말은 해줬지만, 그 뒤에 이틀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아이고~ 시티 팬의 마음은 태평양 같다던 분은 어디 가셨나?”
부모님은 이때다 싶은지 합심해서 누나를 놀렸다.
“태평양이 아니라 동네 수영장 아닌가요?”
“수영장이 아니라 세면대는요?”
두 분의 장난에 누나는 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그, 그래도! 리그 우승은 시티가 할 거예요!”
어.
그 말은 안 하는 게 좋았을 텐데.
“…동생은 우승도 하지 말라는 거구나.”
“지우야, 네 누나 몫까지 우리가 응원할게.”
부모님은 건수를 잡았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다가와 위로를 해줬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띤 채.
그간 맨유로 놀림당했던 게 서러우셨는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놀리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역시나 얼굴이 붉어져선 황급히 말을 수습해보려던 누나였지만.
“동생이 이렇게 노력하는데 그것도 알아주지 않는 누나가 무슨 누나라고, 그렇지?”
부모님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슬쩍 거들었다.
누나는 반응이 재미있어서 놀리는 맛이 있단 말이지.
“아버지, 저한테 누나가 있었나요?”
“하늘색 심장을 가진 누나가 있더구나.”
“이런.”
“나도 놀랐어, 우리 가족은 모두 붉은 심장을 가지고 있잖아.”
맨유랑 아스날, 다 상징색이 붉은색이니까 부모님 심장은 어쨌든, 붉은색이긴 하네.
“으아아아아아아! 다들 그만들 좀 해요!”
누나는 소리를 지르며 2층으로 올라갔고 부모님은 그 뒷모습에 계속해서 놀렸다.
“지우야! 클럽에 가서 얼른 알려라! 우리 집에 시티의 첩자가 살고 있다고---!”
우리 집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하늘색 심장을 가진 한 사람만 빼고.
* * *
리그 36라운드 아스날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패스 – 94회 (성공률 93%)]
[결정적 패스 – 5회]
[태클 – 7회 (성공 – 7회)]
[돌파 – 11회 (성공 – 11회)]
[파울 – 0회]
[도움 – 0개]
[득점 – 1개]
1점 차이로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한 골을 넣은 난 67분쯤에 교체되어 벤치에 앉았다.
“수고했다.”
“예.”
“남은 건 동료들을 믿어.”
1점 차이밖에 벌어지지 않은 지금, 감독님이 나를 뺀 건 다음 경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든 한 점을 사수해!”
그렇게 선수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역습으로.
출렁.
한 골을 더 추가했다.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벼락같은 중거리 슛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심장에 비수를 꽂습니다!]
[이것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로파 티켓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0 – 2로 벌어지자 추격 의지가 꺾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또다시 좌절했다.
듣기로는 작년에는 우리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게 달라졌다.
작년의 실수를 반복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실수를 교훈 삼아 작년과 비교해 확연하게 달라진 아스날.
두 클럽이 다른 결과를 받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삐-익! 삐-익! 삐----익!
리그 36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며 우리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 리그 1위 맨체스터 시티 / 36전 25승 9무 2패 – 84점 》
《 리그 2위 아스날 FC / 36전 25승 8무 3패 – 83점》
승점 차이는 1점.
이제 모든 건 다음 라운드에서 정해진다.
.
.
.
경기가 끝나고 우리 집은 저번과 상황이 반전됐다.
“엄마, 맨유 또 졌던데요?”
“…….”
“이걸로 맨유는 8위 확정인가? 작년보다 2위나 올랐네요! 와, 대단하다!”
부모님이 내 영향으로 아스날 팬이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맨유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식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맨유가 진 후, 집 안 분위기는 평소와 달리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 시즌에는 7위 하려나? 맹구! 맹팔! 맹칠! 시즌마다 새로운 클럽이 되네요?”
누나는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맨유? 프리미어리그에 그런 클럽이 있었나?”
“아! 내년에 다시 창단한다는 그 클럽 얘기하는 건가?”
현실 부정을 하는 부모님을 본 누나는.
“맨유라는 클럽은 재창단만 몇 번을 해요? 벌써 수십 번은 한 거 같은데?”
이때다 싶었는지 지난번에 당했던 걸 복수했다.
당하기만 하는 부모님을 보고 난 슬쩍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응?”
“다음 경기에서 맨시티 이기고 우승할 거예요.”
난 부모님이 당하는 것보다 누나를 놀리는 게 더 재미있었으니까.
“!!!”
부모님의 얼굴은 활짝 폈고 누나의 표정은 한 방 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이내 나를 노려보곤.
“야! 왜 날 안 도와줘!”
배신당한 사람의 표정을 지으며 내 팔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미안해 누나.
“난 하늘색 심장을 가진 사람하고는 말 안 해.”
누나 놀리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
* * *
【 아스날 vs 맨체스터 시티, 이번 시즌에만 벌써 3번째! 】
【 1승 1무로 맨체스터 시티에게 강했던 아스날.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까? 】
전반기 무승부.
카라바오컵에서 승리.
2전 1승 1무의 상대 전적을 가진 두 클럽의 격돌에 프리미어리그를 넘어 전 세계 축구 팬의 이목이 쏠렸다.
‘이기는 클럽이 우승에 가까워진다.’
두 클럽의 승점 차이는 고작 1점.
여기서 아스날이 이긴다면 맨체스터 시티를 부동의 1위에서 끌어내릴 수가 있었다.
【 아스날 vs 맨체스터 시티! 】
아스날이 우승을 할지, 아니면 이변 없이 맨체스터 시티가 우승할지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러 TV 프로그램은 연신 토론을 했지만, 누가 이길지는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시티가 유리하다고 얘기하는 게 어렵네요.”
프로그램에 참석한 패널들은 고심 끝에 얘기를 시작했다.
“1승 1무로 아스날이 상대 전적에서 우위에 있긴 하죠.”
시즌 초반 때는 누구도 아스날의 승리를 얘기하지 않았을 거였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맨체스터 시티의 승리를 예상했을 테니까.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아스날이 31-32시즌에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스날이 이렇게까지 할 거라는 건 모두의 예상 밖이었습니다.”
“승률은 정확하게 반반,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죠.”
“아스날이 분위기를 타면 이길 수 있겠지만, 시티도 이번에는 각오를 다지고 뛸 겁니다. 기세 싸움에서 지는 쪽이 패배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이제 누구도 아스날이 질 거라고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매일 얘기를 나누며 어떤 클럽이 이길지 예상했고, 축구에 관심이 있는 셀럽들의 SNS에도 해당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됐다.
【 31-32 프리미어리그 우승 클럽은 어디가 될 것인가! 】
며칠 후.
경기 당일.
아스날의 홈인 애슈버턴 그로브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곳에는 유지우의 가족들도 있었다.
“아빠.”
“우리 하늘색 심장을 가지신 따님께서는 저리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몰매 맞는 거 보고 싶으세요?”
“농담이지~ 우리 딸이 이렇게 지우 유니폼도 입었는데!”
다 같이 유지우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자, 아스날 팬들은 서서히 유지우의 가족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 유의 가족들이군요!”
“너튜브에서 봤습니다!”
“우리에게 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지우로 인해 아스날이 작년과 정반대의 성과를 거두자 유지우의 가족들도 덩달아 대우를 받았다.
“오셨습니까.”
직원이 다가와 가족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줬다.
“오늘은 메인 서포터즈석에서 보는 걸 참아주십시오.”
“네.”
유한우는 메인 서포터즈석에서 같이 열기를 느끼는 걸 즐겼는데 오늘은 안전상의 문제로 구단에서 부탁했다.
우승을 가르는 중요한 경기라 팬들이 평소보다 예민해 혹여 가족들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경호팀이 상시 배치 중이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여기 호출 벨을 눌러주십시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가족석은 정말 가족들만 모여서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와, 평소랑 아예 다르지 않아요?”
유민하는 가족석 밖에 비치된 좌석으로 나가자 달아오른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우승을 정하는 경기잖아.”
38라운드가 남아있긴 했지만 사실상 아스날 팬들과 맨체스터 시티 팬들에겐 이 경기가 리그 최종 라운드보다도 중요했다.
목숨을 걸고 이겨야 하는 더비 매치보다도 더.
“더비 전보다 더 뜨거울 수밖에 없지.”
그런 분위기를 알기에 서설희는 걱정스러웠다.
“지우가 걱정돼?”
“…이렇게 승점 차이가 얼마 남지 않는 상황에서 우승 경쟁을 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아르헨티나의 더비 역시 거칠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경기와 같이 치열하게 우승을 다툰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혹시 유지우가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우리 아들을 믿어! 반드시 시티를 뭉개고 아스날의 역사를 만들 거니까!”
* * *
아스날 라커룸 안.
워밍업을 마치고 들어온 선수들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다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우승.’
눈앞에 그게 보이자 긴장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긴장이 됐다.
“긴장되나?”
폴 사르는 그걸 눈치챘다.
“표정이 아주 똥이 마려운 개처럼 보기 좋군.”
농담을 섞어가며 분위기를 풀어줬다.
라커룸 안은 코치진들만이 아닌 구단 직원들도 있었다.
리그 우승이 달린 경기라 최소 근무를 서는 인원을 제외하고 모든 인원이 경기장에 있었다.
“하긴 지금껏 이런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했으니까 긴장이 되겠지, 이해한다. 단 한 경기로 우승이 판가름 나는 경험은 몇 번을 해도 죽을 거 같거든.”
폴 사르는 선수 시절부터 감독 시절까지 여러 우승을 경험했고 이러한 긴장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
그렇기에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였다.
“죽어라 싸워라, 넘어져도 일어나고 죽을 것 같아도 일어나라, 너희들의 31-32시즌이 이 한 경기로 기억이 될 테니까.”
동기부여.
- “네!”
선수들에게 해줄 거라곤 긴장감을 풀어주는 것보단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시키는 것뿐이었다.
어설프게 푼 긴장감은 이런 경기에서 독일 될 게 뻔하니까.
“이번 시즌이 끝나면 기억되는 건 딱 하나다! 우승은 누가 했지?”
“…….”
“난 그게 시티가 아니라 아스날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껏 못난 우리를 믿어준 보드진에게도! 그리고! 끔찍한 암흑기를 보내는 동안에 우리를 버리지 않고 믿어준 팬들을 위해서라도!”
폴 사르는 팬들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선수들도 표정이 바뀌었다.
그동안 울면서도 끊임없이 응원을 보내준 팬들.
암흑기에서도 믿어준 팬들.
그들에게 드디어 선물을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였다.
“데릭? 무슨 할 말 없나?”
폴 사르가 말하자 라커룸 안의 모든 시선은 데릭 레드먼드에게 향했다.
데릭 레드먼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을 보며 말을 했다.
“내가 할 말은 별로 없어.”
선수들은 주장이 어떤 말을 할지 집중했다.
“나는 그동안 팬들에게 뭘 준 적이 없어, 받기만 했었으니까.”
암흑기를 걷는 주장이 팬들에게 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드디어 이번 시즌에 들어 카라바오컵을 우승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받은 것에 비하면 초라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에게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을 위해서! 이제는 받기만 하지 말고 선물을 주자!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만큼! 커다란 걸로!”
데릭 레드먼드의 말에 선수들은 ‘당연하지!’ 대답한 뒤, 라커룸을 나갔다.
필드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모여 선수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축구에 관심이 있는 유명인들까지 관중석을 채웠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TV 시청률은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말씀드리는 순간! 양 클럽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마틴 그라임스 – 아드리안 로마오 – 유지우.
메이슨 가벗 - 크리스티안 페레스 – 마테오 크리스단테.
마커스 넬슨 – 데릭 레드먼드 – 레이턴 버트란드 – 스티븐 하머.
리암 베인스.
4 – 3 – 3의 아스날.
안드레 마르틴스 – 오스마르 토레스 – 저메인 팔머.
율리안 쿠겔 – 데일 모리슨 - 윌리엄 폴크.
브래들리 포스터 – 스콧 메이시 – 디오구 바렐라 – 루벤 헨더슨.
글렌 테일러.
4 – 3 – 3의 맨체스터 시티.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결정지을 리그 37라운드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