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리그 최종라운드 당일.
아스날 vs 노리치 시티.
아스날의 28년 우승 확정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많은 취재진이 애슈버턴 그로브 스타디움을 찾았다.
“오늘도 꽉 찼는데?”
취재진 중 한 명이 경기 시작도 전에 채워진 관중석을 보고 놀랐다.
“28년 만의 우승 확정 순간을 놓치고 싶은 구너는 없지.”
“하긴.”
“저기는 유의 나라 국기지?”
“맞아.”
곳곳에선 태극기를 가진 팬들도 있었다.
“…이번 시즌 아스날의 주인공은 유이긴 해.”
“아스날의 수준을 한 단계 위로 끄집어 올린 선수잖아.”
누구도 이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만큼 유지우가 아스날에서 31-32시즌 동안 보여준 퍼포먼스는 충격적이었으니까.
“어떻게 축구를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아르헨티나에서도 역사를 쓰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역사를 쓰는 선수라…. 이거 이야기가 되겠는데?”
취재진은 벌써 어떤 기사를 쓸지 머리를 굴렸다.
28년 만의 우승.
이것도 너무 좋은 소재지만, 유지우도 흥미로운 소재였다.
한국에서 버림받았던 천재.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로 가서 새로운 날개를 달고 비상하며.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한다.
이 내용은 보는 이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만약 최종전의 승리까지 거머쥘 수 있다면, 이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을 끌며 유지우의 이름을 세계에 한껏 더 알리는 계기가 될 게 분명했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네.”
“우리도 준비하자고, 역사적인 순간을 담으려면 남들보다 한발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이 경기에서 이기면 아스날은 우승을 확정 짓게 된다.
하지만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패배하는 순간, 우승을 놓치는 거기도 했다.
“제발.”
“우승 좀 해보자!”
관중석에 앉은 관중들은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세한 부분은 달랐지만, 그들이 띠고 있는 표정에는 모두 같은 감정이 녹아 있었다.
‘기쁨과 설렘.’
시즌 시작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한 기적.
그것이 눈앞에 다가올 것을 생각하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필드 안쪽을 보며 함성을 질렀다.
- 와아아아아아아!
그들의 함성이 향한 곳에는 워밍업을 위해 나오는 아스날 선수들이 있었다.
“유-!! 오늘도 잘 부탁한다!”
“크리스티안! 어시스트 신기록 달성해야지!”
“너희만 믿고 있어!”
“우승하고 다 같이 웃자!”
선수들은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몸을 푼 뒤, 라커룸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유지우는 필드 밖을 나와 통로로 들어가려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유? 어디가?”
“저기.”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유지우가 가리킨 곳을 보고 웃었다.
“애들이네?”
“구단에 초대해달라고 부탁했거든.”
“넌 못 말린다니까.”
“같이 갈래?”
“그러자.”
두 사람은 함께 걸어 목적지에 도달했다.
“왔어?”
그곳엔 병원 아이들이 보호자들과 같이 있었다.
구단에서는 리그 최종라운드를 기념하기 위해 아스날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초대해, 그 의미를 더 깊게 하고자 했다.
“오늘 꼭 이겨요!”
“해트트릭해 줘요!”
“꼭 어시스트 해야 해요, 크리스티안!”
“끝나고 사인해 주세요!”
아이들은 두 사람을 보고 잔뜩 신이 나 소리쳤다.
두 사람은 그들의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답해준 뒤에.
“재미있게 보고 가.”
인사를 하고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라커룸 안.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선수들의 몸은 살짝 달아오른 상태였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28년 만에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선수들은 평소보다 의욕이 넘쳐났다.
그걸 아는 폴 사르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긴 얘기는 어제 미팅룸에서 실컷 했으니까 오늘은 짧게 한다.”
-“네!”
“가서! 31-32시즌 영화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들고 와라!”
28년 만의 우승.
31-32시즌의 결실을 보기 위해 아스날 선수들은 비장한 표정을 한 채, 라커룸을 나섰다.
* * *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노리치 시티는 라인을 내려 텐백으로 벽을 세웠다.
“공격만 막아! 끝까지 집중해!”
“들어오지 못하게!”
“간격이 넓잖아, 좁혀!”
아스날의 공격력에 대비해 수비벽을 두텁게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라인을 내린 만큼 그것은 도리어 아스날에게 라인을 올릴 공간을 주었고.
그 덕분에 아스날은 노리치 시티의 진영에서 공격적인 빌드업을 가져갈 수 있었다.
“크리스티안!”
그 중심에는 크리스티안이 있었다.
시즌 초만 해도 빌드업 과정에서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적응기를 끝낸 지금.
그는 리그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볼 전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뻐—엉!
특히 낮고 빠르게 찌르는 스루패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엄청난 회전수, 빠른 속도.
수비수들이 발을 뻗어보지만, 놓치는 절묘한 코스.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아스날에서 뛰면서 한층 더 성장했다.
- 아아아아아!
[왼쪽에서 라인을 올린 마틴 그라임스를 겨냥해보지만! 마틴 그라임스의 슈팅이 살짝 뜨고 말았습니다!]
어느 위치든 원하는 대로 찔러줄 수 있는 능력은 그를 한 시즌 만에 프리미어리그 스타로 만들었다.
이것이 아스날 팬들을 넘어 다른 팀 팬들 사이에서 ‘패스 마스터’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였다.
[거의 반코트 싸움입니다! 노리치 시티는 아스날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지만! 빠르게 볼을 돌리는 아스날!]
전반 24분.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패스를 받은 유지우가 오른쪽 측면을 돌파하며 노리치 시티의 텐백을 뚫어냈다.
- 유! 유! 유!
관중들은 에이스의 돌파에 발을 구르며 이름을 연호했다.
에이스는 그런 팬들의 연호에 부응하듯 라 크로케타와 플리플랩, 솜브레로 플릭 등 화려한 개인기로 필드를 수놓았다.
그때였다.
화려한 개인기에 노리치 시티 수비 균형이 무너져내린 것은.
[유지우 선수! 세 명의 선수를 제치고 안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갑니다!]
[화려하면서도 치명적인 드리블! 이 드리블은 알면서도 막지 못하죠!]
라인을 타듯 들어가는 드리블이라 골 각도는 나오지 않았다.
툭.
툭.
발등으로 볼을 밀면서 들어가던 유지우는 수비수들의 스텝을 살폈다.
‘아직.’
거리를 좁혀오는 수비수들은 일정한 리듬으로 스탭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핏 안정적으로 보이는 스텝은 일정한 간격이라 파악하기도 쉬웠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유지우는.
‘지금!’
노룩패스로 노리치 시티 수비수들의 타이밍을 빼앗으며 컷백 패스를 찔렀다.
스르르르륵.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쇄도하는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발아래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가는 볼.
“크리스티안! 앞으로!”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압박이 들어오기 전.
투—웅!
수비수들의 머리 위로 로빙패스를 올렸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절묘한 패스에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툭.
그걸 받은 건 아드리안이었다.
그는 점프를 뛰어 이마로 볼의 궤적만 살짝 틀며 골키퍼를 역동작에 걸리게 했고.
볼을 오른쪽 구석에 꽂았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아드리안 로마오의 고오오오오올! 정말 이 선수의 라인 브레이킹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합니다!]
[유지우 선수 다음으로 크리스티안 페레스도 어시스트 25회로 새로운 기록 보유자가 되며! 아스날이 자랑하는 듀오가 나란히 프리미어리그 기록 보유자가 됐습니다!]
크리스티안 페레스도 마침내 어시스트 신기록을 세우며 유지우와 마찬가지로 기록 보유자가 됐다.
그걸 본 팬들은 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우리 클럽에 득점 기록 보유자랑 어시스트 보유자가 있는 거지?”
“그래! 이게 아스날이라고!”
“하하하-! 시티 녀석들 배 아파 죽겠는데?”
유지우가 오스마르 토레스의 득점 기록을 갈아치울 때, 맨체스터 시티 팬들은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오늘 또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맨체스터 시티 공격형 미드필더 율리안 쿠겔의 어시스트 리그 최다 24회 어시스트 기록을 25회로 경신했으니, 또다시 슬픔에 잠길 게 분명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아스날 팬들은 화산이 폭발하듯 함성을 질렀다.
선수들은 골을 넣은 아드리안 로마오를 잠깐 축하해주곤 크리스티안 페레스에게 달려가서 축하해줬다.
“크리스티안!”
“축하해!”
“너도 기록 보유자가 됐구나!”
“미쳤어! 미친 거라고!”
골을 넣은 아드리안 로마오는 세레머니를 하다 말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저기, 나는?”
아스날 1 – 0 노리치 시티.
아스날이 최종라운드를 리드하기 시작하며 우승에 한 걸음 다가갔다.
* * *
1점을 앞선다고 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동 시간에 진행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 vs 아스톤 빌라의 경기 결과에 따라, 우승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댄, 어때?”
관중석에서는 휴대폰으로 맨체스터 시티 경기 중계를 보는 팬들이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도 이기고 있지?”
“어, 3 – 0.”
“망할 놈들. 이럴 때 지기라도 하면 마음 편히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깟 놈들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가 이기면 돼!”
“그래, 자력 우승에 의미가 있지!”
“제발…. 이대로만 가자!”
맨체스터 시티에게 승점 2점이 앞서는 상황.
이대로 아스날이 리드를 지켜낼 수 있다면 우승도 꿈이 아니었다.
더욱이 여전히 수비적인 전술을 펼치고 있는 노리치 시티의 모습이.
아스날 팬들이 꿈에 더더욱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사고가 나왔다.
전반 44분.
수비하던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노리치 시티의 역습 상황을 깔끔한 태클로 차단했는데.
뒤에서부터 들어간 태클이었던 탓에 주심이 휘슬을 분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상대 선수는 발목을 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안 닿았어요!”
마테오 크리스단테는 안 닿았다고 항의했고 주심은 가슴에 손을 넣었다.
아스날 선수들과 노리치 시티 선수들이 주심 근처로 몰린 순간.
주심은 옐로카드가 아닌, 레드카드를 꺼냈다.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퇴장!!!]
관중들도 잔뜩 흥분했다.
분명히 깔끔하게 걷어낸 것 같았는데 퇴장이라니.
황당한 것은 해설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당 장면을 리플레이로 돌려본 결과, 그것이 오심이라는 것은 명백했기 때문이다.
[느린 화면으로 보십시오! 이게 반칙입니까? 마테오 크리스단테의 태클이 정확하게 볼만 건드렸고 루카 마르탱이 무리하게 돌파하다가 스스로 넘어진 겁니다!]
[이건 VAR 신청을 해야죠, 말도 되지 않는 판정입니다!]
주심의 퇴장 선언에 폴 사르는 VAR을 요청했다.
요청에 따라 VAR을 확인한 주심은.
척.
똑같은 판정을 내렸다.
“이봐요!”
“말이 안 되잖아요!”
“쟤가 걸린 거라니까요?”
판정이 달라지지 않자 아스날 선수들은 흥분해서 주심에게 항의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봐도 이건 루카 마르탱이 일부러 다리에 걸려 넘어진 거였으니까.
그러나 주심은 더는 항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실제 사실이 어떻든 간에, 경기 내에서 주심의 결정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도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이건 오심이죠, 어떻게 VAR을 봤는데도 저런 판정을 할 수 있는 거죠?]
[말이 안 됩니다! 이런 판정은 말이 되지 않아요! 저 주심은 대체 뭘 보고 퇴장이라고 생각한 겁니까?]
마테오 크리스단테는 고개를 떨궜다.
퇴장 명령을 받고 필드로 나오는 데 눈물이 나왔다.
‘젠장.’
억울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눈물로 흘러나왔다.
28년 만의 우승 도전.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같은 대업을 이루는데,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한 감정이 올라오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테오!”
어깨가 축 처진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유지우가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우승 세레머니나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어.”
데릭 레드먼드는 루카 마르탱을 죽일 듯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우리가 저것들에 지겠어? 그러니까 어깨 펴고 나가! 반드시 우승시킬 테니까.”
데릭은 마테오 크리스단테의 어깨를 강하게 안아주었다.
비록 시즌 초반이 아닌 1월에 합류해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가장 치열한 후반기를 함께 뛰어온 그들은 이번 일로 동료에게 뭐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곳까지 오는 것이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우릴 믿어.”
“…….”
비록 필드에서 뛰는 선수가 열 명이 된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래왔듯, 선수단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승리할 테니까.
“우린, 아스날이잖아.”
그리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테니까.
삐익-! 삐익-! 삐----익!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나고 잠시 후.
전반 종료 휘슬이 울렸다.
1 – 0으로 앞서는 아스날.
팬들은 불안한 얼굴로 손을 마주 잡았다.
남은 후반전 45분을, 10대11로 싸워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불안함은 후반전을 위해 나오는 선수들을 보며 사라졌다.
“…….”
필드에 들어온 선수들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맨체스터 시티전보다 더욱더.
삐—익!
그렇게 리그 최종라운드의 후반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