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94화 (194/383)

제194화

후반전이 시작되자 노리치 시티는 변화를 줬다.

[오, 노리치 시티가 텐백을 포기하고 4 – 2 – 3 – 1로 전술 변화를 줍니다! 공격적으로 라인을 올리겠다는 것으로 보이죠?]

[후방에 미드필더 두 명을 하프라인 너머까지 라인을 올리며 수적인 우위를 가져가려는 것 같습니다.]

노리치 시티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축구는 11 vs 11의 스포츠인데 상대 팀 한 명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역전할 적기였다.

타다다다닷-!

그러나 아스날은 그냥 당할 클럽이 아니었다.

31-32시즌 프리미어리그에 돌풍을 일으킨 클럽답게 후반전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퍼—억!

그들은 몸으로 부딪치며 노리치 시티를 방해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유지우였다.

그는 빠른 주력으로 순식간에 최전방에서 최후방으로 내려와 수비 가담을 했다.

- 오오오오오오오!

노리치 시티의 흐름을 끊는 깔끔한 태클에 관중석에선 감탄이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우는 유니폼에 묻은 잔디를 털며 스티븐 하머에게 말했다.

“스티븐, 여기는 제가 맡을 테니까 조금 더 중앙으로 내려 가줘도 돼요.”

“알았어.”

“그리고 너무 라인을 올리지는 말고요.”

폴 사르는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을 지시했다.

동시에, 맨체스터 시티의 상황을 분 단위로 살폈다.

“시티는 어때?”

“여전히 3 – 0 리드를 지키고 있습니다.”

“후우.”

“우리도 리드만 지키면 됩니다.”

“지키는 축구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우린 마지막까지 아스날답게 간다.”

수적 열세라고 라인을 내려 수비를 하는 건 폴 사르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수가 부족하더라도 공격하는 것.

지루한 축구가 아닌 보는 맛이 있는 축구를 하는 것이 폴 사르의 축구 철학이었다.

“라인은 너무 내리지 마! 기회가 생기면 올려! 수가 부족하다고 자신감마저 부족해지지 마!”

그는 끊임없이 라인에 서서 얘기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노리치 시티는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격을 펼쳤고, 아스날은 수비를 하면서 역습 플레이를 가져갔다.

그리고 노리치 시티는.

“…….”

아스날의 매서운 공격에 다시 라인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노리치 시티가 다시 라인을 내려서 수비 태세를 갖춥니다.]

[어쩔 수가 없죠, 수적 우위에 있다곤 해도 유지우 선수를 비롯해 아스날 선수들이 계속해서 뒷공간을 노리니, 저럴 수밖에 없습니다.]

유지우는 노리치 시티의 골문을 꾸준히 위협했다.

패스면 패스, 패스를 할 곳이 없다면 직접 슈팅까지.

노리치 시티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까—앙!

유지우의 컷백 크로스를 아드리안 로마오가 센스있게 흘리며 그 뒤로 침투한 마틴 그라임스가 슈팅했지만, 골포스트를 울리고 말았다.

[비록 아스날이 한 명 퇴장당하긴 했지만! 공격력은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폴 사르 감독이 전술 변화를 따로 주지 않았어요.]

종료 시간과 가까워질수록 기도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80분.

10분만 지나면 종료되는 시점.

노리치 시티는 동점이라도 만들고자 라인을 올렸다.

그러나 그건 아스날이 노리고 있던 부분이었다.

뻐—엉!

왼쪽으로 살짝 벌어진 틈으로 넣는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정교한 패스.

툭.

마틴 그라임스가 어느덧 중앙으로 올라온 유지우에게 주는 원터치 패스.

툭.

수비수들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는 아드리안 로마오에게 보낸 유지우의 원터치 패스.

툭.

마지막으로, 아드리안 로마오가 유지우에게 힐킥으로 내준 아름다운 패스.

그 패스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들어가는 유지우에게 정확하게 연결됐고.

철렁.

유지우는 편안하게 왼쪽 구석으로 볼을 집어넣었다.

노리치 시티는 손을 들어 오프사이드를 어필해보았지만, 부심의 기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골이 만들어졌다.

골에 관여한 선수는 네 명.

그리고 골까지 이어진 터치도 네 번.

아스날의 팀컬러가 그대로 드러난, 아름다운 골이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종료 직전! 31-32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은 이번 시즌 아스날을 대표하는 공격라인으로 이름을 날린 Y.M.C.A라인입니다!]

[미친 패스 연계! 이건 스포츠가 아닌 예술입니다!]

종료 직전에 나온 골.

Y.M.C.A라인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합작품이자, 팬들의 불안감을 말끔히 날려버린.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골이었다.

* * *

경기 종료까지 1분밖에 남지 않자, 관중석에 있던 한 팬은 눈물을 흘렸다.

“왜 울고 그래?”

“그냥 눈물이 나.”

그토록 염원했던 우승.

최초의 무패우승과 함께 늘 빅4에 있던 클럽이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이유로 지난 10년간 무시를 받았다.

클럽의 위치가 곧 팬의 위치.

그래서 아스날 팬들은 많은 조롱도 받았었다.

그간의 설움이 마침내 끝날 것이 보이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따가 우리 집에서 파티하는 거 어때?”

“그러자! 오늘 같은 날 마셔야지!”

종료를 앞두고 아스날 팬들은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North London Forever.’

한 사람이 시작한 응원가가 점점 퍼지며 어느덧 수만 명의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선수들의 표정에서도 기쁨이 드러났다.

늘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게 선수였지만, 이번만큼은 이들도 마음을 숨기는 게 어려웠다.

어서 빨리 경기가 끝나길 기다린 것도 잠시.

곧이어.

삐익-! 삐익-! 삐----익!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스날 선수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10 vs 11의 싸움.

그것을 이겨내고 쟁취해낸 승리이기에 기쁨은 배가 됐다.

“으아아아아아아!”

“우리가 우승이다---!”

관중석 곳곳에서 눈물이 터졌다.

그것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었다.

28년 동안 쌓였던 설움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순간이라 감정에 북받쳐 나오는 눈물이었다.

“가자!”

“어딜?”

“어디긴! 저기지!”

그리고 이어지는 관중 난입.

흥분한 팬들이 물밀듯이 앞으로 몰렸고 경호원들이 제지할 틈도 주지 않고 필드로 쏟아져 나왔다.

푸른 잔디는 어느덧 붉게 물들여졌다.

[28년 만의 우승! 아스날이 03-04시즌 이후! 프리미어리그의 왕좌를 차지합니다!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긴 여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우승한 아스날! 저도 눈물이 납니다!]

[누가 이 결과를 예상했겠습니까! 시즌 초만 하더라도 아스날이 우승할 확률은 1%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극악의 확률을 뒤집으며 아스날이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주인이 됩니다!]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두 클럽이 리그를 양분하던 지난 세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아스날이 우승을 하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의 이름이 스타디움을 울리기 시작할 때, 패배한 노리치 시티 선수들은 조용히 필드를 떠났다.

곧이어 전광판에는 구단이 준비한 프리미어리그 우승 확정 글귀가 나왔다.

- 와아아아아아아!

벤치에 있던 선수, 코치진 모두가 필드로 달려 나왔다.

그들은 경기장에 들어온 팬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승리를 기뻐했다.

“너희들이 최고야!”

“이 순간을 기다렸다고!”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야! 이런 순간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난입한 팬들은 경호원들이 달려와 제지하자 한 가지만 하겠다며 경호원과 선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들은 유지우에게 다가가, 그를 높이 들어 올리며 헹가래를 올려주었다.

[팬들이 유지우 선수를 헹가래 쳐줍니다!]

[아…. 눈물이 납니다! 프리미어리그에 올 때만 하더라도 유럽 리그에서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아스날의 오버페이라고 불렸던 선수가 에이스가 되고 히어로가 되어 클럽의 역사! 리그의 역사를 새롭게 썼습니다!]

팬들의 헹가래를 받다가 내려온 유지우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해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겪었던 우승이지만, 우승은 언제나 처음 같은 설렘이 있었다.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던 유지우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어? 저기 감독님.”

유지우가 가리킨 방향을 보고 폴 사르를 발견한 팬들은 냅다 달려가 폴 사르를 포박했다.

“감독님!”

“올라가셔야죠!”

“자! 올립니다!”

팬들의 갑작스러운 헹가래에 폴 사르는 당황하지 않고.

“얼른! 얼른! 제일 높이 올려줘!”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이번 시즌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었던 감독의 예상치 못한 순수한 모습에, 팬들은 활짝 웃으며 제일 높이 헹가래를 쳤다.

“유!”

“크리스티안, 고생했어.”

“너 덕분이야.”

“뭐가?”

“내가 기록 세울 수 있었던 거.”

“네가 잘해서 그런 거지.”

“다음 시즌도 잘 부탁해!”

두 사람이 포옹하자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아스날의 모든 선수가 필사적으로 뛰어 이뤄낸 결과였지만, 이 두 선수야말로 우승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지우, 리그 41골 21어시스트.

크리스티안 페레스, 리그 13골 25어시스트.

두 사람이 합친 공격포인트는 무려.

54골 46어시스트.

딱 100개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듀오는, 그렇게 아스날의 품에 프리미어 우승을 선물했다.

[보고 계십니까! 지난 28년 동안 차갑게 식어있던 애슈버턴 그로브 스타디움이! 뜨거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습니다! 선수와 팬! 모두가 섞이며 장관을 이룹니다!]

그렇게 잠시 후.

어느 정도 필드가 정리된 후, 관중석 한가운데에 시상식이 마련됐다.

원래 필드에서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28년 만의 우승이기도 해서 구단에서 특별히 관중들과 가까운 곳에서 들어 올리도록 조치한 것이었다.

* * *

한국에서도 늦은 새벽까지 이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아스날이 우승을 하자 본인들이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다.

- 드디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 갓지우시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셨군요 ㅠㅠㅠ

- 아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 한국에서 이런 선수가 나왔다고?

- ㄹㅇ ㅋㅋ 하는 것만 보면 남미 선수임.

-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꽃을 피웠지.

- 재능도 한몫한 듯, 천재지, 천재.

- 본인은 천재라고 안 하잖아.

- 아, 그 인터뷰?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터뷰가 하나 있었다.

유지우가 예전에 한 인터뷰로.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잘하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했고, 그 노력이 인정받을 수 있어 기쁠 따름입니다.’

엄청난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지금까지도 여러 곳에서 패러디되는 말로 국민들 대부분이 그 말을 알고 있었다.

- 진심…. 저렇게 잘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다는 거임?

- 아르헨티나에서 찍은 다큐만 봐도 얼추 알 수 있어.

- 그 다큐는 안구건조증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치료될 거야.

- 저러면 몸이 버텨 나나?

- 보면 볼수록 진국인 사람…. 만 19세, 한국 나이로 이제 막 20세 된 청년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해.

- 난 저 때 대학교 다니면서 술만 먹었는데.

- 친구들이랑 강의 째고 계곡 놀러 가고.

사람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자기가 한 말을 지키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유지우에게 존경심을 보였다.

* * *

관중석 쪽에 마련된 시상대 위에선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가 영롱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

그곳에서 유일하게 한 클럽만 들어 올릴 수 있는 트로피인 만큼 그 빛은 아름다웠다.

- “마틴 그라임스!”

- “아드리안 로마오!”

- “다니 아라후오!”

- “레이턴 버트란드.”

.

.

.

선수들은 한 명 한 명 호명되어 관중석을 지나 단상으로 올라갔다.

- 와아아아아아!

팬들은 이번 시즌 한 편의 근사한 영화를 만든 선수들에게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보내줬다.

선수들이 오르는 계단은 경호원들이 통제하고 있었지만, 팬들은 최대한 손을 뻗어 선수들과 악수하길 원했다.

- “지우 유!”

유지우의 순서가 되자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계단을 올랐다.

앞에 뻗어진 수많은 손.

유지우는 양쪽으로 손을 펼쳐 한 명 한 명의 손을 만져주며 위로 올라갔다.

“아스날로 와줘서 고마워! 유!”

“네가 내 최고의 선수야!”

“다음 시즌도 부탁할게!”

“유! 우리 가게에 꼭 와! 너는 평생 공짜로 줄게!”

“사랑해! 우리한테 이런 행복을 줘서!”

“넌 우리의 영웅이야!”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아스날의 에이스는 단상에 올라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다음으로 데릭 레드먼드와 코치진들까지 올라와선 메달을 목에 걸고 트로피 근처로 섰다.

“감독님!”

“멋지게 들어 올려요!”

우승 트로피 양옆은 폴 사르 감독과 데릭 레드먼드의 자리였다.

선수들은 뒤에서 어깨동무하며 트로피로 세레머니 하기를 기다렸다.

“올리다가 손 떨려서 놓치지 말고 조심해요!”

“데릭은 다리가 떨리는데?”

“매일 하체 운동하더니, 그게 뭐야! 하하-!”

선수들이 놀리자 데릭 레드먼드는 울먹이면서 소리쳤다.

“다들 조용히 해!”

“오~ 운다.”

“울어요?”

“은근 울보라니까.”

겉으로는 황소도 때려잡을 사람처럼 보였지만, 마음은 여렸다.

폴 사르와 데릭 레드먼드는 나란히 양쪽 손잡이를 잡곤.

번쩍.

신호에 맞춰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렸다.

[시청자 여러분! 31-32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클럽은!!! 아스날입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아스날의 상징색인 붉은색 종이꽃이 흩날렸고 관중석에 있는 팬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스날이 모두를 놀라게 한 영화 한 편을 쓰며! 프리미어리그의 주인으로 등극합니다!]

28년.

긴 세월 끝에 트로피가 다시 아스날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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