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198화 (198/383)

제198화

2032 브리즈번 올림픽이 개막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호주로 쏠렸다.

세계인의 축제.

개막과 동시에 각 종목에서 메달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 양궁 남자 단체! 금메달을 목에 걸다! 】

양궁을 시작으로.

【 여자 유도 간판, 서혜지! -48kg급에서 금빛 엎어치기! 】

【 양궁 여자 단체! 금메달 획득! 올림픽 12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다! 】

【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김무현! 동메달! 】

【 태권도 남자 –58kg급, 김준! 금빛 발차기로 금메달 획득! 】

메달 행진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특히 주목하는 곳은 펜싱 여자 부문이었다.

세계 랭킹 1위이자, 한국의 펜싱 여제로 불리는 최다빈이 이번엔 어떤 결과를 얻을지 모두가 궁금해했기 때문이었다.

최다빈은 모두의 기대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개인전에서 엄청난 기량을 선보이며.

【 펜싱 여제 최다빈! 플뢰레 개인 금메달을 목에 걸다! 】

금메달을 획득했다.

- 퀸다빈 그저 압-살

- 이 정도면 금메달 주고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냐?

최다빈이 압도적인 기량을 보이며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한편, 모두의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종목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프로선수들이 많이 나와 매 경기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남자 축구 부분이었다.

대회는 어느덧 빠르게 진행되어 8강 경기들을 앞두고 있었다.

사람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경기는 스타 선수들이 모인 아르헨티나 vs 브라질의 남미 대전이기도 했지만.

【 대한민국 vs 독일! 】

이 경기도 높은 관심을 모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지우 vs 미하엘 벨.

두 선수의 대결 때문이었다.

골든보이에서 1위를 한 선수와 3위를 한 선수.

제라르 레오 이후, 차세대를 이끌 재목 간의 대결이었기에 어떤 선수가 이길지 궁금증이 증폭됐다.

[미하엘과 유가 만난다고?]

[바이에른 뮌헨의 골잡이와 프리미어리그 대표 골잡이라.]

[이건 미하엘이 이길 것 같아.]

[어째서?]

[받쳐주는 선수의 차이지, 대한민국은 유를 제외하고 그나마 나은 선수가 차잖아. 그에 비해 독일은 전부 당장 국가대표에 소집돼도 이상하지 않을 재능들이야.]

[그리고 독일 와일드카드 봐봐, 쟤네 메달 가져가려고 작정했다고.]

[난 크리스티안 플리크가 올 줄 몰랐어, 올림픽에 나오고 싶다는 기사는 봤지만…. 그게 실제로 벌어질 줄은….]

사람들은 독일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건 아무리 유지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크리스티안 플리크.

바이에른 뮌헨 미드필더 토마스 에더.

그리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왼쪽 풀백인 조나단 헬릭까지.

독일은 와일드카드로 세계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데려왔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욱 독일의 승리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 * *

축구 예선전은 호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치러졌지만, 8강부터는 8개국으로 줄여지며 브리즈번에 위치한 ‘선콥 스타디움(Suncorp Stadium)에서 치러졌다.

이를 위해 올림픽 축구 대표팀 캠프는 선수촌에 있는 브리즈번에 정착했다.

“저기 유지우 선수 아니야?”

선수촌 식당 안.

여러 종목 선수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입구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맞네!”

그곳엔 유지우가 혼자서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축구 대표팀도 선수촌에 합류하며 타 종목 선수들과 자주 마주쳐 친화력이 좋은 선수들은 이미 친해졌지만, 유지우는 낯가리는 게 심해 그러지 못했다.

“대박.”

“실물로 보니까 덩치가 더 큰데?”

“프로필로는 키가 187cm라고 하더라.”

“피지컬 미쳤네.”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도 유지우의 영향력은 컸다.

19세의 나이로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폭격한 선수였으니까.

“평소보다 숙소 입구 쪽에 취재진이 많더니, 이유가 있었군.”

올림픽에 수많은 카메라가 몰린 이유 중 하나가 유지우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우 선수! 맛있게 드세요!”

대표팀 셰프의 말에 유지우는 웃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음식을 담은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던 유지우는.

“지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유지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누나, 오랜만.”

펜싱팀과 최다빈이 밥을 먹고 있었다.

“합석해도 돼?”

유지우가 물어보자 최다빈은 팀원들에게 허락을 구했고, 팀원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너 괜찮아?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은 낯가리잖아.”

“이제 많이 좋아졌어.”

“다행이네. 이렇게 올림픽에서 같이 밥 먹을 수 있으니까 좋다.”

유지우랑 최다빈은 거의 1년 동안 보지 못했다.

비록 문자를 주고받긴 했지만,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건 또 다른 일.

그런 만큼 두 사람은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어제 금메달 딴 거 축하해.”

“고마워.”

“훈련은 안 힘들어?”

“괜찮아.”

“그런데 왜 너 혼자 와서 먹어?”

“인터뷰 때문에.”

“역시 대한민국 대표팀 최고의 스타답네.”

“누나가 할 말은 아니지.”

“어휴. 말을 말아야지. 올림픽 끝나면 바로 리그 복귀야?”

“응, 시기상 맞물리더라고.”

프리미어리그 개막은 올림픽이 있어서 14일에서 8월 20일로 미뤄졌다.

올림픽 측도 이를 의식한 것인지 최대한 빠르게 대회를 진행하려 했고, 그 결과 19일 안에 모든 일정이 종료될 예정이었다.

“바쁘네.”

“어쩔 수 없지.”

밥을 거의 다 먹은 뒤에는 두 사람을 보고 몰려온 선수들 덕분에 작은 사인회가 열렸다.

그렇게 사인을 마친 뒤, 식당을 나가는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이 불쑥 튀어나왔다.

“유지우 선수! 잠깐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밥도 먹고 시간도 남겠다.

유지우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네!”

처음은 가벼운 질문이었고 곧이어 본격적인 질문이 나왔다.

“독일과 경기에서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의 승률을 3할로 판단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냉정하게 본다면 대한민국이 불리한 건 맞았다.

원래도 전력 차이가 있었는데 와일드카드에서 차이가 확 갈렸다.

“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궁금하네요.”

그러나 유지우는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맞춘 게 있습니까?”

힘든 싸움이긴 하겠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승리할 가능성 또한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월드컵 때도 그랬습니다. 대한민국이 예선을 통과할 확률은 1%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했었죠.”

“…….”

“그런데 그 확률을 뚫고 우리는 예선을 통과했고 16강에서는 독일에 승리하며 8강에 올라갔습니다.”

기자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인터뷰가 길어지며 밥을 먹고 나온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여 인파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지만, 유지우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보카 주니어스에 있을 때는 트레블을 할 확률이 전혀 없다고 했죠.”

“…….”

“근데 결과는 어땠죠?”

유지우는 멈추지 않았다.

“31-32시즌, 아스날이 우승할 확률은 1%도 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동전을 던졌을 때, 옆으로 서 있는 확률이라고 하더군요.”

“…….”

“그런데 어떻게 됐죠?”

유지우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숫자는 결과가 아닌 수치에 불과합니다. 가능성이 0%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결과는 달라질 거고 지금껏 전 그렇게 만들어왔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건 기자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유지우는 이어서 말했다.

“대한민국이 독일에 발목을 잡힐 것 같습니까?”

전문가들의 판단.

물론 그들도 데이터를 파악하고 결론을 냈을 게 분명했다.

대한민국이 질 확률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유지우도 그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죽은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이었으니까.

“…미하엘 벨이 한 발언은 들으셨습니까?”

8강을 앞두고 분위기가 뜨거워진 이유는 미하엘 벨이 한 발언이 한몫했다.

《 진정한 골든보이의 자격은 나에게 있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다. 》

유지우에게 밀리며 골든보이 3위를 한 선수가 한 말이라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명백히 유지우를 도발하는 인터뷰였고 기자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유지우가 어떤 말을 할지 기대했다.

“재미있네요.”

“…….”

“미하엘 벨에게 전해주십시오.”

지금껏 수많은 도발을 받아온 유지우에게 이런 도발은 익숙했다.

당황하지 않고 맞받아치는 스킬은 이미 베테랑이었다.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고요.”

* * *

대한민국 vs 독일, 경기 당일.

경기가 있기 전부터 언론에서 두 선수의 인터뷰를 다루며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고 선콥 스타디움에는 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삐---익!

시작 휘슬이 울리며 독일의 킥오프로 올림픽 남자 축구 8강전이 시작됐다.

4 – 2 – 3 – 1의 대한민국.

4 - 5 – 1의 독일.

경기 초반은 탐색전이었다.

[독일의 전술은 성인 국가대표팀과 동일합니다. 후방 빌드업으로 시작해 조직력을 앞세운 전술로 나올 겁니다.]

[그리고 유지우 선수를 향한 견제가 심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의 빌드업이 시작됐다.

성인 국가대표에서 뛰던 선수들도 와일드카드로 합류하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었다.

툭.

툭.

툭.

독일이 후방 빌드업을 안정적으로 쌓아 올리는 걸 보고 대한민국은 전방 압박을 시도했다.

패스를 방해하려는 목적이었지만, 토마스 에더가 능숙하게 볼을 보호하며 전방으로 길게 찔렀다.

볼은 단숨에 대한민국 수비 뒷공간으로 가며 미하엘 벨에게 향했으나.

[오오오오-! 김재민의 클리어링! 역시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는 대한민국 대표 수비수답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비도 견고했다.

강동하 감독이 이번 올림픽을 대비하며 김재민을 발탁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수비에서의 안정감.’

이것만 갖추고 있다면 금메달을 향한 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게 분명했다.

10분.

20분.

치열한 중원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우위에 있는 건 독일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최고의 클럽에서 뛰는 베테랑들은 대한민국 중원을 압도했다.

김우일과 유지우가 호흡을 맞춰서 가까스로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경기의 흐름이 진작에 독일 쪽으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김우일 선수의 태크으으으을! 크리스티안 플리크의 패스를 잘라냅니다!]

[흐른 볼은 권창기 선수가! 멀리! 조정후 선수에게!]

조정후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 볼을 지켜주면 좋았겠지만.

퍼—억!

독일 수비수들의 집중포화에 버티지 못했다.

촤—악!

날카로운 태클로 볼을 걷어낸 센터백 마르셀 볼프.

그러나 그는 곧 놀라고 말았다.

‘젠장! 쟤가 언제 여기에!’

걷어낸 방향에는 유지우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베테랑들의 압박을 뚫은 뒤.

루즈볼을 터치해냈다.

[유지우 선수가 세컨볼을 따냅니다!]

압박하던 토마스 에더가 뒤쫓아보지만, 유지우가 볼을 터치하는 게 먼저였다.

그는 앞에서 마크하는 선수를.

툭.

타이밍에 맞춰 볼을 왼쪽으로 차 놓으며 역동작에 걸리게 만든 후.

뻐—엉!

왼발로 잔뜩 감아서 파 포스트를 노렸다.

볼은 왼쪽으로 크게 나갈 것처럼 뻗다가 안쪽으로 휘면서 골키퍼가 날아오른 쪽으로 갔고.

까---앙!

아쉽게도 골포스트를 맞고 말았다.

[골포스트를 강타! 베른트 바이저 골키퍼가 손끝으로 볼을 건드렸습니다!]

[와, 잘 차고 잘 막았네요. 아쉬워하는 유지우 선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의 날카로움이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필드 위에서 유지우가 풍기는 존재감은 엄청났다.

독일에서도 그걸 알기에 유지우를 집중적으로 견제했으나.

- 오오오오오!

화려한 개인기로 그것을 뚫어내며 기회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에 흐름을 가져오는 건 역시 유지우 선수입니다! 독일 선수들을 압도하는 플레이! 이 선수가 한국 선수라는 게 든든합니다!]

대한민국이 기회를 만들어갈 때, 독일 또한 기회를 만들었다.

그들은 한 선수가 아닌 양 사이드로 넓게 볼을 전개하며 필드 전체를 썼다.

뻐---엉!

반대 전환 패스는 관중석에서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깔끔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균형.

독일은 그걸 깨트리기 위해 다양한 패턴의 공격을 시도했고,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전반 41분.

토마스 에더가 왼쪽 측면으로 볼을 내주며 독일의 공격이 시작됐다.

[카이 트라프가 볼을 잡습니다!]

[발이 빠르고 크로스 능력이 탁월한 선수입니다! 저 선수에게 공간을 주면 안 돼죠!]

오른쪽 풀백인 장명훈이 쫓아가서 막으려고 했는데 넛맥에 당하고 말았다.

[아아-! 측면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카이 트라프의 크로스---!]

카이 트라프는 중앙으로 침투하는 스타일의 인버티드 윙어가 아닌 클래식 윙어 스타일의 선수였다.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력과 정확한 킥력을 겸비해 많은 클럽의 관심을 끄는 선수였다.

뻐—엉!

그가 왼발로 올린 크로스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 아닌 페널티 에어리어 밖을 향했다.

얼핏 보면 실수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설계가 된 크로스였다.

골대 앞으로 쇄도하는 미하엘 벨을 노린 거였다.

타다다닷-!

압박을 따돌리며 달려오는 미하엘 벨은 크로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연령대 대표팀부터 호흡을 맞춰온 두 선수.

자신의 입맛에 맞게 날아오는 크로스를 본 미하엘 벨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는 척, 한국 수비진을 속이고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돌아 나오며 골대를 등졌다.

[미하엘 베----엘!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마크를 따돌립니다!]

그리곤 김재민이 붙기 전.

날아오는 크로스를 공중에서 다이렉트로 낚아채며 발리슛을 시도했다.

뻐—엉!

발등에 제대로 얹힌 감각.

완벽하게 대각으로 날아가며.

철렁.

골망을 흔들었다.

[미하엘 벨!!! 독일의 차세대 주포가 어메이징한 득점을 만듭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밸런스에서 저런 슈팅을 할 수 있는 거죠? 정말 대단합니다!]

이것이 미하엘 벨의 장점이었다.

미친 밸런스에 어디서든 슈팅을 때릴 수 있는 능력.

바이에른 뮌헨의 9번.

미하엘 벨은 자리에서 일어나 포효했다.

그렇게 전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삐익-! 삐익-! 삐----익!

* * *

전반 종료 전 불의의 일격을 맞은 대한민국.

1점 차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점수 차이지만, 아직 어린 선수들이 많았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토너먼트.’

예선과 달리 패배하는 순간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하기에 중압감이 있었다.

혹시 이대로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선수 한둘의 마음에 드리울 무렵.

그들을 모두 부르는 선수가 있었다.

“다들, 잠시 모여봐요.”

한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의 캡틴.

유지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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