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대한민국 0 – 1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가 선제골을 넣으며 기세를 잡았으나 경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후반전을 위해 선수들이 필드로 나와 포지션으로 가서 섰다.
아르헨티나 감독 에밀리아노 푸세토는, 새롭게 바뀐 대한민국 포메이션을 보곤 깜짝 놀랐다.
“유를 최전방으로?”
올림픽 내내 득점이 저조했던 조정후를 빼고 유지우를 스트라이커로 올린 거였다.
“…무슨 작전이지?”
아르헨티나 벤치는 혼란스러웠다.
“유가 스트라이커를 뛴 적이 있나?”
감독의 말에 코치가 급하게 유지우 관련 데이터를 찾아봤다.
“공격형 미드필더나 양 윙은 있지만, 스트라이커로 뛴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스트라이커로 나왔다?”
“…한국이 승부수를 띄운 거 아닐까요?”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른쪽 윙으로 뛰던 차선호도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로 옮겼다.
[유지우 선수와 차선호 선수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오른쪽 윙으로 김태영 선수가 나오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준 대한민국! 이 수가 아르헨티나를 침몰시킬 묘수가 될 수 있을까요?]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이들.
TV로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이 배치를 보고 당황했다.
‘이게 맞아?’
얼핏 보면 대한민국이 무리수를 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삐---익!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의문을 남긴 채, 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 후반전이 시작됐다.
* * *
대한민국은 포지션 변화를 주며 적극적으로 공격을 풀어나갔다.
아르헨티나는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라인을 올리지 않고 지역방어와 협력수비로 대한민국의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냈다.
“유에게 가기 전에 막기만 해!”
“7번도 마크하고! 에두아르도!”
유지우가 스트라이커로 뛰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던 것도 잠시.
아르헨티나 감독은 즉각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유지우를 철저하게 고립시켜야 했다.
“볼을 돌릴 틈을 주지 마!”
공격형 미드필더로 프리롤을 부여받았을 땐, 활동 반경이 넓어 볼을 잡는 걸 통제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촤---악!
미드필더 진만 묶어놓으면 유지우에게 가는 패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안심할 순 없어.’
아르헨티나 감독은 만약의 수도 생각해뒀다.
우선 할 건 공격의 기초가 되는 대한민국 미드필더진의 볼 전개를 방해하는 거였다.
퍼—억!
거친 몸싸움과 태클.
유지우를 막으려면 그 주변부터 막아야 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비가 견고합니다!]
그렇다고 유지우의 공격력 전부를 억제한 건 아니었다.
그는 꾸준히 빈 곳으로 움직이며 아르헨티나 수비진에 혼란을 줬다.
왼쪽과 오른쪽.
그게 아니라면 중앙까지.
계속 움직이며 수비수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선호 형!”
본인이 수비수들을 끄집어나오면 그 사이로 다른 선수들이 들어가거나.
“들어가!”
투—웅!
마크를 따돌리며 기습적으로 라인을 내려 원터치 패스로 빠르게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빠른 판단과 동료를 이용하는 이타적인 플레이.
보는 이들은 감탄했다.
[아아-! 유지우 선수의 패스를 받은 하석훈이 파 포스트를 겨냥해서 잘 차긴 했지만!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그런 유지우의 플레이를 보고 한국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기회를 살리고자 했다.
[김태영 선수! 김태영 선수----! 골키퍼가 각도를 줄이는 바람에 옆 그물로 슈팅을 합니다!]
전반전과 전혀 다른 공격방식에 아르헨티나는 당황해서 몇 번의 실수를 범했다.
까—앙!
만약 그게 골로 연결됐다면.
경기 흐름 자체는 대한민국에 넘어왔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아.”
유지우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뱉었다.
‘압박이 떨어지질 않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골이 들어가질 않아.’
계속해서 붙는 수비 때문에 유지우는 원터치로 침투하는 선수들에게 패스를 밀어주고 있었지만,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공간을 더 넓혀볼까? 아니면 방향을 바꿔볼까?’
플레이하면서도 머리로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5분 후, 유지우는 틈을 발견했다.
틈이 사라지기 전에 기습적으로 라인을 내리며 수비수들을 끄집어냈다.
열린 뒷공간.
유지우는 타이밍을 재다가.
타다다다닷-!
전력으로 파고 들어갔다.
완벽한 라인 브레이킹을 본 차선호는.
“지우야!”
유지우가 들어가는 방향으로 스루패스를 찔렀다.
유지우는 전력으로 달렸고 수비수가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 수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슈팅 각도라도 좁히려고 유지우를 쫓는 걸 포기한 채, 길목을 막는데.
씩.
유지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랐다.
‘걸렸다.’
애초에 이 그림은 그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었다.
툭.
수비수들의 신경이 다 쏠린 틈에 유지우는 노룩 힐 패스를 했다.
그 패스는 어느새 달려오는 차선호의 발아래로 갔고.
뻐---엉!
뒤늦게 눈치챈 수비수가 붙기 전, 논스톱으로 왼쪽 구석을 노린 슈팅은.
철렁.
빨랫줄처럼 뻗으며 골대 안에 꽂혔다.
골키퍼마저 유지우의 움직임에 속아 후속 동작을 하지 못한 채, 골대 안으로 들어간 볼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동점 고오오오오올! 대한민국이 61분에 득점에 성공합니다!]
[유지우 선수와 차선호 선수의 환상적인 호흡! 스피드로 수비진을 휘저으니, 아르헨티나가 전혀 대비하지 못하네요!]
차선호가 세레머니를 하는 동안 유지우는 묵묵히 자리로 돌아갔다.
아르헨티나는 그에게 있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준, 제2의 조국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먹혔다.”
대한민국 벤치에선 득점이 들어가는 순간 모두가 펄쩍 뛰어오르며 기뻐했다.
강동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어퍼컷을 날렸다.
“이거지!”
강동하 감독이 아르헨티나전을 준비하면서 눈여겨본 곳은 아르헨티나의 수비지점이었다.
뛰어난 수비력을 갖췄으나 어린 선수들로만 이뤄진 수비진.
조금의 변화만 줘도 적응하지 못하고 빈틈을 내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경험의 차이.’
‘위압감을 줄 선수의 존재.’
결국 어린 선수들로 이뤄진 아르헨티나 수비진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
“…이건 당했군.”
아르헨티나 감독도 인정할 만큼 깔끔한 작전이었다.
[이것으로 경기는 원점! 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의 노림수가 제대로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 * *
퍼—억!
체력이 떨어지자 경기는 거칠어졌다.
선수들의 숨은 차올랐다.
가슴은 터질 듯했고 다리에 경련이 날 만큼 체력 소모가 심했다.
그러나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잡아!”
“조금만 더 하면 돼!”
“정신 차리고 다시!”
“줄 곳이 없으면 뒤로! 압박이 오기 전에 볼 처리는 빠르게!”
양 국가 선수들은 간절했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으니까.
“다시 사이드로!”
“젠장! 백업해!”
치열한 허리 싸움이 벌어졌지만, 여전히 우위를 점한 건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난 아르헨티나였다.
간결한 터치와 위협적인 패스.
그들은 한국이 라인을 올려 압박하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볼을 돌렸다.
삐—익!
그러다가 아르헨티나의 패스로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나오면 한국은 반칙도 스스럼없이 했다.
두 팀의 간절함이 충돌하며 아슬아슬한 균형이 유지됐고.
67분.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기회를 살피던 디에고 로시가 하프 스페이스에서 볼을 잡아 돌파를 시작했다.
[위험합니다! 디에고 로시가 잡고 역습! 대한민국의 백업이 느립니다!]
급하게 자리를 잡은 수비수들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협력수비로 막으면 됐지만, 각개전투가 되어버렸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이러한 각개전투는 디에고 로시가 가장 자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특유의 돌파력으로 대한민국 진영을 농락했고, 골키퍼가 각도를 좁히려고 나오는 것을 보곤.
투—웅!
볼의 밑부분을 가볍게 차며 키만 살짝 넘겼다.
이 플레이는 디에고 로시가 자주 보여주는 플레이였다.
그리고 디에고 로시의 하이라이트를 많이 본 사람들은 이 플레이의 끝이 골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들어갑니다! 들어갑니다! 들어갑니다---! 디에고 로시!!!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절묘한 로빙슛으로 대한민국의 골망을 흔듭니다!]
[이것으로 다시 앞서가는 아르헨티나! 남은 시간 동안 리드를 지킬 수 있을까요!]
1 – 2로 벌어진 스코어.
아르헨티나는 지키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감독은 라인을 올리는 걸 지시했다.
“더 올려! 공격을 멈추지 마!”
대한민국에 공격 타이밍을 주지 않기 위해 계속 공격하며 차이를 더 벌리려 했다.
.
.
.
77분.
[유지우 선수가 안전하게 잡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돌파!]
스텝 오버로 한 명의 선수를 제친 뒤.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수비수들이 일제히 다가오며 발을 뻗었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유지우는 라 크로케타로 제쳐냈다.
- 오오오오오오!
득점 기회.
그러나 아르헨티나 수비수들의 적극적인 견제 때문에 유지우는 골 각도가 없는 라인으로 내몰렸다.
스윽.
이대로 슈팅하면 골키퍼에게 막힐 것이 분명했기에 크로스를 할 것처럼 모션을 가져가자.
촤---악!
그걸 노린 태클이 들어왔다.
유지우는 볼을 감싸며 한 번 접었다.
태클하려던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인 움직임.
유지우는 골키퍼가 골대 오른쪽으로 바짝 붙어있는 걸 보곤.
툭.
반대 사이드로 짧은 크로스를 올렸다.
그때.
수비수들이 유지우에게 신경이 쏠린 사이에 침투하는 한 명의 선수.
[유지우 선수의 크로스---! 하석훈이 들어오면서 다이빙--!]
아르헨티나 수비 틈을 빠져나오는 하석훈은 몸을 날리며 다이빙 헤딩을 시도했다.
투-욱.
이마에 맞은 볼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하석훈의 다이빙 헤더!!! 다시 동점을 만드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르헨티나 감독은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유지우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그를 상대할 수비 전술도 준비했다.
그런데.
통하지 않았다.
통한다 싶으면 금세 활로를 찾아 골대를 위협하니, 감독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다.
“…진짜 어떻게 막아야 해?”
* * *
대한민국 2 – 2 아르헨티나.
남은 시간은 5분.
이 경기가 마지막 경기기에 선수들은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죽어라 뛰어!”
“어차피 마지막이잖아! 다 쏟아부어!”
실력의 차이는 근성으로.
한국 선수들은 다리에 경련이 나는 것을 참으면서 필드를 누볐다.
[교체 카드도 전부 소진한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추가 골을 만들어야 합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
그렇게 간절하게 플레이를 이어갔고 마침내.
탁.
추가 시간 2분이 주어진 시점.
유지우가 라인을 내려와 볼을 잡았다.
“다시 리턴!”
유지우는 차선호에게 리턴을 주고 마크를 따돌리며 돌아서 들어갔다.
차선호는 원터치 로빙패스로 유지우가 들어가는 앞 공간으로 정확하게 볼을 찔러줬다.
[간결한 패스로 공간을 만듭니다!]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유지우 선수가 볼을 잡고 안으로! 여기서 골을 넣으면 우승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빠른 백업.
그들은 유지우를 막으려고 공간을 좁혔다.
툭.
툭.
그들을 발견한 유지우는 두 번의 터치로 돌파에 성공했다.
이대로 골대까지 달리면 됐지만.
꽉.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끌었다.
상당한 무게에 유지우는 휘청였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피지컬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밀리지 않는 그였기에 이대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촤---악!
뒤에서 붙잡으면서 살짝 느려지자 옆에서 들어오는 태클.
점프를 뛰어 제치려고 했지만, 그 태클은 애초에 반칙을 작정하고 들어온 태클이었다.
삐—익!
유지우가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종료 직전! 주심이 프리킥을 찍습니다!]
[무리한 태클이었습니다! 이걸로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기회를 잡은 대한민국! 어떻게든 이 찬스를 살려야 합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이건 누가 봐도 반칙이었으니까.
“마우로.”
태클한 선수, 마우로 수쿨리니의 표정은 어두웠다.
“괜찮아.”
에두아르도 구아린이 그를 위로해줬다.
“…미안, 더 일찍 끊었어야 했는데.”
“막으면 돼.”
프리킥의 성공률은 아무리 높아도 50대50이었다.
그러니 포기하긴 일렀다.
거리도 그렇게 가까운 것이 아닌 28m 지점.
[이 위치라면 유지우 선수가 직접 슈팅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간접보다는 직접 노리는 게 확률이 더 높죠. 유지우 선수의 킥 능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일품이지 않습니까.]
31-32시즌.
유지우의 프리킥 성공률은 61%였다.
열 번을 차면 여섯 번은 들어가는 확률.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더 긴장했다.
‘제발.’
그들은 이 프리킥이 빗나가길 간절히 원했다.
선수들은 포지션으로 가서 섰고 유지우를 방해하는 선수는 없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이 들리자 지체하지 않고 발을 뗐다.
세 걸음 반.
뻐---엉!
오른발 인스텝으로 강하게 찬 슈팅.
볼에는 회전이 없었다.
골키퍼는 경로를 보고 다이빙을 했고 슈팅은 빠른 속도로.
철렁.
야신존 안으로 들어갔다.
골키퍼는 넘어진 상태로 골대 안에 들어간 볼을 신경질적으로 찰 뿐이었다.
- 와아아아아아아!
그토록 원하던 역전 골이 나오자 관중석은 붉은 악마들이 내뿜는 함성으로 가득 채워졌다.
“너희들이 해낼 줄 알았다고!”
“이제 막기만 하면 돼!”
“끝까지 집중해!”
역전 골을 넣은 유지우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함성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친구의 나라이자 축구선수로서 길을 걷게 해준 나라.
그들의 앞에서 역전 골을 넣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유지우 선수가 세레머니를 하지 않는군요.]
[그럴 수밖에 없죠, 아르헨티나는 유지우 선수에게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준 곳이니까요.]
보고 있는 아르헨티나 팬들도 비난하지 않았다.
곳곳에 있던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체념하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변하지 않았네, 유는.”
그들의 에이스였던 선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뛰며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은 그들에게 익숙했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필드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