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전은 어느덧 추가 시간까지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대한민국 3 – 2 아르헨티나.
균형이 깨지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점을 노리는 아르헨티나가 마지막 공격 기회를 잡았다.
[남은 시간은 1분! 아르헨티나가 전체적으로 라인을 올리며 총공격에 나섭니다!]
그들의 공격 방향은 에이스 디에고 로시였다.
“디에고한테!”
감독이 라인에서 외치자 에두아르도 구아린은 왼쪽으로 정확하게 롱패스를 보냈다.
툭.
디에고 로시는 볼을 받기 전, 다가오는 선수를 발견하곤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로 압박하는 풀백 안정현을 제쳐냈다.
[아르헨티나의 에이스! 디에고 로시가 볼을 잡습니다!]
그는 이대로 돌파해서 크로스를 올릴 생각이었다.
‘더 들어가자.’
완벽한 득점을 만들기 위해 디에고 로시는 주위를 살피며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기예르모 다린의 비롯해 공격진이 움직이는 걸 보곤.
지체하지 않고 크로스를 올릴 자세를 잡는데.
촤---악!
어느새 따라온 안정현이 크로스를 막으려고 태클을 했다.
스르르륵.
예상했다는 듯 여유롭게 드래그 백으로 태클을 피하는 디에고 로시.
안정현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얘는 뒤에도 눈이 달렸나?’
디에고 로시는 안정현의 태클을 피한 뒤.
뻐---엉!
기예르모 다린이 침투하는 방향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뻐—억!
그러나 그 크로스는 얼마 가지 않아 달려든 한 선수의 몸에 맞고 떨어졌다.
“…유!”
디에고 로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전방에 있어야 할 유지우가 어느새 최후방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지우 선수가 내려와 크로스를 차단합니다! 볼은 아직 라인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디에고 로시와 유지우 선수가 나란히 뛰어갑니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활동량을 기록한 양 팀의 에이스였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리에 무리가 왔고 숨은 목 끝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았다.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었고.
3m.
2m.
1m.
볼과의 거리는 좁혀졌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대결.
이 볼을 잡는 것이 유지우면 이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디에고 로시가 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두 선수 다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입니다! 유지우 선수가 크로스를 막는 과정에서 반응이 늦었지만! 어느새 나란해진 거리!]
그렇게 볼을 먼저 터치한 것은.
툭.
- 와아아아아아아아!
유지우였다.
[유지우 선수가 간발의 차이로 먼저 볼을 터치! 그리고 멀리 걷어냅니다!]
디에고 로시는 멀어지는 볼을 보며 체념했다.
‘…졌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기회를 놓친 이상, 경기를 뒤집기는 역부족이라는 걸.
그렇게 잠시 후.
삐익-! 삐익-! 삐----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선콥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종료 휘슬이 울리자 긴장이 풀린 유지우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끝났다.’
리그나 컵 대회로 클럽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긴 했지만, 국가대표 우승은 처음이었다.
처음이 주는 설렘.
유지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부들부들.
그리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윽.”
오늘 경기에서 유지우가 뛴 거리는 18km나 됐다.
그것도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
그러니 무리가 온 게 당연했다.
경련을 풀어준 것은 디에고 로시였다.
“무식한 놈, 그렇게 뛰면서도 체력이 남아?”
“…안 우냐?”
“난 눈물 없거든!”
“헛소리하긴.”
“확 꺾어버린다!”
“아! 미안, 미안!”
농담을 주고받으며 디에고 로시가 다리의 경련을 풀어주는 사이, 김재민이 다가왔다.
“내가 할게.”
디에고 로시는 영어를 알아듣고 유지우의 다리를 놨다.
유지우는 진영으로 돌아가는 디에고 로시를 불렀다.
“디에고.”
“왜.”
“수고했어.”
“…쳇, 이번에야말로 널 이기는 줄 알았는데.”
“월드컵에서 이겼잖아.”
“그건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잖아.”
“그래도 오늘 정말 멋진 플레이였어. 적이지만 존경스러울 만큼.”
그 말을 들은 디에고 로시는 감정에 동요가 있었는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유.”
“응?”
이내 씩 웃었다.
“우승, 축하해.”
“…그래, 고마워.”
디에고 로시는 유지우와 인사를 하고 아르헨티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이 확정됐다.
[대한민국이! 올림픽 최초 남자 축구 금메달을 확정 짓습니다!]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양 팀의 대결! 이 대결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이 선수! 유지우입니다!]
9골 5어시스트.
다섯 경기에 출전해서 만든 결과였다.
14개의 공격 포인트.
프리미어리그에 돌풍을 몰고 온 득점왕의 포스를 올림픽에서도 제대로 보여줬다.
* * *
잠시 후.
필드 위에 마련된 시상대.
3, 4위전에서 포르투갈을 3 – 1로 꺾은 프랑스도 참석했다.
[2032 브리즈번 올림픽 남자 축구의 시상식이 시작됩니다!]
3위인 프랑스가 가장 낮은 단상에 올라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위인 아르헨티나는 그다음으로 낮은 단상에 올라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이어서 올림픽 남자 축구 정상에 오른 대한민국이 가장 높은 단상에 올라섭니다!]
- 와아아아아아아!
붉은 악마들은 목이 터질 듯 소리쳤다.
한 명 한 명의 목에 금메달이 걸렸고, 올림픽 위원장은 유지우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며 가볍게 포옹했다.
“대회의 위상을 높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2032 올림픽 종목 중 가장 큰 관객을 동원한 것은 축구였다.
시청률도 1위였고.
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는 계기는 남자 축구에 차세대를 이끌 스타 플레이어들이 대거 참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유지우도 감사를 표했다.
목에서 빛나는 금메달.
주장으로서 첫 대회에 유지우는 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었다.
[2032 올림픽! 남자 축구의 우승은 대한민국입니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국기 사이, 가장 높은 곳에서 펄럭이는 태극기.
선수들은 가슴에 손을 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태극기를 바라봤다.
[…정말 놀랍습니다. 축구 강국인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국기보다 태극기가 더 높이 있다니.]
[그만큼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준 결과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이 선수들을 기억하십시오! 훗날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 재목들입니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선수들도 우승한 대한민국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직접 싸워 본 그들이 가장 잘 알았다.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목에 걸 자격이 있다는 건.
“…마르쿠스, 다음에는 이겨라.”
“예.”
프랑스는 다음을 기약하며 의지를 불태웠고.
“디에고, 기예르모, 유랑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만나지?”
“네!”
“네!”
“…참, 프리미어리그에 괴물들만 모이는구나.”
“그래서 기대돼요.”
아르헨티나는 이어질 인연에 설레했다.
올림픽 남자 축구는 막을 내렸다.
* * *
시상식이 끝난 뒤, 선수들에게 인터뷰가 진행됐다.
올림픽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유지우는 필드에 마련된 믹스트존에 서자, 순식간에 많은 기자가 몰려왔다.
“유지우 선수!”
“지우 선수!”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유지우는 침착하게 질문에 답을 해줬다.
“주장으로서 처음 뛰는 대회라 긴장이 많이 되긴 했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많이 도와줬고 이러한 결과를 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
만 19세의 어린 선수에게 중압감이 클 수밖에 없었으나 유지우는 훌륭하게 해냈다.
‘주장은 지우 말고 할 선수가 없죠.’
‘우리 캡틴은 최고죠.’
‘지우 덕분에 이러한 영광을 누리고 정말 행복합니다!’
‘선배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주장이었다.
“역전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지 않으셨는데 어떤 이유였나요?”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시점에서 나온 역전 골은 어떤 선수나 흥분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유지우는 냉정함을 유지하며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아르헨티나는 저의 두 번째 조국이자 제 친구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유지우의 대답을 들은 기자들은 단번에 이해했다.
아르헨티나라는 나라는 그에게 특별한 곳이니까.
“그리고….”
올림픽의 주인공이 된 유지우를 향해 질문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 * *
【 2032 브리즈번 올림픽! 남자 축구의 주인은 대한민국! 】
【 올림픽 최강 아르헨티나! 대한민국에게 3 – 2로 패배하다. 】
【 올림픽 득점왕! 유지우, 다섯 경기 출전해 9골을 만들어내다! 】
- 엉엉엉 ㅠㅠㅠㅠㅠㅠ 축구에서 금메달이라니 ㅠㅠㅠ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금메달이라니 ㅠㅠㅠ
- 지우 플레이 보고 말을 못 하겠더라.
- 난 어제 지렸어.
- 애기 기저귀 갈다가 내가 차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디에고도 미쳤는데 지우는 더 미쳤어.
사람들은 디에고 로시의 플레이도 칭찬했다.
올림픽에서 유지우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였으니까.
그렇게 많은 기사가 국내를 비롯해 해외로 보도됐다.
특히 많은 기사가 나왔던 건 한국의 결승전 상대인 아르헨티나였다.
그들은 금메달을 놓친 것에 아쉬워하는 것도 잠시.
【 유지우, “아르헨티나는 나의 두 번째 조국, 차마 기뻐할 수 없었다.” 】
유지우가 한 인터뷰가 공개되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 유는 안 변했구나.]
[저게 유의 매력이지, 유가 역전 골을 넣었을 때는 분했지만.]
[유의 퍼포먼스는 언제봐도 짜릿해, 그는 프리미어리그로 가서 더 성장했어.]
[난 그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해, 보카 주니어스 때도 그랬지만,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하며 더 뛰어난 선수가 됐어.]
유지우를 찬양하는 글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왔다.
시간이 흘러 올림픽의 모든 종목이 끝나고 전체 순위가 나왔다.
여러 나라 중 대한민국의 순위는.
금 21개, 은 17개, 동 19개.
전체 5위에 랭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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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영국 안 갔어?”
폐막식만 남겨놓고 선수촌 식당에서 밥을 먹는 최다빈은 건너 테이블에서 먹는 유지우에게 말을 걸었다.
“구단에서 폐막식까지 보고 오라고 해서.”
유지우는 바로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격렬한 결승전을 치렀으니, 구단에서 폐막식까지는 쉬고 오길 원했다.
“오~ 그러면 끝까지 있는 거네?”
“응, 내일 폐막식은 참가할 수 있지.”
“올림픽 폐막식 재미있을 거야.”
“뭐가?”
“마지막에 스타디움 전체가 클럽으로 바뀌거든.”
“클럽?”
“느껴보면 알게 될 거야.”
* * *
폐막식 당일.
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전을 치렀던 선콥 스타디움이 폐막식장으로 꾸며졌다.
관중석을 채운 수많은 인파.
차례대로 선수단이 입장했고 대한민국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대한민국의 기수로 유지우 선수가 나옵니다!]
대한민국 선수단 제일 앞에선 유지우가 태극기를.
최다빈은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했다.
[개막식 때는 아쉽게 참석하지 못했지만, 폐막식은 마음 놓고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개막식은 결과를 모르기에 긴장한 모습이 있었다면 폐막식은 모든 게 끝났으니 홀가분한 감정이 컸다.
선수들의 표정에 그게 드러났다.
메달을 딴 선수들은 목에 메달을 걸었고 함께 축제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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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국에서 준비한 여러가지의 프로그램이 지나갔고 마지막 순서는 세계적인 DJ들이 나오며 최다빈의 말처럼 클럽 분위기가 됐다.
“내 말이 맞지?”
“…그러게.”
“너도 이 순간은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놀아!”
이런 분위기가 익숙했던 최다빈은 신나게 선수들과 어울렸지만, 유지우는 그러지 못했다.
그가 한 걸음 뒤에 물러나서 선수들이 노는 걸 구경하고 있자.
“잡아!”
“지우야!”
“응?”
축구 선수단은 유지우 근처로 모여 헹가래를 쳤다.
유지우가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꿨을 메달.
그가 캡틴으로서 이끌어줬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를 만들 수 있어 선수들은 행복한 얼굴이었다.
“고맙다!”
“뭘요, 다 같이 딴 금메달이잖아요.”
“여기에 너 지분 90%는 있지.”
선수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종목 선수들도 흐뭇하게 바라봤고 타국 선수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거의 마무리가 될 때쯤.
“유!”
“사진! 사진!”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을 비롯해 보카 주니어스 동료였던 선수들이 다가왔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우리도 같이 찍자!”
이어서 마르쿠스 디뉴를 포함한 프랑스 선수들이 합세했다.
“저기, 저기로 포커싱 맞춰.”
기자들은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올림픽에서 보여준 치열한 경쟁.
그리고 차세대 발롱도르 주자들이 같이 있는 장면은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사 1면은 이 사진으로 대신하면 되겠군.’
대한민국, 아르헨티나, 프랑스.
세 나라의 선수들이 한데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은 모든 외신이 카메라에 담았다.
“다들 고생했고! 언젠가 또 보자!”
그렇게 2032 브리즈번 올림픽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