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리그에서 10연승을 하며 상승세를 탄 아스날은 9월 30일, UEFA 챔피언스리그 C조 2차전을 앞두고 있었다.
‘오렌지 벨로드롬.’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구장에서 열리는 2차전을 위해 아스날 선수들은 비행을 끝내고 프랑스에 도착했다.
“으아-!”
호텔 방 안.
유지우와 같은 방을 쓰는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침대 위로 다이빙을 했다.
“타국 원정은 피곤해.”
챔피언스리그 원정은 프리미어리그 원정과 차원이 달랐다.
타국에서 진행되는 거라 현지 적응을 위해 3일 전에는 도착해야 했다.
가뜩이나 빡빡한 스케줄에 원정까지 겹치자 선수들의 피로도는 점차 쌓여갔다.
“리옹에 있을 때도 그랬어? 그때는 유로파 때문에 해외 원정 나갔었다며.”
“응, 그때도 그랬지. 이건 적응이 안 돼.”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올림피크 리옹에 있던 시절, 챔피언스리그 하위격 대회인 유로파 대회에 꾸준히 참가했었다.
최고로 올라간 성적은 4강이었다.
“마르세유라는 팀은 어때?”
폴 사르가 마르세유전을 준비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관련된 얘기를 했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싸운 경험은 또 달랐다.
“음.”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올림피크 리옹 시절에 마르세유와 경기했던 걸 떠올렸다.
“마르세유는 일단 감독님 말대로 중원 싸움을 주로 가져가는 클럽인데, 특히 미친개가 한 마리 있어.”
“미친개?”
“다비드 페키르라고 깡패 같은 놈.”
“…감독님한테 듣긴 했어, 주의해야 할 놈이라고.”
“미친놈이야. 축구선수가 아니었으면 UFC에 출전했을걸?”
“그렇게 싸움을 좋아해?”
다비드 페키르에게 마르세유의 미친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에이스들을 노려서 부상을 입히는 게 특기야. 그 녀석 때문에 많은 선수가 병원 신세를 졌었지.”
폭력성 때문이었다.
이러한 폭력성으로 이미 여러 번 비판을 받은 바가 있지만, 정작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축구라는 건 결국 결과로 보이는 게 다니까.
“조심해, 이번 경기에서 그 녀석의 타겟은 너니까.”
* * *
경기 당일.
선수들은 스타디움을 찾았다.
워밍업을 끝내고 들어온 라커룸.
경기에 나서기 전, 폴 사르가 선수들에게 말했다.
“마르세유에게 주의할 것은 압박이다. 저 녀석들은 시작부터 라인을 올려 전방 압박을 시작할 거다.”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선수들은 폴 사르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는 다들 알다시피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한 오리지널 4 – 3 – 3으로 간다.”
오늘 경기를 준비하며 폴 사르가 생각한 하나의 전술.
4 – 3 – 3의 정석적인 운용이었다.
원래 사르볼의 4 – 3 – 3은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에 한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정삼각형 포메이션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선 한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역삼각형을 가지고 나왔다.
“다니, 크리스티안! 너희 둘의 역할이 크다.”
“네!”
“맡겨주십시오!”
“2선에서는 단 1초라도 망설이지 마라! 틈이 보이면 바로 패스해!”
크리스티안 페레스와 다니 아라우호의 호흡.
오늘 경기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마테오!”
“네!”
“데릭과 레이턴이 라인을 살짝 올려 미드필더 역할까지 수행할 거니까 넌 빌드업에 집중해라.”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개개인에게 어떻게 움직일지 얘기했다.
어제까지 지겹도록 들은 전술이지만, 다시금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설명이 끝난 뒤.
폴 사르는 유지우를 쳐다봤다.
“유, 다비드 페키르가 어떤 선수라고 했지?”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미친놈이다. 워낙 미친놈이라 너를 부상 입히려고 온갖 짓을 다 할 거라고 본다.”
프랑스 리그 카드 수집률 1위.
다비드 페키르의 목적은 유지우였다.
그도 그럴게 경기 전 인터뷰에서.
‘아스날의 유요? 프랑스에서 한 번도 안 뛰어본 애송이죠. 리그에서 통하던 운이 챔피언스리그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유지우를 겨냥한 도발적인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지우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런 놈들 한두 번 만나보는 것도 아니거든요.”
보카 주니어스 시절부터 숱한 견제를 겪어봤다.
개중에선 아예 부상을 입히려고 작정한 선수들도 많았다.
“눈빛 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래도 집중해, 필드 위에선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자신감이 넘치는 유지우를 보고 폴 사르는 주의를 시켰다.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필드 위였으니까.
* * *
필드에 입장 전.
터널에 선수들이 모여 에스코트 키즈와 손을 잡고 대기했다.
이때부터 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말은 없었고 경기 입장 시간이 됐는데도 마르세유 선수 한 명이 오지 않고 있었다.
“언제 들어갑니까?”
데릭 레드먼드는 주심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죠.”
“언제까지요? 이미 입장 시간 2분이나 지났습니다.”
“후우, 그쪽 선수는 언제 온답니까?”
“유니폼에 문제가 생겨서요. 금방 올 겁니다.”
마르세유 주장인 아딜 카마라가 태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데릭 레드먼드는 열받은 채로 그 말을 맞받아쳤다.
“이미 입장 시간 2분…. 아니 방금 3분 지났습니다.”
“…….”
“약속한 시간을 어기는 게 정말 프로인지 묻고 싶네요.”
주심은 이때까지만 해도 데릭 레드먼가 할 짓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지금부터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
“얘들아!”
데릭 레드먼드의 외침이 터널 안에 가득 채워졌다.
“가자.”
짧게 한마디 하며 에스코트 키즈의 손을 잡고 출발했다.
“데, 데릭!”
주심이 당황해서 데릭 레드먼드의 이름을 부르지만, 데릭 레드먼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상대 주장을 바라보고 한마디 했다.
“엿 같은 신경전 할 시간에 기어 나와.”
데릭 레드먼드를 비롯해 베테랑들은 알고 있었다.
이게 마르세유가 원정팀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려고 한 짓이라는 걸.
“저, 저기요!”
주심의 뒤에서 소리치지만, 주장의 뒤를 따르는 아스날 선수들을 말릴 수 없었다.
마지막 대열에 있는 유지우까지 필드로 입장하자.
“응?”
관중석에 있는 팬들은 어리둥절했다.
[…아스날 선수들만 필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르세유 선수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요?]
아스날 선수들이 입장해서 대열을 갖춰 섰다.
1분 뒤.
마르세유 선수들도 들어오자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금방이라도 한 판 할 것 같았다.
그런 시선에도 데릭 레드먼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수 입장 후, 악수하는데.
꽈-악!
마르세유 주장 아딜 카마라가 데릭 레드먼드와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자신들의 홈에서 망나니처럼 군 것에 대한 항의였다.
그러나.
“윽.”
오히려 고통스러워하는 건 아딜 카마라였다.
“신경전은 안 보이는 곳이 아니라 보이는 곳에서 해. 축구선수라면 필드 위에서. 알았어?”
그 뒤로도 마르세유 선수들에게 지압 마사지를 해줬다.
너무 기뻐 몸부림치는 마르세유 선수들을 보고 유지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휙.
마르세유 선수들이 웃음을 터트린 유지우를 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데릭처럼 힘으로는 못하고…. 아! 골로 보여줄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황제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 * *
저것들 제대로 열받았나 보네.
[태클 수가 정말 많습니다! 마르세유가 리그에서도 태클 수가 많은 클럽이긴 하지만 이건…. 예상한 것 이상이군요.]
경기 전에 어쭙잖게 기선제압을 하려던 걸 데릭 레드먼드에게 역으로 당해 마르세유 선수들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것 같았다.
촤---악!
그리고 그들은, 그걸 필드 위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거친 경기를 보이면서 말이다.
하나, 상대는 아스날이었다.
[아스날이 태클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여유롭게 볼을 돌리며 라인을 천천히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흥분한 만큼 움직임이 단조로워져 우리가 패스를 돌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감독님이 가장 크게 신경 쓴 부분.
툭.
툭.
크리스티안 페레스와 다니 아라우호의 동시 기용.
이 부분은 처음부터 빛을 발휘했다.
뻐—엉!
두 선수는 가볍게 볼을 주고받다가 기습적으로 스루패스를 찌르며 마르세유의 뒷공간을 노렸다.
마르세유가 라인을 내리며 막아내긴 했지만, 언제 뚫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오, 아스날이 평소보다 더 공격적인 모습입니다.]
[이게 다 두 명의 공격 미드필더를 기용한 덕분이죠, 마르세유가 라인을 올려 전방 압박을 하는 클럽이라 라인을 의도적으로 내리려는 기용으로 보입니다.]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내보내면서 마르세유가 라인을 올릴 틈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즉, 가둬놓고 패려는 거였다.
뻐—엉!
리드는 자연스럽게 아스날이 잡았고 전반 13분.
[유지우 선수가 측면에서 볼을 잡았습니다! 천천히 밀고 들어오는 유지우 선수!]
마르세유 수비진이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난 발등으로 볼을 밀면서 서서히 타이밍을 잡았고.
뻐—엉!
수비진이 골대 앞까지 깊게 내려온 걸 보곤 기습적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볼을 보냈다.
수비수가 내려가면서 생성된 공간.
그곳으로 달려오는 마테오 크리스단테.
[마테오 크리스단테! 마테오----!]
수비수들이 황급하게 달려 나가며 슈팅이라도 차단해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왼쪽 구석을 노리고 찼다.
하지만 회전이 너무 강하게 걸려 예상보다 더 많이 휘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벗어나고 말았다.
[살짝 힘이 들어갔네요! 종이 한 장 차이로 벗어났습니다!]
[이번 시즌 아스날에서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는 마테오 크리스단테! 수비만이 아닌 공격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
.
.
30분.
리드는 여전히 우리에게 있었지만, 마르세유도 위협적인 기회를 몇 번 만들었다.
0 – 0.
균형은 깨지지 않았지만, 마르세유의 공격 상황에서 볼을 빼앗아 우리에게 역습 상황이 왔다.
타다다다닷-!
데릭 레드먼드가 걷어낸 볼이 중앙으로 오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볼을 보고 빠르게 뛰어오는 다비드 페키르.
‘저놈이 더 가깝긴 해.’
다비드 페키르와 경합 상황.
나는 먼저 점프를 뛰었다.
그대로 머리에 맞췄다는 생각이 들 때.
뻐---억!
응?
얼굴 오른쪽 부위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털썩.
쓰러져 버렸다.
다비드 페키르.
이 새끼가.
주르르륵.
충격에 코피가 흘렀고 얼굴은 부어올랐다.
[강한 충돌에 일어나지 못하는 유지우 선수! 동료 선수들이 달려와 상태를 체크합니다!]
[아…. 피까지 흘리네요. 느린 화면으로 한 번 보겠습니다! 이거 보십시오! 이건 아예 노리고 들어간 겁니다!]
다비드 페키르는 고의가 아니라며 주심에게 어필했고 내가 일어나서 항의하려고 하는데.
비틀.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
욱신거리는 충돌 부위.
빌어먹을.
저 새끼가 진짜.
히죽.
어쭈 웃어?
100% 고의라는 게 방금 증명됐다.
‘그럼 더 거리낄 것도 없지.’
건드린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보여줘야겠다.
* * *
【 LIVE) 아스날 vs 마르세유, 0 – 0 진행 중. 】
- 방금 뭐냐? 내가 보는 게 축구야 UFC야?
사람들은 다비드 페키르와 부딪쳐 넘어진 유지우를 보고 경악했다.
- 안 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부상은 아니지 ㅠㅠㅠㅠㅠㅠㅠ
- 저놈은 프랑스 리그에서도 유명하잖아.
- 와…. 리플레이 봐봐라, 턱을 돌리려고 작정을 했어.
- 미친 개XX!!!
- 코피까지 ㅠㅠㅠ 저거 진짜 아프겠는데?
- 뇌진탕오면 바로 교체해야 되는 거 아니야?
유지우가 잠시 필드 밖으로 나가 상태를 체크하는 장면이 화면에 나왔다.
채팅창은 더 빠르게 올라갔고 곧이어 유지우가 들어올 준비를 마치자 읽을 수 없는 속도로 채팅창이 도배됐다.
그리고 그들은 봤다.
유지우의 차분한 눈빛과 올라가는 입꼬리를.
- 응? 웃어?
아스날의 외계인이 다시금 필드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