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후우.”
VIP들이 모인 관중석 한편.
아스날의 승리를 두 눈으로 본 찰리 크로퍼드는 땀이 찬 손을 꽉 쥐었다.
아까부터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어떠세요?”
그의 옆에는 해리 윈터번이 함께였다.
“…사람들이 왜 이 경기를 정상 대전이라고 하는지 알겠군.”
“그렇죠?”
“이렇게 긴박감이 넘치는 경기를 보는 게 얼마 만인지.”
1980년대부터 평론가의 일을 해와 수많은 경기를 봐온 그에게도 오늘 경기는 묘한 설렘을 줬다.
“다 늙은 나도 이렇게 설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겠나.”
“대단한 선수들이에요.”
“특히 양 클럽의 10번들이 날아다니더군.”
모두가 인상적이었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에이스들이었다.
“유랑 디에고 경기는 이전에도 많이 보셨습니까?”
“하하! 아무리 내가 은퇴했다지만 날 너무 무시하는군. 축구팬이 아니어도 두 사람의 하이라이트는 한 번은 봤을 거야. 나 역시 두 사람의 경기는 많이 챙겨봤고.”
유지우와 디에고 로시, 그리고 기예르모 다린까지.
세 선수의 이름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씩은 들어온 이름이었다.
“전 그 세 명이 훗날 발롱도르 경쟁을 할 거라고 봐요. 그리고 그 선두에는 유가 있고요.”
다음 세대를 책임질 재목.
사람들은 그들이 훗날 발롱도르 경쟁을 할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음, 디에고랑 기예르모는 그렇다고 쳐도 유는 국적이 대한민국이지 않나?”
“네.”
“다소 불리하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월드컵이 없는 시즌이라면 유에게 가능성이 크죠.”
발롱도르의 심사요건은 한 시즌의 성과로만 판단하는 걸로 바뀌었다.
국가대표의 성과도 성과지만, 한 시즌의 활약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즉, 국제대회가 없는 시즌이라면 유지우도 수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당장에 2032 발롱도르 후보로 거론되는 게 유지 않습니까.”
“챔피언스리그 성적이 없어서 아쉬워.”
“아무래도 그렇죠, 31-32시즌에 챔스권에서만 활약했다면 발롱도르 최종 3인에 들었을 정도라는 평이 많습니다.”
“그러면…. 노릴 건 2033 시상식인가?”
“받게 된다면요.”
“허, 20세의 선수가 발롱도르? 만약 받게 된다면 축구계가 발칵 뒤집히겠어.”
아스날의 NO. 10.
그는 어느덧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 * *
“미쳤다.”
직관한 뒤에 경기장을 나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모두 같은 말이 나왔다.
각자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오늘 경기가 명경기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 된 폴 사르는, 기자회견장에서 오늘 승리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아스날이 맨체스터 시티를 이기며 단독으로 리그 1위에 올랐습니다! 오늘 경기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을 뽑자면 어떤 겁니까?”
“모든 선수가 제 역할을 소화했다는 거죠, 제가 지시한 것 이상의 활약을 해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감독의 전술도 전술이지만, 선수들의 투혼이 승리를 만들어냈다는 건 과언이 아니었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인정할 답변이었다.
“감독님이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감독이 되었다는 얘기도 많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요? 하하, 그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
지난 시즌 아스날의 기적적인 우승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도 12연승을 달리자 사람들은.
‘이 정도면 폴 사르가 프리미어리그 감독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않아?’
이런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문에는 살이 붙어.
‘폴 사르가 프리미어리그 최고지.’
이렇게 변했다.
만약 이 기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가볍게 시작된 이 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인터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승리에 대한 축하와 소감 등 문답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고, 이어서 선수단 관리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그리고 컵 대회 등 여러 경기를 치르고 있는데요. 선수들의 체력관리는 괜찮은 겁니까?”
이건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아스날이 여러 선수를 데려왔다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포지션이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양쪽 풀백에서 약점이 드러나 챔피언스리그는 포기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도 스멀스멀 나오는 중이었다.
툭툭.
폴 사르는 마이크를 두 번 친 뒤, 대답했다.
“그 부분은 제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항상 선수들이 최선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케어하고 있고, 체력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아스날은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극심해지는 상황을 우려를 해 미리 대비했다.
“그리고.”
폴 사르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줬다.
“이제 A매치 데이가 시작되는데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한 유에게 휴식을 줄 생각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기자들은 카메라 셔터를 터트리며 글을 써 내려갔다.
“휴가를 주신다는 말씀이시죠? 그 기간은 어떻게 될까요?”
“10월 10일부터 한국으로 가서 A매치를 치르고, 27일에 복귀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렇다는 건…. 리그 13라운드와 카라바오컵 16강 일정에 유는 출전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10월 21일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10월 25일 카라바오컵 16강.
이 두 경기는 유지우의 휴가 기간에 있었다.
“그럴 예정입니다.”
“그 사실을 이렇게 밝혀도 되나요?”
에이스가 출전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상대 입장에서 대비할 기회를 주는 거였다.
“기자분들이 잘 모르고 계시는데.”
폴 사르는 기자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모든 대회 우승이 목표입니다. 에이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경기력에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폴 사르는 엄청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아스날이 보여주는 퍼포먼스.
그건 단순히 에이스 한 명에 의존한 퍼포먼스는 아니었으니까.
* * *
【 ‘정상 대전.’ 승리는 아스날! 】
【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시청률! 아스날 vs 맨체스터 시티, 2 – 1로 아스날의 승리! 】
【 ‘아스날의 황제’ 유지우, 리그 12경기 연속골 신기록 달성! 】
【 폴 사르, “그는 기록 제조기다. 다음에 어떤 기록을 세울지 기대된다.” 】
【 호셉 과르디올라, “환상적인 팀에게 진 것.” 】
【 디에고 로시, “유는 언제나 나의 앞을 걸어간다.” 】
기사들이 보도됐고 정상 대전의 열기는 경기가 끝났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크으-!”
그리고 이슬링턴 거리에 있는 유한우 레스토랑 룸에선 세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지우.
디에고 로시.
기예르모 다린.
세 친구는 A매치 소집 전,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역시 유의 아버지 음식 솜씨는 변하지 않았다!”
“천천히 좀 먹어라. 음식은 많아.”
기예르모 다린은 허겁지겁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먹어치웠다.
“기예르모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나를 만나는 것보다 아버지 음식을 만난 게 더 반가워 보이는데?”
“그걸 이제 알았어?”
세 사람은 음식을 먹으면서 리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적응은 다들 끝났지?”
“응, 선수단 분위기도 좋고 다 좋아.”
“나도, 시즌 초반에는 조금 긴장했지만, 이제는 다 괜찮아졌다.”
“첼시는 올라오려면 한참 남았고.”
“얼마 안 남았다!”
“시티는 이제 미끄러졌으니까.”
“…안 미끄러졌거든!”
“우승은 우리 아스날이 하겠네?”
유지우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두 선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리그 초반이라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 보이나?”
“그럼! 다음 경기는 우리가 이길 거니까! 두고 봐! 해트트릭을 꽂아 넣어주겠어!”
티격태격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자 유한우가 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 미래의 우리 발롱도르 선수님들을 위해 제가 만든 특제 떡갈비입니다~”
“떡갈비요?”
“소고기랑 돼지고기, 그리고 각종 채소를 다져서 만든 음식이야. 한 번 먹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법에 빠지지.”
유지우는 많이 먹어봐서 두 선수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를 해주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하나씩 집어 먹는데.
번쩍.
두 눈이 커졌다.
먼저 입을 연 건 기예르모 다린이었다.
“아버지! 천상의 맛입니다! 제가 먹어본 음식 중 제일 맛있어요!”
“하하하-! 그거 다행이네! 그리고 너희 가기 전에 미리 말해줘, 가족들이랑 먹을 수 있게 음식 포장해놓을 테니까.”
덥석.
“아버님은 천사세요. 날개는 어디 숨겨둔 거죠?”
디에고 로시는 유한우의 등을 살펴보며 날개를 찾는 행동을 했다.
“하하하하하! 날개는 집에 내려놓고 왔지, 달고 다니다가 사람들이 놀라서 신고하면 어떻게 해.”
“그렇군요.”
“날개 보고 싶으면 집에 놀러 와.”
“꼭 가겠습니다!”
“우리 작은 아들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디에고 로시와 유한우의 만담을 보던 유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나보다도 더 아버지 아들 같다니까. 그리고….’
시선을 돌린 곳.
그곳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듯 입에 양념까지 칠하며 떡갈비를 흡입하는 기예르모 다린이 있었다.
‘참…. 이런 녀석들이 프리미어리그에 돌풍을 몰고 있다니, 하여튼 재미있는 녀석들이라니까.’
훗날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해 유럽 리그까지 삼분하는 세 선수는 처음 만났을 때나 인기가 폭발하는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사이는 더욱 돈독해져만 갔다.
* * *
A매치로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나는 감독님과 미팅했다.
“A매치에서 뛰는 시간은 에이전트를 통해서 들었지?”
“네, 클럽과 상의한 끝에 한 경기만 출전하는 걸로 합의가 됐더라고요.”
구단에서는 내 체력관리 차, 국가대표 측에 한 경기만 출전시킬 것을 요청했다.
국가대표 내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들었고.
“걱정되어서 말이야.”
“…감독님은 걱정이 너무 많으세요. 인터뷰는 그렇게 잘하신 분이.”
“너만 생각하면 걱정이 많아져서 그렇지.”
감독님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강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그만큼 잔정이 많아 사소한 것도 많이 신경 써줬다.
“그래서, 휴가 계획은 세워뒀어?”
“우선 A매치에 집중하고 아르헨티나에 잠깐 다녀올까 생각 중이에요.”
“아르헨티나?”
“네, 제가 축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도 좀 뵙고, 선수 생활하면서 봤던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서요.”
“음…. 괜찮네, 고향같이 마음이 편안한 곳에서 쉬는 게 도움이 될 테니까.”
“나중에 비시즌 중에 시간 맞으면 언제 저랑 같이 아르헨티나에 가보실래요?”
“좋지!”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어느덧 갈 시간이 됐다.
“잘 다녀와라.”
“네, 그리고 저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요.”
“맨날 슬퍼서 눈물이 나면?”
“닦으세요. 휴지 사드려요?”
“냉정한 녀석.”
“가보겠습니다.”
“아프면 전화하고! 무슨 일이 없어도 전화해!”
감독님의 배웅을 받은 다음 날, 난 아스날을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긴 시간을 비행한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유지우는 에이전트 차명훈과 매니저 덱스, 개인 코치 에디하고 같이 게이트 쪽으로 걸어갔다.
“…이상입니다.”
A매치 관련된 사항을 얘기해준 차명훈은 게이트가 가까워지자 이어서 말했다.
“지우 선수, 인파에 놀라지는 마세요.”
“많이 있겠죠?”
“그럼요. 지우 선수가 올림픽 후에도 바로 런던으로 가는 바람에 한국으로 오는 건 반년만이잖아요.”
게이트를 통과해 밖으로 나가자.
“유지우 선수다!”
“유지우 선수!”
“어서 오십시오!”
수많은 인파를 비롯해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실상부 프리미어리그의 황제이자 프리미어리그 새로운 기록의 주인.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 올림픽 남자 축구 금메달리스트.
유지우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그는 수천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