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대한민국 5 – 0 중국]
볼이 잠깐 라인 아웃이 되며 경기가 중단된 사이.
주심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뭘 하는 짓인지.’
오늘 주심을 맡은 밀로시 덩은 올해로 10년 차가 된 주심이었다.
그는 이 경기가 있기 이틀 전, 중국 쪽과 접촉했을 때가 떠올렸다.
‘…그래서 중국이 유리하게 판정해달라고요?’
‘아니죠, 어떻게 그런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이건 그냥 선물입니다. 선물.’
‘선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선물이 아닌 뇌물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금액.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그쪽이 원하는 판정을 한다고 해도 중국이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유가 있고 재능 넘치는 다른 선수들도 있습니다.’
‘저희도 냉정하게 그렇게 봅니다.’
‘그러면….’
‘승리가 안 된다면 장징빈이 공격 포인트를 쌓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만 해도 됩니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그럼요. 경기 자체를 이기게 해달라는 게 아닌 선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주신다면 오늘 드린 금액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2배면 적어도 2~3년은 놀고먹어도 될 금액이었다.
밀로시 덩은 긴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했고 오늘 이 상황이 벌어진 거였다.
삐—익!
이미 승리는 한국에게 기운 상태.
여기서 자신이 아무리 발악한다고 해도 중국의 경기력으로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장징빈의 공격 포인트.’
이거라면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주심의 편파 판정은 전반전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없어지진 않았다.
각종 플레이에서 나오는 반칙.
중국은 그걸 이용해 대한민국을 짓누르려고 했으나 대한민국 선수들은 더 강하게 저항했다.
[대한민국은 라인을 올린 강한 압박으로 중국이 아예 센터서클을 못 넘게 만듭니다!]
[완벽한 반코트 싸움! 후반전에 들어오면서 한국 선수들의 조직력이 더 좋아져 보이는 건 제 착각인가요?]
간결한 패스로 인한 빌드업.
중국이 라인을 올릴 틈을 주지 않았다.
계속되는 소통.
선수들의 호흡이 찰떡처럼 맞았고 패스의 횟수도 중국의 두 배 가까이 됐다.
점유율의 차이는 84 vs 16.
뻐—엉!
중원의 우위를 잡고서 김우일이 침착하게 전방의 상황을 살핀 뒤, 왼쪽으로 찔러준 패스.
퍼스트 터치로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낸 강예수가 왼쪽 측면을 무너트렸다.
[깔끔한 퍼스트 터로 강예수 선수! 그대로 돌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 더 정교해진 플레이! 괜히 라리가 도움 5위에 든 선수가 아닙니다!]
중국은 그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라인을 세워서 막으려고 했지만, 너무 강예수 쪽에만 집중하고 있던 게 그들의 실책이었다.
이미 은밀하게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접근한 맹수를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툭.
컷백 크로스를 찔러 중국 수비진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그리고 볼이 간 곳.
그곳을 보자 중국 수비수들은 경악했다.
“자, 잡아!”
유지우에게 볼이 가는 것을 보곤 달려가 보았지만.
철렁.
그들이 붙기 전에 흔들리는 골망.
그 모습을 본 중국 선수들은 얼음처럼 굳고 말았다.
유지우는 해트트릭했음에도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골대 안에 들어간 볼을 가지고 센터서클로 달렸다.
6 – 0.
절대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골대 안에 들어간 볼을 가지고 나온 이유는.
까닥.
“빨리 해.”
더 많은 골을 넣기 위해서였다.
* * *
주심의 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의 충돌이라도 있으면 중국 선수를 위해 휘슬을 부는 상황.
‘우리도 질 순 없지.’
유지우는 조정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정후는.
탁.
차선호가 측면에서 보낸 볼을 잡아 둔 후.
퍼—억!
상대 수비수와 부딪쳤다.
원래라면 버틸 수 있는 몸싸움이었으나.
“주심! 주시이이이임!”
연기를 시작했다.
스트라이커라는 역할 상 가장 많은 압박을 받는 그였기에 스치기만 해도 넘어졌다.
삐—익!
중국 선수들에게는 불어주는 상황을 한국 선수들에게 불어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나중에 협회에서도 문제로 삼을 것을 우려한 주심은 적당하게 불어주려고 했는데.
‘…미치겠네.’
프리킥을 준비하는 선수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지우 선수가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31-32시즌! 프리킥 성공률 1위의 선수입니다!]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키커.
그의 등장으로 주심은 식은땀을 흘렸고.
철렁.
수비벽을 아슬아슬하게 넘긴 볼은 그대로 중국의 골대에 꽂히자 절망했다.
[고오오오오올! 오늘 경기 네 번째 골을 넣는 유지우 선수! 프리킥 성공률 60%의 선수답게 정말 정교하네요!]
유지우가 노린 건 이런 거였다.
중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파울을 얻어낸 후.
아예 판정 시비조차 걸리지 않는 골을 넣는 것.
프리킥은 중국의 침대 축구에 대응할 그의 작전이었다.
“계속 이렇게 가죠.”
“…너는.”
김기하는 놀랐다.
단순히 침대 축구가 아니었다.
침대 축구는 넘어져서 시간을 끄는 형태지만.
유지우는 그걸 변형시켰다.
공격적인 침대 축구로.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
.
.
잠시 후.
유지우가 볼을 잡자 세 명의 선수가 에워쌌다.
아예 돌파할 공간을 주지 않겠다는 속셈.
‘갈 곳은 있다.’
유지우는 돌파할 공간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으로 뚫고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가는 척.
툭.
중국 선수의 어깨에 바람이 스치듯 부딪치자 유지우는 바닥에 넘어져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악-!”
유지우는 정말 죽을 듯이 바닥을 굴렀다.
“야.”
“으아아아-!”
“야---!”
중국 선수가 화가 나 소리쳤지만.
“으아아아아아-!”
유지우는 더 크게 소리쳤다.
도발을 단순히 플레이로 짓누르기보다, 역지사지로 보여주며 대응하려는 거였다.
‘똑같이 당해봐야 뭘 잘못했는지 알거든.’
* * *
중국 선수들은 이대로 더 실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볼을 질질 끌었다.
타다다다다닷-!
그러나 그걸 두고 볼 유지우가 아니었다.
3선까지 내려가며.
촤—악!
날카로운 태클로 볼을 빼냈다.
중국 선수는 넘어지면서 연기에 들어갔지만, 주심이 휘슬을 불 정도로 애매하게 들어가질 않았다.
깔끔 그 자체.
유지우는 주심이 휘슬을 불 여건 자체를 주지 않았다.
[반칙이 아닙니다! 그리고 곧바로 일어난 유지우 선수! 라인을 내려온 차선호 선수와 원투 패스!]
그는 차선호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마크하는 선수를 따돌렸다.
하지만 중국은 중원에 밀집된 수비 형태를 갖추고 있어 유지우가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패스를 해야 할 상황.
‘…이것들 봐라.’
이때 유지우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한국 선수들이 부딪치면서 연기를 하자 중국 선수들이 부딪치지 않으려고 소극적으로 변한 거였다.
그리고 소극적으로 변하자 공간이 더욱 넓어졌고 유지우는 연기를 할 필요가 사라져버렸다.
[유지우 선수! 속도를 더 올립니다!]
공간을 보곤 속도를 더 올렸다.
허벅지에 찌릿한 전기가 왔지만, 그의 발은 멈추지 않았고 동시에 압박하는 두 명의 선수 사이를.
탓, 타닷!
라 크로케타로 깔끔하게 제쳐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팬텀 드리블로 공간을 엽니다! 유지우 선수의 돌파는 월드 클래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압박하던 중국 미드필더들은 차마 움직일 수도 없었다.
‘유령처럼 사라졌어.’
폭발적인 속도.
화려한 테크닉.
이 두 가지가 뭉치자 유지우는 정말 외계인이 되어있었다.
“가자---!”
관중석에서도 흥분한 관중들이 한두 명씩 일어났다.
마침내 남은 건 수비수 세 명.
그들을 본 유지우는 조정후에게 패스를 주곤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갔다.
원투 패스로 뚫겠다는 의도였다.
툭.
조정후도 그걸 눈치채고 원터치를 내줬지만.
‘앗.’
볼이 빗맞으며 어긋나고 말았다.
하지만 유지우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갔다.
골키퍼가 나오는 걸 보곤.
촤---악!
몸을 날렸고.
발끝에 맞은 볼은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지나.
철렁.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유지우 혼자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득점이었다.
[대한민국 8 – 0 중국]
같은 대한민국 선수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어나더 레벨.
혼자서 능히 경기 자체를 리드할 수 있는 선수.
유지우는 에이스란 이런 것이라는 걸 몸소 증명해냈다.
.
.
.
81분.
강예수가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황우식이 마무리를 지었다.
[ 대한민국 9 – 0 중국 ]
이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점수 차이였다.
중국도 공격을 시도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몇 차례 공격을 흐지부지 날렸고 나머지는 대한민국에 두들겨 맞았다.
“…유지우 몇 골 넣었지?”
“네 골.”
“와, 미쳤네.”
“계속 두드려 패고 있어.”
유지우는 5골 2어시스트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었다.
관중들은 일찌감치 그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시선을 빼앗겼다.
선수의 플레이에 동화가 되어가는 거였다.
그렇게 플레이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철렁.
돌파를 경계한 중국이 또다시 강하게 나오자 침대 플레이 후에 프리킥을 얻어 골마저 집어넣었다.
[프리킥 성공률이 이게 말이 됩니까? 프리킥에서 직접 슈팅을 노린 건 총 3번! 그중 두 번을 꽂아 넣습니다!]
[여러 별명 가운데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 와아아아아아!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플레이에 관중석에선 모두가 일어나 환호했다.
* * *
삐익-! 삐익-! 삐----익!
[경기가 종료됩니다! 대한민국 vs 중국! 10 – 0으로 대한민국이 엄청난 격차로 승리를 확정 짓습니다!]
[이 경기의 MVP는 당연히 이 선수! 유지우 선수입니다! 무려 6골 2어시스트! 중국을 그대로 침몰시켜버렸습니다!]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은 지진이 난 것처럼 들썩였다.
엄청난 격차의 승리.
그리고 보는 맛이 있는 경기.
유지우가 아스날의 DNA를 대한민국에 이식시키는 효과가 나오고 있었다.
“야.”
누군가 부르길래 뒤를 돌아보자 장징빈이 유니폼을 벗어 내밀고 있었다.
“교환하자.”
유지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미안, 이미 주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으, 으으으!”
입술을 깨물며 분노한 장징빈은 잔디를 거칠게 차며 걸어갔다.
그리곤 잠시 후.
필드에 믹스트존이 마련됐고 유지우는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승리에 관한 내용 뒤, 오늘 판정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다른 분들도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쁜 판정이 주를 이뤘습니다.”
기자들도 모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에도 약간의 분노가 있었다.
의도적인 편파 판정이라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알 정도로 심했으니까.
“그 부분에서 제가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경기를 본 분들이 판정할 문제니까요.”
그렇게 인터뷰를 끝낸 유지우가 걸어간 곳은 경기 전, 유니폼을 달라고 했던 소녀였다.
“자, 약속했던 거.”
“정말…. 기억하고 계셨어요?”
“난 웬만한 건 안 까먹어.”
소녀는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고 유지우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에 필드를 떠났다.
* * *
【 대한민국! 10 – 0으로 중국에 대승! 】
【 장징빈, 인터뷰 없이 믹스트존 노룩패싱! 】
【 6골을 몰아친 유지우, 요르단전 휴식. 】
【 주앙 달루트, “처음부터 정해졌던 일, 선수의 컨디션을 위해 결정했다.” 】
- ㅋㅋㅋㅋㅋㅋ 장징빈 X팔려서 어떻게 하냐.
- ㄹㅇ 스스로 아시아 최고라는 자리는 자기 거라고 증명한다고 했는데.
- 쩌리라는 건 증명함.
- 쩌리 수준은 되냐? 중국 대표팀에서도 겉돌면서 아무것도 못 하더구먼.
- 10점 차이가 날 거라곤 상상도 못 함.
- 갓지우의 득점에 내 눈이 호강한다.
- 그동안 쌓인 눈 피로가 다 사라진 느낌.
- 안구건조증이 낫는다.
그다음으로 화제는 주심이었다.
주심을 향한 사람들의 비판은 점점 심해졌다.
FIFA 쪽에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대한민국 언론 전체가 그 문제를 다루자 FIFA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 FIFA 측, “해당 내용은 심판협회 측과 협력하여 충분히 조사할 것.” 】
FIFA 측에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밝히자 심판협회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 국제심판 협회, “한국에게 유감을 표한다. 해당 주심은 조사 후, 적절한 조치가 나올 때까지 심판의 자격을 정지한다.” 】
그들의 일처리는 일사천리였다.
- …일 처리가 뭐 이렇게 빨라?
- 하루가 안 지났는데 실화?
- ㄹㅇ 갓지우가 있으니까 국격이 높아진 느낌이네 ㅋㅋㅋㅋㅋㅋ
- 수많은 외교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혼자 해내는 클래스.
- 이게 국위선양이지!!!
아직 징계가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이토록 빠르게 대처한 건 대한민국에 유지우가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 축구계에서 유지우의 위상은 더는 무시하지 못할 만큼 거대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