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225화 (225/383)

제225화

“우리 스타님 입장하십니다-!”

유지우가 국가대표 캠프 식당에 들어가자 차선호가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그의 너스레 떠는 목소리가 식당 안을 울리더니,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왕을 뵙는 신하들이 합창하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다들 왜 그래요. 밥 말고 이상한 거라도 먹었어요?”

“FIFA까지 흔드는 위상! 대단합니다!”

선수들이 이러는 이유는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는 FIFA 모습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그들이었지만, 유지우의 존재로 일을 빠르게 처리해줬다는 걸 선수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건 국민분들이 직접적으로 메일도 보내고 항의해서….”

“고작 항의했다고 들어줄 놈들이 아니잖아요.”

“…왜 존댓말이에요.”

유지우는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그건 선배들이 모두 존댓말을 한다는 거였다.

“우리 스타님을 대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죠. 뭣들 하나! 어서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예이!”

선수들은 일제히 움직이며 유지우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만들 해요.”

“좀 오버였나?”

주도하던 김기하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네. 너무요.”

“하하하! 네가 당황한 표정 보니까 더 놀리고 싶어지는 걸 어떻게 해.”

“선배님들도 이제 그만하시고 밥부터 드세요.”

“다들 해산! 놀리는 건 여기까지!”

유지우와 김기하의 말이 나오자 선수들은 그만하고 자리에 앉아 먹던 밥을 계속 먹기 시작했다.

유지우도 김기하가 앉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네가 국가대표에 있으니까 뭔가 든든하네.”

“저도요.”

“…네 입으로?”

“아뇨, 그냥 선배님들이 있어서 든든하다고요.”

“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김기하는 유지우를 기특하게 쳐다보며 음료수를 마셨다.

“지우야 부탁이 있어.”

“부탁이요? 뭔데요?”

“다음에 A매치 올 때 크리스티안 사인 좀.”

“선배님, 크리스티안 팬이에요?”

“우리 아내가.”

“아, 형수님이 필요하신 거면 받아드려야죠.”

“걔는 축구도 잘하면서 왜 그렇게 잘생겼다냐.”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축구선수 외모 월드컵을 하면 늘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잘생긴 외모였다.

축구선수를 안 했다면 배우를 했을 외모.

그래서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여성 팬 비율은 다른 선수들보다 월등히 앞섰다.

“근데 그 옆에서 밀리지 않는 너도….”

“전 크리스티안에 비하면 못생겼죠.”

“그건 그렇지.”

“와, 갑자기 그렇게 인정하시면 저 서운합니다.”

“아이고! 우리 스타님이 서운해하시면 안 되죠!”

“사인받아서 드릴게요.”

“고맙다, 진짜…. 잘생기고 축구 잘하고 인성까지 좋고 세상 불공평해.”

“원래 불공평한 게 세상이라잖아요.”

“너 솔직히 말해봐, 인생 2회차지?”

“10회차인데요.”

“…….”

“농담이고요. 저 예전에 협회랑 싸운 적 있잖아요.”

“아.”

김기하는 뭔가 이해한 눈치였다.

유지우가 협회랑 갈등이 있었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때 알게 됐죠,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그래도 지금은 좋지?”

“엄청요.”

“그럼 됐지! 뭐! 차성인 그 사람, 거기서 항소하다가 형량만 더 늘어나서 평생 감옥에서 썩을 팔자라더라.”

“관심 없어요.”

“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크리스티안 사인 꼭 받아주는 거다?”

“알았어요. 근데 제 사인은 안 필요해요?”

김기하는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너 사인해준 거 액자로 해서 걸어놨어. 우리집 가보 1호로 등록했고.”

“…….”

“나중에 너 발롱도르 받으면 팔려고.”

김기하가 농담으로 하는 얘기라는 걸 알고 유지우도 농담을 툭 던졌다.

“10%는 줘야 합니다.”

“아이고, 주급을 제 연봉보다 많이 받으시는 분에게 들을 말은 아니네요.”

대한민국 국가대표 분위기는 언제나처럼 화기애애했다.

* * *

여러 얘기가 나왔던 중국전이 끝난 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10월 18일.

대한민국 vs 요르단.

유지우는 사전에 얘기된 대로 벤치에서 휴식했다.

경기에 뛰지 않는데도 카메라는 유지우를 집중적으로 찍었고 대형 스크린에 유지우의 모습이 나오자.

- 와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나왔다.

[유지우 선수는 필드 안이나 밖이나 시선이 집중되는군요.]

[우리의 자부심 같은 선수가 아닙니까, 에이스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 전 유지우 선수만 보면 설레어요.]

그리고 대한민국은 에이스의 부재에도 요르단을 상대로 전반전 3 – 0이라는 점수 차이를 가져갔다.

“유지우가 없어도 이런 스코어가 가능하네?”

관중석에서는 스코어를 보며 놀란 눈치였다.

에이스의 부재.

이것만으로도 전력의 반 이상이 떨어졌다는 시선을 받는 게 대표팀의 현실이었다.

한데 약팀이라곤 해도 요르단을 상대로 큰 점수 차이로 이기는 게 놀라웠다.

“두 선수가 유독 눈에 들어오잖아.”

“아.”

“유지우의 그늘에 가려져서 그렇지 저 두 녀석도 유럽 클럽에선 주전으로 뛰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으니까.”

강예수 – 차선호 라인.

이 라인이 빛을 발했다.

뻐—엉!

강예수의 날카로운 크로스.

타다다다닷-!

차선호의 라인 브레이킹.

요르단은 수비적으로 내려앉았는데도 좀처럼 대한민국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그렇게.

철렁.

골을 먹혔다.

[황우식의 헤딩---! 요르단의 골문을 흔듭니다!]

[강예수 선수의 크로스가 정말 날카롭습니다. 땅볼이면 땅볼, 공중이면 공중. 정말 정확도가 높아졌습니다.]

강예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장점이던 크로스 플레이를 더 가다듬었다.

침투 후 패스도 패스지만.

그의 크로스는 일품이었다.

“선호야!”

그리고 오른쪽에선 차선호였다.

그는 윙포워드 성향이 짙은 선수라 윙어로 뛰면서도 중앙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이 탁월했다.

[차선호 선수가 안으로! 요르단의 수비가 따라붙는 순간!]

툭.

수비수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센스있게 패스를 보내며.

철렁.

조정후의 골을 도왔다.

공격수들도 공격수지만.

오늘 경기에서 눈에 띄는 선수들은 단연코 강예수 – 차선호, 이 두 선수였다.

삐-익! 삐-익! 삐----익!

최종 스코어 5 – 1.

강예수와 차선호는 나란히 2개의 어시스트를 올리며 ‘유없우왕’을 보여줬다.

‘유지우가 없으면 우리가 왕.’

약팀인 요르단을 상대했긴 하지만 두 선수가 보여준 호흡은 유지우의 부재에도 능히 승리를 챙길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의 가슴에 심어줬다.

.

.

.

대한민국은 이번 A매치에서만 두 경기에 15골을 뽑아내는 막강한 화력을 선보였다.

* * *

【 대한민국 vs 요르단, 5 – 1로 대한민국의 승리. 】

【 A매치 두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간 대한민국! 】

【 2경기 15골의 어마어마한 화력! 새로운 대표팀을 향한 찬사가 쏟아지다! 】

【 주앙 달루트, “이기긴 했지만,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

국민들은 이런 결과에 만족스러워하며 각종 글을 썼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유지우의 발언이 있었다.

【 ‘에이스’ 유지우, “아시아 최고는 대한민국이다.” 】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

‘아시아 최고.’

최근에 붙었던 아시아 팀들은 모두 압도적인 스코어로 이겼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이게 진짜 우리나라 맞음?

- 2030 월드컵 때부터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졌어.

- 갓지우가 합류하고 급격하게 떡락하던 국대 주식이 지금은 천장 뚫고 하늘로 승천하고 있잖아.

- ㅠㅠㅠㅠㅠㅠ 내가 이런 걸 보고 싶었던 거라고 ㅠㅠㅠㅠㅠㅠ

- 암흑기 때, 이곳저곳 치여 다니기 바쁘던 우리가 이런 점수 차이도 내는구나.

- 중국은 이번 경기에서 졌다고 깽판 부리던데.

- 아~ 우리가 주심 매수했다고?

- 근데 FIFA에서 조사한 결과 주심한테 접촉한 건 중국이라고 나오더라.

- 징계는?

- 아직 내부 검토 중이라고 안 나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이 시원하네, 그것들은 한 번 당해봐야 해.

국민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대표팀 선장인 주앙 달루트는 A매치 결과에 만족스러웠지만, 여기서 크게 기뻐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상대들의 수준이었다.

2034 월드컵을 준비하는 중이라 그에 맞는 나라들과 대결해 성과를 내야 했으니까.

모든 일정이 끝난 뒤, 감독실 안.

주앙 달루트는 유지우와 미팅을 하고 있었다.

“유, 이제 휴가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계획은 다 정했고?”

“가족들이 정했고 전 따라가려고요.”

“필드 위에선 능동적인 선수더니, 집에서는 수동적이었나?”

“그게 편하죠.”

“하하, 자네의 매력은 알면 알수록 계속 나오는군.”

“앞으로도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럼 푹 쉬고, 다음 소집 때 보지.”

“네, 고생하셨습니다.”

“다치지 말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해! 내가 비록 고향에서 멀어져 생활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입김은 있으니까.”

A매치가 종료됐고 아스날이 준 휴가 기간이 됐다.

그 기간은 9일.

유지우는 캠프장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 * *

A매치가 끝나고 하루 뒤.

집으로 돌아온 유지우는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우리 아들이 웬일로 늦잠을 다 잤어?”

비시즌 기간에도 유지우의 루틴은 변하지 않았다.

늘 6시에 기상하고 7시까지 아침 운동.

8시까지 아침 먹고 오전 운동.

이게 오전 루틴이었다.

그런데 그가 8시 30분이 되어서 일어나자 가족들이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보려고요.”

“잘 생각했다!”

“그럼! 그럼! 누워만 있어! 엄마가 밥은 입 안으로 넣어줄게!”

그의 말에 유한우와 서설희는 행복하게 웃었다.

머리에 까치집을 한 유민하는 하품을 쩍 하며 말했다.

“흐---암, 나도 밥만 입에 넣어줘요.”

“넌 잠 깨고 출근할 준비나 해.”

“으아아아-! 왜 나한테만 그래!”

“오늘 이전할 가게 아빠랑 같이 보러 가기로 했잖아!”

“아.”

“아? 아아아아? 너 또 새벽까지 예능 봤지?”

“그, 그건 피치 못할 사정이!”

가족들이 나란히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가게 이전도 이전이지만, 가장 큰 주제는 유지우의 휴가였다.

“내일 바다에 가는 거지?”

“네, 다 예약했으니까 몸만 가면 됩니다.”

“고기랑 음식은?”

“그야 제가 다 준비했죠!”

“…누나가 웬일이야?”

“나도 할 땐 하는 여자야!”

“와, 처음 알았어.”

유민하는 씩씩거리면서 밥을 먹었고 유지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민하가 짠 대로 인천 가서 1박 2일 바다 구경하고 나서 뭐 하게?”

“아르헨티나에 가보려고요.”

“아르헨티나?”

“네, 저의 첫 시작점이잖아요. 거기 있으면 마음도 편하고 잠깐이라도 쉬고 오려고요.”

“나쁘지 않긴 한데 시간이 되겠어?”

“아, 구단에서 11월 1일까지로 휴가 연장해줬어요.”

아스날에선 유지우가 좀 더 푹 쉬고 오는 게 좋다는 회장과 감독의 의견에 따라 휴가 기간을 더 늘려줬다.

그래서 기존 27일 복귀가 아닌 11월 1일 복귀가 됐다.

“많이 신경 써주는구나.”

“네, 감사하죠.”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언제 가려고?”

“24일부터 30일까지 다녀오게요.”

“짧은 일정인데 피곤하진 않겠어?”

“괜찮아요. 이미 에이전트가 항공권이랑 호텔 예약 다 끝냈고 덱스랑 에디 코치님도 동행하니까 문제없을 거예요.”

“몸조심하고,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그럼요.”

이때까지는 몰랐다.

그가 아르헨티나 여행 중, 어떤 사람을 만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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