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선수들 모두 각자의 부담이 있지만, 에이스가 된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다르지.”
리오넬 메시는 유지우가 고민하는 문제를 단번에 꿰뚫어 봤다.
그 또한 어릴 때, 그런 걸 느낀 적이 있었으니까.
“나도 네 나이 때, 그런 고민을 했었어.”
유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청했다.
“에이스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는 선수? 상대 팀에 공포감을 주는 선수?”
리오넬 메시는 음료를 마시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넌 뭐를 위해서 축구를 해?”
“그야 팀의 승리를 위해서죠.”
“음, 아주 이상적인 답변이야. 모든 선수가 하는 말이기도 하고.”
리오넬 메시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딴 건 다 필요가 없더라.”
“…….”
“물론 팀의 승리도 중요해, 하지만 선수 생활을 길게 가져가려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뛰어야 해.”
“…….”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곁에 서고 싶어지도록 만들어야지, 네가 멱살 잡고 이끈다면 너한테 더 의지만 하게 될 거야. 그러면 너도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몸도 무거워질 거고 금방 지쳐.”
에이스라는 선수가 가진 상징성은 무궁무진했다.
그 가운데서도 리오넬 메시가 강조하는 건.
“희생한다는 마음만 가지지 마.”
스스로를 희생해 팀의 승리를 이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였다.
“에이스라는 존재가 팀의 중심이 되는 건 맞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면서 괜히 지치지 말라는 뜻이야.”
“레오는 어떻게 극복했어요?”
“극복? 극복할 것도 없어, 마인드만 바꾸면 돼.”
“마인드만 바꾼다….”
“나중에 네가 한 팀의 리더가 될 때도 마찬가지야. 자신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것, 그게 에이스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야.”
“…….”
“힘들 땐, 옆에 있는 사람한테 힘들다고도 하고, 도와달라고 하고 계속해서 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내.”
이 말들은 옛날부터 들어왔다.
가족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
그러나 쉽지 않았다.
유지우는 힘들다는 말을 꺼내면 다 같이 힘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럴 바에는 그냥 속으로 삭이는 게 편했으니까.
“말 안 하고 있으면 오해만 쌓이고 나중에 말하려고 해도 이미 지나간 경우가 많아.”
에이스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유지우는 그동안 어릴 때와 마인드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러면서 박힌 생각이.
‘내가 노력해서 이겨야 한다.’
이거였다.
그래야 모두가 기뻐하니까.
그래야 사람들이 전처럼 나를 싫어하지 않을 테니까.
어릴 적의 상처가 사라지지 않고 강박관념처럼 내 안에 있던 거였다.
하지만 그건 다 착각이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그런 마음은 나중에 짐만 될 뿐이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에요.”
그러니 주변을 위해서 뛰는 게 아닌 자신을 위해서 뛰라는 것.
리오넬 메시의 요지는 이거였다.
“앞으로 목표는 뭐야?”
“조금 더 저를 위해서 축구를 하고…. 발롱도르 최다 수상이요.”
리오넬 메시는 웃음을 지었다.
“힘들 텐데?”
“이왕이면 가장 높은 목표를 가지는 게 좋잖아요?”
“그래도 좀 봐줘.”
“싫어요.”
“냉정한 녀석.”
“고마워요.”
“내일 돌아간다고 했지?”
“네, 슬슬 복귀해야죠.”
“언제 또 아르헨티나로 와, 그때는 더 길게 얘기 나누자.”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유지우는 그동안 했던 고민이 사라진 채, 머리가 맑아진 기분으로 아르헨티나를 떠났다.
【 유지우 복귀! 아스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본격적인 시동! 】
* * *
유지우가 돌아오기 며칠 전.
폴 사르 감독은 코치진을 모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정에 관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건.
‘박싱 데이.’
이거였다.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타이트한 일정.
아스날이 연승행진을 하고 있지만, 선수들의 체력소모 또한 무시하지 못할 일이었다.
“유가 돌아온다고 하지만, 내일 있을 카라바오컵에는 출전하지 못할 겁니다.”
카라바오컵 16강.
아스날 vs 뉴캐슬 유나이티드.
“뉴캐슬은 출전하는 대회가 없어서 전력으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질 확률 역시 있다는 거군.”
“모든 경기에 100%는 없으니까요.”
코치진들도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달라서 약간의 언쟁이 벌어졌다.
폴 사르가 중재에 나섰다.
“쓸데없는 싸움은 그만하고. 우리의 목표는 챔피언스리그인 만큼.”
탁.
“카라바오컵은 비중을 줄이는 걸로 가는 게 어떤가?”
“찬성입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감독님의 생각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당장 리그 14라운드랑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코치진은 의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아스날은 카라바오컵에 출전하는 명단을 주전 선수들을 제외하고 로테이션 선수 위주로 꾸렸다.
그 결과.
아스날 2 – 3 뉴캐슬 유나이티드.
로테이션 멤버들이 분발했으나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다.
【 아스날,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발목을 잡히다! 카라바오컵 16강 탈락! 】
【 폴 사르, “탈락하긴 했지만, 아쉽지는 않다.” 】
아스날은 로테이션 멤버.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전력.
결과는 패배였지만, 마지막까지 팽팽한 경기력을 보여준 것에 만족스러웠다.
【 전문가들, “아스날의 냉정한 판단,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하겠다는 의도?” 】
컵 대회에서 탈락하긴 했어도 큰 타격은 없었다.
FA컵 하위 격인 대회.
작년에 우승했었기에 차라리 탈락해서 체력을 보존하는 것이 알맞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음 날.
“왔구나!”
충분히 휴식하고 돌아온 유지우가 복귀하며 본격적인 아스날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도전기가 시작됐다.
* * *
복귀하고 하루 쉰 뒤에 감독실로 찾아갔다.
“잘 쉬다가 온 거지?”
감독님은 날 위해 직접 차를 타 주셨다.
우린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구단에서 배려해준 덕분에, 지금 당장 경기 뛰어도 세 골은 넣을 수 있는 컨디션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감독님은 연신 웃으며 내 몸이 괜찮은지 살폈다.
“가족들도 같이 왔나?”
“저 혼자 왔습니다. 가족들은 일주일 뒤에 올 거고요.”
“완전히 런던에 정착하기로 한 거야?”
“일단 부모님만요. 아버지는 식당, 어머니는 집에서 저를 케어해주시기로 했어요. 누나는 한국에 있는 레스토랑 오픈이 있어서 못 오고요.”
“그렇군.”
그러고 보니.
감독님이랑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구나.
뭐.
이건 다 감독님 덕분이긴 하다.
항상 잘 대해주니까 나도 아무런 경계심 없이 대할 수 있게 됐으니까.
벌컥-
그때였다.
감독실 문이 열리며 크리스티안 페레스와 아드리안 로마오, 마틴 그라임스가 들어왔다.
“이것들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
“감독님 보러 온 거 아닙니다!”
“나도 너희 보기 싫거든!”
“에이~ 감독님 삐졌어요?”
아드리안 로마오의 능글맞은 태도에 감독님은 손을 저었다.
“됐으니까, 나가 봐. 유도 이만 가서 쉬고.”
“네! 내일 훈련 때, 뵙겠습니다.”
감독실에서 나오자 세 선수는 내 근처로 몰렸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고 하는 것처럼.
“…문자로 다 한 거 아니었어요?”
“문자랑 실제 대화랑 같나! 현실감이 다르잖아.”
휴가 때도 아스날 선수들의 연락은 매일 이어졌다.
귀찮아서 답변을 안 할 때는 받을 때까지 전화하는 집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답변한 적도 많았다.
“그건 그렇고.”
이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건.
“리오넬 메시는 어때?!”
바로 그 만남이었다.
리오넬 메시와 내가 만난 건 이미 사진으로 퍼져서 기사가 날 만큼 많은 축구인이 궁금해했다.
‘전 세대의 최고와 현세대의 최고의 만남 아닌가.’
이런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냥 고기 먹고 얘기 나눈 게 다에요.”
“무슨 대화 나눴는데?”
“축구 어떻게 잘해요?”
“그래서!”
“뭐라고 하셔?”
“대답은?”
세 선수는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잘하면 된다고 하던데요.”
“…….”
“…….”
“……?”
내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순간 두 눈이 커지더니, 한숨을 쉬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서 걸어갔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잠은 어떻게 자요? 누워서, 이런 거랑 뭐가 다르냐고.”
“천재들의 생각과 우리 생각이 같겠냐? 자자, 가서 맥주나 한잔하자.”
아니, 이게 내 잘못이야? 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왜 다 나만 두고 가는 건데.
* * *
【 유지우, 휴가 후 복귀! 이틀 뒤에 있을 리그 14라운드 선덜랜드전 대비해 훈련! 】
【 폴 사르, “유의 컨디션은 최고, 14연승을 이어가겠다.” 】
【 선덜랜드 감독, “우리는 언제나처럼 죽을힘을 다할 것.” 】
선덜랜드는 32-33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팀이었다.
31-32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긴 여정 끝에 무려 16년 만에 1부 리그에 복귀한 클럽.
그래서 기세가 대단했고 현재 리그 8위에 오를 만큼 승격팀답지 않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 선덜랜드의 승률은? 】
【 선덜랜드의 심상치 않은 기세, 빅6 안에 들 수 있을까? 】
【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강 클럽들을 상대로도 기죽지 않은 선덜랜드, 과연? 】
선덜랜드에게 희망적인 기사들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 아스날 팬 일동, “프리미어리그 황제가 돌아왔다!” 】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황제로 즉위한 유지우가 복귀했으니까.
* * *
아스날 vs 선덜랜드.
이 경기의 예상 승률은 아스날이 압도적이었다.
전 시즌 우승 클럽과의 대결.
이번 시즌 갓 승격한 선덜랜드에게 큰 벽이 온 셈이었다.
‘빌어먹을.’
전반전이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온 선덜랜드 감독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2 – 0.
전반전에만 두 골을 먹힌 뒤라 라커룸 분위기는 잔뜩 다운되어 있었다.
중하위권 클럽과는 차원이 다른 경기력.
‘시티랑 리버풀을 상대할 때만큼이나 힘들군.’
이미 한 번 동급의 팀들을 상대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한 어려움이 있었다.
“대니.”
하지만 축구는 반전을 만들 수 있는 스포츠였다.
그래서 감독은 승격을 가능하게 한 2부 리그 득점왕 대니 에반스라면 돌파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못 뚫겠나?”
아스날의 견고한 수비.
전반전 내내 그것에 막힌 대니 에반스였으나.
“…뚫을 수 있습니다.”
선덜랜드 에이스답게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 눈빛을 본 감독은 대니 에반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벽을 가진 팀에 한 방 먹이고 싶지?”
“네!”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 수비진 가운데 가장 단단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풀백들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이지만, 센터백들은 리그를 넘어 유럽 베스트에 들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스트라이커의 도전 욕구를 끓어오르게 했다.
“한 골이면 된다. 프리미어리그 사람들한테 선덜랜드가 프리미어리그 돌아왔다는 인사 정도는 해줘야지?”
에이스로서의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해보겠습니다!”
대니 에반스는 자신감이 넘쳤다.
* * *
선덜랜드는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2 – 0으로 지는 상황에서도 라인을 올려 공격을 감행했다.
“두려워하지 마!”
한 골이면 됐다.
희망으로 삼을 한 골.
퍼---억!
그러나 그 한 골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첼시.
토트넘 홋스퍼 등.
프리미어리그 빅6와 경기를 했던 대니 에반스는 낙엽처럼 넘어지면서 데릭 레드먼드를 쳐다봤다.
‘미치겠네, 진짜.’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면 이런 느낌일까.
대니 에반스는 데릭 레드먼드와.
“어딜.”
레이턴 버트란드라는 아스날의 양대 산맥을 넘지 못했다.
[아스날의 강한 수비에 막힌 선덜랜드! 2부 리그 우승을 이끌고 프리미어리그 8위까지 오르게 한! 속공 플레이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전력 차이는 명확했다.
선덜랜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들은 늪으로 더 깊게 들어갈 뿐이었다.
- 와아아아아아아!
대니 에반스는 관중석에서 들리는 함성에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진영을 바라봤다.
현란한 패스 플레이.
그리고.
타다다다닷-!
측면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며 두 명의 마크를 따돌리는 아스날 에이스의 플레이가 눈을 사로잡았다.
‘와.’
저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매력적인 플레이.
퍼스트 터치로 압박하는 선수의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고.
투—웅!
이어서 들어오는 태클을 살짝 넘기는 감각적인 트래핑.
드리블하면서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탓.
기습적인 백숏으로 방향을 바꾸며 마크하는 선수의 다리를 양쪽으로 찢어버리는 플레이까지.
“…하아.”
상대를 체념하게 만든 아스날의 에이스, 유지우는 그렇게 왼발로 슈팅을 때렸다.
철렁.
빨랫줄처럼 뻗어나간 슈팅은 골키퍼의 손끝을 스치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유지우 선수--!!! 복귀전에서 해트트릭! 득점왕 경쟁에 시동을 겁니다!]
[이걸로 20골의 고지를 넘기며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최단 경기에 20골 클럽에 가입합니다!]
해트트릭을 한 유지우는 진영으로 돌아가며 선덜랜드 에이스, 대니 에반스에게 한마디 했다.
“Welcome to Premier League.”
16년 만에 복귀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는 그동안 변한 프리미어리그를 제대로 체감했다.
“시티의 디에고 로시랑 리버풀의 히카르지뉴보다 더 한 놈이 있었네.”
그리고 현재.
프리미어리그의 황제가 누구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