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아스날 vs 바이에른 뮌헨의 일정이 다가오자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 요하네스 로데는 매일 아스날의 경기 영상을 봤다.
- [원터치로 빠르게 압박을 벗어납니다!]
- [아스날의 공격진을 보면 볼수록 호흡이 정말 좋다는 게 느껴집니다. 굳이 시야 확보를 하지 않아도 마치 그곳에 있다고 확신하는 플레이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10번과 7번…. 그리고 11번이랑 9번이라.’
그가 유심히 보는 건 아스날 대표 공격진, Y.M.C.A라인이었다.
아스날의 새로운 황금기를 만들어낸 이들은 아스날 팬들에게 영웅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선수들이었다.
“확실히 주의하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군.”
아드리안 로마오.
마틴 그라임스.
크리스티안 페레스.
이 세 명도 재능이 출중했으나.
그 중심에 있는 유지우의 플레이는 눈을 사로잡았다.
‘아스날의 에이스.’
어떻게 막아야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해서 영상을 보던 중, 전력 분석팀이 유지우를 한 단어로 표현한 게 생각났다.
< 전술을 부숴버리는 선수 >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유지우는 2년 전부터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날아다니던 선수였다.
그리고 아스날에 와서는 그 재능을 만개해 아스날의 무패를 이끄는 에이스였고.
“후우.”
영상이 끝난 뒤에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쳐다봤다.
하도 많이 봐서 천장에도 아스날의 플레이가 잔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여기서 이렇게? 아니야 크리스티안의 능력이라면 패스로 풀어나갈 거야.’
‘그렇다면 여기는? 마틴의 돌파를 막는다고 해도 크로스 플레이로 나오면 성가셔져.’
‘아드리안의 침투를 막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는 잠도 자지 못한 채.
“…다시 봐야겠어.”
아스날의 경기 영상을 보고 또 봤다.
* * *
며칠 후.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 스타디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을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스타디움으로 이어졌다.
바이에른 뮌헨의 팬들은 거리에서부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아스날 녀석들? 당연히 우리 뮌헨한테 안 되지!”
“아스날한테 유가 있다면 우리한테는 미하엘이 있다고!”
“그것들 높아진 코를 이 기회에 짓밟아줘야 해.”
“특히 유! 그 자식! 미하엘의 앞길에 두고두고 방해될 놈이야!”
관중석의 비율은 바이에른 뮌헨이 압도적이었다.
아스날 팬들의 구역도 금세 채워지긴 했으나 타국에서 하는 경기라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펄럭-!
그러나.
“승리하라 아스날!”
현지에 있는 아스날 팬들이 합류한 원정 팬들의 기세는 홈팬들의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그들은 클럽 깃발을 휘두르며 원정을 온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다.
관객들의 함성이 점차 커질 때.
선수들은 워밍업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아스날의 라커룸 안.
폴 사르는 작전판을 두드리며 선수들에게 오늘 경기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1차전이 원정이긴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선수들도 오늘 경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본격적인 토너먼트의 시작.
그 말은 즉.
“패배하면 그 순간, 대회는 종료다.”
무조건 승리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1차전, 2차전으로 나뉘어 진행하지만,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술은 어제 미팅에서 말한 대로 진행한다. 물러서지 마, 바이에른 뮌헨의 축구는 지금까지 만난 클럽 가운데! 가장 정교하다!”
선수들의 표정에 두려움은 1%도 없었다.
오로지 승리하겠다는 투지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독일 최고의 클럽한테 영국 최고의 클럽이 어떤 클럽인지 제대로 보여줘라!”
- “네!”
“우리는 이제 막 빅이어로 가는 길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여기서 지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싸우고 또 싸워라, 그리고 이겨라! 이 세계는 오로지 승자만을 기억하니까!”
폴 사르의 동기부여가 끝나자.
“가자---!”
선수들은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친 뒤, 라커룸을 나섰다.
본격적인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첫 경기가 독일 원정이라는 것이 불안하긴 해도 폴 사르는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그동안 해 온 것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전을 준비하면서 보여준 선수들의 투지.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이기는 건 아스날이 될 거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 와아아아아아아!
양 클럽 선수들이 나란히 필드로 나왔다.
후우.
유지우는 심호흡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관중들의 생생한 표정이 그대로 보였다.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과는 다른 토너먼트의 분위기.
‘…최고다.’
유지우는 설렜다.
이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 vs 아스날! 전문가들도 승률을 50:50으로 책정할 만큼 어느 클럽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절대적인 왕.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왕.
삐—익!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이 시작됐다.
* * *
니클라스 프란 - 미하엘 벨 – 브누아 디오프.
데니스 후트 – 토마스 에더 - 레온 힐베르트.
프랑크 얀커 - 마티아스 켈러 – 틸로 후글란트 – 펠릭스 쉬츠.
콜린 쉰들러.
4 – 3 – 3의 바이에른 뮌헨.
마틴 그라임스 – 아드리안 로마오 – 유지우
메이슨 가벗 - 크리스티안 페레스 – 마테오 크리스단테.
스튜어트 바슬리 – 데릭 레드먼드 – 크리스토퍼 르마 – 카를로스 로호
다비드 바르트라.
4 – 3 – 3의 아스날.
10분.
두 클럽은 초반부터 치열하게 맞붙었다.
“간격 유지!”
바이에른 뮌헨의 강점은 단단한 중원이었다.
패스와 볼 보호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라 점유율 싸움을 하는 데 능했다.
툭.
툭.
툭.
그들은 간결한 패스로 아스날의 압박을 피했고, 후방 깊숙한 곳부터 차분히 빌드업을 쌓아갔다.
“무리해서 라인 올리지 마! 제자리를 지키면서!”
그것을 전체 통솔하는 건 토마스 에더였다.
“아스날의 리듬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가 준비한 걸 하면 돼!”
정교함의 극치.
바이에른 뮌헨의 축구는 한 명의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한 축구가 아닌 11명 모두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 축구였다.
“역시나.”
“바이에른 녀석들의 축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네요.”
“볼을 참 예쁘게 차.”
폴 사르와 대니 수석코치는 바이에른 뮌헨의 플레이를 보고 옛 생각이 났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을 맡았던 시절, 지겹도록 맞붙었던 적.
“하지만 공략하지 못할 건 없지.”
아무리 정교한 축구에도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중원의 싸움은 아스날이 밀렸으나 측면 싸움은.
퍼---억!
[어어어-! 니클라스 프란! 볼을 잡지 못하고 흘립니다!]
[카를로스 로호의 몸싸움에 밀리면서 타이밍을 놓쳐버렸어요!]
아스날이 우세였다.
수비에서만이 아니었다.
“유--!”
공격에서 역시 아스날의 날카로움이 바이에른 뮌헨보다 훨씬 앞섰다.
바이에른 뮌헨은 유지우가 볼을 잡자 약속한 대로 라인을 내려 수비를 하려고 했고 유지우는 천천히 볼을 몰고 올라갔다.
[유지우 선수! 볼을 밀고 들어오던 토마스 에더와 대치!]
[바이에른 뮌헨이 유지우 선수가 볼을 잡자 근처에 패스 보낼 곳을 모조리 막으려고 합니다!]
토마스 에더는 유지우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 녀석은 무조건 반칙으로 끊어야 해.’
2030 월드컵에서 유지우를 경험해봤던 그는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유지우 근처로 두 명, 세 명의 선수가 에워쌌다.
그 모습은 마치 유지우가 블랙홀처럼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진을 끌어당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투욱!
유지우는 차분했다.
자신에게 몰리는 선수들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볼만 툭 찍어 토마스 에더의 키를 넘겼다.
“너무 나한테만 있는 거 아니야?”
뒤로 파고드는 크리스티안 페레스 쪽으로 정확하게 향한 볼.
탁.
그가 가슴 트래핑 후, 볼을 안전하게 잡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빠르게 시야를 확보했다.
‘마틴이 들어오는 길이 막히고 아드리안은 두 명한테 마크당하고 있어.’
찰나의 순간.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전방의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가 내린 선택은, 중앙이 아닌 오른쪽 측면이었다.
[오오-! 카를로스 로호의 오버래핑! 순식간에 유지우 선수가 없어서 활짝 열린 오른쪽 측면으로 올라옵니다!]
[커버플레이가 상당히 좋습니다! 그리고 볼을 받아서 그대로 크로스---!]
수비수가 강하게 붙지 않자 카를로스 로호는 정교한 크로스를 올렸다.
볼은 수비수와 골키퍼의 사이 공간.
그리고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그곳으로 파고드는 아드리안 로마오를 향해 날아갔다.
[아드리안 로마오--! 아아아아아! 이게 빗나갑니다! 헤딩으로 틀어놓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납니다!]
위협적인 상황을 넘긴 요하네스 로데 감독은 가만히 카를로스 로호를 봤다.
‘그 짧은 시간에 아스날에 녹아든 건가?’
방금 오버래핑은 약속된 플레이가 아니었다.
그저 본능이었다.
유지우는 측면을 카를로스 로호가 커버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중앙으로 이동해 선수들의 시선을 빼앗고.
카를로스 로호는 그것에 부응해 커버플레이로 위협적인 측면 공격을 시도.
‘이거…. 생각보다 더 성가신 라인이 탄생한 걸지도 모르겠어.’
보카 주니어스 시절부터 맞춰온 두 선수의 호흡이 서서히 맞기 시작하자.
휘이잉-!
알리안츠 아레나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 * *
바이에른 뮌헨도 분데스리가 챔피언답게 한 방이 있는 클럽이었다.
[레온 힐베르트의 스루패스--! 미하엘 벨이 받아서 슈우우웃!]
[구석으로 정확하게 향했지만! 다비드 바르트라의 선방에 막힙니다!]
여러 공격 루트가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이 내세우는 라인은.
레온 힐베르트와 미하엘 벨의 조합이었다.
[저는 레온 힐베르트의 성장이 정말 놀랍습니다. 작년까지는 20경기 출전해서 2골 3어시스트가 전부인 선수였습니다. 근데 이번 시즌은 전반기에만 6골 15어시스트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레온 힐베르트는 작년까지는 평범한 선수였다.
하지만 엄청난 노력 끝에 32-33시즌에선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대장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레온, 템포를 조금 늦춰보자.”
“왜? 타이밍이 빨라?”
“…아스날 수비진이 예상보다 더 단단해, 레파토리를 좀 바꿔야겠어.”
바이에른 뮌헨을 이끄는 두 사람은 끊임없이 소통하며 아스날의 틈을 공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0분.
40분.
전반 종료 직전까지 0 – 0 균형이 깨지지 않았다.
스윽.
그때였다.
폴 사르가 손으로 무언가 지시를 내렸고 아스날은 일제히 변화를 줬다.
정규 시간이 지나가고 추가 시간 3분.
요하네스 로데는 이상한 흐름에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뭘 노리는 거지?’
위험한 바람이 불어올 것 같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유의 위치가 왜 저래?’
유지우가 서 있는 위치는 측면이 아니라 중앙이었다.
“…설마.”
요하네스 감독이 무언가를 눈치채고 지시를 내리려고 하는 순간.
타다다다닷-!
아스날의 한 방이 한발 빠르게 나왔다.
그건 바로 유지우의 프리롤이었다.
보카 주니어스부터 아스날에서도 몇 번 보여준 롤이지만, 최근 32-33시즌에는 스티븐 하머의 커버력이 낮아 자주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카를로스!”
유지우가 자리를 비운 측면은 유지우 다음으로 체력 괴물이라고 불리는 카를로스 로호가 커버했으니까.
씩.
자신이 생각한 대로 선수들이 움직여주자 폴 사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며칠을 밤새며 카를로스 로호를 활용법을 연구한 폴 사르는 이런 과감한 수를 냈다.
‘그동안 잠잠했던 유의 프리롤을 한층 더 위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카드.’
유지우는 측면에만 국한된 플레이가 아닌 전방위적으로 위협적인 움직임을 가져갔다.
- 오오오오오오!
이러한 프리롤은 유지우가 가장 자신 있어 했다.
그는 좁은 틈새에서도 정교한 드리블을 선보이며 바이에른 뮌헨의 진영을 붕괴시켰다.
그 붕괴한 틈으로.
뻐—엉!
골대까지 향하는 길을 본 유지우의 왼발 슈팅이 낮게 깔렸다.
수비수의 벌려진 다리 사이로 지나간 슈팅은 골키퍼가 반응하기엔 너무 빨랐다.
철렁.
그렇게 독일의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의 골망은 흔들렸다.
[고---올! 선제골의 주인공은 유지우 선수입니다!]
[이건 폴 사르 감독의 지시가 제대로 먹혔습니다! 유지우 선수의 프리롤!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드디어 바이에른 뮌헨의 견고한 성문을 뚫어냅니다!]
전반 종료 직전에 나온 아스날의 선제골.
이 골로 알리안츠 스타디움은 차갑게 식었다.
- 와아아아아아!
아스날 원정 팬들이 있는 곳을 빼고.
삐익-! 삐익-! 삐----익!
잠시 후.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리며 아스날이 1점을 리드하며 전반전이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