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대한민국은 조 1위에 있지만, 아직 안심할 순 없었다.
1위 대한민국 2승 1무.
공동 2위 이란, 호주 2승 1패.
경기 수가 적은 만큼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격차였기 때문이었다.
【 대한민국! 월드컵 진출의 분기점에 서다! 】
【 대한민국 감독 주앙 달루트, “우리는 최고의 성적을 거둘 준비가 됐다.” 】
그렇기에 이번 3월 경기는 순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분기점이나 다름없었다.
축구 팬들은 이 사실을 알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를 기다렸다.
다행인 건 그런 그들을 안심시켜줄 소식이 하나 있었다는 점이었다.
【 유지우 합류! 】
그들이 기뻐하는 소식은 바로 이거였다.
중요한 순간에 돌아온 에이스.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선수가 있다는 건 그들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 ㅠㅠㅠㅠ 갓지우 강림!
- ㄹㅇ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든든하냐 ㅋㅋㅋㅋㅋㅋ
- 이란이랑 호주 ㅋㅋㅋㅋ 지금쯤 난리 났을 듯.
- 저승사자가 찾아온 기분 아님? ㅋㅋㅋㅋㅋㅋ
- 쟤네들도 어떻게든 이번 3월 매치에서 이겨야 하는 데 끝판왕 등장.
- 이번에 이란이랑 호주 꺾으면 월드컵 스무스하게 진출할 듯.
- 아시아 황제가 오셨다. 다 무릎 꿇고 맞이해라!
- 이란 에이스 에산, 인터뷰했던데 봄?
-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녀석?
- 걔가 한국이 아시아 최강이라는 소리에 발끈함.
【 ‘이란 에이스’ 에산 자헤드, “아시아의 최강은 한국이 아닌 이란이라는 걸 내일 보여주겠다.” 】
에산 자헤드는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는 선수로, 이란에서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선수였다.
2026 월드컵에서 조국을 8강까지 이끈 주역이었으니까.
- 그딴 녀석이 뭐라고 하던 우리 갓지우한테는 안 되지 ㅋㅋㅋㅋㅋㅋ
- 무게감부터가 달라.
- 분데스리가도 접수 못 한 녀석이 어딜.
- 최고가 분데스리가 득점 11위인가 그렇더라.
- 응~ 갓지우는 프리미어리그 씹어먹으면서 유럽 정복 중~
- 차선호 선에서 정리 가능 ㅅㄱ
아시아 4강.
어디가 이길지 섣불리 예측할 순 없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 선수의 이름을 보고 난 후에 한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유지우가 왔으니까 한국이 이기겠는데?’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큰 에이스.
그가 합류했으니, 대한민국이 승률이 절반 이상이 됐다는 의견에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파주 트레이닝 센터.
내일 있을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은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선수들은 식당에 모였고, 유지우가 앉은 테이블에 강예수가 다가와 앉았다.
“맛있게 먹어라.”
“형도요.”
유지우 – 차선호 – 강현오 – 강예수.
대표팀의 중심들이 나란히 앉아서 식사했다.
“형! 아틀레티코가 리그 2위하고 있잖아요.”
“그렇지.”
강예수의 현 소속팀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레알 마드리드 따라잡고 우승할 수 있겠죠?”
현재 라리가는 3강 경쟁이 치열했다.
1위 레알 마드리드.
2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위 바르셀로나.
각 클럽의 승점 차이가 1~2점 내외였던 만큼 언제든 한 경기에 순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모르지, 근데 레알은 진짜 힘들어.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멀어지는 느낌?”
“…제라르가 있어서 그렇겠죠?”
“제라르도 제라르인데 주변에 있는 선수들도 미쳤어.”
레알 마드리드는 제라르 레오의 원맨팀이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갈락티코 정책을 되살려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했고, 그 성과를 톡톡히 보이고 있었다.
“제라르랑 경기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정신 못 차릴걸?”
“그래도요. 같이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요.”
“네 마인드면 유럽에서도 실패하진 않겠다.”
“정말요?”
강현오는 막내답게 패기가 엄청났다.
선배들도 그의 그런 투쟁심을 예쁘게 봤다.
밥을 어느 정도 먹자 강예수가 슬쩍 유지우에게 물었다.
“챔스 우승 가능할 거 같아?”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여전히 자신감 하나는 세계 최고네.”
“자신감으로 먹고사는 세상이잖아요.”
“이제 8강에서 만나겠네.”
“그렇죠.”
“안 봐준다?”
“둘 다 안 봐주면 되겠네요.”
“그럼 우리가 너무 손핸데….”
아스날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상대는 강예수가 뛰고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와, 그럼 챔스 8강은 코리안 더비네요.”
유지우 vs 강예수.
한국 축구팬들이 기대하는 매치였다.
승자와 패자가 갈릴 수밖에 없지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단계에서 한국 선수들이 만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대된다.”
* * *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관중석은 붉게 물들었다.
“와, 역시 유지우가 오면 관중 수 자체가 달라진다니까.”
“왜? 평소에는 달라?”
“유지우 안 온다고 하면 관중 동원력이 이것보다 떨어지거든.”
이것이 스타 플레이어의 효과였다.
협회에서 유지우를 애지중지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였다.
- 와아아아아아아!
시작 전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분위기.
응원전이 시작되며 한국 팬들은 이란 원정 팬들의 기선을 잡았다.
선수들이 워밍업하고 들어가고 만석이 된 관중석.
그곳엔 유민하가 <그녀들의 리그> 소속팀인 ‘레전드 패밀리’ 동료들과 같이 있었다.
“귀화 언니, 남편분은 어디 계세요?”
“저기.”
서귀화의 남편 박우근.
그는 A매치가 있는 날이면 늘 스카이라운지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언니도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가봤자 뭐해, 난 너희들이랑 보는 게 더 즐거워.”
그녀는 이제껏 A매치가 있는 날이면 스카이라운지에서 남편 박우근과 다른 협회 직원들과 함께 직관했다.
가족과 경기를 보는 건 무척 뜻깊은 일이었지만, 남편 박우근이 경기를 분석하며 워낙 진지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즐겁게 경기를 보기 어려웠다.
괜히 자신이 옆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
그런 의미에서 동료들과 경기를 보는 건 남편이 홀로 경기에 집중하도록 배려하는 것이기도 한 만큼, 그녀는 동료들과 경기를 볼 수 있는 지금이 무척 즐거웠다.
“그건 그렇고 민하는 방금 동생이 손 흔들고 간 거 아니야?”
“맞아요.”
“동생이 의외로 애교가 있네?”
“…쟤가요?”
유민하는 경악했다.
“저 정도면 애교 있는 거 아닌가?”
“부모님한테는 애교가 있을지는 몰라도 저한테는 달라요. 맨날 놀리기만 하고.”
덜 푸른 심장을 가진 여자라고 놀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양 나라 선수들이 필드로 입장했다.
“근데 민하는 그거 알아?”
“어떤 거요?”
“다음 국가대표 차세대 주장은 지우 선수가 할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거.”
유민하도 알고 있었다.
김기하가 은퇴할 조짐이 보이자 축구팬들은 다음 국가대표를 이끌 주장이 누가 될지 토론을 했다.
나이로 따지면 김우일이나 김재민이 할 거라는 얘기가 많지만.
‘당연히 유지우 아니겠어?’
유지우가 차세대 주장감이라는 소리가 압도적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긴 하지만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전혀 어린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이미 소속 팀과 올핌픽에서 보여주었던 리더십 있는 모습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됐던 쟤가 알아서 잘할 거예요. 저희는 그냥 옆에서 응원해주면 되고요.”
“…지우 선수가 왜 그런 아픔을 겪고도 무너지지 않았는지 알겠네.”
“네?”
서귀화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가족들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으니까 지우 선수도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겠어.”
이 말이 맞았다.
유지우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
그건 모두 가족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
.
.
그렇게 각 나라의 국가가 연주된 후.
“시작해요!”
삐익-!
휘슬이 울리며 대한민국 vs 이란의 경기가 시작됐다.
* * *
4 – 4 – 2의 대한민국.
4 – 5 – 1의 이란.
두 클럽은 경기 초반부터 치열하게 붙었다.
대한민국의 킥오프로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이란은 라인을 올려 전방 압박을 가했고, 선수들의 패스를 방해했다.
툭.
툭.
‘왼쪽.’
김우일이 차분하게 볼을 돌렸다.
[이란의 압박이 거세지만! 김우일 선수가 영리하게 볼을 보호하고 전개합니다!]
[현재 토트넘 홋스퍼와 링크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김우일의 영리한 플레이 스타일을 노리는 유럽 클럽들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표하는 곳은 토트넘 홋스퍼였다.
【 토트넘 홋스퍼, “김우일은 영리한 선수.” 】
이번 시즌이 끝난 후, 토트넘으로 갈 거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뻐—엉!
매력적인 볼 전개와 치명적인 롱패스.
그는 홀딩 미드필더.
즉,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재능을 갖춘 선수였다.
[김우일 선수의 롱패스---! 황우식 선수가 헤딩으로 떨어트린 걸 유지우 선수가!]
이란의 선수들이 잽싸게 유지우의 앞을 막았다.
두근.
두근.
그들은 심장이 떨렸다.
‘…어떤 걸 할 거지?’
유지우는 이름만으로도 상대 선수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선수로 발전했다.
툭.
그저 단순한 드리블에도.
꿀꺽.
이란 선수들은 긴장했다.
드리블을 후에 번뜩이는 눈동자.
투-욱!
더 치고 들어가지 않고 멈춘 상태에서 수비 사이에 보인 틈으로 스루패스를 찔렀다.
- 오오오오오!
이란 선수들의 신경이 유지우에게 쏠린 사이.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는 한 선수.
[차선호 선수입니다! 차선호!!! 들어오면서 바로 왼발!!!]
백업하는 수비수를 본 차선호는 볼을 잡아두지 않고 논스톱으로 처리했다.
파 포스트를 겨냥한 슈팅.
까---앙!
볼은 아쉽게도 골포스트를 강타하고 골키퍼의 품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쉬운 기회를 날리는 대한민국!]
[그래도 이 연결은 정말 감탄 밖에 안 나왔습니다! 전반 2분 만에 나온 결정적인 기회! 이란의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머리를 감싸 쥐는 차선호는 유지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유지우는 손을 저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결정적인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유지우는 웃음만으로도 동료 선수들을 아우르는 경지에 도달했다.
* * *
- 와아아아아아아!
끊임없이 울리는 환호.
“유지우!”
“가자!”
“…미친, 잡는 것만 봐도 뭐가 이렇게 두근거리냐.”
“내 사랑---!”
유지우가 볼을 잡을 때마다 관중석이 울렸다.
타다다다닷-!
이란 선수들은 강한 압박을 했다.
유지우가 볼을 잡으면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선수가 달라붙었다.
한 명은 직접적인 견제.
나머지 한 명은 패스 길을 차단하며 고립시키는 게 역할이었다.
스윽.
유지우는 타이트한 압박 속에서도 고개를 들어 활로를 찾았고.
툭, 타닷!
플리플랩으로 한 명을 제친 뒤.
휘릭.
마르세유 턴으로 두 명째 깔끔하게 제쳤다.
화려한 개인기에 관중들은 열광했다.
유지우는 오른쪽 측면으로 공간을 여는 차선호를 보고선.
뻐—엉!
날카로운 스루패스를 보내 중앙으로 밀집된 이란의 허를 찔렀다.
[완벽한 노마크를 얻은 차선호 선수---! 스텝 오버로 제치고 반 박자 빠른 땅볼 크로스!!!]
빠르게 꺾어준 크로스는 황우식의 앞으로 갔고 황우식이 논스톱으로 처리했다.
뻐—엉!
하지만 임팩트가 정확하지 않아 골대 위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걸 놓치는 황우식! 아아아-! 스트라이커라면 이런 건 넣어줘야죠!]
황우식은 허탈함에 허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후에도 여러 플레이가 나왔다.
리드하는 건 대한민국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
[아! 또 놓치는 황우식! 벌써 이게 몇 번째인가요!]
[세 번입니다. 집중만 했으면 벌써 3 – 0이 됐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러면서 몇 차례 이란에 흐름이 넘어갔다.
그때마다 수비에 성공하긴 했으나 언제 실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45분.
전반 정규 시간이 전부 지나가고 추가 시간 3분이 주어졌다.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전반전에 한 골을 넣어 리드한 채, 전반을 종료하고 싶었다.
[추가 시간 2분 30초가 지나며!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공격 기회! 최민연 선수가 앞에 있는 강예수 선수에게!]
이란의 역습을 막아낸 직후, 왼쪽 사이드부터 전개가 시작됐다.
강예수가 받으려고 하는 순간.
[어어어! 미끄러지는 강예수 선수!]
강예수는 라인 위에서 순간적으로 미끄러졌다.
이란 선수가 넘어진 강예수에게서 볼을 가져오려고 접근한 순간.
“예수 형!”
달려오는 한 선수.
유지우였다.
강예수가 넘어졌지만, 볼은 라인 아웃이 되지 않았다.
넘어지면서도 볼을 지킨 강예수는.
툭.
넘어진 상태에서 볼을 내줬다.
투—욱!
유지우는 그것을 받아 수비수가 뻗은 발을 피해 빈 곳으로 길게 차 놓고 달리며 공간을 열어젖혔다.
- 오오오오오!
신뢰를 기반으로 한 플레이였다.
강예수는 유지우가 받아주러 올 거라는 믿음.
유지우는 강예수가 패스를 줄 거라는 믿음.
서로의 믿음이 합쳐지며 방금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유지우 선수가 치고 나갑니다! 이란! 빠르게 백업을 하지만! 유지우 선수의 돌파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훤하게 열린 사이드 공간.
중앙으로는 황우식과 새롭게 발탁된 김정현이 전력으로 달렸다.
이란 수비수들이 그 두 선수로 인해 주춤할 때.
유지우는 중앙으로 올라오며 스텝 오버로 마크하는 선수를 제쳤다.
‘안이 아니라 밖?’
유지우가 선택한 건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 아닌 밖이었다.
‘아차.’
그제야 마크하는 선수의 뇌리에 스치는 생각.
‘슈팅이다.’
유지우가 향한 곳은 가장 좋아하는 슈팅 존이었다.
뻐---엉!
벼락같은 슈팅 후.
철렁.
흔들리는 골망.
완벽하게 파 포스트 구석으로 꽂히는 골에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들썩였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전반 종료 직전.
대한민국 에이스가 이란에게 한 방 먹이며 아시아의 최강이 어느 나라인지 관객들의 뇌리 깊숙이 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