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대한민국 1 – 0 이란]
전반전이 종료된 후.
이란 라커룸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들려오는 것은 오직 숨소리 뿐인 삭막한 분위기.
이란의 에이스, 에산 자헤드는 머리를 숙였다.
‘…어디서 잘못된 거지.’
이란도 못한 건 아니었다.
분명히 득점 기회가 나왔다.
윙포워드인 에산 자헤드는 전반전에서만 유효 슈팅 2개를 기록하며 이란 에이스의 이름값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예상보다 견고했던 대한민국의 수비.
그리고.
‘유.’
대한민국을 이끄는 젊은 에이스의 존재가 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쾅-!
그때 선수들을 주목 시키는 건 조엘 멘지스 감독이었다.
흰 백발에 주름진 얼굴.
올해로 75세가 된 그는 이란 국가대표만 10년째 이끄는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전반전에 끌려다니는 건 충분히 예상한 거 아닌가? 대한민국 수준은 아시아에서도 최고라고 불린다고 했잖아.”
그는 냉철한 분석으로 대한민국이 이란보다 전력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기려면 준비할 건 두 가지다.”
선수들은 조엘 멘지스의 말에 집중했다.
“첫 번째, 대한민국 공격의 시작점인 에이스를 통제하는 것.”
그는 작전판에 있는 유지우의 이름을 강하게 쳤다.
“이 녀석만 통제하면 대한민국 공격력의 절반으로 떨어진다. 두 명이 안 된다면 세 명, 세 명이 안 된다면 네 명!”
하지만 직접 유지우를 경험한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 녀석을 어떻게 막아.’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지배하려고 하는 선수를 통제하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역부족이었다.
“물론 힘든 건 안다. 지금껏 유를 만난 클럽 모두가 그렇게 대응했지만, 막지 못했으니까.”
무분별하게 유지우에게 수비수만 붙여놓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아, 간격.”
“그래 간격이다. 너희들이 붙어주면 유가 돌파할 확률을 더 높여주는 거다. 간격을 유지하고 달려들지 마! 압박감만 줘도 돼!”
바짝 붙어서 몸싸움으로 방해하는 것도 있지만, 조엘 멘지스 감독은 공간을 주지 않는 걸 중요시했다.
“각자 맡은 지역만 확실하게 지키면 한국 놈들이 들어올 공간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 뒤로도 조엘 멘지스는 열변을 토하며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지더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지는가.
조엘 멘지스는 적어도 준비한 걸 다 보여주는 걸 강조했다.
짝-!
“마지막! 두 번째!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한국 홈이라고 기죽지 말고! 아시아 최강이 이란이라는 걸 건방진 녀석들한테 보여주고 와라!”
* * *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이란은 공격적으로 나왔다.
“뒤로 물러서지 마!”
아시아 국가 중, 대한민국의 공격력이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바로 이란이었다.
사이드로 상대를 벌리며 생기는 중앙 공간에 침투 패스를 넣는 형태가 이란이 가장 선호하는 공격하는 형태였다.
뻐—엉!
[안정적인 패스를 장착한 알리 하지사피-! 김우일 선수가 발을 뻗어 패스를 방해해보는데요!]
[그러나 볼을 건드리는 데 실패하고! 패스는 전방으로 빠집니다!]
패스 방향을 확인한 김재민은 라인 브레이킹을 하는 에산 자헤드를 쫓아 들어갔다.
퍼—억!
그는 먼저 어깨를 집어넣으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에산 자헤드는 어떻게든 뚫으려고 했으나.
‘바위야?’
굳건한 김재민의 피지컬을 뚫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지켜낸 볼은 골키퍼 강인우가 안전하게 잡아내게 했다.
[이거죠! 이 선수가 바로 대한민국 수비 괴물입니다!]
[참…. 수비를 저렇게 쉽게 하는 선수도 드물 겁니다! 순간 스피드로 돌아 들어가는 에산 자헤드를 잡고 끝에는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모습은 최고네요!]
후방이 든든하게 받쳐주니 전방은 날개를 단 듯 움직임이 가벼워졌다.
“주고 들어가!”
유지우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이끌었다.
경기 전체를 보는 시야.
빠르게 판단을 내리는 두뇌.
그리고 생각한 것을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실력.
삼박자가 합쳐지며 이란을 압도했다.
[유지우 선수! 개인 능력도 능력이지만! 선수들을 도와주는 이타적인 플레이도 인상적입니다!]
차선호가 측면에 고립되자.
타다다닷-!
근처로 도와주러 가며 볼을 받아선.
뻐—엉!
왼쪽 측면 깊숙한 곳에 있는 강예수에게 전달하는 반대 전환 패스는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역시 믿고 보는 유지우 선수! 이란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원을 장악하는 것 좀 보십시오!]
[이야…. 정말 축구를 이해하는 머리가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끊임없이 돌아가는 고개.
유지우는 동료 선수들의 위치를 머릿속에 넣으며 마치 필드 전체를 보는 것 같이 자유자재로 패스를 뿌렸다.
‘…이 자식을 어떻게 막아!’
죽기 직전의 이란 선수들.
후반전에는 어떻게든 유지우를 막아보자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퍼—억!
전력을 다해 몸싸움을 붙어도 유지우는 중심을 유지하며 여유롭게 볼을 돌렸다.
“반대로!”
“템포 잠깐 늦추고!”
“이번에는 빠르게!”
“서로 얘기하면서 커버!”
유지우는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경기를 자신의 머릿속에 그린 그림대로 만들어갔고 그 마지막은.
철렁.
득점이었다.
- 와아아아아아!
[추가 골을 넣는 대한민국! 차선호 선수의 날카로운 왼발이 이란의 추격 의지를 산산이 부숴버립니다!]
[유지우 선수의 스루패스가 이란 진영을 완전히 무너트렸습니다! 전반전에 나온 장면과 비슷한 플레이가 이번에는 득점으로 연결됐습니다!]
유지우와 차선호는 어깨동무를 하며 포효했다.
* * *
[대한민국 2 – 0 이란]
70분이 넘어가는 시간.
이란은 얼른 추격하는 골을 넣어야 했다.
그래야 동점을 만들어 무승부라도 노려볼 수 있을 테니까.
“에산!”
그걸 위해서 에이스에게 볼이 집중됐다.
[측면에서 볼을 잡고 드리블을 시도하는 에산 자헤드! 돌파합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에산 자헤드는 빠른 주력이 장점인 선수였다.
그는 그것을 기반으로 한 드리블로 한국의 측면을 돌파했다.
간신히 벌린 공간을 통해 중앙으로 올라와 볼을 차려고 했으나.
촤---악!
뒤에서 들어오는 태클.
그것도 볼만 깔끔하게 차 놓는 수준 높은 태클에 찬스가 무산되고 말았다.
당황 속에 고개를 휙 돌려보는데.
“…젠장.”
태클한 선수는 다름 아닌 유지우였다.
최전방과 최후방을 오가는 유지우의 헌신적인 플레이 덕분에 이란의 공격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정말 빠릅니다! 그 먼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태클까지 성공하는 유지우 선수!]
[공격 능력에 가려져서 그렇지! 수비 능력도 월드 클래스 수준입니다!]
75분.
80분.
남은 시간은 10분.
2점 차이를 좁히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나 대한민국의 경기력을 봐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실점을 더 해서는 안 돼. 점수를 더 내줬다가는 그대로 게임이 끝이 난다.’
조엘 멘지스는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란은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변화를 주면서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이란의 필사적인 수비에 대한민국의 공격도 막혔다.
텐 백으로 내려앉은 수비.
그러던 중, 김우일이 기습적으로 시도한 중거리 슈팅이 수비수의 몸에 맞고 골라인 아웃이 되며 코너킥이 주어졌다.
삐—익!
휘슬이 울리며 김우일이 올린 크로스.
볼은 적절하게 감기며 침투하는 김재민의 머리에 맞았다.
툭.
하나 볼은 아쉽게도 이란 수비수의 머리에 맞고 나오고 말았다.
한국은 찬스를 놓쳤고 이란은 수비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무렵.
볼이 흘러가는 곳을 본 이란 선수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마, 막아!”
볼이 흐른 곳으로 달려간 선수가 유지우였기 때문이었다.
[유지우 선수입니다! 볼이 오는 지점에 정확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란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옵니다!]
이란은 가까운 선수들부터 몸을 날려 유지우의 기습적인 슈팅을 막으려고 했다.
밀집된 구역.
이란 선수들이 막을 확률이 높았다.
후우.
그러나 유지우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골대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 볼을 응시했다.
어느 코스로 찰지에 대한 계산은 이미 다 끝난 뒤였다.
그는 볼이 한 번 튀는 걸 끝까지 응시하고, 타이밍에 맞춰 바이시클킥으로 발리슛을 때렸다.
뻐---엉!
레이저처럼 뻗어간 볼은 몸을 날리는 이란 선수들 사이를 뚫고 날아갔고.
철렁.
골키퍼가 이를 악물며 다이빙을 했지만, 아무런 방해를 받지도 않은 채 왼쪽 구석에 꽂혔다.
[고오오오올! 유지우 선수가 오늘 경기 쐐기를 박습니다! 엄청난 중거리 골! 아스날의 에이스! 유럽을 열광시키는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한 방!]
[3 – 0 스코어! 그리고 이것으로 유지우 선수는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압도적인 공격 포인트 생산 능력.
유지우는 벌써 A매치 득점만 28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2030년 데뷔 후.
3년 만에 세운 기록으로 역대 한국 A매치 최다 골 순위 10위에 속하는 기록이었다.
삐-익! 삐-익! 삐----익!
잠시 후.
종료 휘슬이 울리며 대한민국의 승리가 확정됐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최종 스코어 4 – 1! 대한민국이 이란을 큰 점수 차이로 이깁니다!]
[유지우 선수는 최수철 선수의 27개의 득점을 제치고! 10위에 이름을 올립니다!]
만 20세의 나이.
한참 남은 선수 생활을 생각하면 유지우가 대한민국 역대 최다 골 기록을 세울 거라는 게 확실해 보였다.
* * *
【 Live) 대한민국 vs 이란, 4 – 1 】
- 경기력 실화냐?
- 공격이랑 수비 뭐 하나 빈틈이 없었다.
- 나아져도 이렇게 나아지나?
- ㄹㅇ 빛이 난다 ㅋㅋㅋㅋㅋㅋ
- 이 정도면 황금세대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
- 아직은 이르지.
- 괜찮지 않나? 대표팀 평균 나이도 29.4세에서 현재 25.3세로 내려왔잖아.
- 이렇게 들으니까 확 내려오긴 했다.
- 경험 있는 선수들이 없지 않나?
- 김기하랑 최민연이 버팀목이잖아.
- 걔네 은퇴는 언제 함?
- 김기하는 곧 할 거 같던데?
- 진짜?
- 다음 월드컵일지 아니면 그 전일지는 모르겠지만.
- 네가 어떻게 알아?
- 이미 떡밥은 작년부터 던져졌어, 네가 그냥 지나친 거지.
- 그러면 다음 대표팀 주장은 누가 하냐?
- 누구긴 누구야 우리 에이스인 갓지우지.
- 갓지우만한 리더감이 없긴 해.
- 존재만으로도 상대한테 위압감을 주는 주장이라 ㄷㄷ
- 아…. 설렌다.
- 2030 월드컵 때, 한 번 주장 완장 차고 나오지 않았었냐?
- 그거 8강전.
-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전에서 주장 완장 찼었잖아.
- ㅇㅇ 김기하가 중간에 교체되면서.
- 그랬던 녀석이 대표팀 에이스라.
- 어허! 녀석이라니! 공손히 갓지우님이라고 존칭을 쓰거라!
암흑기에서 황금기.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대교체가 되는 모습을 보는 축구 팬들의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
* * *
“먼저 가.”
경기가 종료되자 이란 선수들은 경기장을 떠났고 대한민국 선수들은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유지우는 선수들을 먼저 보낸 뒤, 필드에 마련된 믹스트존에 섰다.
수많은 취재진.
그는 그들이 하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을 해줬다.
“이란은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했고 선수들 모두 준비한 것 이상의 활약을 하며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인터뷰 스킬에 몇몇 취재진은 감탄했다.
“다음 대표팀 주장으로 유지우 선수가 거론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 질문 가운데 예민한 질문이 나왔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
유지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주장에 김기하 선배가 있는데 거론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김기하 선배는 대표팀에서 정신적으로 동료를 잘 챙겨주고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로서 신인들을 이끌어주는 선배입니다. 주장으로서 그보다 어울리는 선수는 없을 겁니다.”
유지우는 김기하를 극찬했다.
주장으로서 김기하가 보여주는 행동은 정말 타의 모범이 될 만큼 훌륭했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유지우는 홀로 필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여기요! 여기 봐주세요!”
“유지우 선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경기도 기대할게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 팬들은 감탄했다.
“…한국에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게 너무 좋지 않아?”
“축구 보는 맛이 있잖아.”
- 유지우! 유지우! 유지우!
그렇게 유지우는 인사를 끝내고 경기장을 나갔다.
파주 캠프장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누나인 유민하와 톡을 주고받았다.
푸른 심장 : 야!
나 : 왜.
푸른 심장 : 나도 하는 해트트릭을 못 하냐? 내가 뛸 걸 그랬나 봐.
나 : 그거 죽을 때까지 우려먹겠다?
푸른 심장 : 아주 팍팍 우려먹을 거임.
푸른 심장 : 해트트릭이 어려워?
푸른 심장 : 나는 밥 먹듯이 하겠던데?
유지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유민하가 웃자고 하는 소리라는 건 알겠지만, 이런 걸 그냥 넘기기엔 왠지 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민하가 질 수밖에 없는 카드를 꺼냈다.
나 : 시티 전에서 해트트릭할 게 기대해 줘.
푸른 심장 : …….
나 : 아주 죽어라 뛰어서 포트트릭 아니 5골을 넣어야 하나?
푸른 심장 : 동생님, 제가 말이 심했군요.
나 : 누구세요?
오늘도 유민하는 유지우를 이기지 못했다.